십 년 전에도, 어쩜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새벽 5시경이면 그는 저렇게 등을 보이며 그 자리에 앉아있었지.
작은 스탠드를 켠 채, 고요한 새벽녘에 그는 낡은 성경책을 앞에 두고 큰 노트를 펼친 채.
십수 년 전 그의 등은 젊었고 숱 많은 머리숱은 온통 검었었지.
그는 아주 작은 아이, 새근새근 건넌방에서 예쁜 꿈을 꾸고 있는 예쁜 우리 아이를 떠올리며 한 자 한 자 온 마음으로 써 내려갔지.
주님, 간절히 바라오니.
그 세월이 하루 같이 흘러,
그 작은 예쁜 아이는 이제 아름다운 숙녀가 되었지.
여전히 건넌방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우리의 아이는 이제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새벽 5시경.
오늘도 작은 스탠드를 켠 채, 이제는 조금 더 낡은 성경책을 앞에 두고 큰 노트를 펼친 채.
그의 등은 세월을 등에 지고, 온통 검었던 머리칼은 블랙 앤 화이트의 콜라보를 이루었네.
그는 한 자 한 자 온마음으로 써 내려가고 있겠지.
주님, 간절히 바라오니.
그는 내일도 새벽 5시경이면 어김없이
등을 보이며, 성경책을 놓고, 큰 노트를 펼친 채.
써내려 가겠지.
주님, 간절히 바라오니.
딸! 너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유산이 있단다.
남편이 십 년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마다 쓰는 ‘딸을 위한 기도문’.
큰 노트 한 바닥이 가득 차도록, 깨알같이 써 내려간 매일매일의 기도문.
그 노트는 이제 열 권도 넘어가고 있다. 꾸준함과 성실함이 최고의 달란트인 남편의 성향답다.
아무리 전 날 회식으로 밤늦게 와서 쓰러져서 잠들어도, 어김없이 새벽 5시경이면 조용히 기도문을 쓰고는 회사를 간다. 가끔, 잠결에 기도문을 쓰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리고 고마움과 사랑의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다시 스르르 잠이 든다.
“딸! 페리스힐튼이 안 부러운 너는 어마어마한 상속녀란다.”
남편이 출근하고 가끔 나는 남편이 쓰고 간 기도문을 펼쳐 볼 때가 있다. 그리고 손으로 만져 볼 때도 있다.
기도문을 읽을 때면, 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은 더욱 뜨거워진다. 이렇게 든든하고 변치 않고 확실한 유산이 있을까!
딸을 위한 아버지의 이렇게 간절하고 뜨거운 기도문의 값어치는 그 어떤 금은보화에 비할까.
“딸! 너는 세상에서 가장 큰 유산을 받고 있단다. 그러니 걱정 없어. 네가 살아가는 그 모든 시간에 이미 쌓인, 여전히 쌓여가고 있는 부모의 사랑과 그 기도가 있으니 두려워 말렴. 불안해하지도 말렴. 든든한 그 힘이 너를 응원하고 있으니 당당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