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부모에게서 재산을 물려받기도 하지만, 부채를 물려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상속포기'를 하게 되면 빚을 갚을 의무에서 벗어난다. 이런 제도가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나의 최애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면 주인공 지안이가 돌아가신 부모님의 빚을 갚기 위해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한다. 눈물겹다. 바로 '상속포기'를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하는 이 "환경"이라는 유산에는 '상속포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이 좋아도, 제아무리 싫어도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
1870년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불과 200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 지구 환경이 급격히 달라졌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80ppm에서 410ppm이 되었고,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구 평균기온은 1.2도 가까이 상승되었다. 빙하기도 겪는 지구에게 평균기온 1.2도 상승이 뭐 대수인가 싶지만, 상승 속도가 25배 이상 빠르다. 생태계가 미처 적응할 수 없는 속도로 지구가 변화하고 있는데, 이는 생물 다양성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기후 위기로 인해 이상기후 현상을 겪고 있다. 자연재해라고 불리던 홍수, 가뭄, 태풍, 폭염, 대형 산불 등이 이제는 인간의 활동이 원인이 되어 이상기후 현상의 규모는 커지고 빈도는 더 늘어난다. 회복할 사이도 없이 이어지는 이 현상들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된다. 대기, 토양, 해양 등 모든 곳이 나빠지기만 한다. 인간뿐 아니라 지구상에 살아가는 생명체라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깨끗한 환경이 아니다. 인구가 많아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금 문제가 되는 오염의 책임은 공평하게 1인당 80억 분의 1이 아니다.
'지구온난화'에서 '지구 가열화'가 되기까지 주된 책임을 저지른 국가들과 기업들은 따로 있다. 식민지, 자유 무역주의, 자본주의 등 모든 것이 이름을 달리하며 지구 곳곳을, 특히 남반구를 오염시켰다. 정작 그렇게 만든 이들은 부를 누렸고, 그 해당 지역 주민들은 고통을 받았다. 그들이 저지른 행동의 대가는 가장 책임이 없는 사람들부터 공격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온실가스 배출에 어떤 기여도 하지 않은 남태평양 섬주민들은 갑자기 해수면이 상승되어 국가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우리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하게 하느냐고 외치지만, 국제적으로 그에 대응하는 적절한 대처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기후 위기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삶의 만족만 추구하는 사람들, 그들에게도 잘못이 있다. '전혀 몰랐으니, 난 잘못이 없다'라고 말하기에는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 너무 나쁘다.
단기간 급속도로 성장한 대한민국,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대국(순위는 종종 바뀐다)이다. 1970년, 80년대에는 주변 사람들이 비슷하게 어려웠다. 그래서 절약하고 아끼는 것이 당연했다. 서랍 안에 바느질통이 있었고, 양말에 구멍이 나면 꿰매 신었다. 고장 난 가전제품을 수리하는 전파상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다. 외식은 특별한 날에나 하는 이벤트였다. 집에 자동차가 없어도, TV가 한 대뿐이었어도 생활에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모든 것이 넘쳐난다.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다. 대형마트에도, 집 앞 슈퍼마켓에도 물건이 꽉꽉 채워져 있다. SNS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고, 새로운 것이 금방 바뀐다. 사람들이 새로운 것, 더 화려한 것을 쫓아가기에 바쁘다.
세상에 100% 장점만 가진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장점 뒤에 가려진 뒷면을 보아야 한다. 세상이 편리해졌다. 온라인에서 주문한 물건은 다음날 아침 도착한다. 나 대신 누군가가 밤 노동을 했다. 물론 나는 그것을 정당한 대가를 주고 서비스를 받았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겠지만, 그 사이에 불필요한 온실가스는 점점 더 배출된다. 물티슈로 쓱쓱 닦으면 편리하다, 물티슈가 생산될 때에도, 버려지고 나서도 환경에 해를 끼친다. 우리가 실제 사용할 양보다 물건의 종류와 양이 많다는 것은 필요한 것보다 과잉생산됨을 의미한다. 자연재료이든 화학물질이든 원재료 없이 만들어지는 것은 없다. 자본주의가 주장하는 과잉생산, 과잉소비는 환경 입장에서는 최악이다.
다음 세대가 우리를 얼마나 원망할지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우리가 받은 환경보다 훨씬 더 나쁜 환경을 물려주었다고 얼마나 분노할까. 상속포기도 되지 않는 이 유산을 안고 살아가면서 얼마나 괴로워할까. 다음 세대의 처절한 원성에 우리는 맘 편히 눈 감지 못한다.
기성세대로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덜 나쁜 상태로 유산(환경)을 물려주어야 한다. 부유한 북반구 나라들부터 책임의식을 느껴야 하고, 남반구 국가와 피해를 입은 국가들이 재건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자금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환경정책을 집행하고, 기업에 대한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며, 개인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 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막강해서 개인의 실천은 사소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관심과 실천이 정부와 기업이 제대로 역할을 하는지 날카롭게 감시할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한 최악의 상황은 인류가 멸종하는 것이다. 앞선 다섯 번의 멸종과 다르게 이번 멸종의 원인은 순도 100% 인간에게 있다. 우리 책임이지만 우리가 고스란히 책임지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남아있는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행동하자. 다음 세대에게 최대한 덜 오염된 환경을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 폭우의 또 다른 이름은 '기후 위기'이다.
이번 여름 폭염의 또 다른 이름은 '기후 위기'이다.
-9.23 기후정의 행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