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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사항 Dec 11. 2023

갯벌은 살아있다

2023년 여름 우리나라에서 제25회 세계 잼버리 대회가 열렸다. 열린 장소는 전라북도 부안군 새만금 일원 '해창 갯벌'을 매립한 야영장이었는데, 오직 이 행사를 위해서 매립하기 시작했다(저만 이해가 안 가나요?). 매립 기간이 길어지면서, 필요한 제반시설이 시간에 쫓겨 급하게 진행되었다(대회 일주일 전까지 공사를 했다니 알만하다). 2017년 잼버리 개최지로 선정되었을 때의 청사진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문제투성이인 열악한 환경에 청소년들이 노출되었고, 제대로 마무리조차 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최악이다. 개최국의 국민으로서도 부끄럽고(아니, 이 정도밖에 못한다고요?),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하고(잼버리 참여를 위해 시간과 비용을 마련하고 온갖 기대에 부풀었을 텐데) , 무능한 일 처리에 화가 난다. 이 일을 겪고 나니 2030년 EXPO는 결코 부산에서 개최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 듯 보였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은 인간의 활동에 의한 배출한 탄소 때문이다. 온난화를 막기 위해서 탄소 배출량만큼 탄소를 흡수하는 '2050 탄소중립'을 외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기후 위기 시대에 탄소흡수원이 되는 나무, 숲, 열대우림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아마존 같은 육상생태계보다도 더 많은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곳이 바다이다. 또 '블루카본'이라 불리는 맹그로브, 염습지, 잘피림 등이 있는데, 육상 생태계보다 탄소 흡수 속도가 50배가 빠르고, 수천 년 동안 탄소를 저장할 수 있어 지구온난화 시대에 아주 고마운 존재이다. 비식생 갯벌은 지금까지는 공식적(?)으로 블루카본의 종류로서 인정받고 있지 못하지만, 연구를 통해서 갯벌 또한 곧 인정받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2주간의 대회를 위해 갯벌을 메운다니 꼭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막 따져 묻고 싶다.


<수라> 영화 소식을 들었다. 갯벌이야기여서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황윤 감독님 작품이라면 꼭 보고 싶었다. 아무리 괜찮은 다큐멘터리라도 상영관을 찾기가 쉽지 않은 법, 그래서였을까? 전국에 '100개의 극장 x 100명의 관객'을 모으는 텀블벅이 진행되었고, 고민 없이 참여했다. 양산에는 상영관이 없어, 지하철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부산 센텀 극장을 찾았다. 100개의 극장 중에는 관람객이 모아지지 않아 취소된 영화관도 있었는데, 부산에서라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관람객이 가득 차기를 내심 기대했는데, 2~30명이 채 안 되어서 놀랐다.


영화가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계속 눈물을 흘렀다. 평생 동안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린 영화를 꼽아본다면 바로 <수라>이다. 소리 내서 울지 않으려고 애썼고, 눈물, 콧물을 닦느라 바빴다. <수라>는 새만금 간척지 주변에 남은 마지막 갯벌이다. 32년째 새만금 사업이 아직도 진행 중인데,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이렇게나 무관심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황윤 감독님과 승준 군이 쇠검은머리쑥새(멸종 위기 야생생물 2급)의 울음소리를 찾기 위해 녹음하는 첫 장면부터 눈물이 흘렀다. 수라 갯벌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난 여태껏 수라의 존재도 모르고 살았는데, 수라를 지키겠다는 그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며 꿋꿋이 활동하는  여러 시민분들의 열정에 감동받아서 눈물이 났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믿으며 시간을 내어서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칭송하려는 경향이 많은데, 영화를 보는 내내 이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고,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갯벌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새만금 사업이 합법적으로  추진되도록 판결이 난 것에 화가 나서 또 눈물이 났다. 세상이 뭐 이래!


수라를 찾는 다양한 생명들을 가까이 보고 있으려니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해졌다. 처음 보는 새들이 많았다. 뿔논병아리,  쇠제비갈매기, 도요새, 저어새 등이 등장했다. 도요새는 7일간을 '쉬지 않고' 비행하는데, 그 거리가 1만 km가 넘고, 평균 56km의 시속으로 날아온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인간이여, 겸손하라!) 얼마나 힘들었으면 비행이 끝나면 몸무게가 절반으로 준다고 했다. 끝까지 날아온 도요새가 대단하면서도 안쓰럽다. 도요새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들에게 갯벌은 생존과 직결되는 곳이다. 함부로 갯벌을 없애버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가 갯벌을 지켜야 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학생일 때 사회 교과서에서 간척, 매립 같은 단어를 배웠다. 국토가 좁은 대한민국에서 매립을 해서  땅 면적이 늘어나는 것은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읽혔다. 매립한 그곳에서 농사를 짓거나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것, 그것이 곧 '발전'하는 모습이었다. 교과서에도, 선생님의 설명에도 갯벌에 기대어 살아가는 생명체의 모습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갯벌은 그저 쓸모없고, 메워서라도 이용해야 가치가 생기는 땅이었다. 사실이 아니다. <수라>에서 본 갯벌은 살아있는 공간이다.  2023년 지금, 새만금간척사업을 시작하려 한다면 과연 첫 삽이나 뜰 수 있을까? 30년 전보다도 훨씬 더 거센 국민의 반대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갯벌은 회복해야 하고, 지켜야 할 장소라 인식한다.


인간은 인간의 눈으로만 세상을 본다. 지구상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고, 무엇이든 이용 가치로 계산한다. 오죽하면 사람도 자원이 되어 천연자원처럼 인적자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느냐 말이다. 갯벌에는 우리가 다 알지도 못하는 다양한 생명이 살아간다. 그들이 점점 살 수 없는 곳이 된다면, 단지 시간차가 있을 뿐 결국 우리도 살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기후 위기 시대여서 특히 갯벌이 더 가치가 있고 우리에게 의미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역시 인간의 관점으로 '쓸모'를 강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갯벌과 여러 생명체가 존재했다. 뒤늦게 나타난 우리 인간은 그들과 조화롭게 공생해야 한다. 잘난척하는 우리는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그저 생태계의 일부를 차지하는 세입자일 뿐이다. 인간의 잣대로 자연을 함부로 파괴할 권리가 없다. 그러니 제발 손대지 말고 원래 모습 그대로 내버려 두자. 다른 생명을 가진 존재들에게 민폐 좀 끼치지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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