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선생님이 말했다. "저는 연필심 굵기로 물을 틀어놓고 설거지를 해요." "네에? 연필심이라고요?" 평소에 물을 세게 틀어놓고 설거지를 했었는데, 물살이 세면 왠지 짧은 시간에 헹궈질 거라 믿었다. 송 선생님의 말을 듣자마자 연필심보다는 굵은 모나미 볼펜 정도로 도전해 보았다. 어라? 설거지가 된다. 물줄기가 약하면 답답할 것 같았는데, 해보니 그리 답답한지도 모르겠다. 항상 설거지를 하고 나면 배 부위가 다 젖었는데(앞치마를 꼭 하는 이유), 약한 물줄기에서는 그럴 일이 훨씬 적었다. 이제는 약한 물줄기로 설거지를 한다.
수도꼭지에서 막힘없이 내려오는 물을 보고 있자면, 물을 길어야 해서 학교도 가지 못하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떠오른다. 우리는 상상도 못 할 얘기다. 또 속상한 건 그 물이 그리 깨끗한 물이 아니다. 수인성 질병이 예상되어 어느 누구도 선뜻 마시지 못할 정도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우리는 넘치도록 편리한 삶을 산다. 콸콸 나오는 수돗물과 값싼 요금도 당연하다. 꼭 그들과 비교해야 내가 누리는 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평소에는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산다는 반증이다.
우리나라 수도요금이 참으로 저렴하다. 주요 해외 국가의 평균 수도요금은 톤(㎥) 당 1,822원인데 비해, 한국은 721원이다(2022 GWI 기준). 2리터 생수가 800원이라면, 수돗물 1톤과 맞먹는 가격이다. 수돗물 없이 살기 어려운데, 가격이 싸니까 좋다. 그런데 마냥 좋기만 한 걸까? 요금이 싸다는 이유로 우리는 물을 낭비하고 있지 않을까. 가정용 사용량 기준으로 하루 평균 독일인은 평균 127리터(독일 수도요금 톤당 3,566원), 한국인은 평균 183리터를 사용한다. 독일인과 한국인의 일상생활이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은데, 사용량에서 1.5배 차이인걸 보면, 값싼 수도요금도 한몫했을 거란 추측을 해본다.
사용한 양만큼 사용료를 내기만 하면 모든 게 문제없을까? 통계에 따르면, 1인당 물 사용량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물 사용량이 많아진다는 것은 상수에서뿐만 아니라 하수처리에서도 부담이 된다는 말이다. 세제를 넉넉히 사용한 세탁기에서 나온 물은 하수 처리 과정을 거쳐서 강으로 보내어지고, 그 강물이 처리 과정을 거친 후 수돗물이 되어 다시 우리 집으로 공급된다. 각 가정, 공장에서 내보낸 물의 오염도가 심각할수록, 일정 기준의 수돗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화학약품이 투입된다. 결국 내가 사용한 물을 처리해서 마시고 사용하게 된다는 말이다. 가급적 세제 양을 줄여야 하고, 음식물을 덜 남겨야 하고, 강 오염을 막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산수돗물은 낙동강물을 원수로 만든다. 댐물을 주로 사용하는 다른 지역과 달리 표류수를 이용해서 수질이 그다지 좋지 않다. 수돗물 안전성을 신뢰하지 않는 시민들이 물병에 든 생수나 정수기를 찾는다. 그래서인지 낙동강 수질 오염, 녹조 발생 뉴스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녹조 문제가 어느덧 연례행사처럼 인식되어 피로감이 쌓인 이유도 있을 테다. 정수기는 수돗물을 사용한다. 녹조에 들어있는 남세균은 정수기로도 걸러지지 않으며 300도 이상이 되어야 균이 죽는다고 한다. 일상에서 300도 이상 처리가 전혀 가능하지 않다. 정수기와 생수를 이용하니 수돗물에 무관심해도 될까?(식당에서는 주로 수돗물로 요리합니다만) 장담컨대 수돗물의 수질은 점점 더 나빠질 것이다.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해 개인이 지불하는 비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미세먼지-공기청정기와 같은 관계이다). 그 비용을 지불할 형편이 안되면 덜 깨끗한 물을 마셔도 괜찮은가. 누구나 깨끗한 물을 마셔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수돗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구상 물의 총량은 일정하며, 액체(물), 기체(수증기), 고체(얼음)로 모습을 바꿔가며 순환한다. 물 역시 한정된 자원이다. 지구 생태계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이상기후 현상으로 제대로 물이 순환되지 못한다면,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기후 위기 시대인 요즘, 예전과 다른 극단적인 날씨가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진다. '100년 만에 일어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피해 복구를 위한 사람들의 대처에는 많은 시간과 천문학적 비용이 소모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약자인 사람들부터 고통을 겪게 된다는 사실이다.
작년 겨울(12월) 광주 에너지마을에 견학 갔을 때, 전남에는 몇 개월째 가뭄이 심각했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매일 머리를 감지 말 것을 권했고, 식당에서는 설거지 대신 일회용 그릇을 사용하기도 했다. 전남의 가뭄에 대해 모르는 부산 사람도 많았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한 지역의 고통일 뿐이었다(다른 나라의 상황을 염려하길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언제든지 물이 부족한 상황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부디 그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지만 기후 위기 시대에는 주로 나쁜 시나리오는 무엇이든 가능해 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물 절약을 배우지만, 불편함이 없어서인지 주변에 물을 아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물 절약'이라는 말을 식상한 단어로 받아들이지 말고, 각자가 '진지'하게 얼마나 물 절약을 실천하고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면 좋겠다. 물 절약이 단지 내 수도요금을 줄이는데서 그치는 일이 아님을 기억하자.
참고 K_water 홈페이지_수도요금현황
※ GWI : Global Water Intelligence (글로벌 물 전문 조사 기관, 영국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