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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사항 Jan 21. 2024

지구온난화 수혜자, 모기

어릴 적 방학 때마다 경북 의성에 있는 외가댁에 갔다. 요즘 유행하는 '한 달 살기'를 그때부터 한 것이다. 겨울보다는 여름에 더 재미나게 놀았다. 갓 따서 쪄 먹는 옥수수는 기가 막히게 맛있었고, 밭에서 제대로 익은 토마토의 맛은 얼마나 구수했는지. 시골에서는 먹거리도 풍요로웠고, 냇가에서 물놀이도 하면서 사촌들이랑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엄마, 이모들이 밥 하느라 힘들었는지 그때는 하나도 몰랐다.)


밤하늘의 별도 좋고, 노는 것도 좋았지만, 완벽하게 모든 게 맘에 든 건 아니었다. 바로 뒷간과 모기 때문이다. 파리도 많았다. 아래가 훤히 보이고, 대충 판자를 깔아놓은 것 같은 뒷간에서는 행여나 빠지지 않을까 조심하며 사용했다.


시골 여름밤, 모기장은 필수품이었다. 9살 어느 밤, 자다가 몸부림을 쳤는지 몸 반쪽이 모기장 바깥으로 탈출해 버렸다.

밤새 얼마나 모기에게 뜯겼는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 몸 반쪽은 그야말로 울룩불룩했다. 모기 물린 곳을 세어 보던 사촌이 물린 자국이 40군데가 넘는단다. 허걱. 그날 우리는 함께 사진(필름 카메라 시절)을 찍었는데, 모기에게 물린 모습이 사진에 그대로 드러난다. 추억이 되어버린 '모기 습격사건'이다.


모기에게 물리면 일단 가렵다. 단지 가렵기만 하면 좋으련만(?) 단일 동물로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인 이력이 있을 정도로 모기는 위험한 곤충이다. 모기로 인한 사망자 수는 1년에 약 70~100만 명이다. 아니 그 조그만 녀석이! 전체 모기 종류 약 3,500 여중에서 흡혈하는 모기는 200여 종 정도인데, 피를 빠는 동시에 바이러스를 옮긴다. 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에는 말라리아, 일본뇌염, 황열, 뎅기열, 지카바이러스 등이 있다.


2015년 브라질 북동부 헤시피( Recife) 도시에 지카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퍼졌다.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할 정도로 증상은 경미했다. 하지만 태아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되었던 임산부들이 출산을 했는데, 많은 아기들이 소두증을 갖고 태어났다. 지카바이러스는 그 당시 처음으로 출현한 것이 아니다. 60년이나 된 풍토병이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폭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전염되었을까? 2015년은 2014년에 이어 2년 연속 지구 평균기온이 역대 기록을 세운 해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고온, 가뭄 상태에서 뜨겁고 건조한 날씨는 지카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숲모기의 개체 수를 증가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


모기가 가장 활동하기 좋은 온도는 25~27도이다. 흰줄숲모기로 실험한 결과 기온에 따라 모기 유충이 성충이 되는데 걸리는 일수가 달라졌다. 20도에서는 30일, 28도에서는 15일로 현저하게 줄었다. 지카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숲모기 역시 지구온난화로 인해 개체 수가 증가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상기후 현상 소식이 전해진다. "전례 없는", "100년 만에"라는 수식어가 붙은 가뭄, 폭우, 폭염, 태풍, 홍수, 대형 산불이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근본 원인은 인간활동에 의한 환경파괴이다. COVID19 같은 팬데믹 역시 이상기후 현상의 한 종류이다. 인간의 탐욕이 부른 삼림 벌채 등으로 인한 환경파괴로 인해 인간과 야생동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굳이 공유 안 해도 괜찮은(?) 인수공통감염병에 전염되었다.


우리나라도 점점 겨울이 짧아지고 포근해진다. 뎅기열을 옮기는 흰줄숲모기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서식 중이다. 다만 성충이 겨울 낮은 온도에서 생존하지 못하고 죽기 때문에 아직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모기는 13도 이하가 되면 활동을 잘 못한다는데, 아열대기후로 변해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가까운 시간에 뉴스에서 국내 발병 소식을 접할 가능성높다.


모기가 전염병을 옮기는 위험한 존재이니 대량의 살충제를 살포해서 모기를 박멸해야 할까? 모기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을까.

레이첼 카슨의 책 '침묵의 봄'에서도 보았듯이 다량의 살충제는 내성을 지닌 더 강한 돌연변이를 만들어 낸다. 근본적 효과도 없을뿐더러 식물, 땅과 지하수에 스며든 살충제 성분은 인간과 자연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되돌아온다.


우리에게는 마냥 귀찮고 위험한 존재이지만 생태계에서는 제 역할이 있다. 꿀벌처럼 식물의 수분을 옮기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개구리, 새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각종 유기물 찌꺼기를 처리하며, 동물의 개체 수를 조정한다. 인간의 기준으로 유해동물이라 분류하고, 유전자 조작을 통해 모기를 멸종시키려는 생각은 너무 오만하다. 인간에게 생태계의 한 종을 멸할 권리가 있을까.


모기 개체 수가 많아지는 근본 원인인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 그 속도를 낮추기 위해 힘써야 한다. 우리는 탄소중립하는 방법을 이미 다 알고 있음에도, 자꾸 뜬구름 같은 지구공학적인 해법을 찾으려고 한다. 다른 근사한 방법이 나올 거라 희망을 걸고 시간을 번다. 온실가스 배출을 낮추는 방법도 잘 안다. 숲과 바다, 갯벌이 탄소흡수원으로 중요하다는 것도 잘 안다. 이제는 당장 실행할 때이지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환경 파괴를 멈추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한다. 만약 지구에서 인류의 삶을 지속하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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