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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사항 Oct 06. 2023

나의 소비습관

충동구매를 해보았다!

5월 가족여행을 떠났다. 서울에 머무는 이틀 동안 많은 비가 내렸고, 마지막 날 아침이 되어서야 맑게 개었다. 하늘이 파랗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렇게나  발걸음이 가벼워지다니! 새삼스럽게 맑은 날씨가 고맙고, 기분이 좋았다. 삼청동 길을 걸었다. 카페, 빵집, 소품 숍 등 아기자기하고 눈길을 끄는 곳이 많았다. '플리츠마마' 가게가 보인다. 아는 브랜드다. 한옥을 개조한 가게는 독특해 보였다. 카페에서 잠시 쉬면서 검색하니 여기가 플래그숍이고, 마침 그린 칼라 제품을 20% 할인하는 행사를 한다. "어머, 여기는 꼭 가야 해!"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환경에 관심을 가진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SNS에서 '플리츠마마'를 알게 되었다. 사용하고 버려진 페트병을 재활용해서 의류나 가방을 만드는 회사다. 사진 속 초록색 집업 재킷이 구매욕을 마구 자극했다. 이 브랜드의 옷을 입으면 왠지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소비자임을 증명할 것 같았다. 살까 말까 망설였지만 최종적으로는 구입하지 않았다. 친환경 제품이라 해도 광고에 현혹되지 않은 나를 칭찬했다. 버려진 자원을 재활용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환경에 도움이 되는 활동이 맞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당장 쓰레기로 처리될  뻔한 폐페트병을 잠시 심폐 소생한 것이다. 원재료가 플라스틱이니 미세 플라스틱의 문제도 심각하다. 착용할 때마다 미세 플라스틱이 공기 중에 떨어진다. 세탁할 때는 더 많은 양이 떨어져 나온다. 이상적인 재활용은 페트병이 다시 페트병이 되는 닫힌 고리가 되어야 한다. 그와 더불어 페트병 자체의 소비를 줄이는데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점이 가장 중요하다. 


동거인 둘은 카페에 남겨두고, 구경이나 해볼까 하며 플래그숍으로 갔다. 한옥 자체가 공간이 다양하다 보니 크기가 엄청 크지 않았음에도 쇼룸으로도 잘 어울린다. 니트백을 갖고 싶었던 적이 거의 없었는데, 내 눈으로 직접 보니 갖고 싶은 맘이 생긴다. '견물생심'이 이런 건가 보다. 다채로운 색깔도 예쁘다. 직원이 계속 따라다니며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오프라인 매장에 거의 가지 않아 이런 응대에 익숙하지 않다. '이거 조금 부담스럽네, 이러면 사야 할 것 같잖아요.' 할인을 하는 아이템 중에 하나를 골랐다. 한 번도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세이지 색이다. 분명 할인의 힘이 구매하는데 큰 작용을 했다. 가게에 들어간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계산대 앞에 서 있는 나를 보았다. 서울 방문이 처음도 아니면서 여행 기념품 명목으로 나에게 선물하고야 말았다.


팬데믹 상황에서 얼마나 옷을 안 사고 지낼 수 있는지 시험해 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무려 8개월이었다. 그 긴 기간 동안 새 옷이 없어도 괜찮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꼭 필요에 의한 구입이라기보다는 남을 의식한 소비를 하였다는 것을. 단정해 보이고 싶고, 후줄근해 보이기 싫다는 이유로 쇼핑을 쉽게 했다. 비싼 옷이나 사치품을 사지 않으니 나의 쇼핑 습관은 바람직한 줄 알았다. 

현대는 자급자족 사회가 아니므로, 소비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행위이다. 새 물건을 좋아하던 내가 환경에 대해 알아가면서, <소비>가 나의 진짜 선택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고민하고 고르고 구입하니까 나의 선택인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누군가가 끊임없이 생산한 물건을 그저 습관처럼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환경'의 정의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라면, 인간이 만든 물질로 나는 둘러싸여 있다. 그 선택지 안에서 소비할까 말까를 고민하지 않고, 소비가 기본값인 양 무엇을 소비할지를 고민한다. 무언가를 생산한다는 의미는 한정된 지구의 자원을 소모한다는 뜻이다. 언제까지 과잉생산, 과잉소비의 패턴을 반복할 수 있을까? 이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황폐화되고 쓰레기장이 되어간다. 과잉생산하는 기업만 지구에게 해를 끼치는 건 아니다. 소비자로서 나 역시 묵묵히 해를 끼치고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물건을 고르느라 집중하고 있는 내 뒷모습을 상상해 본다. 뒤에서 보아도 두 눈이 반짝거린다. 온라인 쇼핑으로 최저가를 검색하며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소비자라 '착각'한다. 여기에는 한 가지가 빠져있다. 내 소중한 시간. 오프라인 매장까지 오고 가는 시간과 비용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시간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데, 당장 내 손에서 비용이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짜인 양 여긴다. 시간까지 지불하는 비용에 포함된다면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산 셈이 된다. 경제적인 인간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헛똑똑이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두 달이 되어가지만 내가 그날 산 가방을 들고 다닌 횟수는 다섯 번도 채 되지 않는다. 보부상인 나는 텀블러, 책 한 권 등을 필수로 넣어 다녀야 하는데, 이 니트백은 에코백보다도 그리 실용적이지 않았다. 충동구매지만 오래도록 잘 쓸 물건이라면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다. 물건을 살 때 필요한지 세 번 이상 확인하기. 소비에 관해서는 예전보다 훨씬 까다로워졌고, 잘 실천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여행이라는 상황 때문이었을까, 눈으로 직접 구경하고 욕심이 났던 걸까. 내가 세운 규칙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한 번쯤 기분전환용으로 살 수도 있지'라고 너그럽게 이해해 보려 하는데, 여전히 개운하지 않다. 


폐페트병 16개로 만들어진, 서울 여행을 떠오르게 하는 세이지 숄더백, 앞으로 마르고 닳도록 잘 사용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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