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부산 장전동에 살았다. 도로 양옆에 커다란 나무들이 줄지어 있었고, 나무줄기와 잎들이 서로 만나 터널처럼 만드는 그 길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근처 산성터널 공사로 도로가 확장되면서 길가에 있던 가로수를 다 정리해야 했다. 당연히 나무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질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베어진다고 했다. 수십 년은 족히 그 자리에 머물렀을 나무들이 그렇게 한순간에 베어져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그 큰 나무들을 이동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 했다. 큰 나무들을 옮길 수 있는 트럭과 경비를 고려했을 때, 베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살면서 나무를 싫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무들이 어우러져 만든 숲의 다양한 초록 빛깔은 그 자체로 정말 아름답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총인구의 91.9%가 도시에 거주한다. 교통이 편리하고 생활에 필요한 것이 가까이 있는 도시에 살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언제나 자연이 그립다. 모두가 나무가 있는 마당을 갖기는 어렵지만, 대신 집 근처에 작은 공원이라도 있기를 바란다. 8년째 살고 있는 이 집을 고른 이유도 도보 10분 거리에 공원이 있기 때문이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나무를 좋아한다지만, 사실 우리는 나무에 대해서 잘 모른다. 잘 알려고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 삶에서 언제나 나무는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벚꽃이 만개하는 봄, 꽃잎이 바람에 흩날릴 때는 아름다워서 탄성을 지른다. 하지만 벚꽃이 필 때가 아니고서는 벚나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한다. 가을에 은행열매가 떨어지고 밟혀서 냄새가 날 때에야 '여기에 은행나무가 있었구나' 한다. 나무를 좋아한다면서, 이렇게나 나무에 무관심하다.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가로수 중에서 약 40%를 차지한다. 이렇게나 많이 심어진 이유는 이산화탄소 흡수율이 좋고, 꽃가루가 날리지 않고, 병충해에 강하고, 껍질이 두껍고 코르크질이 많아 화재에 강하기 때문이다. 장점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은행나무 악취에 대한 민원이 많다. 대책으로 지자체에서 '열매 수집망'을 설치했다. 정말 좋은 생각이다. 아예 은행나무를 없애고 다른 수종이나 수은행나무로 대체한다는 지역도 있다. 수은행나무 교체에는 한 그루 당 200~300만 원이 든다는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현재 은행나무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 않고 베어질 것 같은 불길함이 엄습한다. 은행의 악취 원인은 곤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1년은 52주, 우리는 고작 2~3주 견디지 못한다. 열매 수집망을 설치하면 그 정도 기간은 우리가 참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건 가로수로 고생하고 있는 은행나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가로수"로 검색하면 좋은 내용의 기사보다는 속상한 내용이 훨씬 많다. 가로수가 가게 간판을 가리니까, 바다 뷰를 가리니까 베어 달라는 민원, 낙엽이 영업장 안으로 들어오니 해결하라는 민원에 해결책으로 나뭇가지가 댕강 잘려나가서 처참한 모습이다. 나무를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사람들이 원망스럽다. 살아있는 나무가 아닌 마음대로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나무 막대기로 여기는 것 같다. 간판이 안 보여서 영업에 방해가 되었다면, 나뭇가지를 싹둑 자르고 나서 가게 손님이 훨씬 많아졌을까. 근사한 나무가 가게 앞에 있으면 오히려 손님이 더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또, 민원담당 부서에서는 민원처리만 우선시하지 말고, 가로수가 우리에게 주는 역할을 알려주고, 무조건 가지치기를 강하게 할 수 없다고 오히려 민원인을 설득해야 한다.
'닭발 가로수'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가지치기를 심하게 했는지, 나무가 닭발을 닮았다. 나무를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막무가내로 잘라내지 못한다. 사람으로 치면 팔이 잘린 모습이다. 반려동물만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무도 살아있다. 길에 늘어선 닭발 나무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가지치기를 할 때, 다른 나라에는 최대 25% 정도까지 자르는 규정이 있다는데, 정작 우리는 가지치기에 대한 규정은 없는 것인지, 나무를 직접 자르시는 분들은 나무를 잘 이해하시는지 궁금하다. 싹둑 잘린 면은 세균에 감염되고, 썩기 시작한다. 잦은 강전정으로 인해 썩은 나무 밑동을 자르니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이 있었다. 겉으로 나무가 튼튼하게 서있는 것 같지만, 내부가 텅 빈 나무는 태풍에 쓰러지기 쉬운 까닭에 위험하다.
여름철 나무 그늘이 시원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나뭇잎으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잎의 증산작용 덕분에 체감온도를 더 낮춰서 시원하게 해 준다. 멀리 숲을 찾아가지 않아도 가까이 나무를 만날 수 있기에 가로수는 우리에게 고마운 존재이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고, 대기의 나쁜 물질과 소음을 흡수하는 역할도 한다. 인간 입장에서는 이로운 점만 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데, 우리는 닭발 나무를 만들어가면서까지 나무를 홀대한다.
기후 위기 시대를 대응하는 방법 중 하나는 나무를 많이 심는 것이다. 누군가는 탄소 포집기술이 대안이라고 하지만 상용화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 반면 나무 심기는 별다른 기술이 개발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당장 부지런히 심고 가꾸면 된다. 손쉬운 나무 심기 방법을 두고 우리는 오히려 값비싼 기술에 희망을 걸고, 개발되기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보낸다.
내가 가로수라면 어떤 기분으로 그 자리에 서있을까? 나무의 의지로는 이사를 갈 수 없으니 묵묵히 서있다. 자동차의 매연을 마시고, 소음에 하루 종일 노출되어 있고, 기둥 옆으로 전깃줄이 늘어져있고, 주변의 가로등을 포함한 인공적인 불빛에 깜깜한 밤이 없다. 나무도 쉬고 싶을 테다. 쓰레기를 줍다 보면 가로수 주변에 유난히 담배꽁초가 많다 (가로수는 재떨이가 아닙니다만). 이쯤 되면 나무는 가로수로 살아가기가 죽기보다 싫었겠다. 나무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면 아마도 괴로움에 체념한 표정일 것 같다. 얼마나 인간을 원망할까.
가로수가 하나도 없는 거리를 상상해 보면 우리가 가로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 마음은 벌써 삭막해지고, 도시의 열을 식혀줄 나무그늘 하나 없다 생각하니 더워지는 느낌이다. 가로수는 그만큼 우리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가로수를 대하고 돌보고 아끼자. 가로수는 한낱 시설물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우리가 심었다는 이유로 인간 마음대로 대할 권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