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 "엄마, 오늘 진짜 덥지요? 에어컨은 켰지요?"
엄마: "에어컨 켜도 부엌에서 국 끓이고, 반찬 하니 너무 더워. 안 먹을 수도 없고. "
나 : "에고, 맞지요, 여름에 불 앞에서 음식 하는 게 특히 고역이에요, 정말. 여름에는 한 끼 정도는 배달해 먹으면 어때요?"
엄마: "맨날 뭐 시켜 먹을 거나 있나?'
나 : (들으면서 끄덕끄덕)
낮 기온 32도인 오늘 엄마와의 통화 내용이다. 이렇게 무더운 날에도 각 가정에서, 단체 급식소에서 땀 흘리며 음식을 준비하는 분들이 계신다. 그분들이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조금이라도 그분들의 입장이 되어보면 좋겠다. 누군가는 차려진 음식을 짧은 시간 동안 먹을 뿐이지만, 그걸 준비하는 과정은 결코 짧지도 쉽지도 않다.
서른세 살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그 말은 엄마의 보살핌을 그 나이까지 받았다는 의미이다. 전업주부인 엄마가 가족에게 밥을 차려주는 것을 '엄마의 역할'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혼자 독립한 시간이 없이 결혼을 했다.(독립한 시간이 없다는 점이 참 아쉽다.) 막상 결혼을 하니 나는 직접 요리를 해 본 경험이 많이 없었고, 그나마 동거인이 음식을 할 줄 알아서 그럭저럭 우리는 생존(?) 할 수 있었다.
내가 꾸린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우리 엄마의 고충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외식은 특별한 날에만 하는 행사였고, 배달 앱도 없었으며, 중국집 배달이 전부였다. 매 끼니 손수 준비하느라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그 힘듦에 대해서 우리 가족은 얼마나 고마워하고, 그 마음을 표현했는지 돌이켜보면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맛있어요." 정도가 전부였다. 그 당시 엄마의 마음을 너무 못 알아줬다는 생각에 뒤늦게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나 : "찬희는 무슨 밥이 가장 맛있어?"
찬희: "엄마가 해준 밥은 뭐든 맛있어. 엄마는?"
나 :"진짜? 엄마는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어."
7년 전 내 생일이었다. 무엇을 하고 싶냐는 동거인의 질문에 "갖고 싶은 건 없어, 2박 3일 동안 밥을 하고 싶지 않아!"라고 외쳤다. 그래서 동거인이 식사를 준비하거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편하려고 식당을 찾아다니며 끼니를 해결했는데, 자꾸 2%는 부족한 밥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연달아 식당에 가니 그리 흥이 나지도 않았고, 그저 한 끼 때우는 느낌이었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이렇게나 마음이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다니. 식당 밥을 계속 먹으니 오히려 '집밥'이 생각났다. 식당에서 내오는 것처럼 반찬 종류가 많지 않아도 갓 지은 밥과 금방 만든 반찬 두어 가지만 있다면 든든한 집밥이 된다. 소박하지만 정성이 담긴 집밥이 참 좋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미각에 아주 집중하고 있다. SNS 영향인지 맛집이라고 소문나면 열심히 찾아다니고 긴 시간 웨이팅도 마다하지 않는다. 소위 '먹방'이라 불리는 영상도 인기가 많다. 항상 잘 먹는 것이 중요하고,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도 이제는 이상하지 않게 보인다. 우리가 너무 풍요로운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지구상의 8억 명은 기아 상태인데,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의 먹거리에만 집중하며 살아간다. 넓은 의미로 우리가 같은 지구 집에 살고 있는 가족이라 생각하면, 참으로 나쁜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배고픈 사람을 옆에 두고 나만 맛있는 걸 먹겠다는 생각뿐이라니. 내 주변에 배고픈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함께 적당한 양을 나눠먹으면 좋겠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제 끼니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독립적인 성인으로 자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찬희는 꼭 그렇게 성장하길 바란다.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상에만 익숙한 사람이 아닌 스스로 음식을 준비할 수 있고, 한 끼의 고마움을 아는 사람으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사람들이 무엇을 고를지 궁금하다. 살아생전 마지막 음식으로 값비싸고 화려한 요리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원하는 건, 접시에 따뜻한 밥 한 그릇과 나물 반찬이 담겨 있으면 좋겠다. 그 정도면 충분히 만족한다.
그때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완식'해야지!
*'완식'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다 먹는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