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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사항 Oct 24. 2023

나는 자랑스러운 쓰줍인이다.

"쓰줍인"은 내가 아끼는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이라는 커뮤니티의 이름이다. 2023년 11월 1일이 되면 만 3살이 된다. 쓰줍인이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더니, 어느덧 쓰줍인 "조상"이 된 나.


2020년 팬데믹이 한창인 시절, '플로깅'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실내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던 그 시기에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난 조깅 대신 산책한다) 운동을 하면서 덤으로 쓰레기를 줍는다는데 이 얼마나 멋진가. 정말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이 플로깅에 열광적이었다. 나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팬심 가득한 '톤 28'이라는 비건 화장품 회사에서는 플로깅을 적극 응원했다. 파란 티셔츠가 담긴 플로깅 세트를 보내주었고, 톤 28 쓰레기봉투와 함께한 쓰레기 줍기 활동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천 원씩 기부했다. 쓰레기 줍기는 순도 백 퍼센트의 장점만을 가진 활동이었다.


처음 시작한 쓰레기 줍기는 재밌었고, 뿌듯했다. 스스로가 좀 괜찮은 사람인 듯 느껴지기도 했다. 매주 1회 쓰레기를 함께 줍던 멤버 네 명이 환경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을 모아 한 달에 한 번씩 환경책 모임을 진행했다. 책 모임 이름은 <내일_N>이다. '이대로 계속 살아간다면 내일은 없다, 우리의 행동으로 내일은 달라질 수 있다'의 의미이다(책 모임 이름에서 비장함이 느껴진다). 선뜻 책 모임을 한다고 결정한 멤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쓰레기 줍기가 환경책 읽기로 이어지다니 어찌 이보다 긍정적일 수 있을까.


쓰레기 줍기는 환경 공부의 시작이었다. 왜 사람들이 쓰레기를 길에 버리는지가 첫 번째 의문이었다(쓰줍 3년째이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버린 사람들을 원망하다가, 그 원망은 마구 포장지를 만들어낸 기업들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무조건 상품을 판매만 하면 상관없는 것인지, 자신들이 만든 포장재가 환경에 어떻게 해를 끼치는지 생각은 하기는 할까. 마구잡이 과대포장에 화가 났다. 포장재는 결국 일회용이고, 제품을 소비하는 순간 쓰레기로 바뀐다. 플라스틱 쓰레기의 30%는 포장재이다. 포장재만 최소한으로 줄여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크게 줄게 된다. 그렇다면 과대포장에 대해 규제해야 할 정부는 왜 가만히 보고만 있지? 정부가 환경에 대한 생각이 있기는 한 건가? 왜 이리 기업 편 인가라며 비판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의 해답에는 거대한 '자본주의'가 있었다. 이렇게나 문제와 부작용이 많은 자본주의라면,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의 끝자락에 서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쓰레기 줍기로 시작한 공부는 쓰레기에서, 해양 쓰레기, 소비, 제로 웨이스트, 에너지, 기후 위기, 생물 다양성 문제 등 모든 환경 주제로 이어졌다.


쓰줍 시작한 지 약 두 달 만에 쓰줍인의 온라인 환경 스터디에 참여하게 되었다. 매주 금요일 밤 8시, 스터디에 대한 열정으로 금요일 밤은 그야말로 '불금'이 되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환경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때때로 함께 분노했고, 또 위로도 받았다. 친구 어머니 장례식에 가던 날을 빼면 1년 5개월 동안 꼬박꼬박 스터디에 참여했다. 스터디 멤버들을 실제로 만나면 마치 오래 안 사이처럼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줍고, 환경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쓰줍인'이라는 공간이 참 고마웠다. 쓰줍인 덕분에 '코로나 블루'는 내게 전혀 상관없는 단어가 되었고, 긴 시간 잘 버틸 수 있었다.


동네 쓰레기 줍기는 하다 보면 아주 가끔 "수고하십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인사받으려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인사해 주시면 또 고맙다. 지나가던 한 분이 "치우는 사람이 있는데 뭐 하러 쓰레기 줍느냐"라고 물으시길래, "지나다니는 길이 깨끗하면 좋잖아요, " 말씀드렸다. "그건 그렇지." 하신다.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정해 놓으면, 버려진 쓰레기는 환경미화원 내지는 공공 근로하시는 분들의 일이 된다. 우리 동네가 지저분하건 말건 내 알 바 아니라는 뜻이다. 쓰레기가 없는 길을 걸으면 그리 기분이 좋다. 출근길, 지하철 타러 가는 길에 쓰레기가 많으면 절로 인상이 써진다. 쓰레기만 도드라져 보인다(이건 쓰줍인의 부작용이다). 종종걸음으로 가면서도 저거 주워야 되는데 어쩌나 한다. 눈앞에 쓰레기가 보이는데도 무신경할 수 있습니까?


환경 공부는 꾸준히 이어가고 있지만, 쓰레기 줍기는 전처럼 자주 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는 틈틈이 하려고 마음먹었다. 올해 3월 매일 쓰레기 줍기 챌린지를 시도해 보았다. 짜잔! 결과는 31일 중 29일을 성공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 날과 아이가 입원한 날(마침 31일-다행!) 이틀은 하지 못했다. 1월에 일을 갑자기 그만두면서 2월에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사소한 행동을 꾸준하게 하면 힘이 생긴다는 조언을 듣고 챌린지를 시작해 본 것이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 사소한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뻤다.

9월 추석 연휴는 총 6일이었다. 집에서 쉬기로 마음을 먹은 터라 6일 동안 쓰레기 줍기 챌린지를 또 해보았다. 모두 다른 길에서 쓰레기 줍기가 이번 챌린지 목표였다. 마지막 날을 빼고 5번을 성공했다. 실천하려고 노력한 나를 칭찬했다. 쓰레기를 주워 단지 동네가 깨끗해지는 효과와 더불어, 쓰레기 줍기는 환경에 대한 나의 초심을 상기시키는 힘이 있다.


팬데믹 이전만큼 상황을 회복한 지금, 개인적으로 체감하기에 플로깅에 열광하던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드는 듯 보인다. 자유롭지 못했던 기간 동안 억눌려있던 활동을 충분히 즐기고 있어서일까. 환경을 알아가면 갈수록 함께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잠재적 환경에 관심을 가질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길 바라는데, 현실은 그 반대다. 길에는 버려진 테이크아웃 컵 못지않게 아이스크림 막대와 과자봉지가 유난히 많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쓰레기 기를 꼭 해보면 좋겠다. 한번 주워본 사람은 절대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환경을 걱정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그날까지 나의 쓰레기 줍기는 계속된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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