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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구스티노 Jan 31. 2023

본사라 해도 지방은 가고 싶지 않아요

14 │ 그때의 나는 그렇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



갑자기 현과장님이 어디서 듣고 왔는지 소문을 전한 것은 내가 IR로 배치받은 지 1년이 겨우 넘은 2006년 2월이었다.


"우리 팀에서 한 명 수원 본사로 가야 한다는데? 경영기획팀으로 한 명 가야 한대."

"아.. 네, 갑자기 누가 수원을 가게 되는 거네요."

"그렇지, 수원을 가긴 가야지 결국은."

"가면 엄청 고생한다. 거긴 맨날 야근이고 주말에도 나와야 하고…"

"네, 저도 예전에 인사팀에서 대기할 때 보니까, 재무 인사 기획 모두 진짜 다 늦게 가더라구요."

"나 아니면 손대리, 둘 중에 한 명이 갈 것 같다."

"아, 그래요? 혹시 제가 갈 수도 있나요?"

"아니, 너는 겨우 1년 넘었는데 너를 보내진 않겠지. 강과장님이 갈 수도 있고. 모르겠다 진짜."

"아, 네..."


‘나를 보내진 않겠지.. 설마..‘

IR에 배치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고, 나 같은 사원 나부랭이를 수원에서 어디다가 쓰겠나 싶었다. 선배들도 나는 아니라고 했서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고, 갑작스레 팀장님이 부르셨다.


"한결 씨, 회의실에 잠깐 가 있어."

"네, 팀장님."


그냥 무슨 일인가 싶어서 회의실에 수첩 하나 챙기고 먼저 들어가 있었고, 팀장님은 얇디얇은 담배 하나를 들고 오신다.(그때만 해도 높은 분들은 회의실에서 몰래 담배들을 피곤했었다.)


"한결 씨.“

"네."

"음. 경영기획팀에 한 명 가야 한다는 얘기 들었어?"

"네, 엊그제 들었습니다."

"거기에 한결 씨 가야 한다고 하면 어때?"

‘엇.. 뭐지?’


"저요? 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음..“

쿠쿠 밥솥보다도 뜸을 오래 들이시는 것이 뭔가 불길하다.

“음,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상무님이 한결 씨를 본사로 보내라고 하네. 전사 돌아가는 것을 아무래도 거기 가면 잘 배울 수 있으니까, 그래서 오라는 것 같아."

'잉? 나를? 와. 이거 무슨 일이야. 나는 아예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아, 저를요?"

"그래, 한결 씨가 근데 지금 집이 수원이랑 너무 먼데, 수원을 갈 수 있겠어?"

"아. 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젠장, 나는 일산에서 겨우 남대문까지 다니고 있는 건데, 어떻게 수원으로 회사를 다니냐.'

'이사를 무조건 가야 한다는 건데.. 와, 이건 진짜 너무 배려가 없는 발령이네.'


"그래요. 잘 고민해 봐. 수원 본사에 가서 배우는 게 여러모로 좋긴 할 거야."

'아… 이걸 안 간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안 간다고 해도 되나. 근데 내가 안 가면 내 위에 선배들 중 한 명이 가겠지? 근데, 왜 상무님은 나를 내려오라고 하는 건가.'

"네, 일단 알겠습니다. 주말에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자리로 다시 돌아왔는데, 손대리님이 메신저로 물어본다.

"팀장님이 뭐라고 하시니?"

본인이 갈까 봐 두려워하던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아, 대리님, 저보고 수원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상무님이 저보고 내려오라 하셨대요."

"잉? 너보고 가라고? 왜 온 지 1년밖에 안 된 애를 보내는 거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좀 당황스럽습니다. 이사도 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네. 어쩌냐.. 근데 정말 의외다."

온라인으로는 0과 1로 변환되는 문자나 목소리만 넘어오는 것 아니었나. 어떻게 된 게 메신저 너머로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라는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냐.


그런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긴 했다. IR에 있으면서도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본사를 가곤 했다. 한 번은 기획부문 간담회가 있었고, 한 번은 각 사업부로부터 현황 업데이트를 받아야 해서 적어도 두 번은 갔어야 했다. 사실 수원을 많이 가면 갈수록 회사에 대한 정보는 많이 업데이트가 되는 것이어서 자주 내려가는 게 맞았다. 정보는 각 사업부 기획, 전사 기획, 전사 관리, 각 사업부 관리, 재무, 영업, 구매 등에서 나오는데 그 모든 부서가 수원에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수원이라고는 하지만, 외부와 단절된 듯한 광활한 사업장에 전사 HQ 건물의 사람들은 매일 늦게까지 야근하고 주말도 토요일에는 거의 매주 나오는 듯한 분위기였다. 사대문 안에 있는 서울사무소 위치와 IR의 워라밸과 비교해 보면 누가 가고 싶을 수 있단 말인가.


주말 내내 고민하고, 가족들과 얘기도 해보고 했지만 사원에 불과한 내가 '못 가겠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생길 후환이 두려웠다. 그저 회사를 위해, 팀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다는 욕망 섞인 이유가 결합되면서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안 간다 하면 왠지 계속 찍힐 것 같다.'


한편으로는 ‘어렸을 때 빡세게 한번 해봐야지’ 라는 생각도 좀 있었고, 수원에서 네트워크를 쌓고 정보를 얻으면 나중에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왠지 찍힐 것 같다는 우려가 나를 움직인 가장 큰 요인이었다.


주말 지나고, 팀장님께 말씀을 드렸다.

"팀장님, 제가 가겠습니다."

"아, 그래? 괜찮겠어? 가는 게 맞긴 한데…"

"네, 괜찮습니다. 근데 이사를 해야 해서 시간이 좀 필요한 상황인데요. 제가 언제 부로 이동을 해야 하는 건가요?"

"그래, 한결 씨, 그 정도는 내가 상무님께 얘기를 할게. 아마 3개월 정도 이따가 내려간다 하면 될 것 같아요.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음, 그래도 수원 본사에서 크는 게 좋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상무님 만나러 수원에 한번 갔다 오세요. 오늘 오후에 시간 되실 거니까 찾아간다고 하면 아마 뵐 수 있을 겁니다. 비서에게 미리 얘기를 해놓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나는 수원에 간다고 말을 뱉어버렸다.


수원을 내려가서 상무님을 뵈었다. 사실 상무님이랑 그렇게 얘기해 본 기억이 많진 않은데, 여러 차례의 회식 자리에서 왠지 이 분이 나를 싫어하지는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상무님,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여기 와서 앉아봐."

"넵."


내려오기로 했어?"
"네, 내려와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와서 많이 배워. 회사 들어와서 처음부터 IR을 하면 별로야. 여기서 많이 배워. 기획에서 전사 돌아가는 거랑 회의 같은 거 준비하면서 듣다 보면,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어."

"네,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뭔가 시원시원하게 대답하고 뭔가 결의에 찬 눈빛, 그러나 그 안에서 흔들리며 아쉬워하는 눈빛을 느끼셨는지 이내 약속을 하나 하신다.


"여기서 열심히 하면, 내가 3년 있다가 다시 올려 보내줄게. 3년 열심히 배워. 그럼 다시 IR로 보내줄게."

'오!! 좋은데? 그래도 그나마 희망이 있는 거구나. 내가 알기로는 IR 가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 그래도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보다.'

"네, 알겠습니다. 상무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사를 위한 기간으로서 3개월은 서울에서 있을 줄 알았는데, 상무님과의 그 대화가 있고 당장 3주째부터 수원 근무를 시작했다. 일단, 서울로 출근해서 오전 근무하자마자 셔틀 타고 수원에 내려가서 일하고 거기서 퇴근셔틀 타고 올라오는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나름 소프트랜딩을 위한 적응기간이라 생각했는데, 랜딩 이후에는 정말 너무 빡센 회사생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수원이라는 위치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그저 수원 본사의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았다. 본사라고는 하지만 일부 생산사업장과 함께 있어서 본사가 있는 그 단지는 매우 광활했다. 낮은 건물들이 쭉 깔려 있었고, 생산직 사원들이 똑같은 회사잠바를 입고 다니기도 해서 마치 군대와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4~5년 후에는 좋아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구내식당에서는 식판에 배식을 받는 시스템이어서 더욱 군대 식당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그런 감정이 싫어서 점심을 밖에서 먹으려고 하면, 15분을 걸어 나가거나 차로 무조건 이동해서 먹고 와야 하는 것이라서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본부 건물이 있고 수송대 보급대 시설대 등이 함께 있는 하나의 사단에 내가 이등병처럼 들어와 있는 듯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서울을 당연히 선호하고, 서울이 아닌 근무지로는 판교/분당 정도까지는 괜찮고 수원이 정말 마지노선으로 생각되는 듯하다. 20년 전의 나 역시 수원에서 근무하기를 싫어했는데, 지금의 친구들은 서울/판교 아닌 곳에서 근무하는 것을 당연히 싫어할 것 같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지방대가 소멸하고 지방 소재지의 기업에는 다들 안 가고 싶어 한다. 점점 더 서울 근처로 연구소라도 옮기면서까지 인재들을 확보하려는 요즘의 현실은 정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본사라도 수원까지 가는 것은 싫습니다. 그냥 서울에서 근무하고 싶습니다.' 라는 말을 나는 차마 하지 못했다. 찍힐 것 같았고, 한편으로는 한번 경험해 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내가 서울에 남았더라면.. 내가 기획을 갔었더라면.. 이라는 가정은 회사에서 적합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 어떤 선택도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닌 경우도 있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회사생활이기에 서울이 나았을까 수원이 나았을까 하는 물음은 대답하기 어렵다.


다만 그래도 꼭 얘기하고 싶은 것은,


「서울이냐 지방이냐」 를 떠나서
파견부대는 파견부대다.


세 군데 회사에서의 많은 경험을 돌이켜보면 어떻게든 본사에서 일하는 것이 기회가 많다. 계열사에 C 레벨의 좋은 역할로 나가서 큰 성과를 이루고 다시 본사로 들어오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어서 회사마다 좀 다르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래도 웬만하면 본사에 있는 것이 좋다.


XX 사무소 같은 곳이 아무리 편하고 재밌어도, 윗사람들에게 본인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크게 노출되기 어렵다. 심지어 어느 정도 큰 성과를 낸다 해도 본사에 있는 윗사람이나 동료들은 '여기 본사 사람들 고생할 때, 너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편하게 지내지 않았냐.' 라는 인식 아래 성과가 저평가되는 경우도 많다.


본사 아닌 파견부대의 사람들은 본사에서 중요한 역할이 오픈되었을 때 그 기회를 먼저 붙잡기가 매우 어렵다. 본인들이 '이제 본사로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한다고 해서 원하는 때에 딱.딱. 옮겨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는 성장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한계가 반드시 온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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