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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구스티노 Jan 27. 2023

대기업에서 성장하는 사람들이 가진 '이것'

13 | 운, 빽, 그리고..



회사에서 성장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갖고 있을까?


꼭 대기업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회사에서 비슷하게 적용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제가 경험하고 목격한 결과들에서 사례를 찾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보길 바라는 마음(욕심)에 제목을 좀 부끄럽게 붙여봤습니다. 


1. 운이 있는 사람이다.

근데 그런 사람은 어쩔 수 없다. 놓아주자. 그저 나에게도 그런 운이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2. 빽이 있는 사람이다.

근데 그런 사람도 어쩔 수 없다. 놓아주자. 그저 그 사람이 들고 있는 수저가, 그 사람의 출신이 부러울 뿐이다.


3. 운과 빽이 없는데 성장하는 사람은,
    ‘남다른 실력’ 을 가지고 있다.

운과 빽을 첫 번째 두 번째 요소로 적었지만, 그 두 가지는 - 사실 많이 부럽긴 하지만 - 어느 순간부터는 분명 그 끝이 드러난다. 그래서 놓아줘도 된다. 실력 없이 운과 빽만으로는 올라가는데 한계가 있음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주니어일 때 운이나 빽을 썼다면 팀장 달기 직전 직후에, 씨니어일 때 썼다면 임원 되기 직전 직후로 이런저런 한계가 서서히 - 누군가는 급격히 - 나타난다. 회사라는 곳은, 특히 대기업이라 불리는 곳은 생각보다 더욱 냉정하기 때문에 실력 없이는 계속 성장하기 어렵고, 결국 종착역이 금방 나타난다.


이렇게 얘기하면 제목에서 말하는 ‘이것’ 은 ‘실력’ 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실력이라는 강(江)의 ‘수원지‘ 이다. 그 실력은 어디서 샘솟게 된 것인가.


선배들로부터 숱하게 ‘실력을 갖춰놔라, 너만의 무기를 만들어놔라‘ 라는 조언을 듣지만 실제 그 실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따라 하면 월 천만 원이 들어옵니다.' 라는 자기계발서의 내용을 막상 따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분명 이 순간에도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열망 하나로 알아서 노력하는 - 거의 없는데 그래도 가끔 존재하는 - 진짜 미..친 ㄴ,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절박함’ 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현재 상황이 만족스러우면 특별한 노력을 할 이유도, 의지도 없다. 지금이 만족스럽기는커녕 죽겠다 싶어야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게 주변의 숱한 사례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회사생활 중 어떨 때 유독 성장을 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자. 물론 좋은 상사와 쉽지만 큰 프로젝트를 했을 때 순탄했지만 나름 성장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 의미 있는 큰 성장은 절박의 숲에서 헤매느라 온몸에 상처로 인해 아파하다가, 주위에서 발견한 낫 하나로 엉기성기 풀들을 베어 가면서 겨우겨우 헤치고 나올 때 비로소 나타난다.


아래 이야기는 나의 회사생활 초창기 시절의 에피소드인데, 너무나도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정말 하루하루 창피해서 외국인만 오면 화장실로 숨고 싶었던 부끄러웠던 과거이다. 그러나, 이때의 압박감이 나에게 절벽에 매달린 듯한 절박한 심정을 떠넘겨 주었고, 그렇게 나는 절벽을 가까스로 기어 올라와서 - 여전히 매우 부족하지만 - 지금까지도 쓸 수 있는 무기를 만들게 되었다.




2005년 나의 첫 팀이었던 IR팀은 1년에 외부와의 미팅을 횟수 기준으로 - 조금 과장해서 - 1,000회 정도 해야 했다. NDR이나 컨퍼런스를 가면 하루에 미팅을 많으면 9회까지도 했었고, 사무실에서도 하루에 미팅 2회는 항상 있었으니까 1,000회 미팅이 아주 과장이라고는 못할 것이다.


그중에 40프로는 외국인과의 미팅이었다. 당시 나의 회사는 외국인 지분율이 30프로가 넘었고 대형주 중에 등락이 큰 편이기도 해서 유독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많은 회사였다. 그런 외국인 미팅을 1년에 400회 정도 하려면, 당연히 영어는 잘해야 했는데 선배들은 다들 영어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단, 나를 빼고 말이다.


선배들 중에 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2명뿐이었는데도, 다시 말해 토종 비율이 훨씬 높았는데 다들 영어를 잘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 나중에 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자세히 경험해 보니 그렇게까지 어려운 영어를 쓰는 건 아니구나 싶긴 했는데, 그래도 선배들은 투자자와의 영어 미팅을 하는 데에는 흔히 말해 '도사'였다.


그런 ‘도사’ 들과 있으니 외국인 미팅에 들어가기만 하면, 쭈그리처럼 구석에 앉아서 선배들이 하는 영어를 들으면서 나만 바보인 것 같은 자괴감에 빠져 우울해했었다. 특히 팀장님은 - 나쁜 분은 절대 아니셨는데 - 나에게 영어 수준을 빨리 캐치업 하라는 압박을 강하게 하셨다.


'한결 씨, 6개월 안에 선배들 절반 수준까지는 따라가야 해. 여기 부서에서 영어 못 하면 반쪽자리 IR 멤버야. 그런 사람은, 아쉽지만 내년에 다른 부서로 보낼 거야.'


다른 부서야 갈 수 있지만, 영어를 못 해서 쫓겨났다는 평판은 소문이 빠르고 굴욕적일 것이다. 팀장님의 도량을 감안하면 - 진심으로 하는 말씀은 아닐 수도 있는 - 그 압박이 나를 위한 것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압박은 너무 큰 짐이었고 매일매일이 침울했다.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외국인만 오면 항상 작아지던 어느 날, 어떤 서류를 찾아오라고 하여 랙실(문서보관창고)에 들어갔다가 약간은 버려진 듯한 작은 녹음기가 눈에 띄었다. 아마도 예전에 IR 설명회라는 행사 이후 Q&A를 정리하기 위해 필요했던 놈일 것이다. 손흥민 별명의 녹음기는 지금으로 따지면 전자담배보다 살짝 크긴 했는데 느낌이 좋았다.

'이거 왠지 묘하게 잘 쓰일 것 같은데?!' (참고로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한 시기가 2009년 정도이다)


그래서, 그날 나는 남대문시장 전자기기 파는 곳에 가서 손바닥 길이만한 최고 성능의 녹음기를 샀다. 15만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비싸다는 생각은 1도 없었다. '이것이 나를 살려줄 것이다' 라는 희망이 그동안의 우울함을 떨칠 수 있을 텐데, 그깟 15만원. 흥.!


그때부터 나는 녹음기를 주머니에 넣고 미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녹음한 것을 들으려 했는데 이 놈이 주머니 안에서 답답했는지 자신의 성능을 다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놈을 수첩 안에 두고 시도했는데 이런.. 눈치 빠른 선배에게 걸렸다.


"한결아, 미팅할 때 녹음기 들고 오지 마. IR 미팅은 기록을 남기면 안 되고, 구두로 그냥 끝내야 해. 너 영어 더 잘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알겠는데, 첫 번째는 뭔가 기록을 남겼다가 그게 불편한 상황이 될 수 있고 두 번째는 미팅 상대방들이 녹음하는 거 알면 엄청 싫어할 수 있어. 생각해 봐. 본인 미팅이 녹취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어."

"아, 네.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녹음 안 할게요. 죄송합니다."

"아니야, 열심히 하는 거라서 기특하긴 한데, 녹음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서 공부를 해봐."

"아,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나는 절박했다. 죄송하다고는 했지만 다른 답이 없었다. 선배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나에게는 선배 말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없던 것이다. 혼자 스피킹과 리스닝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실제 미팅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수없이 반복해서 듣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핑계로 저녁 늦게까지 남아 회의실 전체를 꼼꼼히 둘러본다.

'어디 보자.. 음.. 여긴 좀.. 여기가 좋긴 한데.. 음.. 와우! 찾았다!'

미팅장소 안에는 책상달력이 있었는데, 달력 삼각형 안에 넣으면 감쪽같았다. 구멍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서 달력을 일부러 구석에 두었고, 달력 옆에 전화기로 딱 가라니까 전혀 보이지 않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이때 쓰는 거구나! 절대 안 걸리겠다!'


그렇게 또 녹음을 시작했다. 누가 그 달력을 손댈까 봐 미팅이 끝나면 커피잔을 치우러 들어가서 잽싸게 이 놈을 수거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들어 보니 음성이 또렷하다.

'와우! 잘 들려! 좋아!’

그때부터 나는 언제나 이 놈과 함께였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어차피 지하철에서 딱히 할 것도 없었다. 정말 절박한 마음으로 듣고 또 듣고.. 그렇게 매일같이 그 대화를 듣다 보니 1달 정도 후에는 거의 다 들리는 듯했다. (IR 미팅의 영어는 사실 어느 정도 패턴이 있고, 설명과 질문/답변이 거의 비슷비슷하긴 하다.)


'아,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아 이런 질문이었구나, 비슷한걸 이렇게 얘기하고 저렇게 표현하고 그러네, 아하!'

그렇게 두 달을 보내니까,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나아졌다 싶었다. 꾸준히 들었고 중얼중얼 따라 하고, 상대방이 질문하면 멈추고 외운 말을 혼자 해보았다. 잘 때도 항상 영어 생각뿐이었는데, 어느덧 외운 말이 술술 나오게 되면서 '와! 된다 이제.' 라는 생각으로 이불을 방방 차며 뿌듯해했었다.


그때 즈음부터 나는 외국인에 대한 인사부터 예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나의 듣는 태도나 눈빛에서 달라졌다고 느꼈는지 선배들은 나에게 기회를 조금씩 주기 시작했다. 선배가 가끔 일부러 나를 쳐다보면 한두 마디 해보고, 그러면서 중얼중얼거리면서 외운 효과를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절박함의 늪에서 밧줄을 잡고 빠져나오듯 이 녹음기가 나에게는 튼튼한 동아줄이 되어 주었다.




이때의 나에게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었다면, 편하게 있어도 일을 하는데 지장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도 영어를 못했을 것이다.(물론 지금도 너무 부족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지하철에서 스포츠신문만 열심히 보던 시절보다는 좀 낫다.) 이때 팀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엄청난 압박감이 나를 절박하게 만들었고, 그 절박함은 나의 영어 실력 향상에 진짜 진짜 도움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보통의 사람들은 절박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절박함과 실행은 - 나 역시 절박하지 않았으면 절대 안 했을 것 같다 - 반비례 관계에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솔직히 스스로의 의지로 열심히 하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그때의 절박함을 돌이켜봤을때 너무 고마운 경험이라 생각한다.


큰 성장을 겪은 사람 중 대부분은, 절박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노력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요즘에도 많은 후배들에게 '영어공부 해라, 자기 스스로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노력해라.' 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그들 중에 열심히 하는 사람은 정말 소수이다. 왜냐. 절박하지 않으니까. 왜냐. 그걸로 스트레스를 크게 안 받으니까.


그래서 절박함과 스트레스 없이 그냥 그냥 일하고 있는 후배들을 보면, 당장의 일은 적당히 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의 역량이 확실히 높아지는 것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렇게 제한적인 성장이 눈에 보이는데도 그들에게 압박감을 주면서까지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말 아끼는 후배들에게는 그들이 오지랖이라고 여길지라도 ‘저녁에 뭐 하는 거 없어?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뭐라도 다니면 좋지 않을까?‘ 라는 말을 하는데, 내가 감히 뭐라 할 수 없는 사이의 후배들에게는 아쉽지만 마음속의 말을 끝끝내 참게 된다.


혹시 지금 누군가 엄청난 압박감에 스트레스가 너무 많은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그것을 벗어나는 데에 너무 힘든 사람이 있다면 우울해하지는 말지어다. 절박한 노력이 그 상황을 곧 극복하게 만들 것이고, 반드시 성장이라는 열매가 함께 주어질 것이며 그 탐스러운 과일을 가진 당신은 모든 부서가 원하는 사람으로 거듭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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