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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구스티노 Jan 20. 2023

사무실 손톱빌런 vs 오피스 보살의 논쟁

공감 03 | 어벤져스 팀원들까지 가세한 열띤(?) 논쟁



논쟁에 참여한 인물 @ 어딘가 큰 회사

나(손톱빌런), 유 부장님(오피스보살), 진석 매니저, 동현 매니저, 혜영 매니저, 준혁 매니저


첫 회사에 있을 때는 자리에서 손톱을 자르면 안 된다고 배웠었다. 그 영향으로 당연히 책상에서 손톱을 자르는 행위는 매우 문제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래서 첫 회사에 있었던 7년 동안 나는 한 번도 책상에서 손톱을 깎아본 적이 없고, 가끔 부장님들이 그런 행동을 할 때 동료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보면서 더욱더 ‘저런 행동은 절대 하지 말자’라고 다짐하곤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직급이 올라가면 갈수록 왠지 자리에서 그냥 손톱을 자르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따 집에 가서 자르자.‘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에잇 그냥 여기서 자르고 싶다.’라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마침 거래은행에서 받은 손톱깎이 키트 같은 게 있지 않은가.


그래서 염치 불고하고 나 스스로 타협한 것은

‘그래, 근무 중에만 자르지 않으면 되겠지. 점심시간이나 근무시간 끝난 다음에는 좀 잘라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에 자리에서 쓰레기통이나 종이를 깔고 내가 싫어하던 과거의 부장님들 같은 행동을 하게 되었다.(물론, 손톱깎이가 양옆 부분은 막혀 있어서 손톱이 사방으로 튀지 않는 것을 사용했다.)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 라는 생각과 주위 사람 중에 나에게 ‘어떻게 손톱을 회사에서 자를 수 있어요?’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래, 근무 중 아니면 괜찮구나.’ 라는 생각을 굳게 해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원들과 네일아트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문득 궁금했다. MZ세대라 불리는 주니어 직원들은 자리에서 손톱 깎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그런 물음에 답을 듣기도 전에, 함께 모여있던 팀원들 가운데 가장 시니어 여자 팀원이 나에게 바로 지적한다.


“팀장님이 손톱 깎는 거 제가 많이 봤습니다. 어떻게 회사에서 손톱을 깎아요?”

”응? 저는 근무 중에는 깎은 적이 없어요.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 이후에만 깎은 거예요.“

“아.. 그러면 괜찮은 거예요? 주변 사람한테 너무 실례 아니에요?”

“아..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그래서 주니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혹시 우군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물어본다.

“혜영 매니저, 손톱을 자리에서 깎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뭐, 저는 크게 상관없습니다.”

“그래? 괜찮아?“

“네, 뭐 그럴 수 있죠. 집에서 바빴나 라고 생각하거나 아예 신경도 안 쓸 것 같은데요.”

“아. 그래? 근데 혜영 매니저는 사무실에서 손톱 다듬는 것도 한 번도 못 봤는데?“

“네, 저는 손톱 예쁘게 하는 것도 별로 관심 없고 그냥 집에서 손톱 깎는 편이고, 네일샵 가는 것도 별로 관심 없구요.”

주니어 생활을 3년 정도 거친 팀원의 대답을 듣고, 이번에는 신입 6개월 차 팀원에게 물어본다.


“준혁 매니저는 어때?”

“저도 뭐, 특별히 상관은 없습니다.“

“근무 시간 중에 자르는 것도? “

“네, 소리가 조금 신경이 쓰일 수도 있긴 한데 짧은 시간에 끝나면 그냥 그러려니 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잠깐 다녔던 증권사에서는, 차장님 부장님 같은 분들이 자주 손톱 깎는 모습도 봤었습니다.”


이 정도면 천군만마 수준 아닌가. 다시 우겨본다.

“유 부장님, 들으셨죠? 다들 괜찮다는데요?”

“아니, 그럼 애들이 팀장이 자주 손톱 깎는 사람인데, 거기다 대고 ‘꼴 보기 싫습니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어요?”

“아니야, 애들 얼굴이 진심이야.”

“눼눼, 팀장님. 애들 얼굴이 진심인지도 모르는 팀장님이니까, 다른 사람 눈치도 안 보시는 거죠.“

“엇. 그런 건가?”


좋다. 이번에는 회사 생활 10년이 넘은, 예전으로 따지면 과장 3년 차 정도 되는 팀원에게 물어본다.

“이 매니저, 바빠? 잠깐만 이쪽으로 와줘.”

두 테이블 정도 떨어진 팀원을 한창 격전 중인 필드로 억지로 참여시킨다.(멋대로인 팀장이 맞구나..)

“진석아. 너는 손톱을 자기 자리에서 자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근무 중에 사람들 일할 때 자르면 좀 그렇죠. 소리가 똑똑 나는데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겠죠. 사람들이 아무래도 싫어할 것 같아서 저 같으면 안 합니다.“

“그렇지 그렇지. 그건 당연하지. 근데 근무 중 아닐 때는? 뭐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 이후 같으면?

“그럼 뭐, 괜찮지 않을까요? 뒷정리를 잘 하기만 하면?“

“손톱깎이 그거 있잖아. 손톱 안 튀는 거. 그걸로 깎고 그리고 잘 정리해서 깨끗하게 버리지. 에이, 그 정도는 나도 확실하게 하지.”

“네. 그 정도면 뭐.”


마지막은 좀 더 객관성을 담을 수 있는 경력사원 출신의 동현 매니저 공략이다. ‘솔로몬! 구해주세요!’

"동현아, 너 예전 회사에서는 어땠어?"

"자르는 사람 있었죠. 부장님들 뭐 좀 아재다 싶은 분들이 종종 그랬습니다."

"아, 그래?"

"근데 뭐 다들 그러려니 하는 듯했는데, 암튼 그런 좀 부장 정도 되는 사람들만 그랬던 것 같아요."

"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저는 뭐 중립입니다."

"에이, 그래도 한쪽으로 말을 해야지."

"아니, 저는 중립입니다. 특별히 뭐 호불호가 전혀 없어요."


중립이라.. 호불호가 없다라..

뜬금없이 혜영매니저가 묻는다.

"발톱은요?!"

'엇.!'

"에이, 발톱은 말이 아예 안 되지. 책상에 발을 어떻게 올리고 양말을 어떻게 벗어?"

발톱까지는 생각도 못했다.

‘나의 손톱이 누군가에는 내가 생각하는 발톱과 같은 것인가. 발톱이라..‘

발톱빌런까지는 나도 몸서리치게 거부감이 든다. 손톱빌런에 대한 몇몇의 마음이 이것과 같을까. 그러나 아직 논쟁을 멈출 수 없다.


‘좋아. 생각보다 상관없다는 반응이 많구만. 내가 그렇게 틀리지 않았어!’

반가운 말들을 듣고, 고려에 서희가 있었다면 우리 회사에는 내가 있다. 천만분의 1로 축척시킨 강동 6주가 지금 이 손톱 안에 담겨있다. 반드시 손톱자유를 얻으리라.

“유 부장님, 근무 중 아니면 그래도 괜찮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회사에서 잘라야 집중이 잘돼서 더 깔끔해지는데.. 집에서는 회사만큼 집중력이 안 나오는데.. 부디 이해한다는 말을 해주세요..’


그러나 곧은 사람은 곧은 사람. 이 분은 너무 착해서 ‘오피스 보살’ 이라 불리는 분인데, 설득에 넘어가는 거란족은 아닌가 보다. 특히 사람과 지구(Earth)에 대한 에티켓에 관심이 엄청난데, 그런 분이 보기에 이 건은 도저히 봐줄 수 있는 사항이 아닌가 보다. 착한 사람이 드는 단칼은 망나니의 칼보다 더 무섭다. 그 곧은 직선으로 기대감 넘치는 풍선을 휙 그어서 터뜨려버린다.

“아, 팀장님. 그냥 자리에서 안 깎으시면 안 돼요?!”

“네.. 알겠습니다.."


혜영 매니저도 사실 좀 싫었던 것인지, 아니면 씨니어 부장님을 챙기는 것인지, 한마디를 추가 - 진심을 호소 - 한다.

“근데 팀장님, 손톱이 튀던 안 튀던 사실 좀 지저분한 느낌은 있습니다. 근무 중이던 아니던, 팀장님 자른 손톱이 내 자리로 튀어져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좀 많이 싫을 것 같아요.“

‘헉!’


준혁 매니저까지 거든다. '악! 그러지 마~'

“네, 가끔 손톱 자를 때 튀는 게 있긴 있더라구요. 그러면 혜영 매니저님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아.. 거란에 가려던 말머리를 돌려야겠구나..‘

“그렇구나. 알겠어.. 미안합니다. 빈 회의실에서 몰래 깎을게요..”

‘그래. 자기 자리는 좀 심한 것 같다. 사람들 안 보는 빈 회의실 정도로 타협하자.‘


그러나 화장실마저 싫은 건지, 유 부장님이 다시 직진으로 깜빡이도 안 키고 들어온다.

“아니,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이 다 싫다는데 꼭 회사에서 잘라야 하세요? 회의실에서 깎아도 그 소리 자체가 밖으로 새어나올 수도 있는데 그건 더러움을 주는 소리일 수 있어요. 그리고 거기서 혹시 정리 안된 손톱이라도 발견되면, 그냥 좀 불결하다는 느낌에 그 회의실 안 쓰고 싶을 수도 있어요.“

“아.. 그게.."

'동현 매니저는 중립이라 해놓고 이 정도면 내 편 좀 들어줄 것이지. 왜 암말도 안하지? 꿀을 먹었나..'

보다 못한 진석이가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는다.

“팀장님, 포기하세요."


쐐기는 움직이지 않는 것을 뽑아버리는 데에 매우 탁월하다. 결국 나는 뽑혀버리고 만다.

“어.. 알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회사에서는 안 자르겠습니다. 집에서 깔끔하게 깎고 올게요. 손톱은 집에서!”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 참 소중했던, 회사생활에 있어서 소중하게 모시던 손톱깎이 키트를 쓰레기통에 과감히 - 사실은 아까워하면서 - 버려버린다. 오피스 최악의 손톱빌런은 그렇게 무기를 잃었다. 어벤저스와 같은 팀원들의 조언이 타노스의 장갑을 벗기면서 열띤 논쟁은 엔딩크레딧을 올린다.




감히 제가 뭐라고 손톱깎는 부분까지도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다만 제가 쓰려는 글들은 대부분 어떻게 하면 더 회사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더 좋은 회사생활의 팁으로서 제 생각을 주제넘게 말해보고 싶다.


결론적으로 손톱 정리는 집에서 해야 하는 것이 맞다. MZ세대들의 상관없다는 얘기가 있긴 했지만, 그중 누구도 회사에서 손톱을 자르겠다는 생각이 없다는 것은 그들의 말이 진심은 아닐 것이다. 오피스 보살로 불리며 착한 성격의 팀원조차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강한 주장이 있었고, 10년차 중간허리 직급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경력입사자마저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씨니어에서 주니어까지 모두 손톱빌런에 대하여 부정적 마음으로 모아져 있다. 비록 우리 팀원들과의 대화에 불과하여 모수가 상당히 적긴 하지만, 이건 뭐 여러 표본을 더 구한다고 한들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손톱은 집에서 깎고 옵시다. 근무 중이던 아니던, 손톱은 더러운 것이라는 인식 속에, 그 행위 자체가 불결하다는 생각에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손톱 깍는 ‘똑.똑’ 소리가 신경 쓰여서 다른 일에 집중할 수가 없고 내심 불편해하는 동료들이 생각보다 매우 많습니다. 집중력이 어쩌니 하는 말도 안 되는 핑계(제 얘기입니다..)는 두더지게임에서 불쑥 올라오는 두더지 머리처럼 강하게 내리쳐야 합니다. 손톱 깎는 것에 회사에서의 집중력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온연히 일과 동료들에게 집중합시다.”   by 손톱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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