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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구스티노 Apr 17. 2023

세 번째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뭉클했습니다.

25 │ 또 울고 싶었어요. 이번엔 다른 의미로요.



두 번째 회사를 아주 짧게 다니고 결국 퇴사를 했다. 회사가 문제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적응을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사실 그 당시는 그런 대인배 같은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내가 적응을 못했거나 안 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회사를 놓게 되었다.


심지어 어디 다른 회사를 붙어놓고 그만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 스스로를 끝으로 몰고 싶어서 무작정 퇴사했다. 안 그러면 퇴사를 질질 끌게 될 것 같았다. 하루하루 의미가 없다 생각해서 성급한 결정을 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디든 못가겠냐 라는 생각이 있었다.


퇴사하고 2달 동안 쉬면서 간단한 공부를 했다. 증권분석사 같은 간단한 자격증을 따서 애널리스트로 도전할 생각이 있었다. 당시에는 증권분석사가 자격증이 형식적으로라도 있어야 금투협에 애널리스트로 등록할 수 있었다. 어려운 시험은 아니어서, 쉽게 자격증은 땄으나 막상 애널리스트의 세계로 나가려고 하니 맘에 걸리는 게 있었다. IR 출신의 경력자가 애널리스트를 한다는 것은, 적어도 본인이 거친 직장에 대해서만큼은 빠삭하게 알길 바란다. 아니 나쁜 말로 하면, 나를 뽑아줄 증권사가 바라는 것은 나의 인맥으로 정보를 다 빼와서 아주 빠른 정보가 담긴 애널리스트 리포트인 것이다. 다시 말해, 첫 번째 직장의 업종을 커버해야 했는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예전 회사에서 의욕차게, 당차게 퇴사해 놓고 1년 만에 애널리스트가 되어 예전 IR 멤버들에게 '저에게만 특히 더 좀 많이 알려주세요' 라고 행동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분석적인 리포트를 쓰는 것은 관심이 있었으나, 가장 주된 리포트가 되어야 할 첫 번째 회사에 가서 정보를 빼올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애널리스트가 되는 선택은 접어버렸다.



자격증은 땄지만 애널리스트가 되려는 마음이 없게 되니까,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싶었다. 2달을 내리 쉬니까 슬슬 불안감이 찾아왔다. 처자식도 있는데, 돈을 계속 까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디로 가야 한담..'

'어느 회사가 좋을까..'


그러나, 어떤 회사를 선택하고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점점 쫄리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것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당시에 두 군데의 그럴듯한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경력공채 공고가 나왔는데, 한 군데는 전략팀이었고 다른 한 곳은 IR/공시 인력을 뽑는다고 되어 있었다.


두 번째 회사를 나오면서,

'내가 다시는 전략팀이나 기획팀 같은 곳은 가지 않으리..' 라고 생각했건만, 쫓기는 마음에서는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둘 다 좋은 회사일 것으로 기대가 되었기 때문에, 두 군데 모두 지원했다. 두 군데 모두 서류를 붙었고, 그 이후 면접은 어렵지 않았다. 대학생 때보다 더 정교해졌고 더 능숙해졌더니 면접관들의 마음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여하튼 그렇게 면접까지 붙었다. 발표난 시기가 두 군데에서 하루 차이밖에 나지 않아서 고민을 하긴 해야 했다. 그러나, IR/공시 인력을 뽑는 곳이 다음날 발표가 났는데 그것을 보고, 바로 결정을 했다.


비록 네임밸류는 전략팀을 뽑았던 회사가 훨씬 높았다. 그러나, 나는 다짐을 잊지 않았다.

'네임밸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전략팀 가면 또 PPT나 만들면서 보낼 것이다. 맨날 야근하는 그런 삶.. 여기라도 뭐 다르겠냐. 잊지 말자. 두 번째 회사에서의 경험을..'

'IR/공시 인력 뽑는 곳도 좋은 회사다. 그리고 IR은 내가 제일 좋아하던 Job이 아니었는가. 이 일을 다시 하면 재밌겠다.‘

‘근데 비상장회사가 왜 IR인력을 뽑는 거지?.. 상장하려나.. IPO를 경험할 수 있는 건가? 일단 가보자.!'



그렇게, 나는 IR/공시 인력을 뽑는 회사로 정하였다. 두 번째 이직이라 연봉협상에서 뭔가 우위가 있을만했는데, 이미 백수의 처지에서는 많은 것을 가릴 수가 없었다. 두 번째 회사에 100원이라도 많이 주면 그냥 가야겠다는 마음이었기에, 연봉 협상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인사팀의 시니어는 이렇게 말했다.

"과장님, 저희는 성과급이 그래도 많이 나와요. 그 부분 생각하면 보상이 좋은 수준일 겁니다."

"아, 네.."

'응? 성과급이 많이 나온다고?'

"과장님, 저희는 평균적으로 연봉의 XX% 정도 나온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아, 네.."

'응? 매년 그렇게 나온다고? 믿어도 되나?‘

‘근데 뭐, 나는 지금 일단 입사하는 게 먼저다.’

"네, 알겠습니다. 특별히 이견 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많은 후회가 된다. 성과급은 정해진 보상이 아니었기에 언제든 말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연봉 자체가 올라가야지 성과급을 준다는 말은 신뢰하면 안되는 거였는데..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절대 그렇게 쉽게 협상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텐데.. (제 예전 글 "이직할 때 연봉협상에서 '을'이 되지 않는 방법" 을 보시면 이직할 때 연봉협상에서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이미 두 달이나 놀았기 때문에, 바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합격통보를 받고, 얼마 되지 않아 입사를 하게 되었다. 입사 첫날 9시 출근이지만, 너무 일찍 가는 것도 좀 오버인 것 같아서 8:40분쯤으로 맞춰서 갔다. 우리 팀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고, 9시 넘어서 출근하는 차장님도 있었다.

'오잉? 이렇게 자연스럽게 지각을 한다고?'

'아무도 뭐라 안 한다고? 오~ 뭐야..'

'조직문화가 빡세지 않고, 좋은데?'


그렇게 첫날에는 인사팀에서 서류 작성하고, 사내 접속망을 익히고, 여기저기 다른 팀에 인사를 다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있었다. 인사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축하해요


라는 말이었다.

'응? 축하한다고? 좋은 회사 와서 축하한다는 얘기인 거겠지?'


갑자기 두 번째 회사의 첫날이 생각났다. 아무도 환영하는 느낌이 없었고, '아니, 거기서 여기를 왜 왔어요?' 하길래, 내가 '여기도 좋은 회사 아닌가요?' 했더니, '음.. 글쎄요..' 라는 말들을 주고받았던 첫날이었다. (두 번째 회사에서의 첫날은 "이직한 첫날, 밀려오는 후회를 녹여준 그것" 이라는 글에 담겨 있습니다)


근데 여기, 세 번째 회사에서는 '축하해요' 라고? 뭐지? 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도 두 번째 회사에서의 첫날과 너무 다른 느낌을 받아서인 것일 테다. 두 번째 회사에서 첫날, 집사람의 전화를 받고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았던 기억이 있는 나에게, 사실 세 번째 회사에 대해 특별한 기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직을 하면 텃세라는 것도 있을 거고, 회사라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고, 맘에 쏙 드는 회사라는 건 없어.. 라는 생각으로 세 번째 회사를 왔었다. 그런데.. '축하해요' 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고?


좋았다. 그들 스스로 좋은 회사라고 여기기 때문에, 나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옮기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회사에서 시련이 좀 있었는데, 세 번째 회사는 그래도 잘 찾아왔구나. 다행이다.. 라는 안도감을 맞이했다.



그렇게, 하루를 마칠 무렵 팀장님으로부터 메신저가 온다.

"최과장, 저녁에 약속 있어요?"

"아닙니다. 없습니다."

"그럼, 간단한 환영 저녁 어때요?"


"…. 네, 좋습니다."


간단한 환영 저녁 어때요?.. 저녁 어때요?..

네.. 좋습니다.. 네.. 좋습니다..


진짜 작은 환영의 손길인데, 첫번째 이직에서 아픔이 있던 나에게는 god’s finger처럼 크게 느껴졌다. 두 번째 회사에서 첫날부터 울고 싶었는데, 여기서도 첫날부터 뭉클했다. 물론 다른 의미로 말이다.

'이게 회사지!' 라는 생각이 들며 감사함이 들었다.   


작은 환영이 있는 저녁은 당연히 즐거웠다.

세번째 회사의 첫날은, 그렇게 밝은 에너지를 느끼면서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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