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새 없는 자극은 불가능

건강한 '자극'을 찾아 삼만리...

by 썸머

한동안은 아이가 그저 체력이 넘치고, 고집이 세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이제 막 아이가 ADHD로 진단받은 엄마를 만났는데, 그 분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주셨다.


"아이가 자꾸 눈을 마주치자고 하는 것, 앞으로 달려가는 것. 다 자극 추구예요."


'자극 추구?'


그저 눕고 앉을 수만 있을 개월수에 아이는 하루종일 내가 지신과 눈을 마주치고 있기를 원했다. 뒤돌아 설거지도 못하고 요리도 못하게 했고, 그저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 걸어주기를 바랬다. 뒤돌아서면 바로 익룡 소리로 공격을 시작!


처음에는 자꾸 서기를 원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00일 밖에 안된 아이를 쏘서나 점퍼루에 앉혀주었다. (보통 6개월부터 사용) 수건을 쑤셔넣어 아이의 몸이 흔들리지 않게 지탱해주면 그제야 만족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생각해보면 아이는 방안에 혼자 누워있는 것을 싫어했고, 바닥에 눕히면 계속 울었다. 어쩔 수 없이 바운서에 앉히듯 눕혀놓고 거실에서 생활하게 했고, 100일부터는 서겠다고 난리를 부려서 억지로 세워 일하는 엄마와 집을 보게 했다.


생각해보면 아이는 누워야할 때 앉았고, 앉아야할 때 섰고, 걸어야할 때 뛰어 다녔다. 그 원인은 체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극 추구였던 것이다.


어떻게 자극을 줄 수 있을까?


이 고민은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아이가 자극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막는 건 쉽지 않았다. 쉭새없이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지 않으면 소리르 지르고 짜증을 내기 때문이다. 대신 '안전'하고 '질좋은' 자극을 채워주는 것이 훨씬 상황을 해결할만해보였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0일 오후 03_58_47.png


문제는 좋은 자극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아이에게 도움이 되면서도 자극이 되는 건 모두 비쌌다. 질좋은 소규모 체험학습이라거나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 놀이동산이나 키즈카페는 비쌌다. 더군다나 어디를 간다고 하더라도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이를 닦고,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에 걸어가고, 차를 타는 그 과정에서 1초의 쉴틈도 없이 소리지르고, 울고, 짜증을 내는 것도 고역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다시 짜증이 시작되었는데, 여행으로 몸은 녹초가 되었는데, 다시금 아이에게 쉼없이 자극을 채워준다는 건 체력적으로도 불가능했다.


(외부활동으로 아이가 각성되곤 하는데, 그것 또한 곤욕이었다. 한번은 여행을 갔다가 새벽 비행기로 돌아왔다. 비행 시간은 오전 6시 경. 잠들었던 아이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눈을 말똥말똥 뜨며 주위를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비행기가 이륙하자 완전히 신이 나버렸다. 운전했던 남편은 쓰러지듯 잠들어있었고, 나는 비행기에서 아이와 2시간 반 동안 동요를 부르며 놀아줬다. 그렇지 않으면 소리지르고 짜증낼텐데, 승객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가장 쉽고 저렴한 자극은 유튜브였다.


문제는 우리 아이는 영상 하나를 차분하게 다 볼 수 있을 만한 집중력조차 없었다. 아이는 유튜브를 보게 해주어도 새로운 영상을 자꾸만 선택했고, 새로운 영상이 재생되기까지 기다려야하는 찰나의 시간에 짜증을 냈다. 30분 동안 유튜브 영상을 보게 하면 나는 29분 동안 '익, 익, 익, 익-'하는 익룡 소리를 들어야했다. 이게 과연 누구에게 좋은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작전을 바꿔서 유튜브를 TV로 보게 했다. 리모콘 사용을 못하니 강제로 15분, 20분 짜리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했고, 아이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했다. 영상을 끝까지 보는 인내심을 기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고나서야 우리 가족은 비로소 밥 다운 밥을 저녁에 먹을 수 있었다. 1시간 정도 내가 요리할 수 있는 시간이 마침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저녁을 먹고 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아이는 킥보드를 타고,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탔고, 우리는 하염없이 동네를 돌았다. 그러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젤리를 사먹고 9시 반이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주말에는 무조건 차를 타고 근교 나들이를 갔다. 집근처 2시간 거리에 갈 수 있는 목장이란 목장, 공원이란 공원, 바닷가라는 바닷가는 모조리 다닌 것 같았다. 그리고 저녁에나 집에 돌아왔다.


몸은 피곤했고, 돈도 많이 썼지만, 아이가 소리를 지르지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키즈카페에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여기 00 키즈카페인데요. 결제를 안하셔서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통화를 하며 카운터로 나갔다. 키즈카페 안에서 내가 나오자 사장이 무척이나 깜짝 놀랐다.


"보통 이렇게 오래 계시는 분들은 결제를 안하고 나가는 분들이시거든요. 지금 다섯시간째 계서서 전화해봤어요. 이렇게 오래 안에서 계시는 분은 처음이네요."


나를 먹튀 손님으로 오해한 것이었다. 키즈카페는 못해도 3시간, 길면 5시간 정도 머물러야 아이는 만족했고, 아이가 충분히 만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데리고 나가려고 하면 아주 단단히 각오해야했기에 나는 그저 아이가 충분히 놀 때까지 있었다. 한 번은 오래 놀아주어 고맙다며 공짜 음료를 받기도 했다.


ADHD 중에 게임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다. 쉽게 자극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자극 추구라는 개념을 알게 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남편과 나 또한 자극 추구가 굉장히 높은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의 TCI 검사를 해주었던 전문가는 남편이 자극 추구가 높음에도 잘 살고 있으니, 그 노하우를 아이에게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육아를 하면 좋겠다고 권했다.


남편은 '여행'으로 자극을 추구한다. 인터넷에 1년에 0번 이상 호캉스를 하고, 0번 이상 해외여행을 가는 여성은 여자 친구로서 만나면 안된다는 글이 돌았었는데, 나는 그 글을 보고 남편이 생각났다. 하지만 어떤가. 게임에 빠지거나, 도박이나 위험한 스포츠에 빠지는 것보다야 나은 방법일 수 있으니까. 자극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억누를 수는 없으니, 건강한 자극을 스스로 찾아 그 욕구를 채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주말이면 온갖 축제를 다 돌아다니고, 국내여행과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다. 돈이 많아서는 아니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스스로 노출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며 건강한 자극을 많이 주기 위해서이다. 이를 통해 아이에게 꼭 게임이나 유튜브를 하지 않아도, 재미있는 일이 세상에 많다는 걸 알려주고 있다.


혼내는 것도 필요했다


때로는 혼내는 것도 필요했다. 아이는 화가 많고 짜증이 많았기 때문에 모든 습관을 한 번에 고칠 수는 없었다.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해서 고쳐나갔는데 어떤 건 5년이 걸리기도 했고, 어떤 건 몇 개월 만에 고치기도 했다.


마트에서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냉장고에 사온 식재료를 넣고 있는데 그날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만큼 화가 났다. 장을 보고, 차를 주차하고, 식재료를 들고 집으로 들어와 냉장고와 팬트리에 물건을 정리하려고 하면 아이는 분주한 부모를 향해 신경질을 내기 시작했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짜증을 멈추었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심심하고 지루함을 느낀 아이는 1초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유튜브를 틀어달라거나 놀아달라는게 주된 요구였는데, 결국 짐을 정리하던 남편이 잠시 멈추고 아이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짜증은 지속되었다.


"그만해! 기다려! 짐 다 정리하면 해줄거야!"


내 말에 아이는 더 폭주했고, 결국 파국에 이르러서야 상황이 종료되었다. 하지만 나는 더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힘들게 장보고 돌아와 아이에게 들들 볶이는 건 정말 지쳐버렸으니까. 그렇게 세네번 호되기 화를 내니 아이는 더이상 장보고 돌아온 후, 짜증을 내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더이상 장보는 것에 흥미를 잃게 되었고, 이제는 우리 부부만 장을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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