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를 다시 사랑한다

너는 내 운명

by 썸머

* ADHD는 병원에서 검사(CAT)를 통해 진단받는 것이 가장 정확하며, 가장 좋은 치료방법은 약물입니다. (정말이에요!) 저의 글은 그 어떤 전문가의 진단과 치료 방법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아이에 대한 사랑은 아니야. 책임감이지. 그리고 미래의 나를 위해 노력할 뿐이야."


한창 힘들었을 때, 나는 아이에 대한 사랑을 잃었다. 사랑이 빠져버린 가슴에는 "책임감"만이 남았다. 나는 책임감이 강한 편이고, 쉽게 Move on 하는 성격이 아니라 미련을 오래 갖는 성격이었다. 그런 성격 탓에 힘들고 다 포기하고 싶어도, 다시 아이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나 교육, 치료 방법을 찾았고 시도했다.


보통 공룡이 같은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취학 전까지 열심히 달린다고 한다. 아이가 바뀔 거라는 희망이 있는 시기니까.


그 시간이 지나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 되면, 대부분 포기를 한다고 한다. 부모의 얼굴에 '체념'만이 있다고. 아이와의 관계는 망가져있으니 뭘 해도 되기 어렵다.


어차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포기하게 될거, 몇 년 더 일찍 포기하면 어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다시 힘을 냈다. 때로는 아이가 힘을 주기도 했고, 남편이 위로를 하기도 했고, 가끔은 수십 년 뒤 미래의 내가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ADHD와 부모의 관계가 좋기는 쉽지 않다. 아이의 입장에서 마주하는 부모의 얼굴이란 자신에게 화를 내거나, 윽박지르거나,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는 표정일테니까.


부모 입장에서도 ADHD 자녀가 편치 않다. 감사할 줄 모르고, 배은망덕하고, 툭하면 남탓을 하니까. 미운 말을 쏟아내기도 하고, 밖에서 사고나 안치면 다행이다.


ADHD 자녀를 둔 부부 관계도 좋기란 쉽지 않다. 아이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착하고 똑똑하고 애교 많은 집과 정 반대의 집 중 어느 쪽이 더 화목할까? 시아버지가 알콜중독자로 매일 사고를 치는 부부와 시아버지가 부유하고 자상한 부부 중 어느 쪽이 더 사이가 좋을까? 부부의 성숙함을 따지기 전에 누가 생각해도 인과관계가 없을 수 없는 부분들이다. 내 경험상 그리고 다른 부부들을 보면 부부 관계는 주위의 영샹을 안 받을 수 없다. (아예 연을 끊는다면 모를까.)


지금은 어려서 생김새라도 귀엽지. 나중에 크면 어쩔까... 싶은 걱정도 컸다.




때로는 아이로 인해 포기해야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도저히 아이를 키울 방법이 없어, 남편은 포닥(박사후 과정)을 포기하고, 한 회사에 취업을 했다. 함께 공부했던 선후배들은 모두 교수가 되어있으니 본인은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가 평범했더라면, 아니면 친정이 도움을 주었더라면... 이런 미련이 자꾸만 맴돌았다.


'둘째가 비슷한 성향을 가진다면 도저히 삶을 영위할 수 없을 것'이라는 남편의 말에 둘째 계획을 포기해야했고, 소수로 케어할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일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보낼 엄두를 못내고 값비싼 놀이학교를 보내며 강제 에듀 푸어로 살아야했다.


하지만 깊은 절망의 골짜기를 지나 오니, 아이가 내게 준 것들을 하나씩 깨닫게 된다.


아이는 내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남에게 쉽게 공감하고 동정심을 느꼈고, 이로 인해 불필요한 일에 엮이며 살아왔다. 하지만 공룡이를 키우는 건 매 순간 나의 체력과 인내심을 한계까지 몰아넣는 시간들이었고, 내 삶은 강제로 심플해졌다.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다 정리했고, 친정과의 관계도 단절했다.


나는 코디펜던트(codependent, 공의존자) 성향을 가지고 있다. 자존감이 낮아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주며 자존감을 채우는 방식의 사람들을 뜻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내 코가 석자'라는 말의 뜻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공룡이 한 명을 키우는 건 평범한 아이 5명을 키우는 것만큼 힘든 일이었다. 천재지변이나 강력 범죄에 당한 일이 아니고서야, 내게 힘들다고 하소연 하는 사람들의 말에 별로 공감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내 인생을 갉아먹던 '에너지 뱀파이어'들을 자연스럽게 떼어냈고, 훨씬 단순하고 가벼운 삶을 살고 있다.


삶의 우선순위를 세우게 해주었다.


아이가 생기니 내 인생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우선순위가 저절로 세워졌고, 나는 그것에 맞춰 살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이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하나로 연결해야할지 몰랐고, 두서없이 살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삶은 중요한 것 순서로 정리되었다.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 비용을 어디에 쓸지가 점점 분명해졌다. 아이가 없다면 나는 좀더 잡다한 일은 많이 했을지 몰라도, 오히려 아이가 있어준 덕분에 중요한 것들을 지킬 수 있었다.


아프리카 한 부족은 마을에 있는 강을 건널 때 등에다가 돌멩이를 짊어진다고 한다. 강의 중간쯤 갔을 때 수심이 깊어지고 물살이 강해져 한번 균형을 잃으면 그냥 물에 빨려 들어가 생명을 잃을 수 있으니까. 돌의 무게로 중심을 잡으려 한다고. 내게 아이는 짐이 아니라 돌이었다. 내 인생을 한 방향으로 걸어나갈 수 있게 만드는 돌 말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나는 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이를 두 명 정도는 낳아서 키우고, 남편은 포닥을 마치고 교수가 되고, 또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쓰거나 유튜브를 하는 등 내 일을 계속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은 실천하지 못했다.


아쉬움과 미련이 남기도 했지만, 그건 아이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지려면 돈이 아주 많거나, 지극히 헌신해주는 조부모가 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엇 한두가지는 포기해야할테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을 우선으로 가지고 가야한다는 것. 그리고 운이 좋으면 작은 행운이 함께 딸려오기도 한다는 것.


인생을 지치지 않고 오래 걸어갈 수 있는 지혜를 아이 덕분에 비로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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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결과가 좋아 과정을 미화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약은 큰 부작용이 없었고, 감정조절하는 약을 추가하면서부터 짜증과 분노가 거의 사라졌다. 이제는 하기 싫은 걸 미루는 것. 그리고 집안에 물건을 흐트러뜨리는 정도로만 실갱이를 한다.


지금의 공룡이는 키가 매우 큰 편이고, 운동도 공부도 제법 잘하는 축에 속한다. 과학을 좋아하고, 태양계에 대해서는 줄줄 꿰고 있다. 사격이나 농구 등의 스포츠에도 소질이 있어 전공을 권유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윗 학년과 수업을 들어도 무리없는 수준이다. 나이 어린 동생들과 잘 놀아준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종종 받고, 습득력이 느리지 않고 더군다나 대회에 나가면 성과도 좋아 가르치는 강사들로 하여금 보람을 갖게도 해준다.


공룡이와 나의 모습은 '금쪽이'라기 보다는 '백조'와 같다.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로 우리 둘이 죽을만큼 발버둥을 치고 있으니까.


남들은 유유히 헤엄을 치며 지나갈 때, 우리는 더 많은 발길질을 해야한다. 하지만 두배 세배 노력해도 겨우 남들과 비슷한 속도로 갈 뿐이다. 억울할 때도 있지만, 원래 세상은 불공평하다.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다섯 배 더 힘들게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그 보상이 다섯배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많은 발길질을 남몰래 해야하는 부모님들께 이 글이 작은 위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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