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꼭 먹여야 할까?

약물치로 & 센터치료에 대한 생각

by 썸머

모든 글이 그렇듯 이건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다. 우리 아이는 불안이 높아서 가이바위보를 못할 수 있고, 어떤 아이는 불안이 높아서 등교가 어려울 수 있다. 아이마다 다르기 때문에 개인적인 경험으로 참고만 하면 좋을 것 같다.


놀이치료에 실패하다


아이를 오래 본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놀이치료를 시작했다. 높은 불안을 위해서 어릴 때, 놀이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셨다.


집근처 센터에 예약을 하고, 초기 상담을 하고, 본격적으로 놀이치료를 시작했다. 대기실에 앉아있으면 '꺄르르'거리는 아이의 소리가 간간히 들렸고, 선생님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열심히 놀아주고 아이와 나눈 대화를 들려주셨다. 나는 들을 수 없었던 아이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보드게임만 하는게 걸리긴 했지만 계속 하다보면 뭐라도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녔다.


하지만 소리를 너무 많이 질렀다. 놀이 치료에 가기 전, 후로 소리를 계속 지르고 너무 많이 울었다. 수업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기다릴 때부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가 놀이치료 수업 후, 이어지는 수업이 싫어서일까 싶어서 학원도 그만두게도 했다. 놀이치료 수업 후에는 떡볶이를 먹거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기분을 달래주려고도 했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안약을 넣기 싫어서, 피아노 학원을 가기 싫어서, 더워서... 아이는 계속 짜증을 냈다.


급기야 놀이치료 가기 전날, 잠이 잘 안왔다.


가격은 비싸지, 애는 앞뒤로 30분씩 소리지르고 울지, 상담 때마다 엄마의 양육 태도를 두고 혼나야하지... 정말 곤욕이었다.


'약 때문인가?'


콘서타 수급이 어려웠던 상황이라서 약의 종류를 바꾸건 용량을 바꾸건 일단 애부터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놀이치료는 조기 종료했다.


보드게임이 긴장을 많이 하는 아이에게 좋다고 해서 계속 보드게임 수업을 했는데, 아이 말로는 별 효과는 없는 것 같다고 했기에 일단 한발 물러서기로 한 것.


"거짓말. 보드게임한다고 긴장을 안 한다니. 말도 안돼."


사실 내 생각도 그랬다. 이미 아이는 2년 반 동안 최소 하루에 2시간씩 학교에서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고, (돌봄 교실에서 수업은 안듣고 보드게임만 한다) 집에서도 보드게임을 주말에 1시간씩 하고, 보드게임 카페에 가면 3-5시간씩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보드게임을 통해 불안이 잡힐 것 같으면, 아이는 불안이 전혀 없었어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바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대학생 놀이 선생님을 집으로 불러 3시간씩 노는 시간을 가졌다. 어쨌든 아이가 보드게임을 좋아하긴 했고, 도움이 된다고 하니 아이와 1:1로 놀아달라고 부탁을 하고, 나는 급한 일을 처리했다.


3시간 후, 다시 만난 아이는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고 실컷 놀고난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렇게 아이는 몇 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대학생 선생님과 함께 1:1로 노는 시간을 가졌다. 또래 친구들과 노는 것과 다른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보드게임이 끝나면 다른 게임을 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들께는 놀이치료 상담시 들었던 것처럼 규칙을 꼭 지키게 해달라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나는 아이가 놀이치료 가기 전 그리고 후에 울고 화를 냈던 이유를 알아냈다. 40분의 놀이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세상 비효율적인 시간이었다. 40분의 시간은 선생님이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 재미있게 놀아주니 좋았겠지만, 이후 부모 상담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고, 왔다갔다 이동하는 시간도 싫었던 것이다.


3시간은 놀아야 흡족하게 놀았다고 느끼는 아이였으니 이제야 아이가 왜 거부했는지 알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센터 수업은 강제 종료되었다. 40분 수업 + 10분 상담이라는 시스템이 아이의 화만 돋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 아, 참고로 20대 대학생 선생님들은 기진맥진해서 집으로 돌아가셨다.




아이를 키울 수록 약물치료가 답이라고 느낀다. 뇌에서 도파민이 빨리 흡수되는 아이. 그래서 기분이 나쁘고 짜증이 난다. 좌뇌와 우뇌가 불균형한 걸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마음을 읽어준다고 해결될 수 있을까?


아이는 처음에 약을 거부했다.


"난 머리가 나빠. 그래서 약을 먹어."


지능이 낮은 것과 주의집중력이 약한 것을 구분 못한 아이는 자신이 바보로 태어나 약을 먹는다며 슬퍼하기도 했고.


"약을 먹으면 재미없어."


약을 먹으면 차분해지고 신이 나지 않기 때문에 먹기 싫다고 했다. 강제로 먹였더니 베란다, 침대 밑 곳곳에서 약이 발견되었다. 안 먹었는데 먹었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고, 먹으려고 했는데 실수로 쓰레기통에 약이 떨어져버렸다고도 했다.


일단 학교 생활엔 큰 무리가 없으니, 다른 집과 반대로 약을 먹였다. 평일에는 약을 먹지 않고, 주말이나 방학, 휴일에 약을 먹었다. 그리고 해야할 공부나 과제는 약효가 돌 때, 집중해서 했다.


약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이전에는 5분 공부할 걸, 30분 소리지르느라 35분 걸렸다면... 약을 먹은 후에는 5분 만에 끝났다. 어차피 초등학교 저학년이 해야할 공부량이 많지 않으니, 주말 공부로도 충분했기에 우리는 꽤 오랫동안 이 방법을 유지했다.


최대한 약 효과가 있을 때, 미용실을 가고, 때를 밀고, 병원을 갔다. 아이는 뛰어다니거나 사고를 치지 않았고, 더이상 커텐에 매달리다가 커텐봉을 구부러뜨리거나 바닥에 물을 엎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분노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한번 화가 나면 20분은 소리를 질렀는데, 숙제를 해야하거나, 이를 닦아야 하는 등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할 때 폭발했다. "화가 날 때 허그해주면 진정할게", "화가 나면 앞으로 방에 들어가 진정되면 나올게" 등 약속을 했지만 화가 나면 스스로 자제하지 못했다. 엄마를 경찰에 신고하겠다거나, 줄이 길어져 게임을 못하게 되자 줄선 사람들을 다 감옥 보내겠다고 하는 등 험한 말도 마구잡이로 쏟아졌다.


어느 새 내 머릿속에는 아이가 화 낼 때마다 언젠가 보았던 뉴스가 떠올랐다. 70대 노모를 때리는 아들 같은 기사 말이다. 밖에서는 아무 말 못하고 집에서 마누라를 패고, 어린 아이들에게 큰소리치던 아버지들이 어쩌면 불안이 매우 높은 사람들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는 긴장되서 스스로를 억누르고, 안전한 공간에서 그 불안을 터뜨리며 해소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처럼 말이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는 감정을 조절하는 약을 추가로 처방받았다. 이 효과는 놀라웠다. 아이는 쉽게 폭발하지 않았다. 약을 먹기 시작한 처음에는 몇 번 폭발하긴 했지만 10분을 넘기지 않았고, 그 횟수도 적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한 카페에서 놀이치료 몇 년 받는 것보다 약 한 번 먹는게 효과 있다고 쓴 어머니의 댓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나도 여기에 공감하는 바이다.


약이 추가된 이후, 아이는 약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스스로 챙겨 먹는다.


"기분이 좋아."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의미였다. 약을 먹기 전 아이는 눈을 뜨면 기분이 나빴고 짜증이 났다. 그래서 아주아주 재미있는 자극을 쫓아다녀야했고, 남들은 수월하게 하는 것들이 무척이나 지루하고 괴롭고 재미없게 느껴져 거부했었다.


"나 이제 시간 부자야."


불필요한 울음과 짜증, 실갱이가 줄어드니 아이는 충분한 저녁 시간을 갖게 되었다. 피아노를 치고, 학습 만화를 읽고, 그림을 그리고, 보드게임을 하고, 역할놀이를 하고, 간식을 먹는다. 약을 먹기 전에는 소리지르고 화내느라 시간이 다 가서 아무것도 못하고 흘러갔었는데 말이다.


덕분에 우리 부부까지 시간이 많아졌다. 얼마 전에는 남편이 그림그리는 아이 옆에 누워 책을 읽었는데, 아기가 걸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처음 누려본 호사였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4일 오후 06_54_01.png


내가 아이에게 약을 먹이기로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엄마인 내가 살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아이가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인지 왜곡과 피해의식이 있었다.


한 번은 가족이 젤리형 영양제를 샀다. 어른은 2개, 아이는 1개를 먹는 거였고. 다같이 하나를 나눠먹기로 했다. 그런데 난리가 났다.


"왜 엄마 아빠만 2개 먹어!"


결국 2알씩 먹는 어린이용 영양제 젤리를 추가로 구입했다.


아이는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했고, 그러다보니 억울할 일이 많았다.


"왜 엄마는 집에 있고, 나는 등원해야해? 억울해!"

(누가보면 아동 노동이라도 시키는 줄...)


"왜 나만 생일파티 안해?"

(원에서 1년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하는 것. 아직 차례가 안온 것 뿐.)


"저 직원한테 복수할거야."

(원하는 간식이 가게에 없는 날)


"다 감옥에 보내버릴거야."

(줄이 너무 길어 게임을 못한 날)


"코치님 군대에 보내버릴거야."

(코치님은 아주 좋은 분임)


나는 가족 중, 이렇게 성장한 사람을 알고 있었고. 그 결과가 어떤지도 잘 알고 있다. 공부를 하고 직장을 갖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일단 본인 마음이 괴롭고, 둘째로 주위 사람들이 괴롭다.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결국 대화가 통하지 않는 옹고집으로 성장한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니 피해의식이 크고, 10을 주면 1을 겨우 돌려주는데, 자신이 100을 줬다고 느낀다.


아이가 약을 먹으면서 차분하게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기고 자신의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는 동안, 적절한 교육을 시키고 대화를 하고 상황 판단을 하도록 돕는 것이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장 구구단을 외우게 하고, 수학문제 풀게 하려고 약물 치료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아직 진단을 받지 못했거나, 약을 먹일 수 없는 나이라거나, 약을 먹이기 싫다면.. 그런데 우리 공룡이와 비슷하다면 나는 방법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라.


물론, 아이에 따라 이마저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내 경우, 마땅히 부탁할 집안 어른도 없을 뿐더러... 시터분들은 모두 도망을 갔다. 아니면 정말 처음에 앱 상 계약된 기간만 채우고 모두들 다른 일이 있다고 했다. 혹은 진로를 바꾸겠다는 분도 계셨고, 연락 두절된 분도 계셨다.


나중에는 약을 먹인 상태에서 놀이 시터분들을 불렀고, 젊은 남자 대학생들 위주로 아이와 놀아달라고 했다.


아이의 욕구주머니가 크고, 체력이 크기 때문에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전부터 이미 나보다 잠을 적게 잤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미취학 때는 최대한 종일반으로 맡기고, 거기서 실컷 놀게 했고. 초등학교에 입학 후에는 저녁에 운동 학원을 보내서 남은 체력과 에너지, 긴장을 마음껏 발산하게 했다.


돈을 써라.


어쩔 수 없다. 돈을 많이 써라. 꼭 투자한만큼 아이가 잘 크는 건 아니지만, 그냥 돈이 많이 드는 아이라고 생각해라.


나는 아이가 지나가다가 뭐가 먹고 싶다고 하면 두말없이 다 사줬다. (왜냐면 그 외에도 실갱이할게 너무 많은데 먹을 것까지 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루는 24시간 뿐이니까.)


미국에서는 대학 부설 프리스쿨을 다녔고 (한달에 200만원이 넘는다) 한국에 와서는 놀이학교를 다녔다. 무엇이든 배우려면 소수로 운영하는 곳을 찾아다녀야했고, 키즈카페는 한 번 가면 4시간씩 있는데다 먹기도 많이 먹어서 돈을 매일 뿌리고 다녔다.


지금은 매일 주말마다 어디 놀 건수 없나 찾기 바쁘다. 각종 지역 축제장을 가고, 새로 오픈한 키즈카페나 방탈출 카페를 가고, 방방곡곡 여행을 다닌다.


한 번에 한두가지 씩만 고치자.


다 고치려고 하면 힘들다. 제일 중요한 것 한두가지만 잡고 습관을 들이자. 하나가 되면 그 다음에 새로운 걸 시도하자.


다른 아이들은 저절로 되는 것들이 저절로 되지 않는게 어렵다.


아이는 남편과 내가 대화만 하면 끼어들어서 엉뚱한 소리를 해댔고, 우리가 대화를 멈춰야 멈췄다. 엉뚱한 소리는 대개 아이의 머릿속에 그때그때 떠다니는 생각들로 아무런 영양가 없는 소리였지만, 충동성을 참기 어려워했다. 내가 누구랑 전화통화만 하면 30분이고 1시간이고 소리를 질렀다. 마음 먹고 끼어들 때마다 혼을 냈고 몇 개월 만에 고쳤다.


"물! 물!"


물달라고 소리치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컵을 들고 정수기에 가서 물을 담아 아이에게 준다. 15초의 시간 동안 아이는 '물!'이라는 말을 쉬지 않고 소리지르듯 뱉었다. 시할아버지도 이렇게는 시키지 않을 시집살이다.


"물 주세요."라고 말한 뒤, 물을 가져다 줄 때까지 기다리는 건 남편이 잡아주었는데 3개월 이상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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