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우울한 날
* ADHD는 병원에서 검사(CAT)를 통해 진단받는 것이 가장 정확하며, 가장 좋은 치료방법은 약물입니다. (정말이에요!) 저의 글은 그 어떤 전문가의 진단과 치료 방법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돌까지 무렵이었다. 힘들긴 했지만 모두들 그렇게 힘들게 아이를 키울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하지만 절대 아니다. 단순히 아이가 아직 아기라 잠을 많이 자서 덜 힘들었던 것 뿐.)
아이가 뛰기 시작하면서 생지옥이 열렸고, 잠이 급속도로 줄어든 아이와 하루종일 함께 하는 시간은 고통 그 자체였다.
그래도 그 때는 희망이 있었다. 세 살이 되면 좋아지겠지, 네 살이 되면 좋아지겠지, 내년에는 더 좋아지겠지...
하지만 그 희망 마저 사라진 건 아이가 7살이었던 것 같다.
나는 너무나도 지치고 힘들어 주말 내내 방에 드러누워있었고, 바닥이 쿵쿵하고 울려댔다. 거실에서 TV를 크게 틀고 쉼없이 점프점프를 하며 흥분하는 아이를 피해있고 싶었지만, 어린 아이를 혼자 두고 어디를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방 안에 피신하듯 숨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그저 오늘 하루가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1층으로 이사 왔다 ㅎ)
혼자 흥분하거나 또는 소리지르며 울분을 토하거나.. 둘 중 하나인 아이가 내 아이였다. 나는 내 현실을 받아들여야했다.
너무 쉽지 않은 일이었고, 꼬박 2년을 그렇게 힘들어했던 것 같다.
엄마 때문이라는 말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에게 문제가 있으면 쉽게 부모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를 보고 배우는 것도 많고, 또 유전되는 것도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닐테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났다.
엄마가 우울해서 아이가 이렇다는 말도 들었다.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요? 애가 이러니까, 엄마가 우울하다고 말이죠."
부모가 정말 개차반이고 학대함에도 바르고 착하게 자란 사람의 예도 나는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었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슴 아팠던 건 한 집에 살았던 남편까지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점이었다. 그는 내가 부모로서 권위가 없다고 생각했고, 아들을 키울 만큼 충분한 체력이 부족해서 지쳤다고 생각했고,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는 양육자라고 판단했다. 그는 병원에 아이를 데리고 가자는 내 말에 수긍했지만, 뒤로는 자신의 심리상담사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와이프 분이 노력하기 싫어서 애한테 약을 먹이려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것 같아요."
남편은 아이가 약을 먹고 나서 달라진 모습을 보며, 비로소 내 말이 맞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주의집중력 외에 불안이나 우울같은 어려움도 있는데, 이걸 인정하는데는 또다시 긴 시간이 필요했다. 수없이 많은 검사를 받았고, 그때마다 나오는 객관적인 백분위 숫자에 인정한 것이다.
"나는 공룡이가 쫄보고 겁쟁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그는 아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했고, 그만큼 엄마인 나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것이 그가 자신과 공룡이를 보호하고 지키는 방식이었다.
그는 아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아이가 화를 내면 진정시키려 애썼고, 퇴근하고 돌아와 아이가 TV를 보고 방방 뛰고 있으면 TV를 끄고 전환을 시켜주었고, "물! 물!" 하며 소리지르는 아이를 몇 개월이고 훈련시켜 "물 주세요."라고 차분히 말하고 기다릴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남자였지만 유연근무제를 해서 아이가 하원할 시간에 맞춰 집에 왔고, 5시부터 11시까지 육아를 했다.
어쨌든 나는 이 일이 두고두고 화가 났고, 나름의 복수를 했다. 남편은 그 덕분에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몇 개월 도맡아 다녀와야했다. 당시에는 남편의 노고가 생각나지 않을만큼 화가 많이 났었지만, 내가 손을 놓고 있을 때, 끝까지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던 건 남편이었다는 생각에 지금은 많이 풀렸다.
뽑기 운이 나빴을 뿐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활동하시는 교수님이 계신데. 그 교수님이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공부 잘하고 착하고 말 잘듣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본인이 뭘 잘해서 애가 그렇게 큰 줄 아는데 아니라고. 그저 뽑기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반대에 해당하는 부모다. 뽑기 운이 나쁜 부모 말이다.
한 번은 아이에게 애원을 했다.
"공룡아,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어렸을 때 너무 소리를 많이 질러서 그게 힘들었어. 그런데 이젠 공룡이가 엄마한테 소리를 지르네. 그만 지를 수 있을까?"
하지만 한번 흥분한 아이의 화를 가라앉히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한번 발동이 걸리면 15-20분은 질러야 진정이 되니까.
이런 날도 있었다.
"공룡아, 엄마가 아까 낮에 치과 갔다와서 신경치료 받았거든. 너무 아프니까 소리를 그만 지를래?"
아이가 나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거짓말! 거짓말!"
결국 입을 벌리고 치료 흔적을 보여준 후에야 상황이 종료되었다.
아이를 싫어하며 살 수는 없었다.
아이가 네 살 무렵, 내 얼굴에 박치기를 하면서 앞니가 돌아가는 일이 있었다. 치과에서는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앞니가 돌아간 것이 느껴질 때마다 기분이 너무 안좋았다. 아이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삐뚤어진 치아가 느껴질 때마다 올라왔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교정 전문 치과에 갔고, 청소년들 사이에서 불혹의 아줌마가 교정을 받았다. 이 곳에서도 치열이 심하게 삐뚤어진 건 아니고 지장없으니 기분일 뿐이라고 했지만, 그 기분이 문제였다.
몇 개월 동안의 교정이 끝나고, 아이는 그 과정에서 무척이나 미안해했다.
시간이 흘러서일까... 아이가 그래도 조금이라도 성장해서일까... 아니면 교정을 해서일까?
도저히 극복되지 않을것 같이 힘들고 절망스러웠던 마음이 조금씩 추스려졌고, 아이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또 낮추니, 아이가 대견하고 기특한 순간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또한 아이가 약물 치료를 하고, 더이상 집에서 뛰어다니지 않게 되면서 조금씩 삶에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조금씩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회복해갔고, 더이상 아이가 원망스러워지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이 닦기가 싫은 아이가 또 다시 내 마음을 무너지게 했다.
"나 엄마 경찰에 신고할거야!"
이를 닦게 한다고 엄마를 아동학대로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말이었다.
"엄마 아빠를 갈라놓을거야!"
엄마 아빠가 한 팀이 되어 자신에게 이를 닦게 하니, 갈라뜨려놓겠다는 말이었다. 한 명 정도는 본인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말이었다.
나는 그 말에 너무나도 화가 났다. 공룡이를 위해 남편과 나는 정말이지 힘겹게 가정을 지키고 있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한 노력을 아이는 티끌만큼이나 알기나 할까? 우리가 무엇을 포기해야했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단순히 밤에 맥주를 못마시고, 친구 만나서 못 노는 정도의 포기가 아니다.)
하지만 망연자실하고 있을 새는 없었다. 실제로 컸을 때, 부모를 신고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한 커뮤니티에서 본 적이 있다.
청소년인 아이와 다투고, 아이가 방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경찰 두 명이 집에 찾아왔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는 당황하며 쭈뼛거리며 방에서 나왔고, 다행히 출동한 경찰이 나이가 있고 노련한 사람이어서 아이를 불러서 한 번 더 신고하면 너를 보호기관으로 데려가겠다. 그곳은 네가 사는 집처럼 안락하지도 않고, 함께 살게 되는 다른 청소년들은 아주아주 무서울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갔다고 말이다.
나는 그 글이 생각났고 반은 진심으로 말했다.
"신고해. 그러면 엄마는 나는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너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달라고 말할거야. 너는 그럼 그 곳에서 자라면 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교육도 시켜주겠지."
정말 경찰이 나를 아동학대를 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누가 신고를 안한 것도 신기하다. 아이가 매일 그렇게 울부짖는데 말이다.) 아이를 한번 데려가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한 3일까지는 이렇게 착한 애를 괴롭히다니.. 생각하겠지. 하지만 일주일만 있어봐. 제발 공룡이 다시 데려가라고 나한테 사정할테니까."
이 이야기를 네 다섯번 하니까, 아이는 더이상 부모를 협박하지 않았다.
기나긴 터널을 한 번 지났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동안 내 감정은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