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실전이다
6세 때,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서 매일 아이가 아침마다 색칠하고 오린 작품(?)을 보내주셨는데, 왜 쓰레기를 보내주시지? 생각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위질 연습과 색칠 연습을 시켜야한다는 메시지였는데 말이다. 1년 내내 전혀 실력이 늘지 않는 아이의 작품을 보면서도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사실 그 이유는 매주 기관에서는 미술 시간이 있었고, 아이의 작품을 사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본 아이의 모습은 꽤나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었고, 작품도 그 나이 대 치고는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나서였다.
'그 그림은 선생님이 거의 그려줬던 거구나!'
그렇다. 한국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의 작품에 선생님들의 리터치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선생님 손길이 들어갈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매주 한 시간씩 미술 수업을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참고로 초등학교 1학년은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림 그리기 활동이 많다.)
불안하기 때문에 커다란 도화지를 주어도 그림은 코딱지만하게 그렸고, 그나마도 수없이 지우고 다시 그리고 지우길 반복했다. 연필 선은 힘없이 떨렸고, 색연필 자국도 마찬가지였다.
공룡이는 레고 안해봤나봐요.
방과후수업을 참관하러 갔다가, 나를 보자마자 뱉은 강사님의 말이었다. 로봇 조립 수업이었는데, 아이가 완성을 다 못하고 오는 경우가 많아서 집에서 같이 마저 조립해주곤 했었다. 하지만 또래보다 조립을 더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나는 아이에게 레고를 조립하는 수업까지 신청해서 듣게 했고, 아이는 그렇게 1년 동안, 설명서를 보고 따라 무언가를 조립하는 수업을 주 2회 들었다. (이제는 제법 레고를 잘 조립한다.)
나 짝꿍이 접어줬어.
색종이 접기 수업도 아이에게는 곤혹스러웠다. 종이를 접을 지 모르니 기다렸다가 짝꿍이 접어주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학교 생활은 걱정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 용변처리하는 연습은 1년 동안 했고, 우유곽 여는 연습과 젓가락질 연습을 했고, 한글과 숫자를 뗐으니까. 더군다나 반 년 동안은 집근처 태권도장에 보내서 줄넘기도 익히게 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섬세한 도움이 없는 수업 시간에서 아이의 실력은 제대로 뽀록나버렸다.
홍수가 났을 때는 누가 옷을 입고 있는지 벗고있는지 모른다고 한다. 물이 다 빠지면 비로소 누군가는 옷을 제대로 입고 있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팬티 차림이라는게 드러난다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나는 팬티만 입고 있던게 들통나버린 사람같은 기분이 들었다.
놀이터에 가니 이미 또래 아이들은 두 발 자전거를 보조 바퀴 없이 타며 놀고 있었고, 벌써 태권도 품띠를 따고 입학한 아이도 있었다. 축구 또한 7세 부터 시작하는 아이들이 있으니, 모든 것이 뒤쳐져있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왜 늦지?"
그 고민에 대한 답은 솔직히 말하자면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유아기를 알차게 보냈다. 자전거를 타고,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을 읽고, 종이접기를 하고, 색칠놀이를 하고, 엄마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클레이 반죽을 가지고 놀고, 공놀이를 하고, 레고를 조립했다.
우리 아이는 유아기를 허송세월 보냈다. 하루에 두 시간은 소리지르며 울었고, 망둥이처럼 뛰어다니면 부모는 뒤꽁무니를 쫓아 대화할 시간이 없었고, 클레이를 주면 만들지 않고 발로 밟으며 뭉개며 놀았고, 그도 아니면 소파 등받이를 쉴새없이 오르락내리락하고, 면봉 수백개와 보드게임 돈 수백장을 바닥에 흩뿌리며 놀았다.
나름대로 아이를 교육시키고 키운다고 생각했지만, 0에서부터 시작하는 아이들과 마이너스에서 시작해 하나씩 채워나가야하는 공룡이와의 갭은 어쩔 수 없는 거였다.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치이기 시작하다
또다른 걱정은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치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운동신경이 뛰어나거나 언어 발달이 빠른 친구들이 있었고, 아이는 놀림을 많이 당했고, 폭력도 일어났다. (계단에서 밀거나 때리는 등) 정말 힘들었던 1년이었다. 불안이 높은 아이는 강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점점 일은 커져만 갔다.
이제부터라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했다.
나의 목표는 모든 영역을 0으로 맞추는 거였다.
잘하는 건 내버려두고, 부족한 부분만 집중해서 끌어오린다는게 나의 전략이었다.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건 다 할 줄 알아야해. 그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데 아주 기본적인 소양이고 지식이거든. 그러니까 다 열심히 복습하고 연습하는거야."
입시생도 아니고, 진로를 정할 나이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아주 기본적인 소양이기에 성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모두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 나이 때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 맞춰 개발한 교육과정이니 더 열심히 따라가야한다고 생각했다.
- 시지각 주의력 훈련을 했다. -> 시지각 주의력이 낮아, 똑같이 따라 그리기 같은 수학을 어려워했다. 이걸 기르지 않으면 나중에 기하학이나 쌓기 나무 등 수학 공부도 어려워질거라고 생각해서, 수학은 딱 선행만 따라가게 하고, 이걸 매일 시켰다. 한 바닥의 그림을 그리는 훈련을 할 수 있었다.
- 설명서를 보고 무언가를 조립하는 방과후 수업을 주 2회 들었다. -> 2학기 무렵에는 무척 잘하는 편이 되었고, 점점 조립 상자가 무거워져서 그만두고 싶다고 해서 1학년까지만 하고 종료.
- 한 달에 2 번씩 집에서 주말에 엄마와 그림을 그렸다. -> 시지각 주의력 문제집을 모두 끝낸 후에 시작했다. 잘그리는게 목적이 아니고, 그림을 '크게' 그리는 것. 그리고 도화지 하나를 꽉 채워 그리는 것을 중점적으로 연습했다. "크게!" 그리라고 나는 요구하고, 아이는 소심하게 그리기를 반복하다가 점점 좋아졌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여전히 소심하게 그려서 2학년부터 미술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자신감이 완전 늘었다.)
- 운동을 시작했다. -> 태권도를 그만두고(너무 인원이 많고, ADHD 아이에게는 소수 수업이 좋다고 생각), 소수로 배울 수 있는 곳으로 최대한 보냈다. 어린이 수영장은 물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잡아주고 샤워 거부를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아이의 거부로 반 년만에 그만 두었다. 정말 힘들었지만 효과를 본건 '축구'였다. 아이는 1년 내내 축구를 거부했지만, 주 2회 축구 덕분에 실력이 늘었고, 아이를 놀리던 남자아이가 대회에서 우연히 만난 공룡이를 좋아하는 일도 생겼고. 축구가 운동신경 기르는데 무척이나 도움이 되서 아이는 학교에서 하는 체육 시간에도 곧잘 실력을 발휘했다. 그 덕분에 공룡이를 괴롭히던 다른 아이가 공룡이를 무척 좋아하며 같이 놀고 싶어하기도 했다. 소수로 킥복싱을 몇 개월 배우기도 했다. (도장이 문을 닫으며 그만 두었다.) 지금도 운동은 꾸준히 하게 한다.
주말마다 바빴다. 약효가 도는 시간 동안 아이는 가위질을 하고, 색종이를 접고, 그림을 그리고, 동화책을 읽었다. 거기다가 학교 진도에 맞춰 수학 공부까지 해야했다. 매주 있는 받아쓰기 준비는 또 어떤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먹였던 약 덕분에 가능했다.) 쉴 때는 마인크래프트로 집을 만들게 시켰고, 집 앞에 나가 두발자전거 연습을 했다.
덩달아 나와 남편도 바빠졌다. 아이는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가 문제를 풀거나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릴 때 옆에서 누군가 계속 앉아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아이 옆에 앉아있고, 한 사람은 집안일을 하며 바쁜 주말을 보내야했다.
더군다나 주말 내내 공부만 할 수 없으니, 다른 하루는 서울 시내 팝업 스토어를 쫓아다니고, 근교로 또는 다른 도시로 여행도 갔다. 아이는 사과를 따고, 파도풀을 타고, 축구대회를 나가고, 놀이기구를 탔다.
아이는 그 중에서도 전문가와 함께 체계적인 운동을 배우면서 자아효능감과 자신감이 생긴 듯 했다. 물론, 자발적으로 먼저 배우겠다고 한 건 없었지만, 힘들게 끌고간 보람이 있었고, 교우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남자아이들은 단순해서 달리기를 잘하거나 줄넘기를 잘하면 멋지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1학년은 참 힘든 시간이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도, 앞 학년에 필요한 것도 미리 배워야했기 때문이다. 영어는 1학년 겨울 방학 무렵으로 미뤄두고, 피아노는 꾸준히 시켰다.
그래. 이제 그만하자. 이 정도 하면 엄마는 만족해.
약 효과로, 그리고 처음 한다는 흥미로, 강제로 어찌저찌 끌고 갔던 것들이 점차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2학년에 들어가면서 3가지를 포기했다. 하나씩 포기할 때마다 가슴이 무너지고, 지난 내 노력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 축구는 이제 그만두자."
축구는 아이의 교우 관게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운동이었다. 팀을 잘 만난 덕분에 대회에 나갈 때마다 성적이 좋았고, 그런 공룡이의 모습을 다른 팀에서 지켜본 아이가 공룡이에게 호감을 갖기도 했고. 다른 운동을 배울 때에도 빨리 배울 수 있는 기본을 갖춰주었다. 이걸 포기한다는 건 너무 쉽지 않았다. 엄마인 나는 미련이 남아 자꾸만 시간을 끌고, 다른 팀을 알아봤지만 결국 그만두기로 했다.
'코치님, 군대 보내버릴거야!'
코치님에 대한 악담을 하거나, 울고불고 소리지르는 통에 두손두발 다 들었다.
"그림은 못그려도 괜찮아."
주말에 그림을 그릴 때마다 너무 짜증을 많이 내고 소리를 많이 질렀다. 다른 수업은 일다 수업에 집어 넣으면 끝이었지만, 그림은 같이 그려야하니 너무 힘들었다. 학원을 보내려니 시간도 없었고. 결국 나와 반 년을 꾸준히 그리다가 포기했다.
아이는 그림 대회에서 상을 크고 작은 상을 종종 받았고, 시상식까지 몇 번 다녀왔기 때문에 아쉬웠지만 눈물을 머금고 접었다.
"바이엘 했으면 된거다."
피아노도 그만두라고 했다. 바이엘까지 했으면 기본 음계는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는 그만두게 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이 축구 코치님 다음에 피아노 원장님이라고 하니 더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지금 어떻게 되었느냐면..
축구는 그만두고 농구로 바꿨다. 2학년을 받아주는 곳을 겨우 찾아서 보냈고 (보통 농구는 손가락 부상 등이 있어 초 3부터 시작) 1:3 소수로 진행되어 아주 재미있게 배운다. 예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코치님은 아이가 몸을 부딪히는 걸 싫어하는 성향 같다고, 완전히 성향을 바꿀 수는 없지만 조금씩 연습을 통해 익숙해지도록 하겠다며 몇 년의 시간을 달라고 하셨다.
방학 때마다는 아이가 좋아하는 줄넘기 학원을 간다. 수영은 2학년 겨울방학부터 다시 배우기로 약속했다. (생존수업에 대비하고 싶지만, 배우는 건 싫어서 가까스로 합의!)
그림은 1년 가량 쉬었다가 미술 학원에 가기로 했다. 아무리 남자아이라고는 하지만 그림을 너무 못그려서 안되겠다 싶었다.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도 아이가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때, 자꾸 지웠다 쓰기를 반복하고 그림을 소심하게 그린다고 했기 때문이다. 미술 학원에는 창의력 같은 건 필요없고, 기본기 위주로 봐달라고 했다. 선생님도 기본기가 있어야 창의력이 나오고 자신감이 나오는 거라고 드로잉 부터 시작해주기로 하셨다. 학생들이 없는 시간에 1:1로 드로잉 위주로 봐주고 계시고, 중간에 친한 친구 한 명이 와서 30분은 1:2로 수업하고 온다. 2 번만에 큰 효과를 본 수업이다.
피아노 학원은 계속 다닌다고 했다. 피아노 학원 가기 전에 하도 소리를 많이 질러서 엄마는 모르는 일이라고 더 하던 말던 알아서 하라고 보냈다.
2학년부터는 체르니 100을 들어갔고, 소곡집을 시작하면서 피아노에도 재미를 붙였다. 나중에 어디서 보니 음악 수업은 1년 이상 해야한다고 들었다. 그래야 소리를 인지할 수 있다고 말이다. 정말 그 말처럼 1년이 되니 아이는 연주를 즐겼고, 집에서도 피아노 연주를 한다. (물론, 가기 전에 짜증내는 건 여전하다.) 악보를 읽을 줄 아니 오카리나 수업도 수월하고, 피아노 학원에서 리코더 연습도 시켜주시니 3학년 대비도 함께 하고 있다.
1년 동안 겨우 끌고 왔는데, 아이가 질색팔색을 할 때마다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 스스로도 의문이 들었다. 저렇게 싫어하는데 시키는게 맞을까?
어느 날은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누가 너보고 A프릴을 다니래? *이조를 다니래? 수학경시대회를 준비하래?
꼴랑 피아노학원에서 '도레미도레미도' 치고, 태권도 학원에서 줄넘기 앞으로 넘는거 하면서 뭐가 싫다는거야?"
누가 보면 7세 고시를 준비한다며 아이를 잡는 줄 알 것 같았지만, 실상은 바이엘 1권을 배우고, 줄넘기 1단 앞으로 넘기를 배우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사회생활이라는 걸 했고, 곧 또래들만큼 무언가를 할 줄 안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고, 또래 관계에서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하라는 걸 하는게 손해보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하나씩 알아갔다.
그렇게 세 가족이 합심해서 아이는 마이너스에서 점차 0 수준으로 올라왔다. 부족한 부분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또 남자아이기 때문에 커버되긴 했지만, 그냥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도 사회생활이라는 걸 하고, 아이의 자존감을 결정하는 건 이제부터 또래 관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집에서 내가 '우리 공룡이는 너무 똑똑해!'라고 말해봤자, 다른 친구들은 단원평가 90점 받을 때, 아이만 50점을 맞으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아이의 자존감은 또래 집안 안에서도 형성되기 때문에 열심히 했다. 또한 나만 단원평가 50점을 맞는데, 수학을 잘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메타인지'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닐까?
열심히 노력했을 때, 어떤 성과가 있다는 걸 자꾸만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ADHD와 인내심/끈기는 반댓말에 가깝기 때문에 어릴 때, 그래도 부모가 끌고 갈 수 있을 때 알려주고 싶었다.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사춘기까지만... 이라고 버티며 가고 있다. 그리고 하루하루는 힘들지만 1년전, 그리고 2년 전의 아이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수월해지고 있고, 성장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