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이는 모범생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는 안 새다??:

by 썸머

놀라울 정도로 공룡이는 기관 생활을 잘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 했다.


아이는 돌을 넘기고 맘마, 엄마 등 몇 가지 간단한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18개월 무렵, 엄마가 집에서 하는 말(한국어)과 밖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영어)가 다르다는걸 눈치채고, 아예 입을 다물었다. 대신, '댜댜댜댜댜댜댜댜댜댜댜'하면서 쉴새없이 떠들었는데, 함께 놀던 형이 "쟤는 왜 저렇게 말해?"라고 묻자, 그 마저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만 28개월 무렵, 아이의 언어 지연이 의심된다며 프리스쿨 선생님의 referral로 아이는 검사를 받게 되었다. 유아교육 전문가와 언어치료사는 나와 1시간 정도 인터뷰를 하고, 선생님과도 30분 가량 인터뷰하고, 두 사람이 번갈아가면서 아이를 집중 관찰했다.


그 결과, 나도 선생님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아이는 혼자서 탑을 쌓으며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 소근육 신공을 보여주었고, 보란듯이 동물 피규어를 하나씩 꺼내며 "meow" "bah-"하는 울음소리를 냈고,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no more baby"라고 말하며 놀이를 종료하는 등 언어나 발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다, 일부 영역에서는 또래보다 발달이 빠르다고 말이다.


"난 한번도 공룡이가 말하는 걸 들은적이 없어!"


당황하는 선생님을 두고, 그들은 해줄 것이 없다고 했다. 하하.




20개월 무렵이었다. 아이보다 한 살 많은 형이 엄마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오기로 했다. 나는 아이 낮잠을 재우고 후다닥 집안 청소를 했다. 아이는 한창 저지레를 하며 이것저것 흐트려놓기 때문에 청소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거기다 간식까지 준비하려면 바쁘게 움직여야했다.


"이이익-!"


청소가 다 끝나고 손님이 올 시간이 거의 다 되자 아이가 일어났다. 아이는 잠자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고, 자기 전부터 난동을 부리며 팔을 휘둘러 나는 눈에 별을 자주 봤고, 일어나서도 엄청 화를 냈다. 즐거운 시간을 놓치고 잠을 잔 것이 못내 억울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런 아이를 두고 마음이 바빴다. 기저귀 바람이니 바지라도 입혀놔야하고, 진정도 시켜야했다. 하지만 이미 불쾌함이 폭발한 아이는 눈에 보이는 걸 집어들어 던졌다.


그건 조미김을 담아놓은 반찬통이었다.


김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분노한 아이는 조미김 더미 위를 마구 밟고 뭉개며 소리를 질렀다.


"꺄아악! 이러면 어떻게 해? 청소기, 청소기!"


나는 재빨리 진공청소기를 찾아 청소를 했지만 채 치우기도 전에


'똑똑.'


손님이 도착했다.


나는 문을 열어주었다.


"어머, 어서와요."


그런데 손님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나는 뒤를 돌아보고나서야 왜 손님들의 표정이 이상한지 알게 되었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20개월 아이가 입술을 앙다물고 장난감 청소기로 열심히 김가루 위를 왔다갔다하며 청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장난감 청소기는 청소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


얼마나 애를 잡았으면 저럴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2일 오후 04_28_05.png


어쨌든 이런 성격 때문에 아이는 기관 생활을 참 잘했다.


선생님들은 누구나 데려가고 싶은 아이였고, one of calmers 라는 피드백을 받고, 양보를 잘하는 아이라는 평을 받았다. 엄마의 사랑을 아주 듬뿍 받고 자란 티가 난다는 칭찬을 받을 때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이로 인해 힘들다, 아이에게 00 점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하면 이런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께서 너무 기대치가 높으신 것 같아요.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요."


대환장할 노릇이다.


아이의 이중생활은 아이가 여러 기관과 학원을 다니면서, 점점 더 많은 수의 교사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점차 이해되었다.


아이의 높은 불안은 '완벽주의' 성향을 만들었다. 혼날 만한 일은 아예 하지 않았다. 자진해서 발표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지만 (실수할까봐, 잘 못할까봐 등), 시키면 매우 잘한다고 했다.


그리고 잘하지 못할 것 같은 건 아예 회피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건 티가 잘 나지 않기 때문에 소수 그룹으로 오랫동안 아이를 지도한 교사만 알게 되는데, 굳이 이런 말을 엄마인 내게 전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나는 아이가 회피하는 걸 초등학교 2학년 무렵에야 알게 되었다. 축구를 시키면서 처음에는 아이가 티나게 도망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축구를 하는게 아니라 '축구하는 시늉'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공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얼핏보면 마치 축구 경기에 참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아이는 티안나게 물흐르듯 섞여 회피하고 있는 거였다. 일부러 잘하는 친구 뒤로 한두발자국 는게 움직였다.이유는 '잘 못하니까' 또는 '잘 못할까봐.'


긴장을 많이 하기 때문에 불편한 점도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일에도 아이는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고, 무척이나 긴장하곤 했다. 학부모 참관 수업에 부모님들이 많이 왔다고 떨려서 발표를 제대로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기관 생활이나 학교 생활을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곳에서는 또래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쉴새 없이 말하고 놀 수 있고, 새로운 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누군가는 사고를 치고, 누군가는 혼나고, 누군가는 웃기고,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는 그 곳이 아이에게는 자극 천국이었다. 아이는 긴장과 불안을 느끼지만, 재미있기 때문에 기관 생활을 좋아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매일 4시 40분에 지하 주차장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가 도착하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뒤를 돌면 노란버스는 떠나고, 아이는 그 때부터 소리를 질렀다. 억지로 끌고 가듯이 엘리베이터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간단히 두부 한 모를 사서 온다거나, 근처 놀이터에서 놀다 오는 건 상상도 못할 노릇이었다.


아이는 눌렀던 긴장과 불안을 내게 쏟아냈고, 나는 아이가 그저 마음껏 소리지르고 울고 먹고 뛰고 물건을 흐트러뜨리는 걸 지켜볼 뿐이었다.


음악치료를 전공하고, 교육 현장에서 오래 일했던 내 친구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아마 지능이 높은데 ADHD인 아이를 전문가들도 많이 대해보지 못해서 잘 모를거야. 티가 잘 안나니까 만날 일이 별로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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