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고독 속에서

고해 일기

by 달타냥

괜찮다 싶으면 복용을 끊어서 그런지 잊을만하면 까꿍 하는 감기에 지겨운 나날이다. 목이 간질간질. 꼭 놀리는 것처럼 푹 자고 싶을 밤에 잠들지 못하게 간지러움을 태운다. 잦은 기침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요동치는 잡생각들을 적어보려 한다.


— 최근에 빠진 것

요즘 She Her Her Hers라는 일본 밴드의 노래를 주야장천 듣고 있다. 스포티파이로 밴드 페이지를 접속하면 물에 일렁거리는 윤슬과 함께 찍힌 남성의 사진(아마 최근 앨범 사진이 배너로 등록되는 듯하다)이나, 디스코그래피를 보면 그들의 노래 분위기에 걸맞은, 두들기면 텅 빈 전시회를 걷는 발자국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앨범들이 흔히 말하는 느좋이다. 느좋, 느좋. 이런 좋같은 어감의 신조어는 대체 어디서 만들어지는 건지. 요즘도 이 말을 쓰긴 쓰나.

내 마우스 장패드는 숲이 그려져 있다. 예전에 갑자기 데스크테리어에 빠졌을 때 푸릇하고 따뜻한 방 느낌을 내고 싶어 원목 책상, 모니터 받침대를 구매하고 오늘의집에서 숲이 그려져 있는 마우스 장패드와 패브릭 포스터로 마무리했다. 물론 지금은 이리저리 늘어져있는 잡다한 물건들과 받침대 위의 조그마한 피규어들 때문에 숲 느낌은커녕 부모님들이 흔히 말하는 쓰레기장 방이 된 지는 오래됐다. 이런 정신사나움에도 She Her Her Hers의 노래를 들으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한적한 숲 속 캠핑카에서 밖을 보며 후두둑 떨어지는 빗줄기를 멍 때리며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 고독

요즘 마음이 붕 떠서 그런지 내가 만든 고요한 가상 세상에 나 자신을 욱여넣으려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 세상은 게임처럼 새로운 월드 하나 생성한 직후라서 뭐가 아무것도 없음. 주변 사물, 배경 부수적인 것 전부 빼고 오롯이 얕은 고독 속에서 헤엄치고 싶나 보다. 다시 한번 인생의 권태로움이 찾아온 걸까? 날 찾아주는 건 감기 하나로 족한데.

무언가에 마음이 동하여 실행하는 것도 의지, 감정 등 천체가 모여 나만의 우주가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 같다. 나태 지옥에 빠진 나를 보고 든 생각이다. 실행에 옮기고자 끄적끄적 적어놨던 매일 할 일이 적힌 떡메모지는 짧은 테이프 한쪽에 의지하여 노트북 받침대에 매달려 있다.

고독함을 즐기며 청춘이라는 동반자와 함께 인생을 유랑하기 바쁜, 목적지가 불분명한 방랑자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움직여야 할 것이다.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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