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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영화관으로 간 세 여자

by 새벽별

시어머니, 지트의 취미 중 하나는 영화 모임 친구들과 함께 극장에 가는 것이다. 그 모임에서는 잔잔한 덴마크 영화를 즐기기도 하고, 가끔은 해외 감성 영화도 본다고 한다. 노년의 영화 모임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갈까? 삶이라는 긴 터널을 묵묵히 지나온 이들의 대화엔, 무수한 계절이 스쳐간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고요히 스며있을 것만 같다.


2018년도에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 2>가 개봉되었다. 1편이 나온 지 정확히 10년 만에 선보인 속편이라 무척 화제가 되었다. 영화 곳곳에는 역시나 '아바(ABBA)'의 노래가 흐른다. 아바는 시어머니 젊은 시절의 대스타였다. 게다가 이웃나라인 스웨덴 출신이라, 덴마크인들에게는 더욱 친밀한 느낌을 주던 그룹이었다.


아바의 열렬한 팬이었던 시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제안했다.


"여자들만 영화를 보러 가자."


영화가 여성들의 우정과 모녀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지니, 우리 집 삼대 여자가 함께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았다. 딸은 <맘마미아> 1편을 재미있게 본 뒤, 아바를 좋아하게 되었고, 속편을 무척 보고 싶어 하던 참이었다.




궁핍했던 런던 유학 시절, 1파운드만 내면 클래식 영화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던 작은 영화관이 있었다. 그곳에서 남편과 나는 마음껏 영화를 보며, 지친 외국 생활의 고달픔을 달래곤 했다. 하지만, 덴마크를 그토록 자주 오갔는데도, 정작 영화관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영화도 기대되었지만, 사실 덴마크 시골 영화관이 더 궁금했다.



시어머니는 평일 티켓 세 장을 미리 예매해 두었고, 관람 당일 우리를 직접 운전해 영화관까지 데려갔다. 영화관은 작고 소박했다. 1980년 대에 지어진 건물로, 겉모습은 주택이나 상가로 보일 정도로 평범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작은 매점과 로비가 보였고, 학생인 듯한 여직원이 일하고 있었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시어머니께 간식이라도 사드리고 싶었는데, 물만 있으면 된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결국 딸에게 줄 베이컨 스낵과 음료수, 물 한 병을 샀다.


이 영화관은 두 개의 상영관을 운영하고 있다. 1관은 120석, 2관은 75석 규모다. 우리가 들어간 1관은 평일이라 그런지 관객이 많지 않았다. 좌석은 넓고 푹신해 편안했고, 관객이 적은 덕에 오붓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문득 제주에 있는 ‘00 작은 영화관’이 떠올랐다. 하지만 한국은 시골이라 해도 인구가 많으니, 영화관도 더 크고 관객을 끌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도 많이 하는 편이다.


<맘마미아! 2>는 1편과 같이 아름다운 지중해에 둘러싼 그리스 섬(실제로는 크로아티아의 비스섬)이 배경이다. 속편에서 엄마 도나(메릴 스트립)는 이미 세상을 떠난 설정으로, 마지막에만 잠시 등장해 아쉬웠다. 하지만, 대부분의 배우들은 10년 만에 다시 출연해 반가웠고, 세월의 흔적을 감추지 않은 그들의 얼굴에서 인간미가 느껴졌다.


도나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후, 임신한 딸 소피는 엄마가 꿈꾸던 호텔을 완성하고 개장을 준비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지인들을 초대해 엄마의 추억을 기리면서, 성대한 파티를 연다. 영화는 현재의 소피 이야기와 도나의 젊은 시절을 교차하면서, 세대를 잇는 사랑과 용기를 보여준다. 대학을 갓 졸업한 도나는 자유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그 여정에서 해리, 빌, 샘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유니버설 웹사이트 '맘마미아 2' 포스터>

파티가 무르익을 무렵,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등장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바로 도나의 어머니이자, 소피의 할머니인 루비다. 비록 도나는 세상에 없지만, 할머니 루비가 손녀인 소피로 건너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다. 그래서 오랜 시간 소원했던 그들의 관계를 회복시켜 준다. 자유롭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여성 삼대의 이야기는, 소피가 품은 아기를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이다.


영화가 흐르는 동안, 아바의 흥겨운 노래 사이로 시어머니의 나직한 콧노래가 들려왔다. 지트는 영화를 보는 동안 자신의 어머니, 그리고 젊은 날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함께 영화를 보는 우리 둘까지.




극장을 나서며, 시어머니는 웃으면서 말했다.


"오랜만에 아바노래를 들으니 참 좋았어.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호호. 영화 재미있게 봤어?"


돌아오는 차 안, 우리는 댄싱퀸(Dancing Queen)을 흥얼거리면서, 노을이 내려앉은 시골길을 달렸다. 그 순간, 우리 세 여자도 세대와 문화를 넘어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바의 노래처럼,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을 사랑과 열정으로 말이다.


그날 이후에도 우리는 종종 그 시골 영화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함께한 시간들은 내가 지나칠 무수한 계절에 조용히 흘러들어, 먼 훗날 나의 대화 속에서 즐겁고 행복하고 여유로운 '낙(樂)'으로 피어날 것이다.



포스터 출처: https://www.uphe.com/movies/mamma-mia-here-we-go-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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