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과 함께하는 트레킹
나는 딸이 셋이다.
첫째와 셋째에 비해 둘째가 제일 키우기 힘든 딸이었다. 어렸을 때는 언니와 많이 싸워서 아빠에게 많이 혼났다. 둘째는 공부하라고 혼난 적은 없는데 싸웠다고 혼난 적은 많았다고 회상했다. 커서는 언니를 이겨야 직성이 풀렸지만 언니 역시 져주지 않아 화가 많은 아이였다.
언니뿐만 아니라 아빠 하고도 많이 싸웠고 타이르고 대화하다가 나 역시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이성을 잃은 적도 있었다. 그래서 항상 걱정이 많은 딸이었는데 본인 말로는 절대 밖에서는 안 새는 바가지라고 큰소리쳤다. 그 말이 위안이 되곤 했다. 저렇게 사나우니 어디 가서 억울한 일 당하지는 않겠구나.
그런 둘째는 다행히 크면서 화가 사라졌다. 언니노릇은 물론 동생노릇도 깍듯이 했고, 아낌없이 베풀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좋아졌다.
체르마트에서 마테호른을 볼 수 있는 전망대로 둘째랑 새벽산책을 나갔다. 잠꾸러기 둘째가 새벽 산책이라니… 한국에선 꿈도 못 꿀일이다. 체르마트는 해발 1,620m의 작은 마을이다. 아직 9월 초인데도 춥고 사람도 많고 해서 가볍게 산책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거실 식탁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일출을 기다렸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농담을 하는 걸 보니 쉽게 볼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다.
다행히 어제 비는 깨끗이 물러나고 하늘을 더할 나위 없이 맑아 기대가 되었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며 황금빛으로 물이 드는 마테호른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숨죽이며 바라보았다. 단지 해가 떴을 뿐인데 이런 장관을 만들어내는 장엄한 자연 앞에서 절로 기도가 나왔다.
오늘 계획은 마태호른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를 갔다가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고르너그라트를 향하는 산악열차(유럽에서 가장 높은 개방형 톱니바퀴 열차라고 한다.)를 타고 고르노그라트 전망대에 올랐다.
산악열차는 체르마트에서 24분 간격으로 출발하고 해발 3,890미터의 고르너그라트 전망대까지 운행한다. 햇살이 풍부해 계절에 관계없이 1년 내내 갈 수 있는 고르너그라트전망대는 29개 이상의 4,000미터 급 거대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다. (스위스 관광청 홈페이지)
3,890m라니!! 한라산이 1,950m이니 체르마트 보다 조금 더 높고, 고르너그라트는 2배 가까이의 높이였더.
스위스패스 할인이 안되어 1인당 10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해발 3,890m까지 산악열차를 설치하는 스위스의 강인함과 기술력이 놀랍다. 비싸다는 말이 쏙들어갔다.
숲 사이로 기차가 지나간다. 창문 바로 옆으로 나무가 손짓하고 멀리엔 요정이 살 것 같은 숲 속 오두막들이 지나간다.
역시 세계여행 블루마블에서 보았던 풍경이다. 여기가 빠니보틀과 텔런트 차태현이 커피와 초콜릿을 먹었던 곳이구먼, 멀리 산에 눈이 쌓여있다.
전망대에서 또 마테호른을 감상하고, (봐도 봐도 멋진 마테호른이다.) 기념품 가게도 구경하고 커피 마시자는 딸의 제안에 손사래를 친 후 리필제(리필호수)를 거쳐 리펠베르그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세계에서 트레킹코스가 가장 좋다는 스위스에서 마음껏 트레킹.
둘째 놓고 가기
원 없이 보고 간다. 이제 안녕
하이킹하는 여행객들이 많아서 항상 함께 걸었다. 리펠베르그에서 기차를 타고 체르마트로 와서 우린 다음 목적지 그린델발트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