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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나의 시어머니

by 아침엽서




친정부모님 성묘를 가려고 동태전과 호박전을 부쳤다. 뜨거운 기름 아래에서 고소한 향을 풍기며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는 전을 바라보니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노릇노릇하게 전을 부치는 것을 좋아하셨다. 노랑이 막 황토색으로 변하려고 할 때 그때가 엄마에겐 최선이었다.


그에 반해 시댁에선 노란빛이 사라지면 너무 익은 거였다. 그 기준은 나의 형님이 정하셨는데 그 이유는 색이 진하면 여러 번 상에 오르내린 것 같다는 이유였다. 친정엄마 같았으면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셨을 테지만 시어머님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으셨다. 가끔 전을 드시다가 ‘안 익었네 ’라고 혼자서 중얼거리실 뿐이었다.


시어머님은 30년대에 태어나셨다. 국민학교 다닐 때 별명이 ‘백점이‘일정도로 공부를 잘하셨다는데 중학교에 진학을 못하셨다. 그 시절엔 여자들은 배움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어르신 때문일 수도 있고, 워낙 시골이라 중학교가 멀다는 환경적 요인도 있었던 것 같다. 시어머님이 공부를 더 하셨더라면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생각해 보면 난 참 철없는 며느리였다. 명절이 되면 그래도 선물이라도 사서 들고 시댁에 가야 하건만 부랴부랴 애들 챙겨 빈손으로 시댁 가기 바빴다. 지방에서 시부모님 계시는 서울까지 고속도로를 5시간 넘게 달려 시댁에 도착하면 오느라 수고했다며 반기시는 시부모님께 그게 최고의 선물인 줄 알았다.


시어머님은 부지런한 살림꾼이었다. 시절을 잘 타고났으면 살림블로거나 살림 잘하는 유튜버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온 집안은 반짝반짝, 가전제품도 먼지 한 톨 없이 반질반질 윤이 났다. 쓸고 닦을 때 오히려 시어머님이 행복해 보였다. 아침에 우리가 깨어났을 때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 간 쾌적한 환경이 그저 좋았다. 그래서 시어머님이 힘드신 줄 몰랐다. 단 한 번도 하기 싫다라든지 힘들다고 푸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살림하는 것이 즐거움의 전부인 분이려니 생각했다.


친정엄마는 오히려 살림엔 취미가 없으시고 여행을 즐기셔서 나는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가기도 했으나 시어머님은 운동을 좋아하지도, 하려는 의지도 없으셨으니 여행은 불가능하려니 싶었다. 반대로 친정엄마는 운동을 좋아하시기도 하고 스스로 관리를 잘하시는 축이었다. 오랫동안 수영과 탁구로 체력을 다져오셔서 70이 훌쩍 넘은 연세에도 제주도 둘레길을 끄떡없이 걸으셨다. 반면 시어머님은 아파트 한 바퀴도 안 걸으셨으니 함께 여행은 꿈조차 꾸지 않았었다고나 할까.


얼마 전 우리 부부는 딸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여행 계획을 딸이 혼자서 전부 세웠고 숙소와 비행기를 예약했으며 경비까지 모두 부담했다. 우리 부부는 그저 딸이 짜 놓은 계획대로 따라다니며 구경하고 먹고 즐기기만 하면 되니 세상 편하고 좋았다고 친한 언니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 얘기를 듣던 친한 언니가 ‘난 딸이 없으니 며느리에게 가까운 일본에 같이 가자고 해도 될까? 일본정도는 같이 가주겠지?’라는 말을 들었다.


난 철도 없거니와 어리석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어딘가를 여행해 보겠다는 생각을 품어 본 적이 없는 며느리였다. 나의 시어머님은 단 한 번도 혼을 낸 적도 잔소리를 한 적도 없으셨다. 어찌 잘못한 것이 없었겠는가? 어찌 지적받을 일이 없었겠는가? 마는 심부름 하나 안 시키시고 본인이 직접 가려고 하셨던 분이셨다. 그렇게 말씀을 아끼시고 속엣말을 꺼내놓지 않으시니 알아서 헤아렸어야 하는 것들을 미련하게도 모르고 지나가버렸다.


나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간다면 어디를 원하셨을까? 요즘은 무장애길이라고 휠체어를 타고도 얼마든지 산책할 수 있으니 가벼운 둘레길에 가도 좋았겠다. 그래도 걷기를 잘 못하시니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셨을까? 고향이 바닷가라 생선을 좋아하셨으니 생선구이도 먹고 회도 한 접시 했으면 좋으련만, 어머님은 이미 내 곁을 떠나셨다.


이번 주말에 성묘 갈 때는 시부모님을 위한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서 가야겠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에게 그것들이 무슨 소용인가? 다 부질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그것은 그리움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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