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
코라는 아침 일찍 출근을 하는 탓에 내가 눈뜰 때쯤이면 집이 참 조용하다. 신경 써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머리는 까치집인 채로 세수도 하지 않고 커피 한잔과 함께 멍하니 거실 벽난로 앞에 앉는다.
날씨가 따뜻하다면서 웬 벽난로냐 하겠다. 코라가 출근하면서 에어컨을 켜두고 나가는 것 같은데 이걸 어디서 끄는지 모른다. 코라 오면 물어봐야지 했으나 매번 까먹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그냥 에어컨이 틀어진 채로 나는 벽난로를 켜버리는 것이다. 의도한 건 아니나 불멍도 하고.
며칠 대면대면 하던 갤러도, 적극적이진 않아도 쓰다듬어 달라는 제스처를 보낸다. 갤러는 4~5살 정도로 추정되던 때,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얼음이 되어 있는 걸 코라 친구네 부부가 발견해 구조했다고 한다. 병원엘 데려갔더니 치료비가 400달러 넘게 나오는 바람에 곤란해하던 친구를 대신해 자신이 데려와 버렸다고.
처음 며칠은 아무도 없는 게스트방에 숨어 꼼짝도 않더니 차츰차츰 영역을 넓혀 코라의 침대에서 자기 시작했고 이젠 누구보다 (코라에게만) 애교 많은 고양이가 되었단다. 선샤인과 달리 밖에 나가는 걸 무서워 하긴 하지만 호기심만은 어쩔 수가 없는지 창문과 현관문(방충망 달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갤러를 보며 처음엔 삐쩍 말랐던 고양이가 지금은 '처비'가 되었다며 푸하하하 웃던 코라.
무튼 난 지금 여행 중이지만, 여행을 떠난 적 없는 것처럼, 집에서 처럼,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소파에 기대어, 멍을 때린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기억은 그냥 이렇게 평범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 자체로 평온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과 풍경이다.
에어비앤비의 일반적인 체크아웃 시간은 아침 11시경. 지금까지 대부분 이른 시간대의 비행기라 굳이 그 시간을 어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거의 자정 가까이 출발하는 비행기라 별별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해 봤다.
1.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에 가서 10시간쯤 버텨본다 ==>> 이 배낭들을 데리고?
2. 메인 스트립에 있는 아무 호텔에나 짐을 맡기고 논다 ==>> 더는 놀고 싶은 곳이 없다
3. 숙소에 짐만 두고 집 근처 산책을 한다 ==>> 이 동네는 주택 빼고 허허벌판이라 볼 게 없다
이런 나의 고민을 듣던 코라 아줌마가 언제나처럼 시원하게 답을 주었다. 뭘 그렇게 고민해? 그냥 저녁까지 먹고 시간 맞춰 나가.
이번 금요일, 같은 하늘에 잠시 머물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