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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스므 Jan 16. 2023

[D+84] CSI 요원이 되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나에게 라스베이거스는 참으로 재미가 없는 도시다.


한가롭게 동네(도시) 산책이나 하다가 얻어걸리는 곳을 찾아들어가는 나 같은 여행자에겐 특히 더. 게다가 이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건 죄다 돈이 든다. 그것도 아주 많이.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긴 해도 공연을 볼래도 돈, 전시를 볼래도 돈, 투어를 할래도 돈, 심지어 심심풀이 도박을 할래도 밑천이 필요한 도시.  


그러다 보니 아침부터 일찍 나가봤자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게 호텔 내부 구경 말고는 거의 없기 때문에 매일 점심까지 먹고 숙소를 나서게 된다.


요 며칠 본의 아니게(엽서 부치러, 밥 먹으러, 공연 보러 등등) 몇몇의 유명 호텔 구경까지 끝냈더니 정말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오늘 저녁엔 '카 쇼'가 예약되어 있어 낮 동안에 갈 만한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가봤다. 관광안내소.


각종 브로슈어를 뒤지다 만세를 외쳤으니. 나의 최애 미드 중 하나였던 <CSI:라스베이거스>의 전시 홍보물을 발견했다.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드라마의 주무대인 라스베이거스에 와서는.


홍보물을 공들여 읽지도 않았다. 뭔가 허접한 전시라도 상관없었다. 신이 나서 한달음에 시장이 있는 MGM 호텔려갔다.


입구서 직원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제야 이곳이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반장님, 반가워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초기 멤버들이 모두!


지급된 노트패드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브리핑받는다


입장하기 직전 전시장 모니터로 보는 홍보 영상


기본적인 틀은 방탈출 게임과 비슷하다. 입구에서 개인용 노트패드를 받아 목에 걸고, 사건현장을 둘러본 뒤 각종 증거물들을 수집해 실험을 하고 범인을 지목하면 된다.


게다가 마지막에 실험 완료한 데이터를 근거로 질문마다 답을 하고 범인을 맞추면 'CSI 요원 수료증'을 준단다!!


이쯤 되니 목숨을 걸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무거운 커튼을 열고 입장을 자마자 거대한 스크린에 보이는 사건 현장. 


나에게 할당된(총 2개의 사건 중 랜덤으로 배정) 사건은, 한 중년의 남자가 자신의 차고에서 머리를 둔기로 맞은 채 죽은 사건이다. 갖고 있던 노트패드로 이 차고 현장을 스캔하면 핏자국을 비롯한 각종 증거물들이 증강현실로 나타난다.


이들 중 증거물로 추측되는 지문, 혈액, 살해도구 등등을 나 스스로가 찾아내는 것이다. 런 뒤 부검실을 찾아 시체의 상태를 확인(시체 역시 증강현실로 볼 수 있다)하고, DNA 연구실에서 가져온 혈액을 실험하고, 지문을 비교하는 등의 열일을 하면 된다.


실험실에서의 활동은 극 중 캐릭터인 닉, 새라, 그렉 등이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준다. 이쯤 되니 정말 내가 CSI팀의 신입 요원이 된 듯하다.


모든 실험을 끝내고 나면 맨 마지막 공간에 데스크탑과 의자가 놓여있는데, 이곳에서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를 토대로 질문에 답을 하면 된다. 찍어서 맞춘 것도 있다 보니 운 좋게 딱 한 문제만을 틀리고 모두 정답을 맞혀 버렸다. 그러자 입력한 개인 이메일로 내 이름 석자가 박힌 수료증을 보내줬다. 


나도 이제 CSI 요원이 되었다!!


감개무량했으나 이걸 삶아 먹어야 하나... 싶긴 하다.


성덕이란 이런 것




'르레브 쇼'로 한껏 올라간 기대감을 품고 '카 쇼'의 공연장으로 향했다. 예정에 없이 추가된 공연이라 나름 미친 듯이 검색하고 비교해서 좋은 자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거의 반값에 티켓을 구했다. 아마도 지금이 비수기에 접어들어 가능한 일이었을 것 같다. 


르레브 공연 하나 때문에 이 도시를 선택해 놓고 돈 아끼느라 보고 싶어 안달 난 공연을 안 보고 간다는 건 정말 후회할 일이 될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쇼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일단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태양의 서커스 시리즈가 다 그렇겠지만 무대의 스케일에서 사람을 압도하긴 한다. 게다가 무대를 가로가 아닌 수직으로 활용한 발상의 전환은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다. 


스케일 하나는 뭐


공연장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안내하는 직원들이 살갑게 굴었다


무대판(?)이 움직일 때마다 드러나는 뒤편의 거대한 축에 그저 넋을 놓고 보긴 했지만 쇼의 내용이 영화 <매드맥스>와 중국의 전통 기예단을 합쳐놓은 거 같아 너무 뻔했달까. 상해에 가서도, 북경에 가서도 기예단 쇼는 일부러 안 본 1인인데. 


드디어 라스베이거스도, 미국도 내일이 마지막이다. 사수이신 김대표님이 그지같이 다니지 말고 맛있는 거 제대로 먹으라고 뜬금포로 돈을 보내주셨다. 그렇다면 뷔페를...


그림일기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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