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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스므 Jan 26. 2023

[NZ 02] 두 번째 뉴질랜드

뉴질랜드, 오클랜드

[전 세계 고양이와 집사들을 만나보겠다고 혼자 떠난 세계여행은, <고양이를 여행하다>라는 매거진으로 발행해 하루 1개의 일기와 그림일기로 정리했다. 그 요약본은 <고양이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브런치북으로 발행했고. 마지막 나라인 뉴질랜드는 더 이상 고양이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기에 <두 번째 뉴질랜드>라는 새로운 매거진으로 정리 중]




정확히 25년 전, 나는 뉴질랜드에서 1년 가까이 살았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무렵, 이제 막 어학연수라는 개념이 생기던 라 나라별 정보도 부족했고 주변에 연수를 다녀왔다는 사람을 찾기도 힘들 때였다. 인터넷이 없던 시기이니 '유학원'이라 불리는 중계업소를 찾아 종이로 된 브로슈어를 긁어모으는 게 다였던 시절. 즉 연수를 가겠다고 마음먹는 일이 쉬운 게 아니었다는 거다.


사실 나에게 영어를 쓴다는 건, 어릴 때부터 공부가 아닌 재미있는 놀이였다.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던 아버지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부대에서 열리는 각종 친목 운동회며 바자회며 가족 단위 행사에 따라다녔고 동생과 나의 졸업&입학식 날에는 부대 안 식당에서 피자를 먹는 게 우리 식구의 특별한 외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미국인들을 만났고 부끄럽긴 해도 '하이' 정도는 어렵잖게 뱉을 수 있었다. 이런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 부대 안에 있는 태권도 도장을 다녔는데 매번 나의 대련 상대는, 나와 같은 날 등록한 또래 미국 남자아이였다. 이름도 안 까먹었다. 브라이언. 그는 승부근성이 장난 아닌 놈이라 어떤 날은 글자 그대로 머리채를 잡고 서로 싸운 적도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미군들을 위한 방송 채널인 'AFKN' 보는 걸 좋아했는데, 특히 <Entertainment Tonight>이라는 미국판 '연예가 중계' 같은 프로그램들을 통해 영화 잡지에서나 보던 할리우드 배우들을 매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대가 딱 그런 프로그램이나 퀴즈쇼를 할 시간이라 나는 한국 방송보다 AFKN이 훨씬 재밌었다.


특히 미드의 원조랄 수 있는 <맥가이버>가 우리나라에선 종영이 됐지만 AFKN을 통해 계속 볼 수 있었기에 밤마다 부모님 몰래 숨죽이며 보기도 했었다.


물론 알아들으면서 보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영어 조기 교육이란 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중학교 입학해 알파벳을 처음 배우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리스닝 공부를 몇 년 동안 해 온 셈이었다.


방송을 보다 보면 '우주'라는 말이 자주 들렸는데 들리는 대로 쓰면 한국어에도 있는 단어다 보니 익숙했었나 보다. 그러다 학교에서 이것이 'would you'라는 말인 걸 알게 되었고 이 경험 이후 나는 영어 공부에 재미를 붙인 것 같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인어공주>의 OST 가사는, 들리는 대로 한국어로 쓰면서 외운 적도 있다. 극장에서 10번 가까이 볼 만큼 사랑했던 영화였으니 나에겐 공부가 아니라 그저 재미였다. 나중엔 디즈니 영화의 한국 배급사였던 '브에나비스타코리아'를 직접 찾아가서, 영어 가사가 적혀있는 전지 사이즈의 홍보물을 얻어오는 열성도 보였다.


무튼, 이런 이유들로 영어가 익숙했던 나는 외국계 회사에 도전을 했고 결과는 면접에서 탈락. 그곳은 영국계 회사였는데 당최 면접관의 발음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국의 영어교육은 미국식 영어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래서 떠났다. 영국식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나라로.


영국은 너무 비쌌고, 그랬기에 차선책인 호주는 한국인들이 너무 많았다. 한창 아시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던 뉴질랜드가 딱이었다. 연수 비용이나 혜택들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한국과 정반대의 계절을 가진, 내 평생 가장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뉴질랜드로 떠났다.


그로부터 25년 후인 오늘 아침, 나는 다시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하는 것과 같다, 다르다 같은 생각은 아예 없다. 다만 내 20대를 돌아봤을 때 가장가장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보낸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에, 심장이 터질 만큼 행복했다.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던 나와 H는,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우리의 첫 번째 여행지 퀸즈타운으로 향했다.


25년 만에 보게 된 오클랜드의 하늘, 그리고 퀸즈타운으로 향하는 국내선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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