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된 그랜드 투어
여행하는 동안 여러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에 대해 배울 기회가 많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인간을 창조하라는 미션을 받은 거인족 형제, 프로메테우스 형과 에피메테우스 동생 신화다. 선견지명을 뜻하는 프로메테우스와 뒤늦은 깨달음을 뜻하는 에피메테우스.
어리석고 충동적인 에피메테우스가 세상을 창조할 재료 중 좋은 것들을 자연과 동물을 만드는데 다 써버린 바람에 인간이 연약하게 탄생했다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이런 배경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워 기억에 남았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프로메테우스처럼 계획을 구상하고 접근하기도 하지만, 뒤돌아 보면 에피메테우스가 되어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 그랜드 투어 이야기의 마지막 화를 발행하고 나서 완결을 누르려니 아직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멈칫했다. 에피메테우스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더하고 싶은 말, 돌아보니 느끼는 후회, 여행과 연재를 하며 깨달은 바에 대해서 적으라는 속삭임이었다.
일상에 지쳐 새로운 영감을 찾아 떠난 그랜드 투어. 하지만 평상시에 관리하지 못한 체력은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았고, 몸이 지치니 눈앞에 수천 년 역사의 현장을 두고도 경탄하지 못한 때도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몸은 편안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공허한 상태로 몇 개월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여행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연재를 결심하게 되었다. 여행하며 기록한 저널과 일기, 사진을 다시 펼쳐보고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다시 글로 남기는 작업을 한 지 3개월. 이 과정에서 여행 동안 놓쳤던 영감을 얻기도 했고,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지긋이 바라보며 새로 배울 점을 찾기도 했다. 글로 기록하는 일이 주는 이점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을 여행을 두 번 하게 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내가 가진 질문은 ‘그랜드 투어의 정의는 뭘까?’였다. 본래의 뜻을 넘어 나에게 의미하는 바를 찾고 싶었다.
여행 첫 한 달이 끝나고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기차에서 내가 정의한 그랜드 투어는 이 문장이었다.
“이국적인 곳에서 사소하고 평범한 의미를 찾고 소소한 일상에서도 감격하고 감사함을 느끼는 마음을 배우는 여행.”
이 문장을 가슴에 품고 살자고 결심했지만 어느새 새까맣게 잊고 지내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 다시 상기하고 인간은 얼마나 망각하기를 좋아하는지 느끼고 또 느낀다.
그렇기에 더더욱 했던 말을 되짚어 보고, 적었던 문장을 되살려 보는 일이 중요함을 느낀다. 다짐한 마음을 다시 끄집어내서 또 한 번 결심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일상에서 색다름을 느끼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는 나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앞서 정의한 문장에 대해 반복적으로 생각해 보면서. 매일 반복되는 하루에서 흥미를 찾지 못하면 아무리 멋진 여정을 떠나도 돌아오면 그만이구나 싶었다.
일상을 이색적이게 만드는 사람은 어디서도 순수한 즐거움을 누리지만, 일상을 지루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리 색다른 경험을 해도 그 흥미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매일이 여행인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글을 쓰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질문하기를 매일 하는 중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여행이었던 그랜드 투어는 나에게 인생 자체를 그랜드 투어로 살라고 가르쳐줬다. 이 가르침을 나에게 상기시켜주기 위해, 확언으로 다짐하며 그랜드 투어 연재 완결을 한다.
“여행이 삶이었던 나는,
삶을 여행하듯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