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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m Jul 20. 2024

97일간의 여정에 찍는 마침표

이스탄불 달빛이 전하는 위로

그랜드 투어 마지막 도시인 이스탄불에서 여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나날이 실감하며 보냈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 아빠, 엄마, 이모, 남편과 나, 다섯이서 선셋 크루즈를 즐겼다.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곳, 두 대륙을 잇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는 대중교통수단인 배를 타고 떠나는 선셋 여행. 오후 4시 즈음 출퇴근하는 현지인들에 섞여 배에 탑승했다. 왼쪽에는 아시아, 오른쪽에는 유럽을 두고 항해를 시작했다.


1시간 가까이 해협을 따라 북동쪽으로 갔다가 내려서 다시 남서쪽으로 돌아오는 배에 올라탔다. 푸르던 하늘이 점점 주홍빛으로 변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서쪽 끝에 보이는 지평선 위로 여러 모스크 미나렛이 뾰족하게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맑은 하늘을 도화지 삼아 마음껏 채색하는 태양을 눈 떼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파랗던 하늘이 순식간에 강렬한 붉은색으로 물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지난 3개월이 스쳐가 버린 속도를 실감했다.


하염없이 찬란하게 지는 해를 앞에 두고 우리 여행을 되새겨보았다.





8명이 여행하는 동안, 항상 북적북적하고 대부분 수다가 끝이 없는 시트콤 같은 시간들이었다. 아빠는 뭐든지 함께하길 바라는 소망이 이루어져 좋다는 말씀을 계속했다. 나도 즐거웠다. 여럿이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는 시간도, 새로운 도시 곳곳을 다니며 함께 감탄하는 것도, 모든 게 처음인 남편 곁에서 수많은 첫 경험을 같이 겪는 순간들 모두 선물이었다.


성인이 되고 가족이 매일 함께하는 시간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다. 그래서 모두가 그 소중함을 알고 더 감사하며 순간순간을 즐겼다.


그럼에도 항상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하루이틀에 한 번씩 도시를 옮겨 다녔기 때문이다. 한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이동했다. 여행지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떠난 ‘그랜드 투어’라는 타이틀은 바쁜 스케줄을 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여행하는 내내 감탄을 자아내는 유적지, 성당, 대자연, 사람들을 만났다. 그랜드 투어 계획을 담당한 엄마와 이모의 열정만큼이나 나도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따라다니며 최대한 공부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의 체력은 마음만큼 따라주지를 못했다.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과 이모를 제외한 우리 모두 그랬다. 부모님보다 30년이나 어린데도 따라가지 못하는 스스로를 보며 비참했다. 면역력도 약해져 누구 하나 감기에 걸리면 줄줄이 다 같이 걸리고, 다 나을 때쯤 다시 증상이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거의 두 달 내내 콧물과 기침을 달고 지냈던 것 같다. 원하는 만큼 쌩쌩히 돌아다니지 못한 것이 나는 가장 아쉬웠다. 내가 사랑하는 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평상시에 체력 관리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느꼈다.


끝이 다가오니 더 배우지 못해 아쉽고, 더 열정적으로 즐기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지난 3개월을 회고하다 보니 뜨거운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넘어가려는 찰나가 되었다. 숨이 멎게 아름다운 노을빛과 금세 깜깜하게 색칠될 하늘 사이의 시간. 여행하면서 경험하는 이색적이고 특별한 경험이 주는 즐거움과 집으로 돌아가 느낄 편안함 사이.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떠날 준비가 된 마음을 동시에 느끼며 작아지는 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열렬하게 빛나는 이스탄불 노을


일순간에 모습을 감추어버린 태양과 함께 그랜드 투어가 저물었다. 해 없는 하늘은 더욱더 빨갛게 빛나기 시작했다.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해준 잊지못할 작별인사였다.


태양을 직시하느라 부시던 눈에 힘이 풀리면서 아쉬운 마음도 조금 풀린듯 했다. 그래도 완전히 가시지 않은 채 배에서 내려 거리를 걸었다.


굿바이, 그랜드투어!



어느새 붉은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하늘 한편에 노란 달이 떴다. 은은하면서도 열렬하게 빛나는 달이 나에게 말했다. 밤이 되면 깜깜해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태양이 뜬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이었다.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찾을 빛을 기대하게 한 달의 지혜에 감사했다.


이제 정말 떠날 시간이 되었다. 떠나기 싫은 마음은 이제 없었다. 이스탄불 하늘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기 때문이다. 평생 잊지 못할 선셋과 달빛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그랜드 투어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그랜드 투어의 끝에 이스탄불 달빛이 전하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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