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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m Jul 16. 2024

가톨릭과 무슬림이 공존하는 모스크

변신의 여제, 아야 소피아 성당·모스크

그랜드 투어 91일째 되는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우리는 마지막 도시,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튀르키예의 수도, 동서양이 만나는 곳이자 동양에서 넘어온 오스만 제국이 자리 잡은 땅, 이스탄불. 대학교 다닐 때 가본 적이 있지만, 여행하는 3개월 동안 보고 배운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이야기 끝에 만나 감회가 남달랐다.


아야 소피아 모스크,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톱카프 궁전 등이 밀집해 있는 올드 타운에서 묵으며 명소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총 5박 6일을 지내는 동안 가장 인상이 남은 곳은 모스크다. 특히 아야 소피아 모스크와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이탈리아에서 한 달 동안 수십 개의 성당을 방문했고, 코카서스 3국에서도 여러 교회를 찾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거의 매일 성당을 가서 조금 지루할 때도 있었지만 들어서는 순간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되는 공기는 언제나 좋았다. 튀르키예에서는 기독교와 가톨릭의 공간이 아닌 무슬림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어 색다른 문화를 배우는 즐거움이 있었다.




겉은 푸르고 속은 찬란한 블루 모스크


1,000년 넘게 유럽대륙의 막강한 제국이었던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오스만 제국이 얼마나 부유했는지 모스크만으로도 짐작이 가능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느꼈던 경이를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를 보고 다시 한번 느꼈다. 


얇은 탑을 닮은 뾰족한 미나렛이 무려 64m나 되는 모스크의 외형부터 압도적이다. 층층이 쌓인 돔들 맨 꼭대기에 자리한 가장 큰 돔의 지름은 23.5m 크기고 43m 높이에 자리해 있다. 파란색 돔들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고도 불리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의 웅장함을 한참 바라보다 들어갔다.


블루 모스크라고도 불리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입장 전에 나눠주는 히잡을 머리에 두른 뒤,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수백 켤레의 신발들이 가득한 신발장에서도 모스크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두툼하고 푹신한 카펫으로 덮인 바닥 위를 걸으니 집에 온 듯 마음이 편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앉아 기도하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천장까지 이어지는 형형색색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햇살은 구석구석을 환하게 비췄다. 찬란하게 빛나는 햇살을 받은 알록달록한 벽은 인간과 자연이 합작하여 창조한 예술 작품이 다름없었다. 밖에서 보던 남색 돔과 밝은 대리석의 단조로움과는 대조되는 화려함이었다.


무슬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무슬림 문화, 역사, 이야기를 소개하는 정보 책장을 보고 반가웠다. 무슬림의 철학, 종교 활동, 무슬림이 생각하는 예수 등 다양한 브로셔가 갖춰져 있었다. 책장에서 여러 개를 골라 바닥에 앉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 공부하는 동안 도서관에서 즐기는 고요함, 명상할 때의 평온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블루 모스크의 화려한 내부





변신의 여제, 아야 소피아


오스만 제국에 의해 1617년에 완공된 블루 모스크보다 훨씬 이전에 지어진 이스탄불의 왕언니는 아야 소피아 모스크다. 같은 자리에 처음 세워진 교회는 360년에 지어진 콘스탄티누스 2세 교회였다. 그 후 2번의 화재로 무너지고 짓고, 다시 지어 532년에 세 번째로 건축된 건물이 현재의 아야 소피아다.


성당으로 태어난 이 건물은 오스만 제국의 점령으로 1453년에 모스크로 변신했다. 로마 제국을 물리치고 이스탄불에 자리한 오스만 제국의 첫 사원이 된 것이다. 그 후 200년 가까이를 대모스크 역할을 하다가 바로 옆에 지어진 블루 모스크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길고 깊은 역사를 가진 아야 소피아보다 더 크고, 더 높은 자신만의 모스크를 짓고 싶어 했던 아흐메트 술탄에 의해 지어진 모스크가 블루 모스크다. 거대한 두 모스크가 300m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서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로마와 오스만 제국의 기운이 불타오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터키의 첫 대통령, 무스타파 아타투르크가 터키 공화국을 세우고서 1935년부터 2020년까지 아야 소피아를 박물관으로 운영했다고 한다. 터키의 정식명을 튀르키예로 바꾼 현 대통령이 2018부터 다시 모스크로 돌려놓아 현재는 아야 소피아 모스크다.


이스탄불 곳곳을 다녔지만 아야 소피아만큼 줄이 긴 곳은 없었다. 24시간 열려있다는 얘기를 듣고 낮에 줄 서는데 시간을 뺏기기 싫어 한산에 밤에 찾았다. 깜깜한 하늘 아래 쨍한 분홍빛으로 빛나는 외관은 올드 타운에서 가장 반짝이는 별 같았다.


핑크빛이 매력적인 아야 소피아


입구에서 히잡을 받아 머리를 감싸고 들어간 내부에는 밖과는 다르게 빛바랜 콘크리트 색 벽이 근엄하게 서있었다. 회색 톤의 벽 위, 돔 천장은 황금색 배경에 수놓은 간결하면서도 정교한 패턴이 가득했다. 둥그런 돔과 곧게 뻗은 벽이 만나는 기둥마다 원형 플레이트가 걸려있었다. 검은색 원형 플레이트에 금색 브러시로 그린 이슬람 서예는 이국적이고 정갈한 매력을 풍겼다. 어둑어둑한 하부와 금빛 천장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바닥은 터키색과 녹색 사이즈음의 색인 카펫 위에는 눈 부시게 반짝이는 황금빛 샹들리에들이 가득했다. 이곳에서도 기도하는 사람들, 편하게 자리 잡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누워서 천장을 보며 명상을 하듯 고요히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앉아 아야 소피아를 즐기고 있었다.


1664년이 넘은 아야 소피아 성당·박물관·모스크


한참 천장을 바라보다 정중앙에 위치한 돔 하나에 걸린 하얀 천이 눈에 들어왔다. ‘왜 저기에만 저걸 매달아 놨을까?’ 의문을 품고 지긋이 바라보았다. 금색 배경이 부분 부분 벗겨져 있는 게 보였다. 다른 곳도 세월의 흔적이 많은데 여기만 가려놓은 이유를 생각하던 중, 가운데 천 뒤에 무언가가 보였다. 의자에 앉아 있는 듯한 남자 그림 같았다. 눈으로는 너무 멀어서 보이지 않아 카메라 줌을 당겨 봤더니, 남자 그림이 맞았고 남자의 머리 주위에 동그란 원이 그려져 있었다.


성당에 있을 그림이 모스크 한가운데 반쯤 가려져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호기심에 검색을 해보니 모스크가 되고부터 로마 시대의 모자이크 벽화 대부분을 덮었지만 박물관으로 변형한 후에 다시 복구시킨 것이라고 한다. 로마와 오스만, 교회와 모스크가 공존하는 곳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아주 색달랐다. 두 종교가 함께 살아있는 곳에서 보낸 시간은 감명 깊은 시간이었다.


가톨릭과 무슬림이 공존하는 곳, 아야 소피아





모스크 두 곳으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다양하고, 역사가 깊은 이스탄불이지만, 나에겐 아야 소피아와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에서의 시간이 가장 뜻깊었다. 전혀 모르던 무슬림에 대해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었고, 모스크만의 평온한 분위기 속에 마음의 정화를 할 수 있었다. 또 그랜드 투어의 끝을 앞두고 느긋하게 사유할 시간을 즐길 수 있었던 점이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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