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mm Jul 13. 2024

클레오파트라와 온천을

튀르키예 최고의 요양지, 파묵칼레

응급실에서 마무리했던 가지안테프 여행 후 바닷가에 있는 안탈리아로 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중해 최대 여름 휴양지인 안탈리아. 아직 건강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며칠 내내 느릿느릿 산책하며 휴식을 충분히 즐겼다. 탁 트인 바다를 향유하며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고요한 시간을 보냈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안탈리아 다음으로 향한 곳은 카파도키아만큼 유명한 파묵칼레였다. 하얀 석회층이 장관을 이루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파묵칼레가 숙소 바로 근처에 있어 이틀 연속으로 방문하는 행운이 있었다.





목화 성을 뜻하는 파묵칼레는 고대 그리스 도시 히에라폴리스 유적지 안에 위치해 있다. 기원전 2세기에 히에라폴리스라는 이름으로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그리스 시대를 지나 로마와 중세시대, 그리고 오토만 민족까지의 역사를 품은 유적지를 볼 수 있었다. 십수 세기를 지나서도 버티고 서있는 그리스 시대의 아치형 건물, 오랜 세월이 지났음을 증명하듯 바닥에 파묻힌 기둥들도 많았다. 여기저기 금이 가있어도 굳건한 성벽, 지진 피해로 와르르 무너진 목욕탕 건물도 있었다.


반쯤 묻힌 유적과 수백년을 견뎌온 아치형 건물


로마 시대의 히에라폴리스는 도시 입구에 있는 공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해야지만 입성을 허락했다고 할 정도로 위생을 중요시했다고 한다. 온천수가 흐르도록 설치한 수로도 시내 곳곳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또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빠질 수 없는 원형 극장도 갖춘 도시였다. 무려 10,000명이나 앉을 수 있는 원형 극장이다. 온천수가 넘쳐흐르는 히에라폴리스가 얼마나 부유하고 번창했는지 보여주는 웅장한 스테일이었다.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 원형 극장


1시간 넘게 고대 유적지를 구경하며 걷다 보니 석회층 온천, 파묵칼레에 도착했다. 온천수에서 나오는 탄산염광물이 수천 년 동안 쌓여 형성된 트래버틴(travertine; 온천의 침전물)의 길이는 2.7km나 된다. 석회 웅덩이가 수백 개의 층으로 된 모습은 눈 덮인 다랭이논을 연상케 했다. 새하얀 석회 풀에 담긴 온천수는 세상 어떤 이온음료보다 청량한 하늘을 품고 있었다. 따뜻한 수면 위 겨울 공기를 만나 생긴 수증기가 춤을 추고 있어 더 신비로운 자태를 뽐냈다.


새하얀 석회에 강렬한 햇빛이 반사되어 눈 부시게 반짝였다. 경이로웠다.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니 아팠던 몸도, 이런저런 스트레스도 깨끗이 씻겨 나가는 듯했다.


다랭이논을 닮은 하얀 목화 성, 파묵칼레



이튿날 다시 방문한 히에라폴리스에서 우리는 온천을 하기로 했다. 첫날 저녁, 마을에서 수영복을 하나씩 사서 챙겨갔다. 클레오파트라가 온천 수영을 즐겼다는 곳, ‘클레오파트라 풀(Cleopatra’s Pool)’로 설레는 마음으로 향했다.


속이 훤히 보이는 온천물속에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기둥들이 군데군데 박혀있었다. 역사를 담아놓은 온천에서의 수영이라니! 정말 클레오파트라를 만날 것만 같았다.


12월이라 날이 추웠고, 온천수는 손으로 만졌을 때 그렇게 따뜻하진 않아서 걱정이 됐다. 들어가 보니 우리나라 온천만큼 고온은 아니었지만 체온을 따뜻하게 해 줄 정도였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유적과 함께 수영을, 클레오파트라 온천


깊어야 허리춤까지 오는 보통의 온천과 달리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깊은 곳도 있었다. 또 목욕탕에 있는 냉탕, 온탕보다 훨씬 큰 곳이라 수영도 할 수 있어 좋았다. 제일 안쪽 코너에는 4m 정도 길이에 폭은 1m의 좁은 곳으로 이어지는데 깊이도 4m가 넘어서 가장 따뜻했다. 맑은 물속에 비친 팔과 다리에 탄산염광물 때문인지 기포가 보글보글 생기는 것도 신기했다. 얼굴은 겨울 공기에 닿아 시원하고 온몸은 따뜻한 기포로 감싸져 최고의 휴양 시간이었다.


오후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속에 머물러 있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해 문 닫는 시간이 되어 나와야 했을 땐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도 트래버틴에서의 석양을 보러 갈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몇 시간 동안의 온천 수영을 한 몸은 세신을 한 것처럼 상쾌했다. 젖은 머리와 가벼운 몸으로 석회층으로 걸어갔다. 순백의 트래버틴은 노을빛에 물든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밀랍처럼 매끈한 석회 표면은 하나의 거대한 향초처럼 은은하게 빛났고 파묵칼레 전경은 향긋한 아로마처럼 마음을 포근하게 했다.


고대 그리스로의 시간 여행과 클레오파트라의 온천 체험으로 이미 완벽했던 하루 끝에 예술 같은 석양. 화룡점정을 찍은 패러글라이딩까지, 전율을 느끼게 한 엔딩크레딧이었다.


 하나의 거대한 양초같은 파묵칼레 트래버틴



드넓고 평온했던 안탈리아의 바다에서 치유의 시간을 보낸 후, 그보다 더 멋진 요양을 이곳에서 즐길 줄은 몰랐다. 다시 대도시로 향하기 전,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경탄할 수밖에 없었던 파묵칼레에서의 모든 순간에 감사했다.


파묵칼레 위, 석양을 향해 나는 패러글라이딩


이전 23화 세계가 집이라면 가지안테프는 부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