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걸어요, 글 걸음을
매년 갱신되고 있는 추위가 서울을 찾아온 즈음이었어요. 느닷없이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점심은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은 것처럼요. 맥락도 이유도 없이 툭하고 튀어나온 마음이었어요. 바깥은 살을 에는 한파가 으르렁대는데 새로운 걸 배울 생각에 마음이 후끈거리기 시작했어요. 그 열기로 서점에 가서 공책 한 권을 사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무작정 써지는 대로 적으면서 글쓰기를 제대로 배울 기회를 기다렸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소망하던 기회가 나타났어요. 바로 글쓰기 수업 공고였어요. 지체 없이 수강 신청을 한 뒤, 역대급 한파에도 굴하지 않고 수업을 다니며 글공부를 했어요.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2년이 지났지만 글 솜씨는 제자리걸음 중이에요. 하지만 전보다 나아간 것도 있어요. 필력보다 소중한 거예요. 머릿속 생각들을 글로 쓸 때 그제야 드러나는 게 있어요. 어떤 결정을 앞두고 장단점을 나열하다 보면 명확해지는 진심 말이에요. 숨겨왔던 감정이 들통날 때도 많아요. 자존심 상해서 인정하기 싫었던 질투심 같은 감정이요. 분노한 마음을 쏟아 내다가 평온을 되찾기도 해요. 실컷 욕하고 나면 후련해지니까요. 글을 통해 나누는 저와의 대화는 두려우면서도 신비롭고, 힘이 들면서도 힘이 나는 일이에요. 매일 쓰는 600자 남짓의 글은 600보 걷기와 같아요. 한 걸음씩 저라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이니까요.
제 가슴에 새긴 한 문장이 있어요.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인데요.
앞을 내다보며 점을 이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점을 이을 수 있죠.
모든 경험은 되돌아볼 때 해석이 가능해진다는 말이에요. 글쓰기를 배우고 싶었던 이유도 시간이 흘러서야 설명이 됐어요. 진짜 저를 봐달라고 내면에서 소리친 거였어요. 글공부는 마음공부와 같으니까요. 매일 아침에 펼치는 공책은 저라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에요. 오늘도 그 거울을 채운 제 모습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해요. 내일도, 모레도. 성가시거나 피하고 싶어도 마주하기를 멈추지 않으려 해요. 제게로 돌아가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