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할 용기
지난겨울, 나의 가장 친한 친구와 20주년을 자축했다. 그 친구와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에서 만났다. 우리는 한 학기만 같은 반을 다닌 후, 나의 해외 유학으로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1년에 한두 번, 내가 한국에 오는 방학 때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관계를 이어갔다. 우리가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자주 만나지 못하면서도 20년이나 우정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질문과 대답이었다.
그 시작을 되짚어 보면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가 떠오른다. 고등학교로 진학 후 몇 개월 만에 만난 친구가 모의고사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 날 처음 들은 단어의 뜻을 물었다. ‘모의고사가 뭐야?’ 친구는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간략하게 대답해 주었다. 내게는 이 날의 경험이 특별하다. 친구의 이런 점이 바로 내가 친구를 아끼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를 배우며 어른이 되었지만, 서로의 다름을 질문과 대답으로 채우고 공유했다.
나의 남편은 베트남 사람이다. 몇 년 전, 남편과 나는 베트남 전국 곳곳을 여행했다. 현지인인 남편도 모든 여행지에서는 외지인이라 모르는 게 많았다. 반미 샌드위치를 파는 상인, 길거리 카페에 앉아 커피 마시는 손님들. 우리는 그들이 누군지 가리지 않고 길을 물었다. 물을지 말지 망설이지도 않았다. 반면 한국 거리에서는 흔치 않은 광경이다. 아무리 헤매도 길을 묻지 않는 나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길을 묻지 않는 것 같다고.
베트남 여행에서 길을 물으며 다녔던 때를 생각하다 깨달았다. 내 머리는 고요한 연못에 돌이 던져진 것처럼 진동했다. 질문은 단순히 정보를 얻는 행위가 아니라, 소통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방법이라는 것을. 질문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해답이 있어도 우리는 묻기를 주저한다. 나이가 들면 질문과 더 멀어진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고백하기에는 지킬 체면이 있다. 그래서 몰라도 아는 척하고 넘어가게 된다. 가끔 누가 용기 내어 물으면 우리는 그 사람을 내려다보기도 한다. 질문하는 사람도, 질문에 따뜻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사라진 것만 같았다.
지금도 나는 20년 지기 친구에게 모르는 것을 거리낌 없이 묻는다. 친구 역시 내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진다. 나는 한국의 속담이나 사자성어에 대해, 친구는 유럽 문화나 표현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답한다. ‘이 것도 몰라?’ 같은 생각을 버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친구와의 관계 외에도 질문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길을 찾을 때도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길 묻기부터 시작해 더 많은 질문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말했다. 이 단순한 진리가 지혜를 향한 첫걸음이다. 나 역시 무지를 깨닫는 것이 성장의 시작임을 믿는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지를 부끄러워하는 대신, 질문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싶다. 모르면 언제든지 질문하고, 질문하는 용기를 존중하는 사람이고 싶다. 지금보다 더 많은 물음표들로 가득한 삶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