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가 클래식이 되는 순간

그 찰나들을 수집하는 삶

by Emmm

중학교 시절 해남에서 임진각까지 걷는 국토 대장정을 했었다. 벌써 20년이 넘게 지난 그때의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대단한 성취감을 남긴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뿌듯함은 20대의 나를 울릉도에서 임진각까지 횡단하는 국토 대장정으로 이끌었다. 13년 전, 울릉도에서 시작한 첫날은 15km를 걸어야 했는데 예상외로 가혹했다. 만만히 보았는데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졌고, 주저앉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 했다. 23km를 걸은 둘째 날은 다리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시작에 불과했고 임진각까지 수백 킬로미터가 남은 상황이었지만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


셋째 날, 허벅지 아래로는 감각이 무뎌져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한 걸음, 두 걸음 걷다 보니 계속 걸을 수 있었다. 그러다 포기하기엔 이미 오기가 생겼고, 어느새 하루에 30km를 걷는 게 일상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엔 40km를 걷기까지 했었다. 발바닥은 물집으로 덮이고 온몸이 쑤셨지만 포기하지 않고 걸어 마침내 임진각에 도착했을 때, 20대의 무모한 도전은 값진 성취로 바뀌었다. 출발 전의 나에게 하루 몇 킬로미터를 걸을 수 있냐고 물었다면, 10km도 자신 없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루 40km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리였다.



지난달,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일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청계천의 러너들을 보며 느낀 동경심이 싹을 트게 한 마라톤 참가다. 걷기는 정신력으로 할 수 있어도 달리기에는 자신이 없던 내게는 '언젠가 이루고 싶은' 먼 꿈에 불과했던 목표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결심이 선 날, 나는 5km 마라톤에 참가 신청을 했고 한 달간의 훈련을 시작했다. 공원에서 달리고 있으면 모든 러너들이 하나, 둘씩 나를 추월했다. 발레리나처럼 우아하고 새처럼 가볍게 달리는 그들을 볼 때마다 감탄을 하면서도 나는 넘볼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처럼 빨리 달리려면 셀 수 없이 많은 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아무리 달려도 몸은 여전히 무겁고 속도도 붙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기록은 계속 경신되었다. 3주 차에는 처음으로 다른 러너를 앞지르는 일도 있었다. 누구와의 경쟁도 아니지만 빨라진 내 속도에 놀랐다. 그리고 한 달이 되었을 즈음 나는 기록을 6분이나 단축했다. 한 달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성과였다.




내가 참가한 대회는 "불패 마라톤", 구호는 "내 사전에 실패란 없다"였다. 처음에는 이 문구가 대단히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날마다 향상되는 기록을 보며 이 말의 의미를 곱씹게 되었다. 선배 러너들의 말에 의하면 마라톤 당일에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쳐서 평소보다 힘이 난다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힘이 들었다. 한강의 거친 바람은 숨 쉬기를 방해했고 오르막 구간에서는 속이 메슥거리기까지 했다. 초보자의 컨디션 조절 실패였을 테다. 하지만 완주선을 향해 달리는 내내 이 구호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국토 대장정처럼 마라톤에서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한 걸음 더 내디뎠고 결국에는 갈 수 없을 것 같던 거리를 완주할 수 있었다.





대장정을 마친 임진각에서도, 마라톤을 뛴 한강에서도 깨달은 진리는 같았다. 도전한다면 한계를 깨고 불가능을 없앨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진부하게 느껴졌던 말이 내 삶의 진리가 되었다. 내가 직접 겪었기에 상투적인 말속에 숨어있던 진리가 빛을 발했던 것이다. 클리셰가 클래식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인간에게 한계가 없다는 사실은 이미 국토 대장정을 완주했을 때 깨달았던 진리였다. 하지만 인간의 망각은 그 진리를 잊게 만든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불가능은 없다"라는 말이 다시 지루한 말이 되어버릴지 모른다. 진부함에 가려진 진리를 다시 발견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계속해서 몸으로 실천하고 깨닫는 수밖에 없다. 첫 국토 대장정이 두 번째 도전을 하게 만들고, 두 번의 국토 대장정이 마라톤으로 이끌었듯이. 삶은 이런 도전들로 오래 묵은 진리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여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