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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작품이 일치할 때

에드가 드가의 작품 <개의 노래>

집에서 키우는 털 딸 '레아'가  우리 집으로 입양된 지 2주 정도 되었을 때 작은 울타리 안에 잠자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배를 실룩거리며 비스듬히 자는 모습을 가족들 카톡에 올리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며 한 장 찍었다. 앵글 안에 음표처럼 오르락내리락 쌕쌕 거리며 자는 모습 속에 일정하게 앞발을 모으고 숨 고르기 하는 모습이 처음이라 신기했다. 몸은 분명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데 앞발은 흐트러지지 않고 변함없이 일정하게 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자고 있었다. 마치 자면서도 '엄마, 나 이뻐해 주세요.' 하며 견주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아가씨가 배를 저렇게 훌러덩 드리대고 자도 되는 것인가 싶었다. 강아지 시절은 어찌어찌 봐 줄만 한데 덩치가 커지면 조금 민망할 듯싶다. 인간의 잣대로 강아지의 본능을 여지없이 재단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민망하면 어떤가! 아프지 말고 가족 곁에 오래 머물러 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작년 몇 달 사이로 아빠개 '천둥이'와 엄마개'소리'를 차례로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내줘야 했다. 이렇게 빨리 우리 가족 곁을 떠날 것이라 상상도 못 하고 살았었다. 분명 인간들보다 먼저 간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정작 마음의 준비는 내일로 항상 내일로 미뤄져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을 잃고 보니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동물이고 사람이고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곁에 있을 때 한 번 더 예쁘다 쓰다듬어 주고 , '잘했어.' 라며 속삭여 주고, 그리고 좋아하는 간식이라도 부지런 떨고 더 만들어 먹일 것 싶었다. 반려견을 대하는 모습이 이럴진대 하물며 내 부모라면 어떻겠는가! 나 역시 부모님을 경황없이 보내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멀리 산다는 이유로 적응하기 바쁘다는 이유로 때로는 내 발등에 불 끄기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도 자주 못하고 살아온 시간을 깊이 반성한다. 어쩌랴! 부모님의 시간은  기다려 주질 않았고 나의 시간은 막차를 놓치고 기차 뒤꽁무니만 멍하니 쳐다보는 어설픈 못난 딸의 모습으로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그저 우리 가족의 생활 속으로 들어온 털 딸 '레아'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길 바랄 뿐이다. '레아야 , 우리 가족으로 와 주어 고마워.'라는 말도 함께 전해본다.





집으로 입양된 지 10주 차 '레아'( 저먼 셰퍼드와 허스키 믹스)









에드가 드가의 작품 <개의 노래>이다. 입양된 지 10주 된 털 딸 ‘레아’와 에드가 드가의 작품에 나오는 유명 여가수의 포즈가 너무  닮아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그림을 보는 순간 웃음이 피식 나왔다. 키우고 있던 우리 집 털 딸 '레아'의 잠자는 포즈를 인상파화가의 그림으로 볼 수 있으니 신기하기도 했다. 한편 얄궂은 작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름다운 여성이 등장하는 그림에 하필 제목을 <개의 노래>라고 하니 에드가 드가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제목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당시 그가 자주 가는 카페의 유명 여가수가 노래할 때 양손을 내밀고 마치 개의 포즈처럼 취하고 자주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고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의 여성 혐오증이 이 작품에서 드러난 것인가? 어린 시절 어머니의 복잡한 사생활로  평생 독신으로 산 화가이다. 어쩌면 드가가 어릴 적 받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  사는 동안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던질 수 없었는 지도 모르겠다. 자신 안의 내면 아이와 영영 화해를 못하고 평생 자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성 혐오'라는 단어가 좁은 의미로는 여성에 대한 혐오를 뜻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멸시, 뿌리 깊은 편견, 성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과 비하,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드가 역시 여성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사이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지 않았을까!






에드가 드가(Edgar Degas)는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금수저이다. 주로 발레 무용수와 경주마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인상주의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고전주의, 사실주의 색채를 띠고 있어서 정작 인상주의 뼈대를 세우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만 본인은 그렇게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고 전한다. 





루이 르 그랑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파리 대학 법학부에 들어가지만 포기하고 앵그르의 제자인 루이 라모트의 소개로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한다. 당시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러하듯이 루브르 박물관을 드나들면서 거장들의 그림을 익힌다. 지금도 루브르는 세계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장소 중 한 곳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루브르 궁전 내부에 위치해 있고 당시 요새로 쓰였다가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 거주하기로 결정하고 왕실의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한 장소로 쓰이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당시 '올랭피아'로 파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 '마네'를 만나고 그의 소개로  기존의 틀에 박힌 미술에 싫증을 느낀 젊은 혈기의 인상파 화가들과 만남을 갖게 된다. 모든 미술사조가 그러하듯 앞 세대의 사조를 거슬러야만  새 사조가 탄생을 하는 것 같다. 마음만 앞섰던 젊은 인상파 화가들을 위해 뼈대를 만드는 일에 적극 협조하고 도움을 준다. 1년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르네상스의 거장들과 작품을 통해 만나고 당대 작가들로부터 배우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돌아온 후 화풍에 큰 변화는 없었던 듯하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후 인상파 전람회에 참석은 하지만 독자적인 길을 걸어간다.  이 전쟁으로 몇몇 인상파 젊은 화가들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기도 했다. 가난한 동료 화가들의 그림을 대신 사주기고 했던 젊은 바지유가 젊은 나이에 전사자로 돌아왔다.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것 같았던 알프레드 시슬레는 전쟁으로 인해 가진 재산을 모두 잃어 전쟁 후 삶을 가난에 허덕여야 했다. 





전쟁 이후 에드가 드가는 자신이 선호하는 두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발레리나와 경주마들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그가 그려낸 숱한 발레댄서들은 당시 부유층들의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부유한 후견인 눈에 들어 가족들의 생계를 부양해야 만하는 하층민 계층의 여자 아이들이 기를 쓰고 춤을 추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럴까? 그녀들의 몸짓은 아름답지만 그녀들의 여릿한 어깨에 내려앉은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들의 일그러져 있는 표정만큼이나 시리고 아프다. 아픈 다리를 어루만지는 딸에게 위로의 말을 선뜻 건네지 못하고 시선마저 외면하는 엄마의 속마음은 생활고 앞에 맥을 못 추고 무너져 내린다. 애꿎은 우산만 내려다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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