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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George Stubbs& David Hockney

2020년 8월,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캘리포니아에 큰 산불이 나 이중고를 겪고 있을 때입니다. 불길은 삽시간에 여의도 면적의 7배를 훌러덩 태워버렸습니다. 로컬 TV를 통해  진화 작업을 하던 소방관들이 오히려 갇히는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꺼지지 않는 불길을 잡기 위해 주지사는 캐나다에 장비와 지원 요청을 부탁했고요. 급기야 트럼프 정부는 캘리포니아에 재난지역을 선포합니다. 




사람들은 긴급 대피명령을 통해 미리 안전한 지역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동물들도 가까운 칼리지의 넓은 공간 안으로 일부 대피한 상태였고요. 하지만 미처 대피하지 못한 그룹의 동물들도 있었습니다.




 놀란 토끼 눈을 하고 갈기머리가 서로 뒤엉킨 채 우왕좌왕하는 말 무리들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히히 잉'하는 소프라노 말 울음소리는 마치 말 버전으로  "제발 , 살려주세요"처럼 들렸습니다. 뿌연 연기와 시뻘건 불길에 놀라 예민해진 말 몇 마리가 무작정 질주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평상시 같으면 달리는 그 모습이 기립박수감인데 비상시가 되니 생사를 알 수 없이 뛰어드는 불나방 같아 보였습니다. 





불길이 달리는 말의 속도를 이미 따라잡은 상태였습니다. 덩치까지 크니 안전지대로 옮기기에 특별한 차량이 필요합니다. 말 전용 트레일러가 필요한데 구해진다 한들 제시간에 저 장소에 도착할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이후 그 말 무리의 생사여부는 알길 없으나 아마도 적잖은 피해가 있었을 거라 짐작해 봅니다.




 18세기 동물화가 특히, 말 그림을 탁월하게 그렸던 조지 스텁스(George Stubbs 1724-1806)와 밝고 청량한 색감으로 현존하는 가장 비싼 화가인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시간을 살펴볼까 합니다. 











1.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브래드퍼드/위키백과 2 조지 스텁스(George Stubbs), 리버풀/ 잇츠유





왼쪽 1.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 1937-)는 1960년대 팝아트 운동에 기여하며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수영장과 주택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물의 움직임과 반사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 탁월했던 화가였지요. 1970년대 자연주의 시기로, 계절의 변화를 기록하는 작품들을 제작했습니다. 반 고흐와 피카소의 영향을 받아 다시점 구도와 입체주의 기법을 활용했고요. 




1980년대 포토콜라주 기법을 사용하며 멕시코 아카 틀란 호텔 풍경을 그렸습니다. 피카소의 회고전에 영향을 받아 입체주의에 매료되었고 무대 디자인 작업도 활발히 했던 시기입니다. 1990년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대규모 풍경화와 자화상 등 다양한 주제와 기법을 실험했고요. iPad를 통해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 중이십니다. (86세, 2024년 ) 영국, 미국, 그리고 프랑스를 오가며 새로운 매체를 실험 중이십니다. 







조지 스텁스(George Stubbs 1724-1806)는 18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화가로, 특히 말 그림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해부학 공부를 통해 말의 구조와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지요. 그의 말 그림은 사실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넘쳤습니다. 스텁스는 단순히 말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의 힘과 에너지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낭만주의 사조에 속하는 화가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표현하는데 주력합니다. 물론 고딕 양식의 요소들도 작품에 가미하면서요. 









https://www.youtube.com/watch?v=mVg0L4rH_tg





눈은 언제나 움직인다.
눈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눈이 움직일 때,
내가 보는 방식에 따라
시점도 달라지기 때문에
대상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실제로 다섯 명의 인물을 바라볼 때
그곳에는 1천 개의 시점이 존재한다.
-데이비드 호크니-









그림1.<더 큰 그랜드 캐니언>,1998/Arthive 사진 Grand Canyon




19세기 후반부터 화가들은 원근법에서 벗어나고자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호크니에게 큰 영감을 준 파블로 피카소 역시  다양한 각도에서 사물을 본 후 그림을 그렸지요. 이렇게 하나의 그림이 여러 개의 시선을 가졌다고 해서 '복수 시점'이라 부릅니다. 호크니가 복수 시점을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사진 속 그랜드 캐니언(Grane Canyon)은 미국 남서부 지역에 있는 애리조나주 북부 지역에 있습니다. 이곳은 콜로라도 고원(Colorade Plateau)으로 불리는 높은 고원지대인데 이곳을 가로질러 흐르는 콜로라도강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대한 협곡이 그랜드 캐니언입니다.




 제 눈에 호크니가 그린 그랜드 캐니언의 모습이 실제보다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가끔 그런 분들 계시죠. 예를 들어  고흐의 그림을 보고 아를의 랑글루아 다리를 보러 갔다가 실망했다는 분 말입니다. 실제로 보면 시커멓고 별 볼일 없는데 고흐가 그려 낸 그 다리는 밝은 색감으로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잖아요. 별것 아닌 것을 특별하게 표현해 낼 줄 아는 고흐의 능력인 거죠. 호크니 역시 고흐의 그런 점을 참 많이 닮은 화가입니다. 





 60개의 캔버스를 이어 붙였습니다. 관람객이 그림 속 풍경을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했고요. 화려한 색채와 거대한 크기로 인해 실제 그랜드 캐니언의 웅장함과 입체감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이 작품을 통해 호크니는 인간의 시각이 작동하는 방식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오래 보기'를 통해 드러난 맑은 색의 느낌에 빠져보세요. 기분 좋아지실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nDAidgLZiE













그림1. <Mr&Mrs Clark and Perch>,1971/Artinfo그림 2 George Stubbs<A Couple of Fox hounds>, 1792/wikipedia





이 작품의 모델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절친이자 1960-70년대 런던 패션 산업을 선도한 디자이너 부부입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에 호크니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세계에 감성적으로 반응하며 이미지를 제작했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 그려진 2인 초상화시리즈는 영국 테이트미술관에서 가장 인기가 높습니다. 이 작품들은 오랫동안 주변 인물들을 모델로 면밀히 관찰하고 다수의 습작 드로잉을 거듭한 끝에  탄생한 작품입니다. 특히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실물크기로 제작되어 마치 관객이 서 있는 실제 공간에 대상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2vPPviP9B8













1226년부터 경마가 영국에서 열렸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영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입니다. 영국 상류 계층은 좀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경주마를 갖기 위해 끊임없이 개량종 만들기를 시도했습니다. 그 결과 1806년 스포팅 매거진에 잉글리시 서러브레드(Thoroughbred) 종이 공식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혈통이 순수하다는 의미입니다. 가능한 한 속력이 있는 말을 골라낼 목적으로  사육되어 온 종으로 순순 혈통이라는 것이 선발 시 지침이 된다고 합니다. 서러브레드는 영국에서 토종 암말과 아랍 또는 북아프리카의 수말을 교배해서 개량한 말로 가장 빨리 달리는 품종입니다.





경마의 바탕에는 누구의 말이 가장 빠른가에 대한 호기심과 가장 빠른 말을 가진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경쟁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돈을 거는 도박이 결합하면서 영국의 황실과 귀족들은 미친 듯이 경마에, 또 경주마 양성에 몰두하게 됩니다.





George Stubbs, <암말과 망아지 Mares and Foals>,1762/news. jtbc.co.kr





조지 스텁스(George Stubbs 1724-1806)가 1762년에 그린 <암말과 망아지>입니다. 말들이 마치 광고를 찍는 것 같습니다.  윤기 흐르는 털과 아름답고 골진 근육, 근육 위로 퍼진 핏줄 선까지 섬세하게 그려져 있죠. 배경이 없는 과감한 구성과 각 말들이 취하고 있는 아름다운 포즈, 리듬감 있는 배열까지 뛰어납니다. 이런 구도에서 무엇보다 말이 돋보이게 되지요.





이쯤대면 궁금해집니다. 도대체 움직이는 말들을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를 어떻게 동시에 그릴 수 있었던 걸까? 말들을 모아 이런 포즈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 것은 아닐 테니까요. 스텁스(Stubbs)는 여러 곳에서 각각 관찰하여 그린 말 드로잉과 스케치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화면에 조립하듯 하나로 구성하여 자연스러운 장면으로 만들어 냅니다. 아마도 말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부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림 속에서는 씨수말 같은 덩치가 큰 근육질의 말은 보이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배가 처져 있어 새끼를 낳는 번식마인 것처럼 보이고요. 야생의 경우 씨수말 한 마리가 여러 마리의 암말을 거느리는 시스템이라고 해요. 사람이 기를 경우 100% 암말들이 많고요. 씨수말을 암말과 방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임신기간이 아니면 씨수말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죠. 또한 씨수말을  포함한 암말과 새끼말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조지 스텁스(George Stubbs) 말고도 동물을 그린 화가는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말 그림을 최고로 여기는 이유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세밀하고 정확한 묘사 때문입니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영국 리버풀 출신으로 10대까지 가죽 직공이던 아버지를 따라 무두질을 했다고 합니다. 가죽공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스텁스 이 삶의 전반적인 정보는 부족합니다. 그의 동료 예술가이자 절친인 오자스 험프리의 기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지요. 험프리의 비공식적 회고록은 스텁스가 험프리와 나눈 사적인 대화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스텁스는 청소년기까지 아버지 일을 도왔고, 정규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스텁스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을에서 지나다니는 동물들을 스케치하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당시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많은 르네상스 시대 거장들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동물에 대한 관심을 해부학으로 돌렸습니다. 그는 자세히 관찰한 것들을 토대로 수많은 스케치를 남깁니다.  





 1744년, 스텁스는 전문가 밑에서 해부학을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영국 요크로 이사를 합니다. 1753년까지 요크에서 초상화 전문화가로 일하면서 요크 카운티 병원의 외과의사에게 인체 해부학을 배우게 됩니다. 그는 이 병원에서 인체 해부학에 참관해 아주 정확한 드로잉들을 그립니다. 책이 출판된 것뿐만 아니라 의대생 들게 개인 해부학 수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식견이 높았다고 합니다.





1755년 이탈리아 여행을 떠납니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이탈리아를 다녀오면 고전주의로 마음이 흔들리는데 스텁스는 자연주의 신봉자로 그대로 남게 됩니다. 오히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스텁스(Stubbs)는 1756년 링컨셔의 외딴 농가를 빌려 1년 반 동안 말을 체계적으로 해부하고 이를 스케치하기 시작합니다. 가까운 무두질 공장에서 말의 시체들을 입수하여 피를 뺀 후, 혈관에 밀랍을 채워 넣었습니다. 그런 후에 말을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도록 자세를 취한 후, 해부를 해가며 각 단계별로 상세하게 스케치했습니다.






<말의 해부학  The Anatomy of the Horse>,1766/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그의 말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말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정확한 해부학적 연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60년대, 스텁스(Stubbs)는 드디어 화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작은 것에서 커다란 크기까지 모든 스케일로 작업을 하기 시작합니다. 경주, 사냥, 사격 등의 모습을 포함한 말과 야생 동물,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당시 스포츠였던 승마는 부유층들의 취미였기 때문에 활기찬 모습의 말 그림은  주인들의  체면을 올려주기 충분했습니다. 스텁스의 말 그림은 말 주인의 눈에 비친 말보다 더 아름다운 말로 그려주니 귀족들 눈에 쏙 들어옵니다. 너도나도 스텁스를 찾고 말 그림을 의뢰합니다. 덕분에 말 그림으로 화가로서의 명성과 전성기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1964년 호크니는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 인근에 거주하며 이 도시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중충한 날씨로 유명한 영국에서 살아온 호크니는 뜨거운  햇빛과 자유로움을 발산하는 로스앤젤레스에 완전히 매료됩니다. 이곳에서 '묘사'에 관한 문제에 계속해서 몰두했습니다. 바로 사진 기술이 발달하면서 포토리얼리즘과 회화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했던 거죠. 





그는 기술적인 면에서 회화가 사진에 비해 사실성을 표현하는 데 부족함이 있다는 점을 직시하게 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리의 투명성이나 계속해서 움직이는 물의 특성을 포착하는 방식 등에 천착합니다. 특히 로스앤젤레스에서 작업하던 어느 시점부터 호크니는 빠르게 건조되고 캔버스에서 벗겨지지 않는 재료인 아크릴 물감을 재료로 사용하게 됩니다. 덧칠할수록 색의 청량함이 반감되는 아크릴의 특성 때문에 그는 최대한 수정 없이 작업을 마무리해야 했지요. 덕분에  더욱 작품의 표현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철저한 계획과 세심한 붓질이 요구되는 작업이 작업 속도는 늦었지만 결과적으로 관찰 능력의 향상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예술가의 초상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1972/SSALAD





<예술가의 초상 Portrait of an Artist>은 1972년 제작된 호크니의 '수영장 시리즈'중 하나입니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평영을 하는 남자가 보입니다. 빨간 재킷 차림으로 수영장 밖에 서서 물끄러미 수영하는 남자를 지켜보는 시선도 있고요.  그림 속에 서 있는 남성은 호크니의 11살 연하 애인이었던 피터 슐레진저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호크니 자신이 또 다른 자신을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고요. 정적이면서도 많은 사연이 담긴듯한 분위기의 그림은 호크니 작품의 정수로 현존 작가 최고액이라는 기록을 낳게 됩니다.





2018년 11월 15일 열린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호크니의 작품 <예술가의 초상 Portrait of an Artist/Poo with two figures>(1972)이 9030만 달러 (약 1019억 원)에 팔렸거든요. 예상 낙찰가는 8000만 달러 (약 910억 원)였으나 실제 경매에서 <예술가의 초상>은 1000만 달러나 더 비싸게 낙찰되며 현재 살아있는 작가 중 최고가 경매  낙찰 기록을 갖게 되었답니다.







평범한 나무들을 보면서
가지에 달린 몇 개의 나뭇잎이 만들어내는
그 환상적인 형태를 생각했다.
공간에 대한 관심을 잃으면서
이런 것들에 대한 관심도 잃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Hockney)-








그림 1. <Bigger Trees Near Warter>,1998/Flickr

                                                                               




2000년대, 호크니는  태어난 고향으로 관심을 돌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전원 풍경을 그립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호크니는 이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계절의 변화와 그 경이로운 광경에 감동을 받습니다. 영국 요크셔의 풍경을 그릴 때 수없이 반복하며 그렸는데 드로잉과 수채화로 먼저 풍경을 그려보고 다시 유화를 그렸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풍경화를 그리면서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Bigger Trees Near Water>에서 정점을 이룹니다. 가장 큰 규모로 높이 4.5m 폭 12m의 크기로 총 50개의 캔버스가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룹니다.





이 작품은 봄이 오기 직전 와터 근처의 새순을 머금은 겨울나무를 그린 작품입니다.  화면의 중심에는 가지를 뻗은 거대한 플라타너스가 있고 키가 큰 나무들과 수선화들이 피어있습니다. 오른쪽으로 작고 아담한 집 두 채가 보이고요.  또한 배경에는 분홍빛 숲이 보입니다.





이 작품은 커다란 규모로 인해 앞에 다가서는 순간 마치 실제 나무숲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는 호크니가 말하는 "자연의 무한한 다양성" 한 복판에 자리하게 되는 순간인 거죠. 처음 작품을 접할 때는 요소들의 다양성과 복잡한 관계를 한눈에 포착하기 어렵습니다.  이로 인한 약간의  불안감은 곧 작품 곳곳을 탐색하게 되는 즐거움과 환희로 바뀌게 되지요. 또한 호크니는 이 풍경화를 그릴 때 배경의 숲을 염두에 두고 그렸다고 합니다. 큰 나무 뒤에 있는 공간을 살리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겨울나무를 그리게 되었고요. 만약 나무의 잎이 무성한 여름철이 배경이 되었다면 뒷 배경의 공간이 보이기 힘들었을 테니까요.  그와 우리를 구별 짓는 호크니만의 독특한 시선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림이야말로 저의 천직이라고 생각하면서
60년 동안 계속 그렸습니다.






               

David Hockney iPad 그림/Phillips




아이패드의 훌륭한 점은 스케치북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준비된 물감을 비롯한
모든 것을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지요.








데이비드 호크니(Davig Hockney)의 iPad 그림이 또 다른 감성으로 다가옵니다. 호크니가 요크셔 집의 창문을 통해 계절의 흐름을 묘사한 작품들입니다. 80대의 노화가가 젊은 층 못지않게 새로운 도구를 활용하여 자신의 다른 가능성을 실험하고 선보입니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외모는 나이 들었어도 그 뇌만은  늙지 않는 모양입니다. 





1980년대에 복사기와 팩스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듯 2010년 이후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려 전시하기 시작합니다. 청력이 좋지 않아  전화 통화 대신 문자를 주로 이용했다고 해요. 매일 아침 친구들에게 재미 삼아 싱싱한 꽃 그림을 그려 보내는 것으로부터 iPad와 친해지기 시작했고요. 




그렇다고 그가 첨단의 매체만을 추구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는 영상매체는 새로운 매체이고 낡은 매체라는 생각이야말로 낡은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즉 새로운 매체와의 만남을 시도하지만, 동시에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매체인 캔버스와 붓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생각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죠.





아트북 전문 출판사 타센 (TASCHEN)을 통해 <나의 창문 My Window>이 출간되었습니다. 작가가 연대순으로 정리한 ipad 그림 120개 작품이 들어있습니다. 책 값이 좀 비싼 것이 흠이네요. 하지만 '장인의 손길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George Stubbs <Whistle Jacket>,1762,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트리플






조지 스텁스(George Stubbs 1724-1806)의 대표작 <휘슬 재킷 Whistle Jacket>입니다.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걸려 있죠. 금방이라도 액자를 박차고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말의 움직임과 근육 하나하나까지 스텁스의 피나는 노력이 깃들어 있는 특별한 작품입니다.





인간들은 자신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고 자랑하기 위해 초상화를 그립니다. 그것도 일부 허락된 사람들에게만 말이죠. 사람도 평생 자기 초상화 한 점을 갖기 힘들던 시절에 실물 크기의 초상화를 보유한 말입니다. 당시 <휘슬 재킷 Whistle Jacket>의 주인은 영국 총리를 역임했던 정치인이자 당대 최고의 부자이며, 정치를 빼고는 경마에만 열중했던 로킹엄 후작입니다.





로킹엄 후작 초상화 <휘슬 재킷 Whistle Jacket>은 유럽에서도 손꼽히게 큰 그의 저택 마당에 풀어 키우던 200여 마리의 말 중 하나라고 합니다. 현재 경주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러브레드(Thoroughbred)종의 조상인 고돌핀 아라비안 (Godolphin Arabian)의 손자이고요. 중동 지방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아라비안 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름 또한 마지막 주인의 성인 고돌핀 와  아라비안종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의 초기 말 초상화 중 하나로 사람 없이 말만 등장하는 그림 중에서도 좋은 평을 받은 작품입니다. 경주마로서나 종마로서 기록은 그다지 특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스텁스가 우아한 외모와 기품 있는 모습으로 묘사한 덕분에 좋은 평을 받았습니다.





 말의 탄탄한 몸통을 비롯해 갈기와 꼬리의 푸슬거리는 느낌까지 가감 없이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뒤 발목에 하얀 띠가 포인트가 되어주네요. 주인도 마구도 안장도 없이 무한한 배경에 서 있는 <휘슬재킷>은 자유롭고 도도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만약 기존의 말 그림들처럼 사람이 올라탔거나 누군가 옆에 서 있었더라면 말의 온전한 모습을 보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배경 없이 그려져 <Whistle Jacket>이 더더욱 돋보입니다. 배경을 넣었다면 지금 저 모습으로 걸려있진 않았겠죠. 









https://www.youtube.com/watch?v=6M8BmsrC18g





#제목 부분 그림출처:The New Yorker(6.13.2011)




데이비드 호크니는 코로나 시기 봉쇄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희망' 메시지를 Seoul, London,  New York & LA를 통해 전달한 적이 있습니다. 도심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으로 영상 애니메이션 형태로 전달되었죠. "시각적인 것은 뭐든 흥미를 끈다."라는 노 화가의 실험정신이 어디까지 닿을지 기대되기도 합니다. 



18세기 영국인들은 조지 스텁스의 캥거루 그림을 통해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처음 보았기 때문에 말이죠. 당시 스텁스는 미술계의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얻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저 단순한 말 화가로 치부되었죠.  그의 그림의 대부분은 귀족들의 성 안에서만 볼 수 있었고요. 그의 작품은 20세기 넘어서야 세상에 공개되기 시작합니다.  


 오래 보고, 자세히 보기를 실천한 두 화가의 특별한 시간을 함께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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