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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 피렌체를 너머 플랑드르까지

로베르 캉팽& 산드로 보티첼리



피렌체의 두오모는 연인들을 위한 성지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곳,
언젠가 함께 올라가 주지 않겠어?

"응, 그래 약속할게"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2001,



지난주 토요일, 중간사이즈 키우는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갔습니다. 그날따라 무슨 생각인 지 항상 가던 산책로를 거꾸로 돌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일이었지만 주말이라 여유를 부리고 싶었나 봅니다.




 익숙한 풍경에서 벗어나 낯선 풍경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유난히 큰 개 한 쌍을 데리고 끌려가다시피 산책을 하는 커플이 보였습니다. 개들은 마냥 신이 난 모양인데 어째 주인은 부스스한 머리칼을 날리며 마지못해 따라가는 눈치입니다.  야생의 빛깔을 띤 독특한  개 한 마리도 보았습니다. 멀리서 우릴 보았 던 지 뒤돌아 보며 갈 길 바쁜 견주의 발길을 자꾸 붙잡는 모양새입니다.




우리 집 녀석들은 실컷 여유 부리며 냄새 맡기 바빴습니다. 100m쯤 횡단보도에  장보기 하러 따라 나 선 개 한 마리와 모녀가 제 눈에 먼저 들어왔습니다. 고 녀석, 우리 쪽을 향해  아주 명랑하게 꼬리를 흔들어 보이더군요. 슬쩍 걱정이 됐습니다. 키우는 개 한 마리는 사냥개라서 낯선 사람, 개를 보면 심하게 짖고 공격적이거든요. 말리다 행동이 굼떠 그 녀석에게 제가 많이 물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괘씸한 마음 한편으로 '차라리 내가 물리기 잘했지. 상대방을 물었으면 어쩔 뻔했어.' 하며 애써 '마루타'가 된 기분을 바꾸려 애를 쓴 적도 있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본능에 충실한 녀석이라 그 힘을 당해 낼 재간도 없고요. "어~"하고 한바탕 일을 치르고 나면, "휴~'하며 제가 다 혼줄이 난 기분입니다. 다행히 방향이 달랐습니다. 멈춰서 어물쩍 거리는 제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엄마로 보이는 그녀가 손을 뻗어  가는 방향을 먼저 알려주었습니다. 어찌나 고맙던지요. 인상 좋아 보이는 그 집 개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당연히 두 녀석 질투 때문에 어렵겠지만요.




시끄러운 차도를 지나 집이 보이는 익숙한 산책로에 진입했습니다. 안도감에 바짝 당기고 있던 목줄을 느슨하게 풀어 좀 더 자유롭게 해 주었습니다. 제 걸음도 느린 박자로 갈아타고 있었죠. 늘 상 보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니 저도 모르게 긴장을 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눈에 익은 실루엣 하나가 가까이 다가옵니다.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 이르자 멈춰서 서로 잠시 웃었습니다.  좀 과장해서 <냉정과 열정 사이> 남자 주인공 준세이와 여자 주인공 아오이가 되어서요. 물론 남녀 간의 진한 사랑은 빼고, 너무 반가워서요.




 우리 집 두 녀석을 산책길에서 만나면 유난히 더 쓰다듬어 주고 말 걸어 주는 그녀를 좋아합니다. 요 며칠  바람 불고 날씨가 변덕스러워 그녀를 못 본 지가 꽤  되었거든요. 그녀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이렇게 거꾸로 산책길을 거슬러 올라가다 내리막길의 그녀와 딱 마주친 거라서 더 그랬나 봅니다.  평소 습관대로 산책길을 갔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그녀와의 만남이 아침부터 묘하게 선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2001) 영화 덕택에 '피렌체' 도시의 매력에 흠뻑 빠져 볼 수 있어 개인적으로 좋았던 작품입니다. 독특한 스토리와 명대사, 그리고  시각적 매력은 덤이었고요. 연인들의 피렌체 두오모 방문이 영화개봉 이후 부쩍 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늦가을 메말라있는 감정에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OST' The Whole nine yards' (Main theme,2001) 들어보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은 이탈리아 피렌체라는 작은 도시에서 불기 시작한 르네상스기운이 바람을 타고 알프스를 넘어 북유럽에 어떻게 상륙했는지 로베르 캉팽(Robert Campin, 1375-1444)과 산드로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1445-1510)의 작품을 통해 알아볼까 합니다.








서양 미술사에서 약 1400년에서 1600년에 이르는 시기 전체를 '르네상스'라고 부릅니다. 거의 200여 년을 지속한 르네상스는 다시 초기, 전성기, 그리고 후기로 구분이 되지요. 각가의 단계가 나타나는 시기는 지형적인 영향으로 크게 알프스 산맥을 중심으로 지역적인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알프스 이남 이탈리아에서는 1400년경 피렌체를 중심으로 르네상스가 꽃을 피우고 그 후 백 년 늦게 시작된 알프스 이북의 르네상스는 약 1500년에서 시작하여 1550년까지 지속됩니다.







Tournai, Belgium/wikimedia commons





 '프레말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로베르 캉팽(Robert Campin, 1375?-1444)은 플랑드르(현, 벨기에) 투르네 (Tournai) 출신입니다. 이 도시는 프랑스 국경에 있는 오래된 소도시입니다. 제조업과 무역이 활발했던 벨기에 투르네에서 자신의 공방을 열고, 살고 있는 도시의 풍경과 시민들과 부르주아 시민들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 1390-1441) 형제와 비견될 만큼 뛰어난 사실 묘사와 선명한 색채의 구사, 초기 유채화의 정착에 크게 기여한 화가입니다. 북구 르네상스 화가들의 좋은 본보기가 되어준 화가이기도 하고요.


 


로베르 캉팽(Robert Campin, 1375-1444)의 그림들에 다른 그림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그림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성의 얼굴이라든지, 인물들의 자세, 실내 인테리어 표현 등에서 말입니다. 로베르 캉팽은 비교적 잘 알려진 화가는 아니지만,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0-1441)와 함께 15세기초의 네덜란드의 사실주의적인 회화의 창시자로 불립니다. 그는 특히, 회화에 전통적인 종교관을 담으면서 동시대의 주문자들이 성모마리아나 아기 예수, 성인들이 실제로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보이고자 했던 소망들을 잘 표현한 화가입니다.






왼쪽. Portrait of a Man,1435/wikipedia  오른쪽 Portrait of a Young Man Holding a Roundel/wikipedia




왼쪽. 로베르 캉팽(Robert Campin, 1375-1444)의 작품 < Portrait of  a Man>(1435)입니다. 색이 고운 붉은색 샤프론을 머리에 쓰고, 주름과 다부진 이목구비가 인상적인 중산층 남성의 초상화입니다. 섬세하게 묘사된 초상화 속 남성은 무척 피곤해 보입니다. 쓰고 있는 샤프론은 주로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들이 착용했습니다. 신분을 나타내고 특정한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중세 후기 유럽에서 발전한 패션 아이템으로, 플랑드르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 스타일은 남성의 복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 자체가 지위와 부유함을 상징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복장 스타일은 당시 패션의 한 형태로, 사람들의 정체성이나 세속적 권력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Portrait of a Man(Self Portrait)by Jan van Eyck ,1433, National Gallery/wikipedia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0-1441)의 자화상의로 추정되는 작품입니다. 같은 붉은 터번도 이런 스타일로 묽으면 좀 더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이 듭니다. 마치  화가로서의 자부심과 예술적 권위를 머리에  썼다는 느낌이 들정도 말입니다.




플랑드르는  15세기 초, 상업과 도시화의 발전으로 인해 급속한 사회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도시 인구가 증가하면서 중산층이 형성되었고, 귀족과 농민 사이의 사회 구조가 변화하였습니다. 상인과 장인이 경제적 힘을 키우고 정치적 발언권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사회 계층의 유동성이 증가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 플랑드르는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였고, 부뤼헤와 같은 도시들은 국제 무역의 거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와 북유럽 간의 상품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지요. 주로 직물 산업이 발달하였고, 고급 양모 제품이 생산되어 수출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제 발전은 도시의 부유한 상인 계층을 형성하고,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이끌었습니다.




로베르 캉팽이 그림을 그리 던 1435년 역시 초상화가 중요해지던 시기로, 당시 플랑드르 지역에서 인물 초상화의 제작이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캄팽은 나름 성공한 화가였고요.




Early Netherlanddish painter Robert Campin, 1435/Reddit







검은 배경처리는 인물들의 특징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캉팽은 얼굴과 의복의 처진 선을 통해 인물의 성격을 전달하는 질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부부로 보이는 <여성의 초상화 Portrait of a Woman>역시 섬세한 세부 묘사와 사실적인 인물 표현이 특징입니다.  이 초상화는 여성의 우아한 복장과 섬세한 머리 장식을 통해 그녀의 사회적 지위가 드러납니다.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피부 표현과 눈 매무새가 시선을 끕니다.






The Arnolfini Portrait by Jan van Eyck,1434, National Gallery, London/wikipedia



< The Arnolfini Portrait>(1434)는 동시대 활동했 던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 1390-1441)의 작품입니다. 이탈리아 상인 조반니 아르놀피니(Giovanni Arnolfini)와 그의 아내의 전신 초상으로, 벨기에 브뤼헤의 집 안에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입니다.




얀 반 에이크가 그려낸 물질적 부와 사치를 여러 겹의 얇은 유약을 사용하여 색과 톤의 강도를 높이는 기법을 적용한 작품입니다. 이곳저곳 부자임을 자랑한 사물들 보이시나요. 심지어 임신한 여인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저 포즈는 당시 부를 자랑하기 위해 여분의 옷감을 주체할 수 없어 손에 쥐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오른쪽. <Portrait of a Young Man Holding a Roundel>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대가인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작품으로, 약 1480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작품은 보티첼리 특유의 아름다움의 이상을 반영하며, 주인공이 창틀 앞에서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단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푸른색 튜닉을 입고 있어  그의 고귀한 외모가 돋보입니다. 원형의 금색 패널 안에는 성인의 형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작품은 느릅나무 판에 템페라로 그려졌습니다.  주인공과 창틀의 색감 변화는 보티첼리의 섬세한 색채 감각을 보여줍니다. 패널은 여러 색조의 스트라이프가 드러나는 디자인으로, 배경이 인물에 대한 시선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템페라는 계란 노른자를 매개체로 사용하여 물감과 혼합하여 화폭에 표현하는 기법입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널리 채택되었징. 템페라는 수용성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물감이 쉽게 혼합되고 시간이 지나도 색상이 변하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보티첼리의 주 후원자인 로렌초 데 메디치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미사를 주관하는 성인을 특징으로 하는 원형 패널을 통해 현대와 고대의 종교적 상징성을 교감합니다. 이 초상화는 과거와 현재의 예술이 혼재되어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적 사고를 보여주고요.




또한 , 이 작품은 2021년 소더비 경매에서 약 9,220만 달러에 낙찰된 바 있습니다. 이는 보티첼리 작품 중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한 것입니다.  고전 예술품으로서의 가치와 매력을 입증한 사례이지요. 보티첼리의 이 작품은 단순한 초상화를 넘어, 르네상스 시대의 미와 예술적 가치, 그리고 인물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qNa2E91dLc











왼쪽. The Virgin and Child Before a Firescreen, 1440/wikipedia 오른쪽.Madonna of the Magnificat, 1481





왼쪽. <벽난로 앞의 성모자 The Virgin and Child Before a Firescreen>(1440)는  1440년에 제작된 초기 네덜란드 회화의 중요한 예입니다. 이 작품은 성모자가 평범한 엄마와 아이처럼 어느 한 가정집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실성과 세밀한 묘사가 감탄스럽습니다.  캉팽은 빛과 그림자를 사용하여 인물들에게 입체감을 부여해 생동감 있게 표현했습니다.  마리아 뒤의 벽난로 스크린은 종종 그녀의 순결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 작품은 종교적 주제를 일상생활과 결합하는 캉팽의 능력을 잘 보여주며,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Virgin and Child Before a Firescreen , 1440/Bridgeman Images





또한 '성모자'  뒤에는 창문이 열려 있습니다. 그 너머로 플랑드르의  1400년대의 거리 풍경이 상세하게 펼쳐집니다. 마을 중심에 자리한 높은 첨탑의 교회와 교회를 둘러싼 건물들이 보이고 그 뒤로는 산자락이 펼쳐집니다. 전경에는 건물들 앞에서 지붕을 수리하고 있는 사람과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는 사람,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건물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작품 전체는 세밀하게 관찰한 세부 장면들이 등장하며, 배경이 그려진 마을 풍경까지도 인물만큼이나 정확하고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성모가 읽던 책의 낱장들, 드레스 단의 장식, 화열 가리개의 세공 등도 정성스럽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하느님 중심의 그림에서 인간 중심의 그림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서양미술사에서 사실주의 도시 풍경화가 성모자의 배경으로 그려진 최초의 작품이고요. 그는 겸손의 마리아를 표현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실내형 성모자 ' 유형을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부유한 플랑드르 상인의 저택을 실내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화면 구성의  측면으로 보면, 이 창은 화면의 어두운 부분과 함께 전체적인 균형을 잡아주지만,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보면 당시 번영했던 한 도시의 풍경을 눈앞에 보이듯이 표현했습니다.  광장 중앙에 고딕양식의 성당이 보입니다. 상점 앞으로 말을 탄 사람들이 오가고 있고요. "누구야~"하고 부르면 뒤돌아 볼 것 같이 생생합니다.




이렇듯 로베르 캉팽(Robert Campin, 1375-1444)은 일상의 친숙한 생활소품들로 그리스도교의 복잡한 상징들을 표현했습니다. 우선 마리아의 머리 뒤에서 빛나고 있는 벽난로 가리개는 성모의 후광 역할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왕골을 엮어 만든 둥근 가리개는 벽난로 앞에 있는 생활소품이지만, 그는 성인들의 성스러움을 표현하는 후광으로 대신합니다. 그는 일상의 소품으로 종교적 의미를 표현한 것이죠.





그리고  성모님께서 앉아 계신 의자도 어좌가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평범한 의자입니다. 그러나 의자의 모서리에 장식된 사자장식으로 인해 의자가 초라하지만 솔로몬이 앉은 사자의 권좌와 같음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또 붉은 쿠션 위에 있는 성경책은 창밖의 세상과 성모자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창밖의 도시 풍경으로 암시되는 세상과 , 세상의 구원을 위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과 , 성모 마리아로 대변되는 자모이신 성 교회가 구원의 연결고리임을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거룩한 교회도 평범한 가정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교회에 초대된 세상을 향해 구원의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오른쪽. 산드로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1445-1510)의 < Madonna of the Magnificat>(1481)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중심에 성모 마리아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두 명의 천사가 그녀의 머리를 관으로 씌우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요. 마리아는 오른손으로 글을 쓰고 있고, 실제로 그녀가 쓰고 있는 것은 루카복음의 마리아 찬가인 'Magnificat'입니다.




 마리아는 깊은 파란색 로브로 우아하게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그녀의 표정은 신성한 은총을 상징하고요. 그녀의 시선은 아래를 바라보며, 아기 예수는  그녀에게 손을 뻗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왼손에 쥐고 있는 석류는 고통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회화 주변에 각각 다른 표정과 자세를 가진 천사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풍부한 서사와 감정을 드러냅니다.





배경은 평화로운 풍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르네상스 회화의 전형적인 요소로 화폭에 깊이와 맥락을 더합니다.  <마그니피카트 Magnificat>는 루카복음 1장 46절에서 55절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자벳을 방문할 때 하느님께 찬양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 여성의 문해력에 대한 복잡한 담론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를 작가로 묘사한 점에서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지닙니다. 보티첼리는 전통적으로 독서를 하는 마리아를 묘사하는 대신, 그녀를 글을 쓰는 모습으로 그려 제기된 질문들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예술적 기교와 초기 르네상스 예술의 풍부한 상징성을 동시에 지닌 명작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NLH-1cM3p4












왼족. Merode triptych, 1427-32/wikipedia 오른쪽. The Birth of Venus, 1485/wikipedia





왼쪽. 로베르 캉팽(Robert Campin, 1375-1444)의 대표작 <메로드의 세 폭 제단화 Merode triptych>(1427-32)입니다. '수태고지(Annunciation>'로 알려진 이 작품은 신약성서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 폭의  제단화  중에서 왼쪽의 무릎 꿇고 있는 이들은 이 그림의 주문자 잉겔브레히트 부부입니다. 마치 부부가 자기 집안으로 들어가다가 수태고지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경건함과 헌신을 상징합니다. 제단화는 메뉴스크립트에 비해 값이 다소 저렴할 뿐 아니라 그림에 자신들의 모습을 넣을 수 있어 신흥 상인들이 선호하는  주문 작품이었습니다.







메뉴스크립트/Gettyimages





"매뉴스크립트"란 손으로 작성된 책이나 문서를 의미합니다. 주로 중세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종교적 내용이나 고전 문학 작품을 포함하며, 화려함과 장식과 삽화가 특징입니다. 주로 중세의 채색 필사본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들은 종교적 주제의 성경, 기도서, 성무일도와 같은 문서에 화려한 삽화와 장식으로 채색되어 있습니다. 또한 고전 문학 작품이나 법률 문서에도 사용되었지요. 각 페이지는 예술적으로 장식된 테두리와 머리글자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러한 메뉴스크립트는 당시의 예술적, 문화적 가치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료 여겨집니다.





중세 시대 이후 르네상스 시대까지 서유럽에서는 종이가 없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종이와 목화 그리고 화약은 절대 반출금지 품목으로 철저하게 관리를 해서 서양에 종이가 밀수입되고 대중화되기까지는 한참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책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가죽에 손글씨를 써서 만들었기 때문에 값이 엄청났습니다. 지금 시대의 가치로 따지면 책 한 권이 거의 수입차 한 대 값이었다고 합니다. 중세 시대나 르네상스 시대 책들은 망가지면 가죽이라 실로 꿰맸습니다. 전자책이 대중화되고 있는 요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수태고지' 장면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루카 1:30)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일러 주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



기독교에서 이 부분은 예수가 인간으로서 삶을 얻게 되는 순간이라 상당히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따라서 수태고지 테마는 유럽 성당 내 벽화나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으로 다양하게 제작되었습니다. '수태고지'도상은 푸른색 망토를 두른 여성과 날개 달린 천사 두 인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때에 따라 성모의 순결함을 강조하기 위해 흰 백합꽃이 등장하고요, 대체로 '수태고지'에서는 성모는 책 읽는 모습이나 수를 놓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애초에  수태고지는 마리아와 요셉이 생활한 갈릴리 지방 나자렛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캉팽은 나자렛 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한 플랑드르 지방에서 일어난 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캉팽은 집안 구조뿐 아니라 소품들도 하나같이 15세기 플랑드르에서 사용하는 실제 일상 용품들로 채웠습니다. 그림에서 보듯 벽에 걸린 주전자, 긴 벤치형 의자, 마요르카 도자기 화병, 벽난로 가리개 등은 당시 플랑드르 사람들이 사용한 가재도구들이었습니다. 플랑드르의 화가들은 금빛 찬란한 천상의 화려한 장식을 버리고 , 일상의 소품들과 풍경을 성화에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신성한 것을 천상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린 것처럼 말입니다.





Detail with the Virgin reading a book of hours/wikipedia







Detail, Center Paner, with table,book of hours, fading candle and  vase, 1427/wikipedia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소품이 있습니다. 바로 성모님이 읽고 있는 책과 식탁에 놓인 책주머니입니다.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가 등장하기 100여 년 전이므로 여기 놓인 책은 필사본으로 아주 귀한 책입니다. 책이 귀하다 보니 책 주인이 책을 소중히 다룬 흔적이 보입니다. 마리아는 첵의 네 귀퉁이가 닳을까 천으로 책을 둘렀습니다. 이도 모자라 책을 가방에 넣어 소중히 보관했지요. 일부 학자들은 흰 천이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북유럽회화의 매력인 섬세한 그림에는 많은 상징이 들어 있습니다. 마리아 앞에 놓인 테이블 위에는 책과 두루마리가 놓여있습니다. 이는 신약성서와 구약성서를 상징합니다. 이들 정물 소재들은 대부분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방안에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피렌체 산 마졸리카 꽃병에 꽂아 놓은 흰 백합과 손에 들고 있는 흰 손수건은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합니다.




멀리 구석에 걸려있는 커다란 물주전자는 구세주의 강림이 세상의 죄를 씻어 줄 것임을 뜻하고요, 탁자와 맨틀피스(벽난로 위쪽 장식용 선반) 위에 놓여있는 꺼져가는 촛불 대신 신성한 빛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합꽃이 세 송이인 것은 삼위일체를 상징합니다.



삼위일체는 기독교 신학에서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 인격이 하나의 본질을 공유하는 교리를 의미합니다. 즉, 하느님은 본질적으로 한분이시지만, 세 가지 위격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중요한 신념입니다.






Detail of the Center Panel/wikipedia






왼쪽 벽면에 동그란 창을 자세히 보세요.  작은 아기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마리아를 향해 금빛 광선과 함께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밝은 빛은 아직 가브리엘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마리아의 붉은색 겉옷 가운데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잉태의 상징이지요. 그와 동시에 테이블 위의 양초는 연기를 피우며 꺼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춧불은 무의미하기 때문이지요. 마리아의 붉은색 의복은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과 피를 상징합니다. 기대어 앉은 보료의 푸른색은 하느님에 대한 충성을 상징하고요.






이전의  그림이 대부분 귀족적이었다면 로베르 캉팽(Robert Campim, 1375-1444)의 그림에서는 돌연 평범한 시민의 가정으로 옮겨갑니다. 그림 속에 묘사되고 있는 소재들, 즉 물그릇을 비롯하여 수건, 백합과 꽃병, 촛대, 의자 등, 15세기 플랑드르 보통 가정의 실내 정경임을 짐작케 합니다.





이처럼 그림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후기 고딕 회화와 다를 바 없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에 입각한 치밀하고도 구체적인 사실 묘사와 중간 색조의 미묘한 변화, 부드럽고 온화하며 명확한 명암처리, 그리고 지나친 점이 있으나 원근법적인 공간 등에서 캉팽 이전의 경향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혁명적인 조형성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원근법에 의한 실제적인 공간이라든가, 명암에 의한 조각적인 표현, 미세하게 처리된 중간 색조의 변화 등 조형적인 새로움입니다. 특히 현실성을 결정짓는 요건, 즉 무한의 깊이와 안정성, 연속성, 완전성을 갖춘 공간적 세계로 파고드는 조형감각은 이전의 누구도 깨닫지 못한 개별적인 세계입니다. 더구나 밝고 선명한 이미지의 채색기법은 템페라에서 구하지 못한 유채라는 새로운 소재를 통한 조형의 혁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화는 기름을 매개로 하는 물감으로, 전통적인 미술 기법 중 하나입니다. 유화는 그리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기름과 가루 물감을 혼합하여 사용합니다. 깊이 있는 색상과 섬세한 표현이 가능합니다. 유화는 잘 마르지 않아, 작업 중 수정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복잡한 작업에 유리하지요. 물감이 두껍거나 얇게 바를 수 있어 다층적인 표현이 가능합니다. 기름의 영향을 받아 색채가 부드럽고 풍부하고요.




Left panel, with street scene and attendant, 1427/wikipedia





Right panel , detail with street scene and view of Liege,1450/wikipedia





오른쪽 패널의 그림은 공방에서 일하는 요셉의 모습입니다. 요셉은 옆 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요셉은 주로 나이 든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을 더 부각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작업대와 창가에 놓인 쥐덫은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 주님의 십자가는 악마를 잡는 쥐덫과 같다. 악마를 유혹하기 위해 쥐덫에 달아 놓은 미끼는 다름 아닌 주님의 죽음이었다."라고 한 말을 연상시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신학자이자 철학자입니다.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과 같은 종교 개혁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지요. 그의 신학적 사상은 "아우구스티누스주의"라 불릴 정도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과 지식의 관계에 대해 신앙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라는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중세 스콜라 학풍에 지대한 영향은 미쳤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강조했고요. 저서인 <고백록>은 그의 삶과 신앙의 여정을 기록한 자전적인 작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죽음은 악마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어떤 의미로 보면 요셉은 악마를 속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은 하잘 것 없는 일개 목수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악마는 그런 요셉의 아들인 예수가 사실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그림을 확대해서 천천히 보다 보면 이 하나하나의 요소들이 재미있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러다가 깜짝 놀란 것이 바로  창문 너머의 풍경입니다.





플랑드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좁은 폭의 건축물들과 십자가가 달린 중세 시대 양식의 첨탑이 있는 두 개의 교회가 보입니다. 그리고 이 건물들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옷, 모자, 신발들도 식별이 가능한 정도이고요. 이 제단화는 상세한 사실주의와 종교적 장면을 현대적인 실내로 혁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iYENYz_v4s





<메로드의 세 폭 제단화>가 있는 클로이스터스(The Cloisters)는 뉴욕 워싱턴하이츠 포트 트라이언 공원에 위치한 미술관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분관으로 1930년대에 건축되었는데 그 모양은 중세 유럽 시대의 수도원의 건축 양식을 모방하여 디자인되었습니다. 서양 중세 미술 및 건축 관련 자료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원래 클로이스터(Cloister)는 수도원이나 대성당에 부속되어 있는 보도나 통로 자체를 일컫기도 하나 일반적으로는 수도회의 교회당을 뜻합니다.  종교적 목적을 위한 은둔 장소를 의미하기도 하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q1X0Lj7YEMs






오른쪽.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가 그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가장 유명한 걸작 중 하나인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1486)입니다. 이 작품은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가 바다에서 태어나는 장면을 보여주며, 보티첼리의 기법과 미적 매력을 극적으로 드러냅니다.





 비너스가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나 키프로스 해안에 도착하는 모습입니다. 그녀는 조개껍데기 위에 서 있으며, 순결한 진주처럼 그려졌습니다. 바람의 신 제피르와 아우라가 그녀를 감싸고 있고요. 플로라로 여겨지는 젊은 여성이 꽃으로 장식된 망토를 비너스에게 건네주려 합니다. 장면은 풍부한 색채와 세부 사항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르네상스 미술에서 찬미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연상시키고요.





The Bitrh of Nenus, 1485/wikipedia




보티첼리는 이 그림을 캔버스에 그린 점에서 당시 혁신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나무 패널을 사용했습니다. 특유의 템페라 기법을 통해 인물들이 투명한 모습을 갖도록 했지요. 공기 같은 질감을 만들어 낸 것이 특징입니다. 비너스의 포즈는 고전적인 조각에서 영감을 받아 '비너스 푸디카Venus Pudica' 유형으로, 몸을 살짝 가리며 겸손함을 표현합니다.



비너스 푸디카(Venus Pudica)는 "부끄러운 비너스"라는 뜻으로, 이는 그녀가 자신의 신체를 가리려는 소위 "겸손한 "태도를 나타냅니다. 이 자세는 종종 양손으로 한 부분을 가리면서도 동시에 다른 부분이 드러나도록 하여 시각적으로 관객의 눈을 끌게 합니다. 비너스 푸디카의 원형은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입니다. 미술사에서 비너스 푸디카는 르네상스 시대에 대표적인 예술작품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주제적으로 이 그림은 오비드 (Ovid)의 <변신이야기 Metamprphoses>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철학적 접근은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특히 메디치 가문에서 유행했습니다. 비너스를 감싸고 있는 바람의 신 제피르와 님프의 부드러운 포옹은 신과 지상의 아름다움 사이의 섬세한 균형을 강조합니다.



푸블라우스 오비디우스 나소( Publius Ovidius)는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치 주의 술모에서 부유한 기사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 로마로 유학하여 수사학과 웅변술을 배웠고, 법조계 진출이 아버지의 소원이었으나, 사교를 즐기며 시인으로서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시를 지었으며, 특의 그의 대작인 <변신 이야기 Metamprphoses>로 유명합니다.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 및 로마 신화의 변신 이야기를 연결하여 서술한 것으로,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사랑의 기술 Ats Amatoria>라는 연애 시를 써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불만을 샀고, 로마에서 추방당해 유배 생활로 불행한 말년을 보냅니다.



 이 그림은  로렌조 디 피에르프란체스코 메디치 (Lorenzp di Pierfrancesco de Medici)에 의해 의뢰되었습니다. 메디치 가문의 영향력과 르네상스 시대 고전적 이상을 기념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제작되었고요. 보티첼리의 작품은 특정 시대의 미적 가치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예술과 문화의 부흥으로서 메디치 가문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메타포 역할을 합니다.





메디치 가문의 가계도/ tygu.yonam.ac.kr





이 작품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단순히 결혼식 장식 그림이라는 설부터 마르게리타 데 메디치의 출생을 계기로 정세가 복잡했던 피렌체에 여명이 밝아 오리라는 것을 표현했다는 설, 신플라톤주의적 관점에서 비너스를 우주의 조화에 대한 완벽한 인격화로 보고 '비너스의 탄생은 곧 인간성의 회복'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설 등 다양합니다.



신플라톤주의는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를 중심으로 발전한 철학적이며 종교적인 사상으로,주로 플라톤의 철학을 기반으로 하여 신념적인 요소가 결합된 형태입니다. 다양한 사상가들이 이 도시에서 활동하며 사상을 발전시켰습니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절대자와 인간 사이의 간격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영혼을 강조합니다. 인간 영혼의 행복을 정서적이기보다 지적이고 영적인 것으로 보고, 현세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에 중점을 둡니다. 이를 통해 철학과 종교 간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하려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6PBfbkMzFU
















왼쪽. Blessing Christ and Praying Virgin, 1424/ WikiArt오른쪽. Venus & Mars,1483/wikipedia





왼쪽. 로베르 캉팽의 <Blessing Christ and Praying Virgin>(1424) 작품은 두 개의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쪽에는 기도를 드리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보이고 , 다른 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기도하는 자세는 경건함과 신성을 나타냅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그리스도의 존재는 권위와 구원의  의미를 강조합니다.




로베르 캉팽( Robert Campin, 1375-1444)은 작품에서 부드러운 색조와 섬세한 조명을 사용하여 인물들의 감정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배경 역시 세밀하게 묘사되어, 일상적인 요소와 신적인 요소가 잘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관람자가 작품에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xox0C6aoTo






오른쪽.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의 작품< Venus & Mars>(1483)입니다. 제작 시기는 르네상스 중엽에 해당합니다. 이 시기의 미술은 인간 중심주의와 고대 로마 및 그리스 문화에 대한 재조명으로 특징지어집니다. 보티첼리는 인문주의적 요소와 고전 문헌의 영향으로 인해 이 작품을 통해 사랑과 전쟁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로마 신화에서 사랑의 여신 비너스(Venus)와 전쟁의 신 마르스(Mars)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비너스는 침착하고 고상한 모습으로 마르스를 바라보고 있으며, 마르스는 잠에 빠진 듯한 상태로 그림의 중앙에 누워 있습니다. 주위에는 장난기 가득한 아기 사티로스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비너스는  전통적으로 사랑과 미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그녀의 시선은 사랑의 힘과 따뜻함을 나타냅니다. 반대로 마르스는 전쟁과 폭력을 상징하며, 깊은 잠에 빠지는 모습은 사랑의 힘이 전쟁보다 우월하다는 주제를 암시합니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사랑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보티첼리는 이 작품에서 고유의 색채 사용과 유려한 선을 통해 인물들의 특징을 섬세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비너스의 의상과 마르스의 노출된 신체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에서 영감을 받아 이상적인 인체를 강조합니다. 비너스의 우아함과 마르스의 강인함, 그리고 주위 천사들의 유희적인 모습 사이의 대조를 통해 더욱 흥미로운 구성으로 제시됩니다.



  이와 같이 <Venus and Mars>는 보티첼리의 미술적 기법과 철학적 주제를 함께 반영한 걸작으로, 르네상스 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NkHq6QXX30











1492년, 로렌초 일 마니 피코가 죽으면서 피렌체는 국내외적으로 정치적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또한 15세기말이라는 세기말적 상황에서 대중은 종말론의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도미니코회 수도사 사보나롤라가 대중의 허영을 지탄하고 갱생을 촉구하며 시뇨리아 광장에서 사치품을 불태우는 '허영의 화영식'을 열었습니다. 이때 보티첼리는 사보나롤라의 신봉자가 되어 자신의 '허영'많은 그림을 불 속에 집어넣었으며, 이후의 그림에서 이교도적인 색채를 지우고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했습니다.


도미니코 수도회는 로마 가톨릭교회 소속의 그리스도교 수도회입니다. 1206년 스페인의 성 도미니코에 의해 설립되었고요. 성 도미니코가 알비파 이단의 확산으로 인해 교회가 위기를 느끼고, 복음을 전파할 필요성을 절감하며 창설한 수도회입니다. 이 수도회는 청빈을 중시하며 탁발 수도사로서의 생활을 이어왔고, 엄격한 생활과 학문 연구, 설교 및 교육에 힘써온 결과 중세 유럽에서 중요한 수도회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난과 가난에 처한 이들을 도왔습니다. 도미니코 수도회 출신으로  토마스 아퀴나스가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1trnVEjRM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wikipedia


지롤로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는 이탈리아의 도미니코 수도사, 설교가 및 종교개혁가입니다. 그는 피렌체에서 개혁과 민주정을 추진하며, 당시 교회의 부도덕성을 비난하고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예언을 하였습니니다.




르네상스/프레시안






사보나 롤라는 페라라( FERRARA)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인문주의, 철학, 의학 등을 공부하다가 1475년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였습니다. 그는 1482년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에서 학식과 금욕 생활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1494년 , 프랑스 왕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침략 후 메디치 가문의 통치가 무너지면서, 사보나롤라는 중간계급의 지지를 받아 피렌체의 정치적 지도자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신정 정치적 민주정치를 도입하려고 하였으며, 교황과의 갈등 속에서도 자신의 예언적 주장과 설교를 지속했습니다.




사보나롤라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와의 대립으로 인해 1498년에 유죄 판결을 받은 후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그의 역사적 평가는 엇갈리지만, 그는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선구자 또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개혁가로 여겨지며,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크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보나 롤라는 교회의 부패와 정치적 부당함에 대한 정직한 비판자로서, 그의 설교가 실질적으로 큰 변화를 이끌어냈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알렉산데르 6세는 본명 로드리고 란조르 보르자 이 보르자이며, 르네상스 시대의 저명한 교황이나 그의 정치적 능력과 논란 많은 개인사가 특징입니다. 1431년 아라곤 연합 왕국의 발렌시아 하티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당시 교황으로서 많은 외교적 업적을 세웠습니다. 알렉산데르 6세는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뛰어난 정치가 및 외교관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고, 그의 후임자들에 의해 뛰어난 지성을 가진 교황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족벌주의와 호색으로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1492년부터 1503년까지 교황으로 재위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dQu3cOOaWE













왼쪽. The Nativity, 1420/wikipedia 오른쪽. The Mystical Nativity, 1500-1501/wikipedia





왼쪽. 로베르 캉팽의 < The Nativity>(1420)은 프랑스 디종 미술관에 소장된 초기 네덜란드 패널회화입니다. 이 작품은 그리스도의 삶에서 세 가지 에피스드를 하나의 패널에 결합한 독특한 접근 방식으로 유명합니다.  이 작품은 캄팽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북유럽 르네상스 스타일을 잘 나타냅니다.




The Nativity Robert Campin The Virgin and Child/wikipedia



<그리스도의 탄생 The Nativity>은 '그리스도의 탄생', '목자들의 경배', '믿지 않는 산파' 등의 주제가 어우러져 있는 이야기로 되어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금발의 머리를 풀어헤치고 순백의 옷을 입고 있어 동정녀임을 암시합니다. 성요셉은 백발의 모습을 하고 있어 마리아의 순결을 더욱 강조하고 있고요.




The Nativity, Satint Joseph/ Alamy



요셉의 손에 들려있는 촛불은 스웨덴의 성녀 비르지타의 환시를 연상시킵니다.


스웨덴의 성녀 비르지타(Saint Bridget of Sweden, 1303-1373)는 중세 시대의 유명한 신비가이자 설교가로, 스웨덴의 왕실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4세에 귀족 청년과 결혼하여 여덟 자녀를 두었고,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에 열심이었습니다. 남편을 여읜 후, 수도원에서 극도로 엄격한 생활을 하던 중 여러 환시와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녀는 1344년 비르지타회(삼위일체회)를 창립합니다. 1391년 교황 보니파시오 9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 되었습니다. 그녀는 누르시아의 베네딕토, 치릴로와 메토디오, 시에나의 가타리나, 에디트 슈타인과 더불어 유럽의 공동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The Nativity/ Alamy



 허물어져가는 마구간 안으로 황소와 당나귀가 있고 요셉의 뒤로는 천사로부터 기쁜 소식을 듣고 달려온 목자들이 아기 그리스도에게 예를 갖추고 있는데 복장이 순례자들의 복장입니다 지붕 위에 있는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Zelemi&Salome The Nativity Robert Campin/ wikimedia commons




<야고보 원복음서>에 나오는 믿지 않는 산파 이야기를 전제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등을 보이고 있는 산파의 띠 장식에는 "동정녀가 세상에 아들을 낳아주었도다."라고 쓰여있고, 오른손을 내밀고 있는 살로메의 띠 장식에는 "내가 만져 본 후에 믿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흰 옷을 입은 천사의 띠 장식에는 "그를 만져라, 네가 믿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고요.  이는 믿지 않는 살로메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살로메는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늘어진 손을 내밀어 예수를 만지려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원복음서는 야고보가 저자라고 전해지는 초기 기독교의 복음서 중 하나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리아의 출생과 성전, 예수님의 잉태, 요셉과 마리아의 관계 등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마리아의 신성, 그리고 초기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가톨릭과 정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며, 정경으로 채택되지 않았지만 초기 기독교 문헌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른쪽.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의 작품 < The Mystical Nativity>(1500-1501)입니다. 보티첼리 후기 작품 중 하나이고요. 이 작품은 신비한 환경에서 천사와 다른 인물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대담한 색상과 특이한 이미지를 사용한 것이 눈에 띕니다. 초기에 전통적인 고딕 기법과 떠오르는 르네상스 스타일을 모두 실험하면서 발전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주제로 하여 기독교 신비주의와 종말론적인 요소를 결합하고 있습니다. 중심에는 아기 예수와 마리아가 있습니다. 아기는 성모 마리아에게 의지하고 있으며,  그녀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아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머리 위에는 천사들이 날고 있고요. 이 장면은 신성한 축복의 순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배경은 신화적 요소가 가미된 정원으로, 이곳에서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곳에는 여러 천사들이 있으며, 그들의 의상은 각각 화려한 색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 천사들은 다양한 상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중심의 천사들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둘러싸며, 그들의 구속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그림의 좌측에는 세 명의 왕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세왕은 각각 동방에서 온 것으로, 그들의 방문은 그리스도의 탄생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화려한 문양을 넣어 옷을 장식했을 텐데 사보나롤라의 처형 이후 그의 그림에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오른쪽에는 목자들이 예수를 경배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들의 단순함과 진정성이 드러나 본질에 가깝게 그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비록 이 장면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묘사하나, 보티 첼리는 신의 귀환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전조로 이들을 연결 지었습니다. 그림의 중앙에서는 아기 예수 주변에 여러 악마와 비정상적인 존재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이 궁극적으로 사탄의 지배를 무너뜨리기 위한 사건임을 암시하고요.




보티첼리는 이 작품을 통해 신의 구원과 세상의 구원을 강조하려고 했으며, 이는 당시 기독교 세계의 갈등과 불안함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영향을 받아 비록 기독교적 주제를 다루긴 하지만, 복잡한 상징성과 깊은 인문주의적 요소들이 섬세하게 조화되어 있습니다.



https://www.dailymotion.com/video/x7nm118








로베르 캉팽(Robert  Campin, 1375-1444)은 15세기 초에 플랑드르에서 활동하였고, 산드로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1445-1510)는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초반에 피렌체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캉팽이 주로 유화 기법을 사용했다면 보티첼리는 템페라를 주된 기법으로 사용했지요.




플랑드르 화가였던 로베르 캉팽(Robert Campin, 1375-1444)이 실생활에 밀접한 초상화 및 종교적 장면을 중시했다면,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는 신화적이고 서사적인 주제에 더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비교적 간결한 구성에 주로 판화와 패널을 활용해 중산층 시민의  삶을 그려냈 던 캉팽과 달리 , 보티첼리는 복잡한 구성과 다양한 인물 배치, 그리고 이탈리아 귀족 문화와 미적 이상을 그려냈습니다.  




보티첼리의 작품은 신비롭고 관념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어 아름답다는 표현 말고 딱히 단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로베르 캉팽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감정 표현을 보면 그 세밀한 디테일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같은 부모아래서도 다양한 개성의 자식들이 존재하듯, 산 하나 넘어왔을 뿐인데 '르네상스'의 꽃은 각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화사하게도 소박하게도 피었다 지며 후대에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미칩니다.



제목 그림 : Saint Veronica, 1428-30, Stadel Museum, Frakfurt, Germany/Google Arts & Culture





https://www.youtube.com/watch?v=6UaU_TKm1X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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