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며 느낀 것
살다 보면 예기치 않게 '선물과도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선물 같은 사람'은 '보석 같은 사람'과 다르다. 보석 같은 사람이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라면, '선물 같은 사람'은 그 사람과의 만남 자체가 내 삶의 '선물'이 되는 사람이다.
이런 선물 같은 사람은 주로 내 삶이, 혹은 내가 열중하고 있는 어떤 일이 모두 부질없다고 느껴질 때, 또는 내가 아주 미약하고 쓸모없는 존재라 생각될 때 만나게 된다.
한없이 정신적으로 바닥이던 때에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 준 프랑스 친구가 그랬고, 신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신에 대한 확신’을 보여준 리투아니아 친구가 그랬으며, 그리고 지난 토요일에 만난 교수님이 또한 그러하다. 지난 토요일의 선물인 교수님은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떤 연구를 해야 하는지를 상기시켜 주셨다.
그는 울먹였다.
강의 주제와 관련 있는 방법론을 쓴 책을 직접 읽어주면서 말이다. 월세 낼 돈이 없어 도시 외곽으로 쫓겨난 사람들에 관한 책이었다. 그는 '나는 왜 이렇게 사람에게 다가가서,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연구를 하지 못했을까' 후회된다며 눈물을 흘렸다. 강의를 하며 눈물 흘릴 줄 아는, 흘릴 수 있는 스승은 처음이었다.
요컨대 이 눈물의 의미를 해석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나의 과거가 비록 내가 바랐던 궤적은 아니나, 내 인생의 꼭 한 번쯤은 사람을 위한 연구를 하리라'는 (본인이 생각하는) 부끄러운 과거의 고백이자, 의지의 선포이자, 심장소리가 들리는 학문, 그리고 눈물 젖은 연구를 '함께'하자는 제안이었다.
교수님의 눈물에서 보았다. 지금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이론적 논의를 할지라도, 비록 현업에서는 ‘이 일이 과연 사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을지라도, 결국엔 이 땅에 소외받고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마음'이 있다면, 언젠가는 이렇게 ‘타인을 위해 울 줄 아는 사람들과 '사람을 위한 연구’, ‘사람을 위한 정책’을 실현할 수 있음을.
온몸으로 본인의 진정성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나는 느꼈다. 그의 말 한마디, 시선 한 번, 손의 떨림 한 번에 얼마나 깊이, 몸과 마음이 일치된 말을 전하는 지를.
언제 또 이 마음을 잃을지는 모르지만, 한 동안은 교수님이 건네주신 진정성의 산물, 포기 없는 희망으로 나의 일을, 그리고 삶을 감사히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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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사람들 : http://m.yes24.com/Goods/Detail/33599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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