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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직장인의 이중생활 감상(1)

일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며 느낀 것


살다 보면 예기치 않게 '선물과도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선물 같은 사람'은 '보석 같은 사람'과 다르다. 보석 같은 사람이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라면, '선물 같은 사람'그 사람과의 만남 자체가 내 삶의 '선물'이 되는 사람이다.


이런 선물 같은 사람은 주로 내 삶이, 혹은 내가 열중하고 있는 어떤 일이 모두 부질없다고 느껴질 때, 또는 내가 아주 미약하고 쓸모없는 존재라 생각될 때 만나게 된다.


한없이 정신적으로 바닥이던 때에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 준 프랑스 친구가 그랬고, 신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신에 대한 확신’을 보여준 리투아니아 친구가 그랬으며, 그리고 지난 토요일에 만난 교수님이 또한 그러하다. 지난 토요일의 선물인 교수님은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떤 연구를 해야 하는지를 상기시켜 주셨다.


그는 울먹였다.

강의 주제와 관련 있는 방법론을 쓴 책을 직접 읽어주면서 말이다. 월세 낼 돈이 없어 도시 외곽으로 쫓겨난 사람들에 관한 책이었다. 그는 '나는 왜 이렇게 사람에게 다가가서,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연구를 하지 못했을까' 후회된다며 눈물을 흘렸다. 강의를 하며 눈물 흘릴 줄 아는, 흘릴 수 있는 스승은 처음이었다.


교수님께서 수업중에 읽어주신 책


요컨대 이 눈물의 의미를 해석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나의 과거가 비록 내가 바랐던 궤적은 아니나, 내 인생의 꼭 한 번쯤은 사람을 위한 연구를 하리라'는 (본인이 생각하는) 부끄러운 과거의 고백이자, 의지의 선포이자, 심장소리가 들리는 학문, 그리고 눈물 젖은 연구를 '함께'하자는 제안이었다.


교수님의 눈물에서 보았다. 지금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이론적 논의를 할지라도, 비록 현업에서는 ‘이 일이 과연 사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을지라도, 결국엔 이 땅에 소외받고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마음'이 있다면, 언젠가는 이렇게 ‘타인을 위해 울 줄 아는 사람들과 '사람을 위한 연구, ‘사람을 위한 정책’을 실현할 수 있음을.


온몸으로 본인의 진정성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나는 느꼈다. 그의 말 한마디, 시선 한 번, 손의 떨림 한 번에 얼마나 깊이, 몸과 마음이 일치된 말을 전하는 지를.


언제   마음을 잃을지는 모르지만,  동안은 교수님이 건네주신 진정성의 산물, 포기 없는 희망으로 나의 일을, 그리고 삶을 감사히 여길  있을  같다.






일과 학업을 병행한 직장인의 꿀팁이 필요하다면, 이 글을 확인해주세요!

https://brunch.co.kr/@fe560d11240045c/8




쫓겨난 사람들 : http://m.yes24.com/Goods/Detail/33599421

커버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ko/images/search/open%20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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