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며 장학금까지 받은 한 샐러던트의 이야기
2017년 기준 직장을 다니면서 학업을 병행한 이는 전체 대학원 생의 41.2%에 이른다고 한다. 2021년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고학력자 수가 약 10만 명 정도라 하니 약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을 하며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통계자료가 없어 부득이하게 과거 자료를 인용했습니다.)
왜 이 많은 직장인들은 대학원에 갔을까?
내가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
누군가 나에게 왜 대학원에 진학했냐고 물으면 “가방끈 늘리려고요”라고 답하곤 했다. 그럼 나는 왜 가방끈을 늘려야 했는가?
내가 일하는 공공기관에서는 ‘용역계약’을 통해 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직원들이 모든 일을 수행하기 어려우니, 다른 기관에 위탁을 하는 것이다. 그간 내가 만난 대표 업무 파트너들은 대학교수에서부터 회사 대표, 해외 기관장 등 고위급이 대부분이었다.
나이, 학력 등 모든 게 그분들보다 부족함에도 발주처 담당자로서 용역기관이 내놓은 결과물에 대해 검토하고 의견을 줘야 해야 했다. 경험으로 일군 나의 업무 역량도 중요하지만 그에 맞는 실력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일에서 배우는 것 만으론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다
여기엔 전사 직원 60% 이상이 석, 박사 출신이라는 회사 분위기도 한 몫했다. 아무리 일을 해도 ‘전문성’이 쌓이지 않는 것만 같은 느낌도 나를 대학원으로 이끌었다. 2년에 한 번씩 순환보직 근무를 하다 보니 몇 년간 근무했어도 내가 어떤 역량을 갖춘 사람인지, 어떤 전문성을 키웠는지, 어떤 것을 나의 성과라고 내세울 수 있을지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이다.
고민 끝에 업무와 접점이 있고 기본적인 연구 방법론을 배울 수 있는 학문을 택했다. 같은 대학원을 나온 회사 선배들도 많았고, 내 업무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하는 교수님도 계셨다. 덧붙여 회사와의 거리도 중요했다. 직장인으로서 학업과 일을 병행하려면 평일 야간 수업을 수강하는 것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싼 등록금도 하나의 고려 요소였다.
직장인 대학원생의 일과
일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한 지난 몇 년간 나의 생활은 보통 이랬다. 먼저 평일 중 하루 4시 퇴근 후 캠퍼스에 도착했다. 학생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7시부터 9시 30분까지 야간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면 밤 11시가 넘었기에 침대에 쓰러져 잤다.
토요일에는 9시 수업을 듣기 위해 출근할 때보다 무려 30분 더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섰다. 가끔 날씨가 좋은 토요일에 수업을 듣고 있노라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 좋은 날 이러고 있나?"싶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그럴 때마다 "원래 날씨가 좋으면 공부하기 좋은 날이에요. 날씨가 안 좋아도 공부하기 좋은 날이에요"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토요일은 캠퍼스에서의 시간으로 가득 찼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기간은 나의 지구력과 성실성을 시험하는 계기였다. 퇴근 후 시간을 전부 할애해도 항상 시간은 모자랐기에, 가끔은 휴가를 내고 과제를 하고 시험공부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한 내에 과제와 시험을 마칠 수 없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공부한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나에겐 오랜만에 시작한 공부가 매력적이었다. 일하다 보면 나보다는 다른 사람의 일정이 더 중요하고,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일의 결과가 내 손에 달려있지 않은 경우가 많지 않은가? 통제가능한 부분이 적은 일과 달리, 대학원에서는 원하는 일정에 맞춰 공부하면서 좋은 학점이라는 목표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만 잘하면 되니까, 적어도 공부는 내가 노력을 투입한 만큼 결과물이 나오니까. 덕분에 좋은 성적을 얻었고 교수님의 칭찬을 들으며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장학금도 매 학기 받았다.
이중생활하는 직장인을 위한 꿀팁
1. 시간을 쪼개 써라!
나는 밤샘 체질이 아닌 지라 출근 후 9시가 되기 전 20분, 점심시간 1시간, 퇴근 후 3시간 등 내가 확보할 수 있는 작은 시간들을 온전히 대학원 공부에 투입했다. 회사에 도착하면 바로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확인하기 전에 대학원 자료부터 읽는 거다. 시험기간엔 11시 40분부터 12시 40분까지는 공부를 먼저 하고 점심 식사를 했다. 퇴근 후에는 저녁을 먹고 도서관으로 가서 두세 시간 정도 자리를 지켰다. 도서관이 빨리 문을 닫는 주말엔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딱 이만큼만 주말을 포함해서 꾸준히 하려고 애썼다.
2. 스스로에게 보상할 수 있는 기제를 마련하라!
과제와 시험기간엔 부자유한 몸이 되니 나는 먹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보상을 했다. 동네와 회사 근처에서 조금 비싸더라도 맛난 음식을 먹으며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어찌 됐건 밥은 먹어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 '곧 방학이 올 거야!'라고 위안하며 지금 약간의 인내가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다. 중간고사나 중요한 과제가 끝난 후에는 곧바로 여행을 가서 스스로에게 '시험 종료'의 기쁨을 각인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3. 스터디를 활용하라!
대학원을 졸업하기 전에 논문자격시험(논자시)을 봐야 하는 데, 이때는 스터디를 하기 위한 최적의 기회이다. 시험 범위가 한 학기 수업내용 전체이고 2~3개의 전공 필수 과목에 더해 그간 다른 수업에서 얻은 지식도 십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원 과제는 의외로 팀플이 없고 개인과제가 많아 스터디를 활용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논자시 스터디를 하게 되면 적은 시간을 투입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직장인이 대학원에 가면 얻을 수 있는 것
사람들은 내게 ‘대학원에 가게 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나요? 일에는 어떤 도움이 되나요?’라고 묻곤 한다.
일반 대학 졸업자라면 대학원에 가는 것이 몸 값도 올리고 좀 더 좋은 직장을 갈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즉, 공부의 목적이 취업일 때는 이런 경제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그러나 나의 경우엔 석사 학위를 취득한 것이 연봉이나 업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학위가 생겼다고 이미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 호봉이나 연봉을 올려주는 것도 아니었고, 학문의 특성상 바로 일에 적용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럼 대학원에 가면 대체 뭐가 좋나요? 무엇을 얻을 수 있나요?
첫째, 단단히 깨지는 경험이다.
연차가 쌓일수록 업무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깨지는 경험이 별로 없다. 그렇다 할지라도 일에는 정답이 없고, 일을 잘한다는 기준 또한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누가 지적을 해도 쉽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드물다. (상사로부터 한 소리를 듣다가도 ‘당신이나 잘하세요’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흠흠흠)
그런데 학문은 미지의 영역이고, 나는 초보 연구자이기 때문에 교수님들의 코멘트 한 마디 한 마디가 생각보다 큰 임팩트를 줬다. 특히 논문 예비심사나 종결 심사를 받을 때는 수년만에 멘탈이 바사삭 부서지기도 했다.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다!!!
둘째, 석박사들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솔직히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 정도의 논문으로도 석사가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전국의 석사생들, 미안합니다!!!!) 그런데 내가 직접 논문을 써보니 ‘이 정도 수준’이 나오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던 논문들이 험난한 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라 생각하니, 이 세상 모든 석박사생들을 존경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셋째, 연구의 의미에 대해 깨우치게 되었다.
대학원에 가기 전까지는 사실 ‘연구, 그거 대체 어디다 쓰는 건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연구란 미지의 세계를 열어주고, 앎의 지평을 확장해 주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장 일에 쓰이지는 않을지라도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두는 건 결국 나의 경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일이었다. 연구의 의미를 발견하고는 논문을 통해 지적 자산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일에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넷째, 존경할만한 어른 목록이 생겼다.
업무와 인격 모든 면에서 존경할만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나는 학문의 영역에서 존경할만한 어른들을 많이 만났다. 학문적 성과와 인격적 성숙을 동시에 이룬 분들을 만나면서 나는 그분들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존경할만한, 존경하고 싶은 ‘멋진 어른’을 만난 것은 인생에서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 대학원에서 만난 존경할 만한 어른과의 일화는 이 글을 클릭하세요!(https://brunch.co.kr/@fe560d11240045c/6
마지막으로, 안구 건조증과 허리디스크를 얻었다.
특히 논문을 쓸 때의 일이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거의 하루 종일 컴퓨터를 하다 보니 갑자기 앞이 흐릿하게 보이는 순간이 찾아왔다. 나쁜 자세로 오랜 시간 앉아있으니 척추와 골반이 더 틀어져 건강검진 결과에서 디스크가 흐르고 있다는 소견을 받기도 했다.
물론 공부를 병행하는 모든 직장인들이 나와 같은 것은 아니다. 나는 벼락치기가 성향상 안 맞고 뛰어난 지성을 가진 것도 아니라 온전히 노력으로 버텨야 했다. 그래서 몸이 고달팠던 거다. 일과 공부, 두 영역을 다 잘하고 싶어서 겪는 스트레스와 에너지 고갈도 덤이었다. 완벽주의 성향을 놓지 못한 덕에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았다.
그럼에도 대학원에 가야 하나요?
나는 대학원 진학을 추천한다.
지적 자산을 쌓고픈 사람, 남의 일만 하느라 ‘내 것’을 생산하는 경험에 목마른 직장인들에게!
일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No pain, No gain’이란 말처럼 몇 년 간의 고된 시간을 견디고 난 후, 나는 척추 기립근처럼 쉬이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지적 근육을 얻었다.
새로운 분야에서 감탄할 만한 사람을 만나고
학문의 기쁨을 느끼는 것,
그것은 정말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당신도 신선한 지적 충격과 정신적 전율을 원한다면 대학원 진학을 고려해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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