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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정 중독자의 고백

나는 왜 인정 욕구를 놓지 못하나


일에도 사계절이 있다면 그때는 겨울이었다. 마음은 추웠고, 몸은 경직되었다. 고추바람처럼 매서운 상사의 말들이 가슴에 콕콕 박혔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일에서 인정을 갈구한 것이.



나는 이전 부서에서 꽤 알아주는 직원이었다.


 "OOO가 올리는 문서는 100% 믿고 결재하지!"
 "OOO만큼 피드백이 꼼꼼하고 빠른 직원도 없다"



이런 말들을 줄곧 들으며 일해온 나는 잘하고 있다고 믿었다. 동료와 상사의 지지가 이 보다 충만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스스로의 업무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새로운 상사를 만나고서 이다.


새 부서의 업무는 이전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리더의 스타일, 업무방식, 업무 성격이 180도 바뀌었다. 이전 부서에서는 정해진 규정과 지침을 틀림없이 수행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새 부서에서는 전례 없는 제도를 기획하고 타 부서를 설득하며, 때로는 우리 부서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나는 방향성을 원했다. 그러나 상사는 갈피를 잡아주지 않았다. 중간 보고도 귀찮아했다. 알아서 '완벽한 버전’을 가져오길 원했다. 결국 나는 길을 잃었다. 지도와 나침반 없이 황무지를 거닐면서 요리조리 발걸음을 옮겨봐도 항상 제자리인 것만 같았다. 그런 나를 보고 상사는 '답답하네요. 그걸 나한테 물으면 안 되죠. n연차에는 이 정도는 해야죠.'라는 말을 '다 너한테 도움이 되라고 하는 말인데-'라고 포장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상사는 내가 무능력자라고 다른 부서장들에게 떠벌리고 다녔다. 게다가 경영진에게까지 내 자질을 의심하는 말들을 전했다고 했다. 다른 부서에 있을 때는 꼼꼼하게 일을 잘한다고 칭찬해주던 경영진이 이제는 '부서장이 힘들지 않게 이런 것을 신경 써야 돼.'라고 말했다. (물론 그 경영진은 후배들의 신뢰와 존경의 범위에서 벗어난지 오래다.)



늘 감독의 사랑으로 주연만 하던 배우가
낯선 감독 밑에서 엑스트라를 하게 되면
이런 기분일까?


어떻게 해도 새 감독을 만족시킬 수 없게 단단히 찍힌 나의 영화는 여기서 끝인 것 같았다. '인사 전보 시즌이 되면 어느 상사가 날 데려갈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썼다. 인고의 시간은 길었고, 결국 나는 다른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다. 계속 전문성을 쌓고 싶었던 업무 영역과 이별하면서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다. 다시 일로 인정받고 싶었다. 가려졌던 내 이름을 윤이 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혁신적인 무언가를 해내기로. 업무의 질 측면에서도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높은 목표를 세웠다.



‘벼는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믿었다.


괴로움 속에서 묵묵히 진척시켰던 나의 일들은 꽁꽁 언 얼음 밑을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같았다.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히 들리는 그것. 지금은 불투명하나, 봄이 오면 결국엔 드러날 그 존재 말이다. 모진 계절을 참으로도 성실히 견뎠다. '당신이 날 이렇게 폄하했지만 난 결코 그 틀 안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다, 당신의 판단은 단단히 틀렸다'는 걸 믿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상사가 퍼뜨린 나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이 사실이 아님을.


겨우내 숨어있던 움이 땅을 밀고 나와 햇빛을 받고 싹이 트듯 어느덧 나의 시간은 봄을 맞았다. 나는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고, 감독은 다정했으며, 준비한 것을 온전히 내보일 수 있었다. 노력한 걸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잃어버린 인정도 되찾았다. 기뻤다. 일하는 나의 존재 가치를 되찾은 것만 같았다. 이제 칭찬과 신뢰는 가뭄의 단비처럼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항상 내 옆에 있는 것이 되었다. 안정감을 되찾았다.


하지만 한 번의 짜릿한 성취감을 맛보고 나니 다른 과제를 또 멋들어지게 완수하고 싶어졌다. 웬만하면 가시적이고 만져지는 것이길 바랬고, 또 이왕이면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랬다. 계속해서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열등감과 비교의 말들은 내가 태생적으로 가진 완벽주의자, 학습자, 성취자 성향과 버무려져 내 인정 욕구를 활활 타오르게 했다. 하지만 인정에의 갈망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인정을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 원하는 수준의 업무 실력과 역량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취와 인정은 내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고로 성취와 인정, 성장은 내게 한 몸이다.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z1d-LP8sjuI



나는 스스로를 '건강한 인정 중독자'라 명명하고 싶다. 나는 내가 원대한 무언가를 해내기를 바란다. 스스로가 원하는 수준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기대와 현실의 격차를 좁혀가는 과정도 차분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고난의 시간이 지난 후 단 성취감을 맛볼 것이다. 지금의 나보다 더 멋진 내가 될 기회와 가능성을 열어주는 삶을 살기 위해 성취와 인정을 연료로 쓰겠다. 그렇다, 난 어쩔 수 없는 인정 중독자다.




커버 사진 출처 : te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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