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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star Nov 22. 2024

잊혀지지 않기 위한 발버둥들


이른 아침 예전 핸드폰에 남은 문자를 봤다. 이런게 있었다 싶었는데 석달 전 얘기. 나는 문자와 카톡을 수시로 지우는데 이제 세상에 기억할 만한 것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아무 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고 아무 것도 알고 싶지 않아서 그런다. 전 핸드폰도 사실상 포맷을 했는데 문자가 남아 있어 놀랐다. 거게 고작 넉달 전이다. 


10년을 다닌 회사고 7년을 했던 노동조합. 회사 일 주에 내 손이 닿지 않은게 없었다. 아직 주 52시간 제도가 없을 때 본부 평가와 본부 내 직원들의 연차 소진률을 연동 시킨 건 지금 생각해도 훌륭한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자 후배들이 눈치보며 연차 쓰던 분위기가 전부 사라졌다. 단가가 높은 선배들은 연차 수당 안 나오냐며 볼멘 소릴 했지만 결국 그렇게 아낀 연차 수당이 전부 급여에 반영 됐다. 갑질을 바로 잡자고 몇차례 갑질 조사를 하고 손수 보고서를 썼다. 거의 200페이지는 될 거고 분석 하자고 SPSS를 돌렸던 자료, 엑셀, 파워포인트 장표도 수십장이 있다. 그렇게 소위 적폐들을 내쫓았는데 그 과실은 나쁜 사람들이 따 먹는 걸 봤다.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들을 지켜주자고 만든 제도를 비겁하고 게으른 사람들이 잠식 하는 걸 봤다. 젊은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에 갈 수 있도록 인사때마다 얼마나 작업을 했던지. 평판이 안 좋고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 찾아와 청탁 비슷한 걸 하면 의도적으로 소문을 내 보직을 못 달게 압력을 행사 했고 내외부 압력을 행사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면 그걸 잘라내려고 노력했다. 두개의 노동조합을 하나로 통합하자고 얼마나 열심히 달렸는지 단체협상을 세번 하면서 내 업무를 다 하는 그런 생활을 몇년 하면서 내 삶이 어떻게 무너지고 또 파괴됐는지. 그래도 나는 내 고생으로 나와 함께 일하는 우리 기관 직원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여겼고, 그게 지난 10여년간 내 삶을 지키는 자부심이었다. 


그렇게 만든 회사가 무너지는 걸 보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신임 노조 집행부는 대부분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었는데 내가 나가자 내가 있었다면 하지 않을 판단들을 쉼없이 반복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너희가 하는 건 모조리 틀렸고 모든 판단들이 잘못됐다. 나는 이미 흘러간 사람이고 간신히 만들어 놓은 체제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말을 보태지 않으려고 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이야기를 흘려 보냈지만 내 후임 위원장은 아무런 말도듣지 않았다. 내 입사 동기 였고 나보다는 세살 어린 동생이었다. 어쩌면 이 지루하고 괴로운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책임하게 후임자를 골랐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충분히 만들어 졌고, 내가 만든 체계가 굳건하리라는 확신이 틑린 걸지도 모르겠다. 7년간 만든 것들이 뭐지는 걸 보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었다. 내가 회사를 떠난건 지난 7년간 노조 활동을 하면서 만들었던 회사라는 공동체가, 내가 꿈꾸던 공동체의 모습이 단기간에 무너지는 걸 더는 견딜 수 없었던 까닭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기억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나서서 사람들 옆에 서고 필요하면 가장 앞에 서 있었다. 돌아보면 오롯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공공기관에 오는 사람들이란 늘 그토록 연약하고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누구의 눈에 띄거나 특별하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법이니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인생 말고는 그 어떤 것들에도 가치를 두지 않는 법이니까 퇴사를 하고 밥을 사주겠다고 부른 이사는 내게 말했다. 환멸이란 미몽에서 깬다는 뜻이예요. 사람들은 원래 그랬어요. 변한 건 본인의 마음.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세상을 탓하지 않고 저를 들여다 보려구요. 나는 잊혀지지 않기 위해, 저 뻔하고 평범하 사람들 속에서 대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 그토록 나를 망쳐가며 긴 시간을 내달렸는지도 모르겠다. 


문자를 보낸건 나와 4년여간 노조를 했던 후배다. 퇴사 후 노조 집행부 누구도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그 후배 하나만 내게 연락을 했다. 그런 문자가 온지도 잊고 있었다. 나는 잊지 잊겠다고 답했다. 고작 넉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모조리 까마득하다. 그러니 이제야 알겠다. 나의 노력들의 대부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엸미을 다해 공동체를 바꿔보려 한들 사람들은 무엇이 자기네들의 삶에 변화를 줬는지도 모르는 채로 삶을 이어간다. 우리가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고 있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작 자신의 인생 경로 조차도 알지 못하고 있는데, 제도와 정책과 문화의 변화 같은 것들, 그 맥락과 흐름 들 따위 그것들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따위 알지도 못하고 기억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게 보통의 인간이다. 


어린 시절에 나는 많은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를 가장 흥분되게 만드는 건 언제나 정복 영웅들이었다. 카이사르가 같은 나이 또래 아시아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의 이야기를 읽고 한탄을 한 것처럼, 말을 직접 몰아 두세배의 적군들을 제압하 알렉산드로스이 이야기, 아우스터리츠 전투와 나폴레옹이 이야기. 어린 시절 나를 놀라게 했던 것들은 늘 그런 정복과 성공의 이야기들이었다. 이 무렵 나는 영광의 날개가 아니라 몰락의 이카루스를 읽는다. 갈리아를 정복하고 로마로 돌아온 카이사르의 이야기가 아니라 측근의 칼에 대낮에 죽임을 당한 카이사르의 최후, 세인트헬레나에서 쓸쓸하게 죽은 나폴레옹의 비극 같은 것들. 추도문을 읽는 페리클레스가 아니라 40년간의 통치 끝에도 결국은 돌림병 앞에 쓸쓸이 떠난 페리클레스의 이야기 같은 것들. 살라미스에서 페르시아를 제압한 데미스토클레스가 아니라 도편에 추방 당에 자기 조국인 아테나와 싸워야 할 처지에 죽음을 텍한 데미스토클레스의 이야기 같은 것들을 읽는다. 위대했던 순간은 늘 한순간. 한번의 순간 끝에 영웅들은 몰락을 맞이한다. 내겐 몰락은 낭만적인 단어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의 몰락은 고통이요, 상처이자 그야말로 비극인 것이다. 


무엇이 세상을 움직이는가, 무엇이 삶을 움직이는가. 더 큰 꿈과 더 큰 욕망을 가진 자들의 삶이란 늘 추락과 몰락의 가능성과 함께 한다. 높이 날 수록 중력은 무겁게 작용하고 빠르게 전진할 수록 에너지는 더 실리는 법. 물리법칙은 때로 우리 앞에 놓인 것들을 더욱 정확하게 설명한다.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늘, 내가 속한 곳에 지진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어쩌면 내가 속한 곳들에서 그런 존재가 돼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내게 남긴 것이 무엇인가 혹은 그렇다면 나에게 그 흔적들은 무엇이었나. 나의 발버둥은 그러고 보니 늘 잊혀지는 것들 만을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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