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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star Nov 11. 2024

과장님은 제발 걱정 좀 하세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자기자신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다. 회사는 개인의 욕심이 아닌 집단과 조직의 야심을 하나의 개인으로 대신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이기 보다는 집단과 조직의 목적을 관철 시키기 위해서 내가 가진 개별적 특성이나 인성과 무관한 어떤 경향을 띄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난폭한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집착이 많은지 또는 게으른 사람인지 같은 것들이, 바로 이런 격렬한 국면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다음주에 중요한 회의 일정이 있다 치자. 실무자의 역할을 실체는 형식인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사전에 준비된 실무상 결정 사항들이 문제 없이 공식화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회의자료에 소소한 오타나 무슨 숫자 오기 같은 기본중에 기본은 물론 꾸며야 할 것들을 꾸미고 실제로 보고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살펴볼 확률이 매우 낮은 보조 자료 까지 두툼하게 준비한다. 사전에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설명하고 구워삶아 놓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게 우리 입장입니다. 이사님, 의원님. 대부분은 현안을 제대로 모르거나 자신이 멍청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 대표적으로 지역정치인 들은 이런 걸 무시하면 매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속없이 머리를 숙이는 게 내가 할일이다. 어릴적엔 내가 이런 일에 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몇년 지나니 나를 아는 몇 사람, 내 뒷작업을 본 몇 사람은 당신은 차라리 영업이 기획보다 나았겠단 말도 한다. 자칫 회의 때 쓸데 없는 의견이 덧붙여져서 다음 단락으로 나아가는 길에 무게감이 생겨서도 안 되기 때문에 간혹은 의도적으로 저들이 결정하지 못할 항목들을 전술적으로 의제화 시키기도 한다. 이것만 물고 뜯으면 중요한 건 숨어버리니까. 인간에 대한 존중이나 회의 석상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직위에 대한 별다른 기대 같은 건 없다. 그들도 자신이 얻은 지위로 회의 자리서 말할 권한을 얻은 것 뿐이지 무슨 영혼을 받쳐서 문제를 바로 잡고 그러지 않으니까. 


화요일쯤이 회의라면 주말 출근을 고민한다. 주말이다. 좀 더 놀 것인가 회사에 나가 자료를 준비할 것인가. 어느날은 어제 새벽 네시까지 회의자료를 준비했습니다 란 말을 하자고 밤을 새기도 한다. 그것도 일종에 알리바이다. 주말 출근을 했다면 좀 더 미리미리 일정 관리를 했더라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통상 야근은 물리적 업무량이 과하게 도달한 것이 원인이고 대부분의 경우 무능한 관리자가 업무 배정을 잘못한 데서 원인이 발생한다. 일시적 야근은 실무자의 의도와 관계 있는 것이고 지속적 야근은 개인 보다는 조직 혹은 일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중요 프로젝트를 앞두면 업무시간을 길게 관리하는게 담당자의 역량이다. 요컨대 아홉시부터 여섯시까지 일하는 일정 관리가 아니라 여덟시부터 같은 날 오후 열시까지 열네시간 정도를 일정 계획에 포함 시키고 경험과 지식이 근거해 프로젝트의 일정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일정관리를 하지 않으면 특히 의사결정권한이 있는 자리에 도달하게 되면 그래서 수시로 쏟아지는 통상 업무 외의 것들을 관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 진다. 업무 관리란, 일정 관리란 예측하지 못한 것들의 공간을 비워놓는 능력이지 통상 업무를 제시간 안에 하는 능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머리를 갸우뚱한다. 아무래도 주말엔 업무 집중력이 좋기 때문에 생산력도 높아진다. 업무시간엔 수시로 전화에 미팅으로 한시간 보고서 한장도  제대로 못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스무장이 넘는 보고서를 주말이면 집중하면 하루면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업무 시간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한시간에 최대 네장, 적게는 두장을 쓴다. 머리 속에 계산이 서면 주말 출근에 대한 판단도 바뀐다. 회의 앞두고 연락은 다 돌렸고 계획안 결재 태우고, 더 중요한 회의자료, 보완 자료 등등. 준비할 것들의 목록이 준비된다. 화요일 회의. 공수는 대략 스무시간 정도. 고민이다. 주말 중 하루 만에 모조리 끝낼 것인가, 이틀에 나눌 것인가, 주중에 밤을 샐 것인가. 어느날은 주말에 술을 마시고 싶고 어느날은 새로나온 영화를 보고 싶고 어느날은 그냥 회사를 가는게 낫다. 물론 이 판단들에는 또다른 계산이 필요하다. 이동하는데 들어가는 기름값과 톨비, 시간대비 효용 등등. 결론은 그때그때 다르다. 


중요한 건 판단을 한 후에 생각을 멈추는 것이다. 주말 출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그 다음 생각은 무용하다. 놀기로 마음 먹었으니 얼른 술약속을 잡든 영화 예약 버튼을 누르든 하자. 쓸데 없이 시간을 소비할 필요가 없다. 도무지 마음이 불편하다면 모조리 포기하고 얼른 회사로 가는 게 낫다. 머리 속에 불필요한 고민을 쌓아두는 것이야 말로 낭비 중에 낭비다. 나보다 나이 어린 여자 동기가 말했다. 과장님은 걱정 안 해요? 난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머리 속에서 생각 많으면 그냥 회사 나가요. 그걸 왜 걱정해요? 걱정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니까 하는 거예요. 아무런 생산성도 아무런 가치도 없는게 걱정이예요. 정말 걱정이 되면 카카오톡 대화창에다 오늘 할일 리스트를 죽 만들고 써놓고 잊어버려요. 얼마 후 자신도 새벽에 출근을 해봤다는 그녀, 자신은 체력상 새벽 출근이 쉽지는 않았으나 당신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이해했다고 전했다. 나는 말한다. 우리의 걱정이란 대부분 멈춰 있을 때 피어나는 찌꺼기들일 뿐이고 대부분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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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를 앞두고 나는 유유자적이었다. 물론 아침 여섯시쯤 출근해 이른 새벽에 집중해서 처리할 것들을 모조리 마무리하고, 아홉시부터는 최소 네건에서 많을 땐 아홉 건 정도 미팅을 진행한다. 일정이 많아지면 특히 정리해야 할 사항 들이 많아진다. 이럴땐 반드시 회의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한국인들 처럼 앉아서 노닥거리고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게 아니라 나눴던 내용을 중심으로 역할과 데드라인을 정하는게 회의가 진행돼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여섯시 이후론 절대 회의를 잡지 않는다. 초과근무는 공동근무에 해당하지 않으니까. 여섯시 부터는 각자의 야근꺼리를 하시라. 나는 일곱시나 여덟시쯤 나간다. 적당히들 하고 가세요~. 그날은 내 일정대로 내 할 일을 끝마쳤기 때문에 나는 내일을 위해 퇴근을 하면 된다. 체력 문제도 있고 다음날 업무에도 지장을 주기 때문에, 가능하면 22시를 넘으면 안 된다. 그런 내가 동료들 눈엔 유유자적이고 편안해 보였던 모양이다. 어느날은 같은 파트 후배들이 말한다. 과장님은 걱정이 안 돼요? 좀 걱정 좀 하세요. 나는 웃고 만다. 


우리에게 주어진 대부분의 일들은 사회 전체와 역사 전체의 국면에서 보면 전혀 대단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일이다. 이 관점이 너무 무책임한가? 그렇다면 회사나 프로젝트 단위로 보면 어떨까? 신기하게도 조직은 그리고 사회는 한 두명의 특별한 사람들로 인해서 전진하지만 그들에게 그만한 영향력을 뺏거나 그들의 특출남이 발휘될 공간이 사라지면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조직은 영향력이 적고 평범한 능력을 가진 다수의 무능들이 겹쳐져도 왠만해선 훌륭하게 성공하거나 한심하게 실패하지 않는다. 그게 분업과 관료제의 힘이고 조직의 힘이다. 한두명의 특출남이 발휘될 공간이 적은 만큼 한두명의 무능함이 망칠 공간도 그다지 크진 않은 것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일도 아닌데 무슨 그렇게. 엑셀 숫자 하나 잘못 찍는다고 우리가 제조 공장도 아니고 사람이 다치거나 하지 않아요. 우리가 당할 수 있는 최대치는 그래봐야 징계인데, 그게 무슨 형사 범죄도 아니고 퍽이나 대단한 게 아닌데? 그렇다면 그런 소소한 실수 때문에 큰 징계를 받느냐? 일하다가 벌어진 일이고, 열심히 하려다 벌이진 일인데? 게다가 징계란 많은 경우, 아니 거의 언제나 정치적인 거라 당신들 처럼 중요성이 낮은 인물들한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도 않을텐데?


오히려 나는 말한다. 회사 안에서나 중요한 회계 절차니 이런 것들 매몰되지 말고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합시다.적당히 대충 얼버무려요. 그건 기획부서 일이고 회계부서 일이예요. 자기네들이 죽어나면 살려달라고 오겠지. 필요하면 내가 가서 머리도 숙이고 회유도 하고 협박도 할테니까 지금은 우리가 해야할 일만 합시다. 우리가 하는 일, 기업을 지원하는 이 일은 너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예요. 우리가 지원한 이 기업들이 어쩌면 10년 뒤에 수백개 일자리를 만들고 조단위 시총을 가진 기업이 될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집중해야 할 곳은 오히려 다른데 본질이 있는게 아닌가요? 

 나랑 같이 일하던 부서는 늘 딱하나 평가보고서를 제외하고 취합업무니 자료제출이 거의 꼴등이었다. 무슨 안전보건교육은 유일하게 내가 있던 팀에서 거의 전원이 듣지 않아 해당 부서로 부터 핀잔을 받았다. 나는 말한다. 지금 일 하잖아요? 당신네들이 당신네들 일 하는 것처럼 우린 우리일 하고 있다고. 안전보건교육 안들어서 회사 과태료 받는 건 내 일이 아니고요. 후배들이 문서를 들고 온다. 윤리 교육 받으라는데요, 성희롱 교육 받으라는데요, 홍보실에서 우수사례 내라는데요. 그거 안 내면 무슨 페널티 있어요? 없는데요. 내지마. 그걸 뭐하러 내. 부서 점수 까이는 것도 아니고, 지금 그런 거 쓰고 앉아 있을 만큼 안 바빠요? 그런 거 신경쓸 시간 있으면 일이나 합시다. 얼마나 관리부서에서 내가 싫었을까. 만일 내가 관리부서에 갔다면 나처럼 정색하고 비협조적인 부서를 조지는 기술을 잔뜩 가동시켰겠지만, 난 관리부서에 가본 적이 없다. 


 조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심지어 우리가 하는 그 공공의 일들 마저도 한편에선 별 쓸모가 없다. 정책 공부를 한 입장에서 보면, 어느 기업이 성장하고 성공하는데 지원 정책의 효력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나? 대부분은 경제사정의 영향, CEO의 특별함, 운, 이런 것들이 성공의 자원들이고 공공은 발목이라도 잡지 않으면 다행인 게 현실이다. 그나마도 우리가 할 수 있는건 우리한테 주어진 작은 권한으로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만한 것들을 발굴하고 기획해서 정말로 기업에게 닿도록 돕는 역할, 기업의 개별 역사의 관점에섬 매우 적은 부분이지마 그 적은 부분이라도 유효하다면 이른바 정책이란 것들의 작동은 성공한 것이다. 후배들에게도 우리가 하는 일의 소중함은 잊지 말되 건방 떨지 말라고 항상 가르쳤다. 거기 까지가 내가 하는 일의 의미이자 범위다. 이 말은 곧 거기서 부터는 내가 할 일들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내 기획과 노력으로 간신히 조금의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보다 큰 기쁨과 보람이 없겠다. 실패한다고 해도 기업들에게 지탄을 받으면 그만이다. 사람이 죽거나 사는 그런 세상의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 의료, 군, 제조 현장 같은 어떤 공간을 제외하면, 사무직들의 세상은 대부분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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