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7, 오늘 스타트업
오늘 (2025.3.27)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서울 AI허브에서 열린 제조기업 AI 관련 IR? 네트워킹 행사에 다녀왔다. 계획에 없었으나 어제 영감님이 넌지시 가길 바라는 눈치라 공부도 할 겸 가겠다고 했다. 서울 AI 허브는 서울시 예산으로 지난해 개소했고 서울대가 운영하고 있다. 양재시민의 숲 역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이곳에서 열린 행사는 AI를 활용하는 스타트업, 그리고 그런 스타트업을 투자한 VC, 현직에서 AI가 활용되는 방식을 설명하는 내용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나는 2019년 당시 공정자동화나 스마트팩토리 부분 업무를 해본 적이 있다. 제조업 분야의 AI라는 말이 생경하다면 공정자동화라는 익숙한 표현으로 바꿔서 이해해 보자. 조금 더 직관적인 이해도가 생길 것이다. 오늘 본 기업들과 세미나 내용들을 간단하게 살펴보고 내 생각을 덧붙이도록 한다.
첫 번째 기업은 4D 센싱(*시간 정보를 포함한 공간 인식 기술이라고 한다) 기술을 활용한 Machine Vision 업체다. 쉽게 말하면 정밀한 사물 인식 기술을 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기술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어느 부분에서 특장점을 갖고 있는지 말하는 쉽지 않다. 센싱 기술이 뛰어난 건지 아니면 그걸 찍어내는 카메라에 기술이 있는 건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2019년 스마트팩토리 비슷한 업무를 맡을 때 실사 나갔던 기업의 아이디어와 유사해 진지하게 봤다. 내가 만났던 기업은 X-ray 촬영기술과 A.I분석 기술을 이용해 사진 촬영 한 번으로 불량품을 골라내는 기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본 기업은 검사(inspection) 영역의 시장성 향상에 기대가 많아 보였다. 센싱 기술을 바탕으로 mm 단위의 적합성이 필요한 나사 맞추기 공정의 정확도를 높이고, 불균질 하게 배치돼 있는 팔레트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제조 현장에서 많이 쓰이는 공정인 것을 잘 알고 있고 효용 역시 필요해 보였다. 초기단계 소위 창업생태계라는 리그에 들어오기 전부터 기술 중심으로 사업을 해온 것으로 보이고 CES를 비롯해 기술에 대해서는 꾸준히 높은 평가를 받아온 것으로 보인다.
대중견기업과의 협업 레퍼런스가 있었다. 오늘 내가 중요하게 깨달은 건 이런 기술 협업이 해당 기업의 특장점을 약화시키는 면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이 기업이 갖고 있는 센싱 기술은 분명히 다양한 영역에서 폭넓게 쓰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각종 정밀 가공 공정에서 사물 인식은 오늘 보여준 것처럼 로봇 기술을 연동시키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 문제는 그 훌륭한 기술을 어느 영역에 최적화시켜서 돈을 벌 수 있느냐는 것이다. 기술에서 출발한 많은 기업들이 갖고 있는 아쉬운 점이 보였다면 맞을까. 오늘 행사에서 깊게 고민한 부분이기도 하다. 세부적인 내용은 아래에서 다루겠다.
두 번째 기업은 데이터 처리 기업이다. 근래에 ChatGPT가 등장하면서 AI라면 다들 LLM을 생각하지만 오늘날 LLM 기술의 기반은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제프리 힌튼 교수의 팀이 고안한 딥러닝에서부터 시작된다. 딥러닝은 여러 줄기로 자라났고 LLM이 등장하기 전에는 유행하던 말이었다. 두 번째 기업은 데이터를 활용해 제조업의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기업이다. 먼저 기업이 생산 공정 내부에서 기능한다면 다음 기업은 오늘 발표자의 말대로 "제조업 기업의 전방과 후방"에서 유의미하다.
해당 기업의 서비스는 간단하게 말해서 제조 과정에 투입되는 원가 요소룰 분석하고 전망하는 것이다. 예컨대 원유가 필요하다면 글로벌 단위에 만들어진 데이터를 끌고 와 지금 현시점에 원유 가격 데이터를 불러오는 것이다. 내가 잠시 전화 통화로 자리를 비웠는데 아마도 단순히 원가뿐만 아니라 구매처 정보까지 연동돼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의미는 있다. 자동차 계기판을 만들자면 이를 위해 필요한 플라스틱, PCB기판 등의 구매 정보가 필요할 텐데 해당 원재료들을 가격이나 품질 혹은 그 밖에 필요한 기준에 따라 분류해 볼 수 있다면 정보를 '아는 것' 만으로도 원가 절감의 효과가 있다.
심지어 국내 농산물 원가 데이터까지 끌고 올 수 있고 자체적으로 만든 툴을 통해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데이터 분석도 가능하다. 아마도 데이터를 찾는 작업과 다양한 고객 수요에 맞게 표준화/체계화하는 모델을 구성하는데 공을 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그 데이터가 없다면 별다른 효용이 없다는 게 역설적인 맹점이다. 중소제조기업들에게 이 데이터가 유효할까? 대기업들은 이미 이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을까? 또 더 깊이 있고 유효한 데이터를 만들어 '팔'수 있으려면 역시나 일정한 섹터와 거기 맞는 최적화 작업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앞의 기업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게 한 업체다. 사실은 SI(System Integrator) 기업으로 볼 수 있다. 대표님부터가 카이스트 전산학과 박사 출신이고 이미 9년 전부터 딥러닝을 연구했다고 하니 기술적 전문성은 충분히 검증됐다 싶었다. 이 업체가 보여준 건 딥러닝이 기반 영상분석으로 이상상황을 감지하는 거다. 나는 이런 기술을 여러 차례 봤다. 병실에 CCTV를 달아 행동 패턴을 학습한 뒤 이상행위가 감지되면 간호원에게 안내하는 서비스. 그 서비스는 낙상 사고라는 이상행위에 특화돼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업체는 그 밖에도 제조뿐 아니라 사업 전반에서 유용할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AI 관련 기술과 서비스를 갖고 있었다. 자연어 처리 분석 솔루션, 사용자행위 분석 솔루션, 심지어 LLM을 활용한 솔루션도 있었다. 발표한 대표님은 현시점에서 횡적영역(vertical)에 집중해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모든 제조 공정을 다루는(cover) 종합 플랫폼으로 나아가길 지향한다고 말하면서 발표를 마쳤다.
여기서도 내 문제의식은 같다. 이 정도 기술을 가진 기업이라면 기술력 측면에서는 크게 뒤지지 않아 회사 유지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독창적 서비스가 없는 한 결국 SI 업체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SI 업체의 가치를 부정하는 의미가 아니다. 독자적인 서비스를 구축하기보다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게 필요한 것들을 대행하는 기능이 강하다는 뜻이고 '사업' 과는 일정 부분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음은 VC의 투자 관련 세션이었다. 세션이라는 단어가 과해 보이긴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들었으니 멋진 단어를 유지하자. VC는 B레벨 이상 성장 단계에 접어든 기업들을 투자하는 집단으로 멀게는 유니콘이나 가깝게는 IPO레벨로 직접 인도할 수 있는 자본과 경험을 갖고 있는 집단이다. 다음 단계로 투자 라운드를 이어가면서 원금을 회수하는 AC와 달리 돈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집단이다 보니 그간 다른 초기 단계 투자자 집단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포스코에서 나온 심사역의 이야기 중에 인상 깊은 건 두 가지였다. 이 심사역 역시 다른 모든 투자자들처럼 사람과 팀을 가장 우선하다고 했다. 투자자들 모두 비슷한 얘길 한다. 팀이 가장 중요하다. 열정과 역량 두 가지 모두가 반드시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덕성도 요구될 수 있다. 심사역 얘기 중 인상 깊었던 건 이미 기술은 모두 갖고 있을 거라고 보고, 특정 영역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가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대학원 때 모 교수는 논문 주제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에서 정하라고 했다. 거기서 통찰력이 나온다는 거다. 비슷한 얘기다.
기술적으로 무척 뛰어난 것과 이 기술들이 특정 산업분야나 섹터(sector)에서 돈을 벌 수 있나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돈을 벌자면 돈이 벌릴 만한 시장을 찾아야 하고 그 시장에 유의미한 문제들을 발굴해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기술이 뛰어난 보통 기업들은 자기네들이 가진 기술들을 적용해 그때그때 필요한 수요들을 손쉽게 충족시키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기술들을 폭넓게 사용할 수 있는 시장이 있는지, 해당 시장에서 기업이 가진 기술이 문제를 해결하고 사업 모델을 작동하게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사례를 보자. 배달의민족이 등장하면서 중국집이나 피자, 치킨 같은 '배달 음식' 말고 모든 음식을 배달로, 심지어 식자재까지 배달로 바로 받아볼 수 있게 됐다. 배달산업이란 영역을 아예 새로 정의한 거다. 쿠팡은 '빠른 시간 안에 배달한다'가 전부다. 쿠팡 등장 전에 택배 시장은 포화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대단한 시장을 찾아낸 통찰력처럼 보이지만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기대할 게 없다고 말했다. 우아한 형제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 영역을 배달 시장으로 편입시켰고, 쿠팡은 배달 시간을 쪼갰다. 이 두 기업이 초기 단계에 얼마큼 대단한 비전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이들을 성공하게 한 많은 요인에서 기술 그 자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커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심사역의 얘기 중에 재미난 게 바로 그거였다. 그 자신도 투자 결정을 위해서는 내부를 설득해야 한다는 거다. 대기업과 협업했던 레퍼런스가 중요한 이유란다. 나는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맞다. 심사역들 모두 나름의 통찰력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저 심사역들이 집행하는 자금은 개인의 돈이 아닌 조직의 돈이다. 조직이 돈을 쓴다는 건 조직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민간 조직에서 돈을 쓰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심사역들 역시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쓸 설득의 논거가 필요한 것이다.
심사역은 대기업과의 협업 성과가 그 자신의 투자 결정에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업계의 속성을 엿본 게 성과였다. 하다못해 카이스트 서울대는 나와야, 하다못해 비슷한 비즈니스를 성공시킨 경험은 있어야, 하다못해 그에 상응하는 근거라도 있어야 돈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 심사역은 2개 기업들의 투자 사례를 설명했고 몇 가지 내용을 기록하긴 했다. 결국 남은 건, 모든 일이 조직과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다.
수백만 평이나 되는 거대한 제철소에 동시간에 근무하는 인원이 고작해야 2~3000명 밖에 안 된다는 말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국가 차원에서 다른 산업과 달리 제조업이 중요한 건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저 넓은 포항과 광양 앞바다 제철소를 고작 저 적은 인원으로 운영한다니. 내가 봤던 반월 시화공단이나, 김포 산단, 화성 산단의 기업들은 여전히 바닥에 노란 테이프를 따라 직접 기판을 조립하고 검사 장비를 가동하곤 했다. 글로벌 레벨의 제조 기업의 접근은 그야말로 제조기업 수준이란 걸 체감했다.
포스코의 디지털 전환에서 인상 깊었던 건 거의 모든 공정에서 자동화를 이뤄내고 있다는 것이다. 발표자가 여러 차례 얘기했듯 수천 도의 열이 끓는 열악한 환경에, 지금처럼 사람의 가치가 중요해진 시대에는 사람이 직접 할 수 일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더 인상 깊은 건 앞서 발표했던 기업들의 기술들이 공정의 모든 단계에 군데군데 포함될 수 있다는 거다. 영상 인식을 통해 위험행위를 감지하고, 여러 대의 카메라로 라벨지를 교차 인식해 운송지 정보를 확인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사무 분야에서도 포스코만을 위한 chatGPT 학습 프로세스를 돌리는 등의 작업들, 작은 스타트업 수십에서 수백 배가 오늘도 고민 중인 비즈니스와 서비스들이 대규모 공정의 각 단위별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는 말이다.
이 설명은 다른 의미로 도전자들이 처한 현실이 절망적이라는 뜻도 된다. 수십조 매출이 나오는 글로벌 기업 앞에서는 스타트업들의 수년간 개발과 노력들이 작게 보인다. 이들은 필요하면 언제든 용역계약을 맺어 필요한 공정에 필요한 자동화를 도입할 수 있다. 이들이 할 일은 절감이 요구되는 작업과 대안들 검토해서 전체 기획 안에 포함시키면 된다. 산업계를 주도하는 대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특별함을 주장하는 여러 기업들의 기술들은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자그마한 옵션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돈을 벌자면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과 관계로도 충분할 수 있다. 한국 산업계 전체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1차, 2차, 3차, 심지어 4차, 5차 벤더-하청 구조로 돼 있는 게 현실이다. 많은 기업들은 대기업이 주도하는 밸류체인에 포함되기 위해 무수한 영업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이른바 재벌 기업들은 대부분 한국이 근대화되고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국가 발전과 함께 성장한 기업들이다. 포스코는 심지어 국영기업이었다. 그리고 그런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산업 전체가 편재돼 있는 한국의 현실상 이들과 함께 살길을 찾는 건 안전하고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적어도 B2B 영역이라면 대기업과 협조하지 않고 한국에서 살아날 방법은 혹은 어느 정도의 성장 수준에 도달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그러니 대기업의 협력사만 되도 기업으로써는 큰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전통적인 재벌들 말고 그만큼 성공한 거둔 또 다른 부자 기업들도 있다. 네이버, 카카오로 대표되는 IT 기업, 금융기업과 바이오 기업들은 20년 안팍의 역사를 가진 후발 재벌 기업들은 대부분 한때는 스타트업이었다. 이들도 한때는 하청과 외주 용역으로 직원들 월급을 메웠다. 그런데도 꾸준히 자기 것을 만들어왔고 IMF나 리먼브라더스 사태처럼 산업계 전체에 충격이 가해져 대기업들이 멈칫할 때도 도전과 변화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한국 산업계의 중요한 또다른 축이 됐다. 물론 그때와 달리 한국 산업계 전체가 동력을 잃었고 대기업의 지배력이 더욱 절대적인 환경이 되었다고 주장하면 그 역시 일부 현실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창업과 성공의 방식과 경로에 관한 고민을 말하는 것이다.
별생각 없이 기업들이나 볼까 하고 찾아간 행사였지만 생각보다 의미 있는 통찰(insight)을 얻었다. 이후로도 서울 AI 허브와는 협업을 계속해갈 예정이다. 내가 언제까지 이 업계에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업계(system)에는 고칠 것들과 바꿀 것들이 많이 보인다. 보이는 게 있다면 할 일도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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