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토록 악한가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

한나 아렌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악'의 얼굴

by 김E

도입

게으르고 불성실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우리 일상에서 매일 목격하는 무수한 악들에 관하여


악의 평범성으로 잘 알려진 책입니다. 2차 대전 관련된 책을 읽다가 2020년 초쯤 읽개 됐습니다. 이 책은 이론으로써의 가치보다 현실 세계를 설명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어요. 책이 두껍고 글씨는 작은 데다 문장도 길지만 그저 고루한 개론서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현실 경험을 쌓고 현실들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목격하고 나면 더 많은 걸 이해하게 됩니다. 아렌트는 악이란 위계와 관료제 속에서 생각하지 않는 게으름들이 만든다고 했어요.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태도들, 구체적이고 정밀한 언어 구사를 포기한 무능 혹은 게으름들이 악을 만든다고 했어요.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보는 것들이죠.


이 책은 한 사람의 재판에 관한 내용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유태인 학살의 중요한 의사결정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이란 사람의 재판입니다. 아이히만은 2차 대전 종료 후 아르헨티나로 도망쳤다가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에게 납치당하듯 잡혀와 재판정에 섭니다. 그리고 재판이 이어집니다. 책은 이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둘러싼 논쟁들, 경험들, 지식들과 판단들을 총체적으로 살펴봅니다.


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학살당했습니다. 그런 범죄의 중요 책임자라면 얼핏 봐도 악인일 거 같습니다. 그런데 '악'이란 무엇일까요? 아렌트는 유태인 학살을 둘러싼 나치스의 의사 결정과정에서 어떻게 악이 탄생하는지 봅니다. 나아가 악을 대하는 우리 자신 안에서 외면하거나 배제하는 또 다른 악들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마지막으로 아이히만의 '죄'를 살핍니다. 형사법 제도의 형식으로 구현되는 처벌은 정말로 '악'을 단죄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만든 법률이 저 거대한 문명사적 범죄를 단죄할 수 있는 걸까요?


*한나 아렌트, 김선욱 역,『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2006.10.10. 초판, 2019.3.25. 초판 26쇄


본문(1) : 시작된 재판

아돌프 아이히만의 죄는 무엇인가?

정의의 법정은 학살자를 처벌할 수 있나!?


아렌트는 도발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누구를 죽였나? 가해자는 누구이고 피해자는 누구인가? 피해자는 유태인 인가? 학살당한 유태인의 이름은 무엇인가? 유태인은 개념인가 실재인가? 아돌프 아이히만이 설사 가스실 버튼을 눌렀다고 해도 그게 과연 유태인 학살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죄책은 무엇으로 구성되나? 재판이 벌어지고 있는 예루살렘은 법적으로 아이히만을 처벌할 혹은 단죄할 권한을 갖고 있나? 정의를 바로 세운다고 말하면서 '학살의 주요 책임자'를 납치해 와 법정에 세운 것은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나? 이 재판이 가진 의미들을 본질적인 부분부터 다시 살펴보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렌트는 이 재판이 '정의의 재판'이 될 수 없을 거라는 견해를 드러냅니다. 500만 명 이상이 학살당한 비극의 중요한 책임자를 처벌하는 재판인데? 전범재판에서 도망쳐 숨어 지내다 붙잡힌 인물을 단죄하는 재판인데? 이런 재판이 정의의 재판이 될 수 없다고? 한나 아렌트는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이 시도가 실제로는 정의롭지 않거나 가능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그 구도부터가 썩 정의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렌트는 이렇게 인간의 범죄를 단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며 악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이야기 시작합니다.


'in dubio pro reo(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로마법부터 이어온 법언입니다. 특히 근대법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는 더욱 중요해진 형사법의 근간입니다. 근대적 의미의 법체계는 사적구제나 사적자치를 금지합니다. 다툼이 있어도 잘못을 판정하고 벌을 정하는 것도 국가 할 일이고 책임을 따지는 것도 오로지 국가 만의 몫이라는 겁니다. 특히 형벌에 있어서는 국가 만이 공식적인 주체가 됩니다. 본질적으로 형벌은 인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실질적인 의미 폭력이자 법으로 허용되는 공식적인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형사법 집행에 섬세한 점검들과 보수적 판단이 요구되는 건 그 때문입니다. 전쟁범죄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이히만의 법정으로 돌아가보죠. '정의의 법정'은 아돌프 아이히만을 총 15가지 범죄로 기소된 범죄를 판정할 겁니다. 유태인에 대한 범죄, 인류에 대한 범죄, 나치스 통치기간 중 전쟁 범죄 등이 죄의 목록입니다. '죄'와 '악'은 다릅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무죄를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전쟁 기간 동안 벌어진 일이고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범죄가 된 행위들이기 때문입니다. 나치 치하에서는 이런 행위들은 정상적인 행위였기 때문에 오늘의 기준으로 당시를 판정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는 말도 합니다. 유태인으로 법정에 앉아 있다면 한숨이 쏟아질 이야기입니다. 2차 대전 후 전범재판에서 많은 전쟁 범죄자들은 비슷한 주장을 했습니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가 진실로 그렇게 믿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그런 아이히만을 그저 평범한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한 직장을 갖고 그러다 모든 사람이 가진 성공을 향한 어설픈 야심으로 간신히 찾아온 인맥으로 군대에 입대하고, 그러면서 중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 우리가 모든 조직과 집단에서 흔하지 발견할 수 있는 보통의 인물. 그는 도대체 어떻게 괴물이 되었을까요? 물론 이 질문은 후반에 이르면 잘못된 질문이었다는 게 밝혀집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감상은 총 3편에 걸쳐 이어집니다.

(2)에서는 아이히만이 어떻게 학살의 가담자가 되었고, '악'이 되어가는 지를 다룹니다.

(3)에서는 아이히만의 재판 결과, 그리고 아렌트의 이 책이 우리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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