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다만 시키는대로 따랐을 뿐.
아이히만은 어떻게 학살의 책임자가 됐을까요? 간단합니다. 평생 책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었던 아이히만이 우연히 읽게 된 시온주의 관련 서적 때문이었습니다. 아이히만은 시온주의 서적을 읽으면서 유대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처럼 보이게 됐고 어설프게 말할 수 있게 된 이디시어(동유럽 인근 유대인들이 쓰던 어어) 덕분에 유대인 전문가처럼 행세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공직사회에서 이런 일은 흔한 일입니다. 예컨대 국가가 여론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어떤 정책을 새롭게 입안하자고 하면 그 경험이 있었던 인물이 흔하게 부각되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그는 또 다른 관료제의 흔해빠진 보통 사람들처럼 그렇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들었고 자신이 가진 전문가 꼬리표를 최대한 부각해 보이려고 했어요. 그 덕분에(혹은 까닭에) 오스트리아에서 유대인을 수송하는 업무를 맡게 됐고, 그 경력이 2차 대전 중에는 '유대인 해결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했고 종전에는 악마가 되게 했습니다.
유태인에 대한 '최종해결'은 총 3개의 단계로 이뤄졌습니다. 첫 번째는 수송, 두 번째는 수용, 그리고 세 번째가 학살입니다. 아이히만이 재판에서 인정한 자신의 이른 바로 유태인을 수송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렌트는 이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정확하고 구체적인 단어나 섬세한 논리 대신 상투적인 표현을 썼다고 말해요. 지금도 공직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추상적 상투어는 사안의 본질을 가려놓습니다. 수송. 이 단어는 퍽 중립적으로 보입니다. 사실은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고향을 빼앗고 어딘가로 옮기는 것을 의미하고 그 전제 조전은 이들을 무국적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국적이 없는 경우에만 아무렇게나 수송하거나 수용하거나 학살할 수 있으니까요.
오스트리아에서 맡았던 학살의 프로세스는 유럽 전역으로 확대됩니다. 아이히만은 철저하고 냉정하게 숫자를 세요. 그리고 그런 노력들은 반제회의를 통해 본격화될 겁니다. 유럽 내의 유태인 수송 업무를 맡았던 아이히만은 자신이 유태인을 오히려 도우려 했다고 말합니다. 요컨대 이 유태인 전체를 마다가스카르 같은 곳으로 수송해 그들의 안전을 보호하려는 생각에 동참하려 들었다는 겁니다. 아이히만은 먼저 얻게 된 유태인, 시온주의자들과의 관계로 말미암아 오히려 '수송'이라는 업무를 통해 이들을 도울 수 있다고 여겼다는 겁니다. 한나 아렌트는 역사상 최악의 유태인 학살자가 그 스스로를 구원자로 말하는 순간이라고 썼습니다.
아이히만은 이후 테레지엔슈타트로 보내지는데 이는 곧 수송을 할 때보다 유태인의 관리에 있어 중요성이 떨어지는 일을 하게 됐다는 뜻입니다. 아이히만은 유럽 전역의 수백만의 유태인의 수송을 관리하던 일에서 자그마한 게토, 적십자사에게 공개되는 일종에 전시장 같은 게토를 관리하는 작은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이미 유태인들은 국적을 잃고 쫓겨났으며 재산은 모조리 빼앗긴 후였습니다. 물론 게토에 수용된 유태인들은 곧 죽음의 수용소와 가스실 학살이라는 비극을 겪을 예정이었죠. 겉으로는 작은 일처럼 보였지만 유럽 사회에 그들이 하는 학살 행위를 숨기기 위한 또 다른 전략적 선전 행위였고 아이히만은 이번에도 충실한 공무원으로서 성실성을 보여줍니다.
아이히만은 구태여 스스로 악마가 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전 유럽에서의 유태인 학살을 결정짓는 자리에서 관료들은 앞다퉈서 괴물이 되기를 선택했거든요. 이들 역시나 아이히만과 다를 바가 없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괴물이 되었다기보다는 양심이 마비되고 관료와 제도 속에서 또 다른 존재가 돼버린 것이죠. 오래도록 나치스 당직에 종사했고 나치스 정부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관여한 이들이 경쟁하듯 자기네들의 관할의 영역을 확대하고 중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나설수록 전유럽에서의 유태인 척결이라는 무시무시한 결정에 아이히만쯤은 나설 자리는 없었던 겁니다.
폭력을 통한 그러한 피투성이의 해결책'에 약간의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러한 의구심들이 이제는 사라지게 되었다. (중략) 이제는 히틀러뿐만 아니라 하이드리히와 '스핑크스' 뮐러뿐만 아니라, 친위대나 당뿐만 아니라, 착하고 연륜 있는 엘리트 공무원들이 이 '피투성이의'문제에서 주도권을 갖는 명예를 얻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본디오 빌라의 감정과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를 심판할 자가 누구인가 '이 문제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진'자가 누구인가? (같은 책, pp. 183~184)
반제 회의 얘기입니다. 여기에는 이 책이 전하는 어떤 핵심이 있습니다. 아이히만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 만큼의 생각 밖에 없는 특별하지 않은 인물인 그 자신이 상급자들이 그리고 선량한 사람들 마저도 동의한 결정들에 반박할 이유나 필요가 있을까요. 아이히만은 유럽 전역에서 수송하고 해결해야 할 유대인의 수를 정리하는 실무를 했지만 해결을 결정한 건 그 높으신 분들이었습니다.
아이히만은 이제 손을 씻은 본디오 빌라도가 됩니다. 게다가 아이히만이 있던 테레지엔슈타트에서는 유태인 스스로가 나서 장례식장으로 가는 수송 열차에 태울 인원들을 결정했습니다. 이미 명령은 확정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그가 거부한다고 해도 이 정책은 시도될 수밖에 없는 것이 됐다고 믿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유대인들 시온주의자들과 협력하기도 했던 아이히만은 이제 아무런 주저 없이 해결의 과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피할 수 없는 문장 중 하나를 옮겨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반복했다. "그 누구도 제게 와서 제가 의무를 수행하면서 한 어떤 일에 대해서 저를 책망한 적이 없었습니다. (중략) 그는 제게 와서 고통을 줄일 방도를 찾았습니다만 제가 그러한 직무를 수행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같은 책, p. 204)
믿을 수 없이 천박하고 견딜 수 없이 관료적인 이 태도는 정말이지 경악스러웠습니다. 그리고 한편에서 인간이란 존재, 집단과 공동체에 속한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한심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만들었기도 했습니다. 아이히만이 든 범죄에 협력하고 지속한 이유는 고작 이런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내게 멈추라고 하지 않았으니까 계속할 뿐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