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회사 생활을 접고 다시 출발선에 서기까지
10년, 정확하게는 9년 4개월 13일. 회사에서 보낸 시간은 충만했습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기뻤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게 기뻤습니다.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열심히, 열심히 일했습니다. 초과근무수당 같은 건 상관이 없었어요. 주당 100시간을 넘게 일하고 하루 16시간씩 일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좋았어요. 내가 하는 일이 이 세상과 회사와 동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나는 구렁텅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뒤늦게 인권변호사를 해보겠다고 로스쿨 시험 대열에 참여했는데 잘 안 됐죠. 인서울 대학이라 봐야 소위 서연고서성한 급이 아닌 데다 원체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학점도 그저 그랬어요. 하루 열 시간씩 책상에 앉아 있었지만 토익이나 리트 공부 보단 역사책과 철학책을 더 많이 읽었더랬습니다. 실패가 한해한해 쌓여갔고 벗들은 멀찍이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침에는 늘 욕을 하며 시작했고 종일 공부 후엔 술을 마셨습니다. 그렇게 4년을 지냈고, 서른 살이 넘었습니다.
그 무렵 만난 애인이 있었어요. 공부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너무 지쳤고 더는 용기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맛있는 밥을 먹이겠다는 다짐 했어요. 부모에게 사람 구실하는 아들이 되겠다는 마음만을 남겨 놓고 모든 것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나는 실패했다. 인권 변호사니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하겠다는 등 멋진 얘긴 더는 떠들지 않겠다. 그런 마음먹고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로스쿨 준비와, 곁들였던 사법시험 준비는 취업에 도움이 됐습니다. 적성시험은 대부분 한 번에 통과했고 면접에도 곧잘 올라갔습니다.
전년도 로스쿨 면접 때 "나올 만한데 전혀 준비가 안 된 주제"라 떨어진 바로 그 주제가 입사 시험에 나왔어요. 한중 FTA와 관련된 문제였어요. 로스쿨에서는 한중 FTA와 법률 시장 변화에 관해 물었죠. 저는 집에 와서 몇 시간이고 공부했습니다. 입사 시험 땐 한중 FTA와 중소기업 정책의 변화 그런 주제가 두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이 회사구나. 영어면접은 친구의 도움으로 석 장쯤 되는 스크립트를 통으로 외웠죠. 최종 면접땐 이제 됐으니 그만 말하라데요. 한 달 반 만에 광역자치단체 산하 공공기관에 취업했습니다.
이제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겠구나. 사람구실 하게 해 준 회사였습니다. 첫 월급으로 팀원들에게 커피를 돌렸어요. 같은 팀에 있던 파견직 컨설턴트 선생님은 직장생활 30년간 당신 같은 직원은 처음 본다고 대견스러워했죠. 그들 모두 내게 너무나 고마운 동료였습니다. 힘겹게 들어온 회사에서 첫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도와준 동료들이었어요. 실패와 좌절 끝에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습니다. 내게 회사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사람구실 하게 해 준 고마운 곳이었고, 일할 기회를 준 곳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을 하게 된 건 선배의 부탁 때문이었어요. 나는 학부 학생회장 이후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은 하지 않겠다 다짐했습니다. 당시 노조 지도부였던 첫 팀 사수와 회사에 관한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당시 내가 있던 회사의 노조는 전형적인 공기업 노조였습니다. 부패하고 무능하고 게으르고 이기적이었죠. 선배는 노조위원장이 되기로 결심했고 여러 명의 러닝메이트를 찾았어요. 내 사수는 순수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회사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했지만 동료들은 당신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어요. 거절 끝에 내 차례가 됐습니다.
노동조합을 시작하면서 내 생활은 급격하게 달라졌습니다. 하루 두세 번이면 그만인 미팅이 여덟 개, 아홉 개로 늘었고 퇴근 후에도 수십 통 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업무시간이 모자랐죠. 직장 생활을 선택하게 했던 애인과 헤어지고부터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됐습니다. 한 달에 350시간쯤 일하면 없던 알러지가 생깁니다. 경찰이며 검찰조사에, 지역 정치와 연결되는 일들도 생겼습니다. 3년에 걸쳐 300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정규직 전환하는 이슈를 다루기도 했고 주 52시간제 도입이 미치는 영향도 체감했습니다. 미투 열풍과 함께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진행해 몇몇 보직자들의 보직을 떼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위원장을 맡게 됐습니다. 나는 직을 던진 선배의 후임으로 위원장 대행으로써 일을 해나갔습니다. 밀렸던 숙제를 매듭지었습니다. 두 번째 단체협상을 끝냈고 전환노동자들의 처우문제도 공식화해야 했습니다. 저는 그때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반년의 위원장 대행을 마친 후 제자리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마 그때 돌아갔다면 지금에 와 퇴사를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배들과 동료들은 한번 더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긴 고민 끝에 정식으로 출마해 위원장에 당선됐습니다.
위원장 임기를 시작하면서 해야 할 일들이 있었습니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직원들이 인정받는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두 기관 출신으로 나눠진 노조를 통합하면 더는 할 일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기관 이전 이슈가 터졌습니다. 정치권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한 기관 이전 때문에 투쟁에 나서야 했습니다. 행정심판에 헌법소원까지 나섰던 투쟁의 시간은 많은 것을 가르쳐줬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비열한지, 언어가 얼마나 무용한 지, 믿음이란 얼마나 하찮거나 또는 소중한 지 같은 것들요.
힘들게 노조를 통합하고 정말로 저는 돌아올 자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 기관장 체제가 시작되고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그간의 노력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노력으로 힘겹게 얻은 것들을 사소하게 여기거나 본래 있던 것처럼 여기기도 했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지켜주려고 했던 직원들은 그 자신을 지키는 데에만 관심 있었습니다. 어제까지 나와 함께 하던 동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른 얼굴, 다른 목소리로 어제를 부정했습니다. 7년의 시간이 그리고 10년의 시간이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본래 조직이란 인간에게 맞지 않습니다. 홉스는 인간이 야만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집단과 조직을 만드는 이른바 사회계약을 체결한다고 했습니다.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고 권위와 위계가 형성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도는 다시 인간을 지배합니다. 놀랍게도 인간이 만든 제도, 인간을 지배하는 이 제도 속에서 인간은 끝없이 허약해져 갑니다. 실체도 구체도 아닌 조직과 제도는 그 자체로 권력이 됩니다. 인간은 신념이나 꿈같은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는 대신 조직의 논리와 집단의 언어 안에 자신을 사라지게 합니다.
현실세계에서는 막스 베버의 효율적 관료제와 인간을 소외시키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가 모두 작동합니다. 관료제와 자본주의 안에서 인간은 거의 언제나 한없이 나약하고 철저하게 비겁합니다. 나는 거기서 절망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내 소중한 젊음의 날들을 바쳐온 것인가. 지나 보니 조직이라는 것이, 특별히 한국의 조직이라는 것이 인간을 더욱 다치게 합니다. 또 지나 보니 인간이란 본래 그처럼 무참하고 비열하고 무책임하곤 합니다. 내 좌절의 시작과 끝이 거기 있습니다.
몇 차례 지나간 날들에 관해 쓰고 싶었습니다. 몇 번은 상처 입은 마음으로 더 나아가지 못해 멈췄고 몇 번은 누군가 음해로 쓸 마음이 들지 않아 그만뒀습니다. 여전히 지난 10년 혹은 7년의 기록은 나 자신과 같은 시간을 겪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책임과 성실의 가치를 비웃습니다. 조롱하는 자들에겐 배울 게 없습니다. 한 번도 뜨거워 본 적 없는 자들을 향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더 늦기 전에 한 번이라도 뜨거웠던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뜨거운 사람들, 마지막으로 뜨겁길 바라는 사람들을 향해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보려고 합니다.
한국사회의 조직과 공동체는 사람들을 상처 입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념과 꿈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이 있고, 일의 가치 나아가 더 나은 집단과 조직을 위해 더 많은 짐을 기꺼이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 혹은 그런 마음들이 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리고 오래도록 그들이 세상을 나아지게 했다는 희망을 나는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우리 모두가 매일매일 겪고 있는 직장의 일상, 우리 모두가 매일매일 견뎌내고 있는 직장의 이야기들을 해보겠습니다. 혹시 그 무렵 거기 있던 다른 사람이 보기에 왜곡된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고 법적 책임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건과 사실을 회피적으로 서술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