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직장 적응, 그리고 밥벌이의 고마움
처음 발령받은 팀은 사회적 경제 기업을 지원하는 부서였습니다. 전에 잠시 관련 업무를 했던 기억으로 희망 부서에 썼던 거죠. 기획실과 사회적 경제 파트를 지원했는데 팀장과 팀원의 이른바 '사랑의 작대기'가 일치해 사회적 경제 부서로 발령 났다는 뒷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부서는 각각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을 지원하는 업무를 했어요. 이때 지원이란 공간을 운영한다거나 교육이나 네트워크를 지원하고 컨설팅을 연결해주는 걸 말합니다. 당시부서는 시니어 3명을 비롯해 5년 차 미만의 임산부 2명, 10년 차가 안된 중간급이 1몀, 공무원 출신인 팀장과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른바 전문위원이란 이름으로 컨설턴트가 세분 있었습니다. 팀 구성이나 밸런스는 겉으로 봐선 좋았어요.
매일 새로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처음 들어가서 배운 건 복사와 스캔이었어요. 나보다 한 살 어렸던 성대 출신 선배는 출산을 앞두고 꾸역꾸역 수십 개 되는 기업 평가를 준비하고 있었죠. 뭔지 모르지만 일단 엄청나게 많은 양의 파일을 스캔하라고 했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전시 부스에 들어갈 입주기업을 평가하는 자료였습니다. 스테이플러를 떼도 되는지 한 번에 한 장씩만 스캔할 수 있는 건지 복합기 사용법을 전혀 몰라서 헤맸죠. 선배는 눈총을 줬어요. 이런 것도 못하냐. 맞아요. 고시공부를 하다 보면 사람이 한심해집니다. 신입 하나 잘못 들어오면 부서 분위기가 망가지잖아요. 복사기도 돌릴 줄 모르고 스캔도 하나 할 줄 모르는 데 나이는 많다고 하니 얼마나 '식겁'했을까요.
다음에 한 일은 출장비를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규정을 보면 출장비 기준이 있으니까 그 기준을 참고해서 적정하게 계산 됐는지 확인해 봐라." 부서 직원와 이른바 전문위원들의 출장비를 확인해야 했죠. 공공기관이라 출장비 청구가 잘못되면 나중에 감사로 다 토해내거든요. 잘못하면 징계도 받고요, 퇴사할 즈음엔 중징계 대상이 되기도 했죠. 일비는 사업장 소재했던 지자체 관내일 경우는 없고, 외부로 나가면 네 시간 미만은 만원, 네 시간 이상은 이만 원이었어요. 네 시간이 넘어야 밥값을 청구할 수 있어요. 밥값은 본부장 9천 원, 팀장 8천 원, 직원 7천 원. (나중엔 팀장 본부장만 입이냐고 바꿨는데 그 마저도 본부장 9천 원은 그대로 팀장, 팀원만 8천 원으로 정해졌습니다. 참 한심하죠.) 거기다 교통비는 자차로 가는 경우 km당 125원씩 기름값을 계상하고 대중교통으로 가면 첨부된 증빙에 따라 금액을 넣고. 별거 아니지만 귀찮고 이해해야 할 게 많은 일이었습니다.
출장시간은 대부분 4시간 이상이었고 위원들의 출장비는 척 봐도 많이 부풀려 보였습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파견직인 컨설턴트들의 인건비는 중간에 많이 떼가서 이렇게라도 보전을 해줘야 한다나요. 열심히는 했는데 처음 하는 일이라 어설펐던 모양입니다. 일을 맡긴 선배는 규정 제대로 안 보냐고. 스스로 크로스 체크 해보곤 저를 혼냈죠. 할 줄 아는게 없는 한심한 신입 직원입니다. 나중에 많은 신입들을 봤지만 처음엔 다 엉성해요. 본래 그렇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는 건 늘 어려운 일입니다.
4월 어느 날, 늘 하던 팀 회의에 긴장감이 돕니다. 워크숍을 간대요. 기업 관계자가 200명쯤 올 거고 우리의 갑인 상급기관을 비롯해 잘하면 기관장도 오신답니다. 담당자는 업무 분장표를 나눠주며 역할을 설명했죠. 보통 그 나이 또래 남자들이 하는 건 운전, 짐 나르기, 그리고 윗분 비위 맞주기와 기업인들 술상대입니다. 운전을 못했던 나는 눈치를 많이 받았죠. 그 나이에 남자가 면허도 없냐고요. 그 해에만 워크숍을 얼마나 갔는지. 상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무슨 협회 사람들이라 정치적인 목적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또 당시 팀장님이 사람 만나는 걸, 이런 데서 전문용어로 네트워크라는 걸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워크숍 첫날밤 선배와 했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내 사수는 (후에 노조위원장이 된) 술에 잔뜩 취해 말했죠. 네가 세상을 알아? 건방 떨지 마 인마. 그러게요. 그때는 잘 안다고 생각했던 세상을, 나이가 들고 직장생활을 해나갈수록 점점 모르게 됐습니다. 그러니 지금 나보다 직장경력이 적었던 당시의 그의 말이 맞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워크숍을 담당했던 선배가 '오십견'을 이유로 병가를 냈습니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 그녀는 팀을 옮기기 위해 수차례 인사팀에 민원을 전달했고 그게 안 되니 아프다며 팀장에게 딜을 걸었다는 겁니다. 지금 와서는 그들의 속사정 같은 건 생각하지 않을랍니다. 그냥 사람들이 다 그래요. 싫으면 피하고 싶고 괴로우면 도망치고 싶고요. 여하간 병가 운운하는 실랑이 팀이 어수선하던 차에 팀장은 내게 18년 차 그 선배가 맡은 업무를 지식했습니다. 회사는 일하려고 모인 곳이다. 네가 한 번 해봐라. 팀원들은 수군거리고 불편해했죠. 수습도 안 뗀 신입이 할 수 있겠냐. 당시 나는 분위기 모르고 팀장과 사수와 자주 술을 마시러 다녔는데 남은 시니어 그룹들이 그걸 탐탁지 않게 여겼어요. 거기다 신입이 일을 빼앗는 모양새처럼 됐으니 보기 좋지 않았을 겁니다.
선배는 병가를 가면서 소소한 일처리를 해놓으면 된다고 인수인계를 했어요. 나는 여러 일들을 해야했습니다. 예산은 크지 않았는데 잔가지가 많았어요. 무슨 포럼에, 회의에, 네트워크에. 교육에. 행정안전부에서 내려준 지침을 보면서 위원님들과 함께 200개쯤 되는 대상 기업에 대해 보고서를 썼고, 밀려 있던 잡무들을 처리했어요. 사실 그때 나는 그 일의 의미나 가치를 잘 몰랐어요. 어설프게 교육 운영하다가 기업인들한테 혼나기도 했죠. 재무교육을 해달라길래 세무사를 불러 줬더니 필요하건 나라에서 준 보조금을 기준에 맞게 정산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거였다는 말씀. 그래도 '내 일'이었습니다. 여름 내내 일주일씩 교육을 두 차례 꾸렸고 300명, 200명씩이 찾아왔죠.
두 달 뒤엔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어요. 팀장은 병가에서 복귀한 선배에게 출산휴가 들어간 주니어들이 하던 업무를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선배는 모멸감을 느꼈던 거 같아요. 2년 넘게 하던 업무인데 신입에게 일을 뺏기는 꼴이 됐고 거기다 후배들이 하던 업무를. 복귀한 선배와 친했던 팀 차석은 네가 물러나 줘야겠다고 넌지시 전했죠. 나는 좀 화가 났어요. 열심히 즐겁게 하고 있는데. 사수도 팀내 갈등을 정리하겠다고 내 업무를 조정한 버전의 인수인계서를 팀장에게 보냈어요. 출장에서 복귀한 팀장은 불같이 화를 냈죠. "업무분장은 팀장의 권한입니다." 당시 팀장님은 당신 선 안에서는 분명하고 냉정한 면이 있었죠. 지나고 보면 직원들이 당신의 권한을 침 하려 든다고 느낀 거 같아요.
그렇게 수습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법인카드를 잘못 긁어 이틀에 걸쳐 식당 영업시간에 찾아가 카드를 바꿔 긁은 일은 소소한 에피소드입니다. 도대체 사무실 화분에 물은 누가 주냐며 불호령을 내리시던 본부장님. 그 말을 듣고 아침 여덟 시쯤 출근하던 나는 매일 화분에 물을 줬어요. 다 죽어가던 화초는 생기를 찾았습니다. 당신이 챙겨야 할 업체를 못 챙겼다고 나이 40대 초반 누님들을 엉엉 울게 했던 우리 본부장님은, 당시 본부장 중 유일하게 여성이었습니다. 팀장님과 본부장님 갈등을 생각 안 하고 본부장님이 친한 업체를 행정안전부에 추천했다가 건물 입구에서 한 시간 반동안 선채로 혼난 일도 기억납니다. 흰 셔츠에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왜들 하나 같이 그렇게 구루마(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지도 알게 됐죠.
첫 달 봉급은 200만 원이 안 됐어요. 그 돈 중 100만 원을 쪼개 통장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첫 봉급으로 부모님에게 저녁을 샀고 애인과 밥을 먹었습니다. 팀원들에게 커피를 돌렸습니다. 한 달 동안 직장생활을 하게 도와준 분들이었거든요. 누구는 떨떠름해했지만 어느 위원님은 30년 직장생활 중에 당신 같은 사람 처음 본다고도 했죠. 내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사람 구실하게 해 준 회사였습니다. 직통노선이 없어서 출근까지 전철은 두 번울 갈아타고 또 거기서 버스를 타고 40분을 가야 했어요. 한 달 만에 7킬로가 넘게 빠졌죠. 그래도 좋았습니다. 매일 할 일이 있었고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해야할 일이 있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내 직장생활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