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1년차(1) : 수습 마감, 쉼 없는 1년

참 쉽지 않은 적응의 시간, 직장인이 되기까지

by 김E

끝없는 일정들, 끝없는 절차들


공공기관에 있으면 참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팀의 차석이 이른바 주간업무 보고라는 걸 쓰는데 다음 주 월요일 간부회의 때 쓸 걸 벌써 화요일부터 요구합니다. '취합'이란 걸 하고 나서 이제 내용을 물어봅니다. 업체수는 몇 개야, 그래서 이게 누가 온다고? 월간 업무 보고도 있어요. 그간 보고했던 걸 다시 월 기준으로 예쁘게 꾸며서 보고 하는 겁니다. 나는 2년 차부터 차석이 하는 대부분 업무를 맡았어요. 부서 평가, 주간/월간업무 보고 이런 것들요. 나중에야 이런 요식 행위들이 바로 '조직'이라는 것의 실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획부서고 인사부서고 감사실이고 내라는 것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땐 그 자료들이 무슨 의미였는지 모르고 툴툴거렸죠. 분기별로 예산집행현황을 엑셀에 내고 반기별로는 성과보고 자료를 한글문서로 냅니다.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이런 보고자료 놓고 팀장, 본부장들이 기를 쓰고 회의를 합니다. 내가 본부장에게 같은 자료로 제일 많이 불려 들어간 게 일곱 번이었습니다. 봉사활동 하나를 하는데도 부서별 기본계획, 부서별 세부 계획, 부서별 결과 보고도 냅니다. 그룹웨어에 잠긴 문서들의 번호와 사유를 낸 기억도 있습니다.


공공에서 문서로 일한다고 하죠? 맞습니다. 계획은 말할 것도 없고 진행경과도 문서로 남겨 놓습니다. 상급기관에서 기본계획을 내려주면(이 기본계획도 대부분은 내가 있던 기관처럼 산하기관에서 써요) 기본계획을 집행하기 위한 세부계획을 짭니다. 물론 그 계획은 기관장 결재를 받죠. 그걸 하나하나 집행해 가면서 기록을 남겨놓습니다. 뒤에 오는 사람이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일 수도 있고, 감사를 대비하기 위한 근거 일수도 있습니다. 임의적 의사결정이 아닌 결재라는 과정을 통해 정당성을 획득했다는 명분을 남기는 목적도 있죠.


신입 때 교육계획으로 사수랑 투닥거린 일이 있어요. 교육 담당 부서인 인사부서에서 교육 계획을 세우라는 문서가 날아왔습니다. 나는 사수에게 물었죠. 뭘 이런 걸 다 해요? 지난해부터 노조가 요구해서 하는 거야. 근데 왜 부담이 직원한테 가요? "...." 개념이 없었죠. 교육 담당자는 교육계획을 세웠을 거고 계획에 따라 전사(全社)에 공문을 보낸 거죠. 그리고 공문을 바탕으로 중간보고를 쓸 거고. 또 전사에서 자료를 받아 결과보고를 쓰겠죠. ERP나 시스템 등에 입력하게 하는 등의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겠지만 안 하더라고요.


끊임없이 날아드는 문서를 보면서 나는 이해가 잘 안 됐어요. 당시만 해도 벌써 20년이 다 돼 가는 기관인데 업무 프로세스가 왜 공유가 안 될까? 나라면 연 단위로 달력을 만들어서 이 시즌에 이 업무, 이 시즌엔 이 업무가 있다는 걸 전사에 공유할 거 같은데. 주니어를 벗어나면서 후배들에게 이런 불만들을 정리해 열심히 체계화해 가르쳤습니다. 1월엔 전년도 업무에 대한 BSC 보고를 쓰고, 2월에는 도의회 업무 보고와 기관장 업무 보고가 있고, 3월에는 회계감사용 결산자료 제출 이런 것들요. 노조를 하면서도 여러 번 제도적으로 해보려고 했는데 안 됐어요. 귀찮거든요. 뒤에서 다시 말하겠지만 공공에서는 90%의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일, 심지어 자기 일 조차 하지 않습니다. 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이건 뒤에 다시 다루겠습니다.


수습을 마치며


수습을 마치는 9월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우선 두 차례의 대규모 교육과 네 차례의 작은 교육을 운영했습니다. 교육을 하자면 적당한 일자를 정해 장소를 골라야 하고 강의에 맞는 강사진을 섭외하고 교육인원도 모집을 해야 합니다. 대규모 교육은 200~300명의 교육생이 참여하고 지침상 20시간 이상이 기본이라 3일간으로 구성했습니다. 하다못해 간식이나 정수기 렌탈도 해야 하고 명찰도 일일이 잘라야죠. 나중에야 기관 규모가 커지면서 대행을 맡기는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일들을 직접 수행해야 할 일들이었습니다. 작은 교육도 들어가는 품은 똑같습니다. 일자에 따라 장소를 섭외하고 강사를 부르고 명찰을 자르고 등등. 돌이켜 보면 낮은 연차에 이런 일들을 하나하나 직접 해본 건 도움이 많이 됐어요. 강사들이 보내온 교육자료를 일일이 읽어보는 것도 공부가 됐고요. 제일 좋았던 건, 기업들의 고맙다는 인사였습니다. 혼도 많이 났지만 내용이 알찼다, 도움이 됐다 이런 말들이 몸과 마음의 피로를 모두 녹게 했습니다.


200개 사가 넘은 관리 대상 기업들을 체크하는 두꺼운 보고서도 몇 편을 썼습니다. 학부 조사방법론 시간의 기억을 더듬었죠. 위원님들과 회의해서 설문지와 엑셀 쉬트르 만들었어요. 어느 위원님은 자길 노예 취급하는 거냐고 화도 내셨죠. 위원님들은 팀장에게 까지 신입이 무리한 걸 요구한다며 불편한 이야길 했답니다. '분기별로 모니터링'. 나는 지침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힘들게 어르신들을 설득했습니다. 이렇게 협상했습니다. 네 분이시니까, 40개씩만 한 달간 다녀오시고 엑셀만 채워주시면 보고서는 제가 다 만들겠습니다. SPSS를 돌리며 지료를 분석했고 첫 보고서가 나오자 위원님들은 더는 볼멘소릴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00개의 기업을 전부 면담하고 나니 기업들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습니다. 무엇보다 몇몇 기업들이 직접 찾아와 줘 고맙다고 한 말에 힘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세 권의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네 분 위원님들도 나중엔 내게 고맙다고 했어요. 네 덕분에 우리도 많은 공부를 했다고요. 부끄럽긴 하지만 이게 내 첫 직장생활 포트폴리오였습니다.


행정안전부로부터 사업을 평가 받기위한 보고서도 만들었습니다. 엉성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이야 사흘이면 만드는 50장 분량 보고서를 쓰느라 한 달을 끙끙거렸습니다. 그간 해온 업무성과를 체크하고 증빙을 맞추고 그럴싸한 스토리를 만들고. 오그라드는 발표자료도 만들었네요. 두달 가까이 거의 매일 야근을 했어요. 차가 없어서 집 방향이 같은 동료와 택시를 타고 가는 일이 잦았는데 보통을 열 시 반에서 열한 시 퇴근이었습니다. 광화문 청사에서 내가 만든 발표 자료로 내 팀장께서 발표를 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누구는 선배들 할 일을 떠맡은 것이다, 누구는 팀장이 널 이용한 거라 했지만 상관없었어요. 나는 나를 던져서 할 일이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일을 한다는 것


그해 10월 제주도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공공기관에 들어와서 나는 여름휴가라는 게 직장인들에게 중요한 행사란 걸 처음 알았어요. 내 부모는 1년 365일 심지어 명절에도 쉼 없이 일하던 분들이었거든요. 행정안전부 평가결과를 기다리는 대신 입사 8개월 만에 처음 제주도로 휴가를 떠나왔습니다. 팀장님은 흔쾌히 잘 다녀오라고 배웅해줬습니다. 제주도 길을 열심히 걷고 있었는데 세금계산서가 처리 안 됐다며 회계부서로부터 전화가 와 잔뜩 욕을 먹었네요. 여전히 엉성한 신입이었습니다.


20151017_154714.jpg?type=w3840 <직장생활 첫 휴가-함덕의 하늘과 바다>


전년도 17개 지자체 중 16위에서 11위. 평가결과는 제주도 어느 포구의 펜션에서 눈을 뜬 아침에 들었을 겁니다. 아쉽지만 내 노력도, 성과도 일단은 그만큼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래도 한 발짝은 나아갔으니까요. 나는 그해 제주에서 많이 걸었고 바다와 햇빛을 봤습니다.


제주도에 다녀와서 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흘 내내, 나는 태양을 좇았다. 좇은 적은 없으나 또 뜨고 또 지기를 반복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저 멀리 햇살이 창쪽을 들이쳤고 나는 이상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내가 사는 곳은 지상, 육신이 발 딛는 공간이다. 그러나 바벨탑을 포기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지상으로부터 나는 다시 탑을 쌓을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같은 공식은 마주해야 할 숙제들 앞에서 결정할 일이다. 우선 중한 것은 오르는 것이고 오르는 만큼 오르는 것이다. 무너지면 다시 세우고 또 무너지면 더 단단하게 쌓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더 높은 탑을 쌓자고 벽돌을 모으고 기둥을 떠받칠지도 모를 일이다.


직장인이 된다는 건 보통사람이란 걸 받아들이는 과정이자 사회의 일부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린 모두 보통 사람들이죠. 개별적으로는 특별하지만 대부분은 뻔한. 그런데 그 보통의 사람들이 모이면 세상은 조금씩 나아집니다. 나는 그것을 오래도록 믿었고 여전히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내 일도 그런 보통의 존재들이 하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내 일은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열심을 다하면 조금씩 나아진다고 믿을 수 있는 그런 일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하는 '일'의 어딘가에 작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일'을 하면서 수년간의 좌절 끝에 간신히 희망의 가능성을 조금 찾은 겁니다.


나락으로 떨어졌던 인생이었습니다. 나는 나아지고 있었을까. 입사 첫해, 나는 분명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뿌리가 뽑히고 꿈이 사라진, 청춘이 끝난 후였습니다. 1년의 직장생활을 보내며, 나는 내가 어딘가 혹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겨우겨우 조금씩 믿을 수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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