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눈에 비친 공기관 노조 지도부의 첫 얼굴
입사 첫해 일주일간의 OT 중 마지막 날은 노조 지도부와의 대면 자리가 준비돼 있었습니다. 뉴스에서 보던 조끼 입고 머리끈 매고 투쟁하는 노조를 실제로 본다니. 기대는 금방 무너졌어요. 사무직, 거기다 공공조직 노조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다지 폭력적이지도 않고요. 그저 30대 중후반 형 누나들 뿐이었죠. 그날 나는 입사 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입직원 일곱 명을 앞에 두고 노조위원장이란 사람은 말합니다.
노조의 목표는 기간제를 조합에 받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명분은 낙하산 방지였습니다. 많은 낙하산들이 알바로, 계약직으로 입사해 정규직이 됐다. 기간제의 정규직 전환은 막은 제도로 상태다. 그럼에도 기간제는 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한다. 노조는 이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이런 논지였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람? 굳이 인권변호사를 꿈꿨다는 말까지 가지 않더라도 상식과 직관 수준으로 봐도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한국 노동구조에 대해 작은 지식이라도 있다면 정규직과 기간제로 나뉘어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는 건 많은 사람이 알 겁니다. 내 상식으로는 노동조합에게 기간제는 보호의 대상이지 배제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놀란 건 '깨어 있는 사람" 인양하던 꽤 많은 선배들도 오랫동안 기간제를 노조에 받아서는 안된다는 견해를 동의했습니다. 후에 다시 말하겠지만 기간제의 조합 가입 문제는 기관 통합 과정에서 복수노조가 탄생하는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OT가 끝나고 부서에 발령받았습니다. 휴가를 냈던 당시 노조 사무국장이 내 바로 옆자리였어요. 목요일 아침에 출근 후 그는 날 보자마자 욕설로 첫인사를 했어요. 노조 대면과 함께 이어진 점심시간에 일부러 건방을 좀 떨었거든요. 안 좋은 소문이 퍼졌을 겁니다. 나는 이후 사수가 되는 그 선배와 술자리와 밥자리서 무엇이 틀렸고 잘못된 건지를 계속해 설명했습니다. 그때마다 선배는 말했아요. 네가 아직 사회경험이 없어서 그래. 조직은 원래 그런 거야. 노조도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나는 말했습니다. 틀린 건 틀린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입니다.
6개월 간의 수습이 끝나고 나는 노조에 가입했습니다. 나는 조합원 자격과 함께 얻게 된 노조 게시판 작성 권한을 활용했어요. 단체협상을 했다면 그 내용을 조합원에게 공유하는 게 조합원에 대한 의무 아닌가. 그토록 중요한 협상을 진행했다면 협상의 내용과 절차, 달라진 내용을 설명하는 건 기본 중에 기본 아니냐. 입사한 지 8개월 밖에 안 된 내 게시글에는 수십 개 댓글이 달렸습니다. 익명게시판에 실명으로 쓴 게시글에는 평소 노조에 대한 불만들이 댓글로 표출됐습니다. 회계장부는 왜 공개하지 않느냐, 소통 좀 하시라. 노조 지도부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댓글도 달렸습니다. 직접 찾아오라, 조합원에게 일일이 설명할 의무가 없다.
나는 반박했습니다. 하물며 요즘은 대학교도 이 정도는 아닙니다. 내가 졸업하던 무렵 대학은 운동권이 물러나 총학생회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법이 등록금 투쟁이 전부가 되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도덕성을 보여주기 위해 회계장부를 공개하고 상향식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도입하기도 했죠. 내가 학부회장을 하던 때도 싸이월드 클럽과 네이버 블로그로 학생회 회계 집행내역을 공개했어요. 그런 대학생활을 마치고 도착한 회사였습니다. 회계장부 공개는 말할 것도 없었어요. 규약이며 조합원 공개 같은 법률이 정한 의무 사항도 준수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소통이나 정보공개 요구 등은 간부진의 많은 업무량, 조합원들을 위하는 바쁘신 일정, 사측과 협상전략 등의 사정으로 무시되고 있었습니다.
후에 밝혀지지만 이들은 연말정산 세액 공제액을 자기네들끼리 나눠 가지거나 조합비로 술을 먹고 다녔습니다. 비공식적 관행으로 조합원들의 이익을 착복했다는 추정은 더 많죠. 그들은 게으르고 부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공공기관에 들어오게 되는 여리고 착한 사람들 다루는 방법을 알았고 인간과 권리에 대한 근본적인 존중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조직을 운영하면서 민주주의와 민주적 제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후에 내가 본 많은 다른 노조나 조직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온라인상 몇 번의 다툼은 오프라인 설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입사한 지 9개월 밖에 안된 신입이었던 나는 조합 총회에서 발언권을 얻었습니다. 나 또한 조합비를 내는 조합원으로서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조합원의 총의로 작동되는 노동조합의 근본적인 원리입니다. 단체협약부터 임금협상의 정보 공유는 물론 조합 운영에 있어 부실한 민주성을 공격했습니다. 위원장은 후에 몇 차례 더 듣게 되는 말을 했죠.
일개 노조원에게 답할 의무가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성경의 말입니다. 노조는 말 그대로 노동조합입니다. 조합원의 총합이 조합입니다. 일개 조합원이라고? 상상을 뛰어넘는 무지였어요. 나는 총회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이제 나는 건방지고 되바라진 신입사원이 돼 있었습니다. 옆 부서의 직원들 중 어떤 사람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갔고 바로 전날까지 담배를 피우며 직장생활이 어쩌고 대단한 어른 흉내를 내던 누구는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진 노조 회식 자리에 나는 참가하지 않았어요. 그날 나는 외롭다고 일기에 썼습니다.
입사 첫해 연말 회식. 당시 전 직원이 150여 명 밖에 안 되던 그 무렵 나는 참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누구는 호의를 표했고 누구는 응원을 말했지만 대부분은 비난과 조롱이었습니다. 거의 서른 명쯤 됐을까요? 술에 취해 내가 있던 테이블에 와서 네가 걔냐? 잘 알지도 못하는 게 까분다. 네가 그렇게 잘났느냐가 골자였습니다. 누구는 헤드락을 걸었고 누구는 담배 피우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갔죠. 너 역시 다른 데 못 가서 여기 와있으면서 잘난 체 하지마라도 있었네요. 나는 후배에게 저런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죠. 사수 형님에겐 부사수 관리 똑바로 하라는 또 다른 내리 까임이 이어졌답니다.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하는 게 뭐가 문제인지. 너무 오래 골방에 처박혀 책과 씨름을 하느라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을 잊었나.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겁니다. 내게는 학자들이 켜켜이 쌓아 올린 정치와 법률 이론이 있었습니다.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절차와 위계, 그것들이 규범력이 어디서 확정되는지 같은 것들. 현대 민주주의제도가 발전 돼온 방향과 경향, 제도들의 근간이 되는 이론들이 가리키는 곳은 모두 한 곳이었습니다. 노조는 약한 사람의 편을 드는 조직이어야 합니다. 그게 노동조합이 생겨난 이유이고 연대라는 것을 해야 할 이유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옳다'는 것은 현실세계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조직 속의 사람들은 옳은 일보다는 윗사람이 바라는 일, 조직의 일을 옳은 일로 여기게 되는 법이니까요.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아닌 걸맞다고 할 만한 용기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구실 하게 해 준 고마운 회사. 작은 성취와 고마운 사람들 옆에서 나는 또 다른 생각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입사 첫해를 마치면서 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한해를 맺으면서 나 자신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한 가지,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가치들을 반성과 성찰의 부재로, 게으름과 일상에 쫓겨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의 본성이 퍽 의롭고 또 선량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의 출발점은 바로 그런 인식이다. 나는 비겁하고 또 연약하다. 타고 나길 강인한 사람으로 태어나지를 못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 싸워야 한다. 끝도 없이 부딪쳐야 한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고 기어코 그른 것은 그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