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부터 회사는 시끌벅적했습니다. 대규모 기관 통폐합이 시작된다는 뉴스가 대대적으로 나왔죠. 공공기관은 대부분 매일 자기네 기관이나 상급 기관이 언급된 보도자료를 스크랩해요. 보도자료로 접했을 때는 이미 여러 물밑작업이나 어르신들의 사정들이 진행된 경우가 많죠. 호랑이 같던 우리 본부장님은 팀장들을 불러놓고 화를 잔뜩 냈습니다. 우리가 뭘 했는데 통폐합 대상이 되는거냐. 기관들 끼리 모인 회의에 가서 난리를 치고 왔다는 게 골자였습니다. 퇴사하기까지 내 조직 생활에서 커다란 상처이자 가르침을 줬던 통폐합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기관 통폐합과 관련해 한 두달에 한번씩 보도자료가 나왔습니다. 모 기관은 상급기관 앞에 가서 시위를 하고 모 기관은 자기네들과 연결돼 있는 전문가들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상스럽게도 통폐합의 중요한 대상이 된 우리 기관은 잠잠했어요. 막내 직원이던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여기저기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얘기는 없었습니다. 노동조합에도 물었지만 답이 없었습니다. 내가 속해 있던 기관이 다른 기관을 합병하는 형태가 될 거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둥의 이야기 따위가 돌았을 뿐입니다.
나는 가만 있지 않기로 했습니다. 노조 규약의 긴급 총회 개최 또는 탄핵 등의 내용을 살펴 봤습니다. 이미 1년 차때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조합 총회 때 난리를 부려 유명세를 얻었지만 들어온지 만 1년 밖에 안 된 직원이 뭘할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 지난해 그 난리를 보며 나를 유심히 보던 선배들이 있었는지 같이 해보자며 힘을 더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노조 총회를 개최한다는 게시글을 인트라넷 올라 왔습니다. (당시는 노조 단톡방도 없던 무렵입니다. 노조 단톡방은 후에 내가 집행부에 들어가서야 만들게 됐습니다.) 아마 탄핵이며 총회 요구라는 소문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던 모양입니다.
총회에 참석해서 나는 따지듯 물었습니다. "조직 통폐합이 되는 겁니까 안 되는 겁니까?"
노조위원장은 답 합니다. "통합은 없다"
나는 물었습니다. "뭘 근거로 그걸 자신 합니까?"
노조 위원장은 답합니다. "내 감에 따르면 그렇다"
다시 나는 묻습니다. "위원장님 감을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믿을 만한 근거를 대십시요"
노조위원장이 답합니다. "일개 노조원에게 답할 이유는 없다"
거기서 나는 더는 이야기를 덧붙일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결사체 입니다. 한명 한명이 부분집합을 이뤄 전체가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한명 한명의 조합원이 절대적으로 소중한 게 노동조합이라는 집단입니다. 일개 노조원이라구요? 이런 종류의 대답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들은 근본적으로 노동조합이라고 하는 집단의 본질과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에게 직원을 지키고 회사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은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지금이라면 나는 후속 조치를 밀고 나갔을 겁니다. 탄핵을 하고 조합 집행부 해산을 시도 했을 겁니다. 그치만 그무렵 나는 고작 입사한 지 만 1년이 조금 넘은 여전히 신입직원이었고 전체 조직원 중에 마지막 공채로 들어온 직원이었습니다. 선배들 입장에서는 어린 놈이 까분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실제로 전년도에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는 '다구리'를 당했잖아요. 선배들이 내가 앉은 테이블에 몰려와서, 네가 걔냐, 네가 그렇게 잘났냐 헤드락을 걸면서 야 너만 잘난거 아냐 운운. 그들에게는 내게 이해할 수 없는 불순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이켜 보면 바로 그 불순물이었던 탓으로 나는 그 회사를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고 또 그 회사에서 떠나야 했습니다.
총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에 남아 있었는지 중간에 박차고 나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후로 회사는 본격적으로 통폐합을 밀어붙이기 시작합니다. 그룹웨어에 공지사항으로 통합 일정을 공지 했고 급여 체계, 직급 체계 들을 정리하기 시작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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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시 내 나이또래 젊은 직원들, 내가 퇴사할 무렵쯤 초임 팀장들이 되는 그들과 함께 총대를 메고 다시 한번 노조와 붙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모든 공공기관에 연봉제라는게 도입 됐습니다. 각종 수당들이 정리 되고 연봉제 형태로 바뀌었죠. 그러면서 상위 직급은 가족수당을 비롯해 온갖 수당을 기본급에 녹여내면서 급여를 올렸고 하위 직급들은 최저임금에 준하는 수준에서 급여를 상승을 제한했습니다. 신입직원들은 아직 입사하지 않았고 하위직급들은 목소리가 약했으니까요. 덕분에 외부에 보이기에 평균 급여 테이블을 낮게 설정할 수 있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첫해 내 총급여는 인센티브가 없고 2개월 분이 빠져 있었지만 다해서 2000만원을 간신히 넘었습니다. '이 회사에서 가장 낮은 호봉을 받고 있는 저지만 이란' 말이 내가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도입부 이곤 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후배들의 급여 체계를 바로 잡자고 6급과 7급들이 나섰습니다. 통폐합 대상이 된 기관은 4급 체계 였거든요. 저쪽은 한직급을 내려 5급으로 이쪽은 두직급을 합쳐 5급으로. 이러면서 급여 테이블을 조정하는 작업이 있었습니다. 나는 새벽 네시에 나와 문서를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내 나이 또래 선배들과 함께 우리 측 의견을 취합했습니다. 노조는 반대 했어요. 급여 역전이 일어난다는 둥. 이런 논리. 나는 이번에도 싸움을 주도 했습니다. 당시 노조위원장은 사실상 궐위였습니다. 후에 밝혀지지만 그는 군 면탈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는 재판에 나가는 상황이었고 직원들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런 사람들이 노조라는 걸 하는구나. 뉴스에서 보던 머리에 띠를 메고 싸움을 하는 사람들의 실체가 저런 무책임하고 자기네들 기득권을 지키는 것 말고는 무엇도 하지 않는 자들이었구나. 나는 오랜 백수 시간 동안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마르크스도 읽었고 토크빌과 조르주 소렐도 읽었습니다. 20세기 초기에 벌써 프랑스에서는 주 5일제를 위해 투쟁했고 미국에선 1950년대 경찰 노조 가입을 놓고 첨예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내 앞에 놓여있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는 반역사적이고 비합리적이었습니다. 고작 150명 밖에 안 되는 작은 조직인데, 노조라는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뭘 하는지도 모르고 있구나.
이런 게 사회인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던 한해 였습니다.
그리고 그해를 마치며 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제 안다. 복마전의 바보들의 싸움이다. 아니 보통 사람들이 다 바보다. 그러니 꼭 그정도 세계에서 진실을 찾아 헤다. 매일매일이 복마전이다. 사실들의 다툼은 사라지고 논리의 다툼들이 아귀싸움의 근본이 된다. 물론 여기서도 논리의 정밀함이랄지 합리성이 우선시 되지 않는다. 지지할 만한 논리와 그렇지 않은 논리들만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할 뿐이다. 참으로 답답하다. 나는 언제나 우리 회사가 대한민국의 절단면이라고 말했다. 꼭 그렇다. 학부때 내가 느낀 부채감은, 그래서 생긴 상처는, 내 신념과 태도를 흠집내고 내가 살아온 모든 방식을 되돌아보게 했던 그 느낌의 본질은 내가 누군가를 상처 입혔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정확하게 만날 수 없는 다른 방향으로 상처 입고 있다. 그들이 나를 상처 입힐 수 없다는 사실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