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암 오토 캠핑장

피안재의 (소박한 캠핑)

by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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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캠핑을 떠올리게 되면 늘 나는 내 자신의 엉뚱한 어떤 기준에 실소를 멈추지 못하곤 한다.

왜 송계계곡은 이웃집으로 마실을 가는 것처럼만 느껴지고, 선암계곡은 따로 준비해서 캠핑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다 거기가 거기같은 월악산 둘레인데 말이다.

충주에서 주변의 산자락을 비켜 동쪽을 바라보면 멀리 월악산 영봉이 보인다.

우리 아파트를 출발해 송계계곡의 상류 초입이랄 수 있는 미륵리 까지는 약 22km 정도 된다. 지금이야 길이 워낙 좋아졌으니 22km이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송계 계곡에 접근할 수 있는 도로가 아예 없었던 오지중의 오지였다. 하루에 두 번 정도 멀리 덕산을 돌아서 완행버스가 그나마 송계에 닿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월악산 인근의 지형이 크게 변했고, 수몰된 한수지역의 이주민들이 대거 송계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생기고 도로가 개설되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거기에다 시대의 흐름과 변화로 여행과 레저가 대세가 되면서 어느 시점부터인가 각광받는 유명 여행지이자 휴양지로 변모하였던 것이다.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도착해 온달장군의 전설이 서려있는 미륵사지를 둘러보고 계곡의 물줄기를 따라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매우 차가운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만수골을 만나게 된다. 여기까지가 충주시의 관할영역이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거기부터는 이제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그러니까 월악산 국립공원의 닷돈재. 덕주. 송계. 용하 야영장은 모두 제천시 지방자치단체 관할인 것이다. 국도 36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한참을 달리다 보면 점차 강원도를 연상시키는 풍광이 펼쳐지고 옥순봉과 구담봉을 지나면서 장회나루 선착장 못 미쳐 장회교를 건너면서 부터는 단양군 단성면에 속하게 된다. 조금 더 전진하면 우측으로 아주 깊은 골짜기가 시작되는데 이곳이 바로 선암계곡이다. 이곳 역시 월악산 국립공원 관할지역이고 보면, 선암계곡이나 송계계곡이나 같은 월악산 줄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왜 송계계곡은 캠핑 여행 같은 생각이 전혀 안 들고, 선암계곡에서는 캠핑을 떠나왔다 라고 생각되었던 것일까? 송계계곡은 25km 정도면 어디에든(용하구곡은 빼고) 텐트를 칠 수 있고, 선암계곡은 60~70km 정도를 가야 했는데...... 왜 가까운데 두고 굳이 죽어라 선암계곡을 찾아다녔을까?

나의 경우 고교 2학년 때부터 단독 캠핑을 시작했으니까 근 50년 가까운 캠핑 이력을 나름 갖춘 처지로 내가 가장 여러 번 텐트를 펼쳤던 최애 캠핑장은 선암계곡이 확실하다. 아마도 송계계곡은 거기의 절반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아들과의 캠핑 추억도 선암계곡이 월등하다. 다음으로는 송계계곡보다 오히려 지리산 달궁계곡 쪽이 더 많은 추억이 서려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 송계계곡은 나의 추억이 일부러 밀어낸 것이 아니었을까?


캠핑에 관한한 가장 인상이 깊었고 가장 크게 추억으로 내 가슴에 새겨진 장소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충주댐에 수몰되어 버렸다.

어린 시절 월악산 일대(송계계곡)는 오지중의 오지로 덕산을 삥 돌아서 1박2일을 잡고 부친께서 사냥을 다니시던 사냥터였다. 길도 차편도 없었다.

그 시절 비포장 미루나무 가로수 길을 먼지를 홀라당 뒤집어쓰며 달리고 또 달리면 쉼메리. 무릉리(신당)가 나오고, 지금의 송계계곡 물이 흘러내려 남한강에 합쳐지는 용수께미 위로 버스 하나 겨우 지나가는 허술해 보이는 콘크리트 다리가 너른 하천 신당교를 가로지르며 설치되었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청풍군 한수면 역리로 행정구역이 중원군에서 제원군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 경계인 무릉천이 바로 내가 가슴에 새겨놓고 가장 그리워하는 추억의 캠핑장소다. 이름 그대로 그곳은 무릉도원이었다. 송계계곡에서 특급수가 개울 보다는 크고 넓고, 한강보다는 작고 좁게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신기하게도 그 개울은 웬만한 폭우에도 탁해지는 법이 없이 언제나 수정처럼 맑고 깨끗함을 유지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곳 일대는 커다란 평반석 몇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누군가가 일부러 잘 다듬어 깔아놓은 듯 몽돌 자갈밭이 펼쳐져 있었다. 맨발로 마구마구 뛰어다녀도 발바닥이 아픈 줄을 몰랐다. 거기에 바닥의 몽돌 숫자만큼이나 피라미와 꺽지 같은 물고기들이 바글바글 했다. 부친께서 그곳에서 내게 어항 놓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얇고 투명한 유리어항을 조심스레 꺼내들면 그 안에서 번쩍거리는 물고기들이 반사하는 빛의 향연을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아버지의 눈을 피해서 군용 A형 텐트를 꺼내 친구들과 그곳에서 한여름 천렵을 즐겼었다.

캠핑장비?

헐!!!!

군인집안이다 보니 군용 텐트는 항상 있었고, 반합이 있었고, 부친이 쓰시던 낚시용 카바이트 간드레와 아끼시던 스웨덴 석유버너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무릉이나 한수 사는 친구가 작은 솥을 꺼내오고, 감자를 가져오고 닭과 수박서리를 했다.

언젠가, 아주 오래전 오색약수 인근 캠핑에서 잠시 추억속의 무릉천의 추억 비슷한 경험을 해보기는 했지만......... 아마도 이젠 대한민국 그 어디에서도 그만한 천국(무릉도원)을 다시는 찾아보지 못할 것만 같다.


지금 나는 그 충주댐에 수몰되어 버린 추억을 회상하면서 36번 국도를 달려 장회나루를 지나 단양천(丹陽川)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송계계곡은 공이교를 건너면서 우측으로 힐끗 돌아본 것으로 그냥 패스해 버리고 말이다.

신선이 놀다가 올라갔다는 곳으로 우리도 잠시 신선이 되어보고 싶어서 오랫만에 다시 찾아왔다.

아홉 굽이에 신선들이 놀다간 자리가 셋이나 된다하여 ‘삼선’이란다.

그럼 여기가 모두 신선들의 경로당이란 말인가?

헐!!!!!!

그럼 모처럼 여기 어디에선가 썩은 도끼자루라도 찾아볼까?


그리고, 아무리 그렇기로....... 다음엔 송계계곡 캠핑도 한 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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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후였음 이련가? 캠핑장은 매우 한산했다.

하지만 저녁 무렵이 되면 달라지리라. 주말이 아닌가 말이다. 대부분 금요일 오후 퇴근을 하면서부터 부랴부랴 보따리들을 싸들고 캠핑장으로 몰려들 것이다.

오후 2시 체크인은 알고 있었지만 간혹 전일 캠핑객이 없으면 일찍 들여보내 준다기에 서둘러 찾아갔는데....... 거절되었다. 계곡 건너 공용주차장에 우리처럼 너무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는 차량들이 보였다. 하지만 친절한 여직원은....... ‘다음부터는 꼭 제시간에 맞추어 오세요. 시간 엄수가 계속 공문에 뜨고 있어요. 하지만 오늘만은 예외로 편의를 보아드리고 싶으니 십분 정도만 건너편 주차장에 계시다가 다시 오세요. 다른 분들도 있으니까요. 손님께서 그 분들에게 말씀 전해 주셔서 같이 오시면 십분 후에 체크 인 해 드릴께요.’

여행 중에 천사를 만나는 일은 드물지만, 혹여 만나게 된다면 그 감동은 이루설명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크고 귀하다. 그동안 우리는 참 많은 천사를 만난 행운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아니지. 요즘 들어서 챠밍여사가 왜 이렇게 너그럽지?

여기까지 오면서도 오늘 캠핑여행지가 단양지방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지 이곳인지 묻지도 않았었다. 또 이곳에 도착해서도 우리가 예약한 데크가 어딘지 묻지도 않는다.

뭐지 이건?

왠지 모르게 불안해 지는 이 느낌은 뭐지?

‘세리 할머니야. 우리 데크가 어딘지 안 궁금해?’

‘예약이 확인되어 허가받고 들어온 마당에 어딘가 있겠지 뭐. 아무렴 어때? 당신이 잘 해놨겠지.’

‘데크가 아니고 땅바닥이면 어떻게 하려고? 갑자기 집에 가자고 할까봐 겁나네?’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었잖아? 데크가 작으면 땅바닥도 어쩔 수 없는 거고..... 설치한 텐트 쳐들고 청옥산에서 큰 자리 찾아서 옮겨 다녀보기도 했잖아? 당신이 알아서 장비 잘 챙겼겠지. 아무 걱정 없어. 그나저나 이게 얼마만이야? 단 둘이만 이렇게 나온 것이?’

‘그것이 지금 걱정이여. 낼 새벽에 느닷없이 병아리들 데려 오라고 시킬까봐.’

‘그런 일 없어. 이번엔 절대 없어. 모처럼만에 할아버지랑 할머니만 달랑 있을 껴.’

‘데려오라고 해도 못 가. 장비도 간단하게 챙겨왔을 뿐더러 한참 옮겨야 해. 병아리들 데리고는 오르내리기도 힘들어. 위험하기도 하고.’

‘그럼 평지가 아니라는 말이네? 혹시 저 비탈에 매달린 저기야? 아이구야.’

‘응. 거기가 맞아.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야?’

‘최소한 나무 데크는 맞는 거지? 그게 다가 아니면 또 모?’

‘저기 산 구역에 데크가 네 개 있는데....... 세 개는 안전하게 나무 계단으로 되어있고, 하나는 석축처럼 그냥 이끼 낀 돌계단이야.’

‘그런데 모? 그럼 돌계단이 우리거란 말이네. 왜 하필 거기야? 병아리들 왔으면 큰일 날 뻔 했네? 애들이 저길 어떻게 오르내려?’

‘그래서 거듭 확인 했잖아? 정말 이번엔 병아리들 없이 가느냐고? 병아리들 왔으면 커다란 장비 죄다 들어 나르느라 죽을 뻔 했고, 오르내릴 때 마다 병아리 업어 나르느라 또 죽어나는 거지......... 그래도 할 수 있다고 난 각오했었어. 당신이 그렇게 결정을 안 한 것이지.’

‘저 정도 오르내리는 거야 하겠지만....... 왜 꼭 저기야?’

‘주말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라 포기했는데....... 빈자리가 생겼기에 저질렀고, 산 구역 4개중에 옆 텐트의 방해가 가장 적은 프라이빗 한 데크가 4번이라고 생각되어서...... 계단 문제는 감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프라이 빗은 개뿔....... 화장실이야 그렇다고 쳐도 밥하고 설거지 하는 수도 문제하고 짐을 다 나를 수 있겠어? 최대한 많이 확 줄이지?’

‘줄였어. 생각만큼 줄어들진 않았어도 크기가 팍 줄었어. 나 혼자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어. 그리고 다행으로 개별 수도가 산 구역엔 설치가 되어 있어. 올라가 봐야 알겠지만...... 여기 캠핑장에서 계단 문제만 해결할 자신이 있다면 아마도 최고의 장소가 바로 우리 데크라고 나는 판단했고 그래서 거기로 질렀어. 당신 허리 걱정만 안 된다면.’

‘호젓하고 전망은 끝내주겠네....... 무거운 것만 안 들면 오르내리는 정도는 문제없어.’

‘그건 내가 다 알아서 할게.’


‘그럼 아무 문제없는 거네. 뭐해. 당장 짐 안 나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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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캠핑이 대세였다.

캠핑 대중화는 장비의 고급화로 이어졌고 전국각지에 우후죽순으로 캠핑장들이 생겨났다. 그런 결과는 너무도 당연하게 고스란히 개미지옥(?)으로 이어졌고, 지금 사람들은 캠핑사업이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고들 이야기한다. 어쩌면 머지않아 다들 파리를 날리게 될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면 ‘진정한 캠퍼’만이 남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비용이나 장비 면에서 거의 아파트나 빌라 한 채를 들고 옮겨 다니는 듯 보이는 요즘 세대의 캠핑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해야할지........ ‘난 군용 텐트에다 엄마 몰래 냄비를 훔쳐 가지고 다녔다니까’하는 우리 초창기 세대로서는 도무지.........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랑 셋이서 치악산 구룡사를 지나 사다리병창을 올라 비로봉 바로 아래 약수터에서 비박을 함으로써 비로소 캠핑에 입문을 했다. 광목천으로 만든 카키색 군용 A형 텐트는 당시로는 천하무적 신형무기였지만 아쉽게도 그 여름의 치악산 정상에는 사나흘 온종일 비가 내렸다. 입석대로 하산하기 까지........ 비에 홀랑 젖은 막강 군용텐트의 놀라운 위용(?)은 세 청소년의 체력을 고갈 내 버리기에 너무도 충분했다. 거기다가 치악산의 이름에 왜 설악산. 월악산과 더불어 악(岳)자가 들어가는지 아는 사람은 그때의 고난이 어떤 것이었는지 충분히 더 공감이 될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스스로 캠퍼가 되었다.

때는 1977년 이었고 그해엔 레이프 개릿(Leif Garrett)의 <I Was Made for Dancing>이 한반도를 격하게 흔들어 대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레이프 개릿이 아닌 앤디 깁(Andy Gibb)의 <I Just Want To Be Your Everything>을 유독 좋아했던 그 해였지만 말이다. 나는 캠퍼가 되었고 팝 매니아가 되었다.

먹고 사느라 한동안 캠핑을 등한시 한 적은 있지만, 청소년 시기부터 이제까지 나는 여전히 버젓한 현역 캠퍼다. 대한민국 캠핑의 변천사는 곧 내 캠퍼로서의 이력과 많이 닮았다.


평소 나는 이런 말을 곧 잘 하고 다닌다.

대한민국 캠핑 대중화의 일등 공신은 (국립 자연휴양림)과 (농협 하나로 마트)라고 말이다. 이 땅에서 캠핑을 좀 했다고 하는 사람 중에서 (국립 자연휴양림)과 (농협 하나로 마트)의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자가용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 캠핑을 시작한 사람으로........ 언제나 신체의 한계를 번번이 실감할 정도의 짐을 바리바리 싸서 등에 짊어지고 양 손에 들고, 심지어 등의 배낭위로 텐트를 걸쳐 얹고서야 캠핑을 위해 집을 나서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의 경량화 된 장비도 없었고 침낭도 없었다. 모든 이의 선망이던 광목 군용 텐트의 무게는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비에 젖기라도 하면 그 순간부터 캠핑은 지옥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한손 가방엔 쌀이 들었고, 다른 손가방엔 감자와 호박과 통조림이 들었다. 등에 진 배낭 속의 석유통이 쏟아지기라도 하면 그 캠핑은 화생방 훈련으로 변한다. 그렇게 들고 메고 이고 한여름의 에어컨 없는 완행버스를 타거나, 서너 시간씩을 기다려 기차를 타고 중간에 또 기다려 환승을 해야만 했다. 기차역 담장에 텐트를 치고 자면서 기다리기도 했고, 정류장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태풍이나 한겨울 추위나 피로에 지쳐 쓰러질 지경이면 기차역 앞 아주 허름하다 못해 열악한 하숙집에서 개구리잠을 자기도 했다.

초창기의 캠퍼들은 다 그랬다. 그런 수고와 번거로움과 힘이 듦 또한 당연하게 캠핑의 일부였다.

내가 아는 캠퍼란 적어도 그런 추억 한 꾸러미쯤은 꿰고 있어야 진정한 캠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다가 80년대가 지나면서 자가용 대중화 시대가 도래 했다.

나 역시도 아주 일찍 자가용을 타게 된 부류에 속했다. 바리바리 지고 들고 이고 다니던 장비가 차에 실리는 아주 편리한 시대로 변해갔다. 초대형 아이스박스에 심지어 파라솔과 테이블가지 억지로 쑤셔 넣다시피 가지고 다녔다. 기아 자동차가 고객 관리 차원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 설치한 주문진 여름 오토캠핑장은 캠핑 문화의 신기원을 여는 새로운 장이었다. 제대로 된, 새로운 캠핑 장비들이 등장했고 쏟아져 나왔다.

아직도 기억되는 혁신적 장비는 코베아 가스 렌턴(지금도 여전히 보유중)과 코오롱 케빈 텐트로 많은 진한 추억을 그것들로 인해서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까지도 캠핑하면 여전히 노지 캠핑이었다. 흔한 말로 오늘날의 비박이 그 당시의 보편적인 캠핑이었다. 캠핑 사이트에 자동차가 가까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호사인 경우는 강변이 아니면 아주 드물었으니, 자가용으로 짐만 나를 수 있었을 뿐 문화 수준은 초창기와 별반 다르지 않는 노지 캠핑의 시대였다.

그때 내 캠핑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준 것이 바로 (국립 자연 휴양림) 이었다.

사방으로 여러 날 차를 끌고 노지 캠핑을 다니게 되면, 간혹 누군가가 심하게 감기나 몸살을 앓게 되거나 여름 태풍으로 캠핑을 지속하기가 힘든 상황을 만날 수 있다. 포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느냐, 아니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하느냐......... 그때 떠오른 것이 언젠가 신문과 잡지에서 읽었던 (자연 휴양림) 기사였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길을 묻고 또 물어서 처음 찾아간 곳이 바로 (천관산 자연 휴양림) 이었다. 찾아가서 문의를 하니 빈 숲속의 집을 내준다. 주방시설 있지, 화장실 있지, 샤워시설 있지, 티비까지....... 그야말로 천국이 아닌가? 그 다음해엔 같은 이유로 (남해 편백 휴양림)도 들렀고, 늦가을 캠핑 도중엔 가리왕산 이었든가? 이층 다락방이 있는 복층 구조 휴양림도 체험하였다.

불편하고 지치고 아쉬우면 언제나 휴양림으로........ 대한민국에 가장 경치 좋고 터가 좋은 명소에는 절(사찰)이 아니면 반듯이 자연 휴양림이 들어서 있다.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이요 도솔촌인 것이다.

아마도 그 시절이 나(우리 가족)의 캠핑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다가 얼씨구?

우리 고장에 (농협 하나로 마트)가 생겼다.

상당히 유익하고 편리하다 싶었더니 인근으로 여기저기 생겨나기 시작했다.

캠핑 여행지를 찾아 여기저기 떠다니는 곳곳에 언젠가부터 하나로 마트 간판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저기도 우리 동네 하나로 마트랑 똑 같은 건가?’하고 들여다보니....... 똑 같다. 어느 순간부터는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지 최소한 면 단위에는 하나로 마트가 최소한 하나씩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앗싸!!!!!!!

이젠 먹거리 살림 챙기고 싸느라고 쌩고생 할 필요가 모두 어디론가 날라 갔다. 먹는 고민 일체를 하지 마. 치솔 비누 빼먹고 와도 돼. 다 있어.

일단 무작정 떠나! 목적지 가장 가까운 하나로 마트만 들려. 한국사람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은 하나로 마트에 다 있어. 거기다가 싸고 품질이 좋은 것을 농협이 보장해 줘. 지역 특산물 코너까지 있어서 마트에서 수산물 회도 살 수 있어. 뭘 더 바래?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여행자와 캠핑의 천국이야!!!!! (자연 휴양림)과 (하나로 마트)만 가까이 있으면 다 돼. 퍼펙트야. 그냥 걱정을 붙들어 매. 지갑 들고 운전만 제대로 하면 돼.’


그랬다.

지구상 어디에도 이런 나라는 없다.

소문난 (자연 휴양림)과 (하나로 마트)가 거리상으로도 가깝다? 그럼 끝난거지? 그게 바로 '고생 끝, 행복 시작' 이라는 로또인 셈이라구.

그랬지........ 그때까지는 그랬는데.........

'캠핑의 대중화'가 그만 너무 빨리 찾아오고 말았다. 나와 우리 가족의 캠핑 시대를 누군가가 빼앗아 가기 시작했다.

'광클의 시대'가 올 줄을 내가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나는 겨우 기초적 디지털 시대를 아주 어렵게 어렵게 헤쳐나가고 있는 아나로그 시대에 속한 사람이었거늘........... 디지털 미워! 싫어!


캠핑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누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왔다.

'(15초 땡) 이라는 말을 아세요?'

'(광클) 해보신적 있으세요?'

'그게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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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집을 나서던 중에 챠밍여사가 충주에서 농협엘 들렀다가 가자고 한다.

‘가는 길에 수산 하나로 마트도 있고, 캠핑장 근처에 단성 하나로 마트도 있어. 주님(술)은 거기 가서 사면 될 텐데?’

‘아니야. 연수동 하나로 마트가 15년 되었다고 기념 세일 하고 있어. 나가서 먹으려면 삼겹살을 좀 사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

착한 하나로 마트는 전국 단위의 행사뿐만이 아니라 지역별 개별 마트별로 특별행사까지 따로 진행한다. 그러니 아니 들릴 수가 없고, 다 같은 하나로 마트라고 다 같은 혜택만 있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당연하게 들러 가기로 했다.

삼겹살을 샀다. 많이 샀다. 거의 40% 가까이 할인 행사를 했다. 모처럼 자연 속으로 나가는 마당에 이럼 안 먹을 수가 없잖아? 삼겹살 최고! 하나로 마트 최고!

소선암 오토 캠핑장 산 구역 4번 데크에 사이트 구축을 마치고....... 아주 쬐끔 늦은 점심을 먹는다. 상차림은 집에서 먹던 것으로 가져와 충분하고...... 삼겹살 파티는 거나하게. 그러고 보니 꾸준히 사용해 오던 그리들이 교체되고 새 후라이 팬이 등장했다. 내 애착 그리들 어디갔노? 와?

그리고 결과는....... 너무 많이 먹어서...... 선암계곡 산책을 나가기로......



아무 때고 그곳을 찾아가면 항상 빈 야영장이 있었고 숲속의 집이 있었고 휴양관이 있었다. 거기에다 비용도 공짜는 아니었지만 아주 저렴했다. 더할 나위가 없었고 말 그대로 금상첨화가 따로 없었다. 솔직하게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자면 완존(?) 진또배기 그 자체였다.

그러니 어찌 소문이 안날수가 있겠는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멋있고 좋은 숲을 골라서 나라에서 자연 휴양림을 지었는데, 결코 이름난 명승지 국보급 사찰 못지않다고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휴양림 숫자는 한정되어 있고, 그 안에 이용한 수 있는 시설(야영장. 숲속의 집. 휴양관) 또한 제한적인 마당에, 캠핑과 레저의 대중화 바람을 타고 이용하고자 하는 수요는 기하급수를 넘어서 빛의 속도로 증가했다. 난리가 나고 만 것이다.

그 시기 쯤에서부터 자연휴양림 사용이 점차 하늘의 별따기 식으로 무섭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딱 한 번을 도저히 예약을 할 수 없어서 동생의 대학동창이 있는 휴양림을 약간의 편법으로 얻어서 이용해 본 기억이 있다.

세상은 변했다. 시대가 변하고 제도도 변하고 시스템도 변해갔다.

자연스럽게 혹은 어쩔 수 없게........ 전자 시스템을 이용한 선착순 제도가 정착되었다.

그와 동시에 우리 가족의 캠핑 봄날은 서럽게 지고 말았다.(아!!!!! 옛날이여!!!!!!)


전자 시스템을 장착한 (자연 휴양림) 선착순 예약 제도는 현재....... 매주 수요일 오전 9시에 열리는 시스템 창을 통해서 예약이 가능하다. 특별히 마련한 소수의 이용자(장애인. 국가 유공자. 다가구 자녀)를 위해서는 매월 4일에 추첨제 신청을 받고 있다.

또한 어린이들의 방학을 전후하는 최고 성수기에 해당하는 특별 기간 또한 일정 접수 기간을 두고 신청을 받아 전자 시스템에 의한 추첨으로 이용자를 선정하고 있다.

추첨제야 어차피 운이거나 조상님 은덕이 필요하다고 해야 하겠다.

하지만 대다수 이용자들이 간절히 열망하고 있는 요기 선착순 제도에서 생겨난 신조어가 바로 ‘15초 땡’ 이며 ‘광클’인 것이다.

지극히 한정된 수백 개 내지는 몇 천개의 시설을 이용하기 위하여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의 신청자들이 동시에 몰려드는 것이다. 어쩌면 백만이 넘는 숫자가 매번 동시에 접속을 시도하고 빛의 속도로 클릭에 매진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수요일 오전 9시에 땡하고 시스템의 창이 열리면, 사용 신청 가능한 숫자의 최우선 접속자들이 단 15초 만에 모두 채워진다고 해서 ‘15초 땡’인 것이다. 이들 첫 접속자들이 어떤 과정이나 자신들의 요구에 모두 부합해 예약이 이루어진다면 16초 지나서 접속된 사람들은 모두 탈락된 것이다. 그들은 모두가 그 시기에 휴양림 이용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최첨단 기능을 갖춘 컴퓨터를 가지고 빛의 속도로 클릭에 성공해야만 가능하다고 해서 ‘광클’인 것이다. 이런 정도이기에 자연휴양림 예약에 대한 수많은 루머와 방법에 대한 특별한 방법들이 인터넷에 가득해졌을 정도이다. 기발한 방법들도 등장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소 일리 있게 들었던 이야기에는....... 주로 게임용으로 사용하는 최신 컴퓨터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아예 그 시간대에 맞추어 게임방을 찾아가 최신형 컴퓨터를 이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가족을 동반해 여러 명의 아이디로 여러 대의 컴퓨터를 동원하는 방법도 성황리에 적용되고 있다. 일단 접속을 해 놓았다가 오픈 30초 전부터 빛의 속도로 클릭을 계속하다보면 접속이 그나마 확률이 놓아진다고 한다.

나 역시 수도 없이 시도해 보았지만 언제나 당연하다 싶게 탈락했다. 내 딴에 광클릭을 했음에도 작은 쪽창에 나를 앞선 접속 대기자가 2947명이 대기 중이라고 떴다. 내가 택한 휴양림의 시설 전부를 합쳐도 채 200개가 안될 터인데 말이다. 그나마 그중에서도 특별히 인기 있는 시설이 따로 분명히 있고, 거기를 열망하는 접속자 수는 더 엄청날 터이니........ 그만 이쯤에서 꿈을 깨자. 나는 광클의 세대가 아니지 않은가? 돈으로 선착순의 불랙홀이라도 사지 않는다면......... 강릉 해변에서 내 이름이 새겨진 모래알을 찾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지 않겠는가?

그 와중에 딱 한 번 접속이 되었던 적이 있다.

내가 절차를 밟아 그 시설물 예약 등재를 마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신원 확인을 거쳐 다음 단계로 화면이 넘어가는 도중에 그만........ 내 컴퓨터 화면이 정지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는 꼼짝하지 않고 멈추어 서 버리고 말았다. 강제로 재부팅을 하기 까지 말이다. 재부팅을 겨우 해서 되돌아오니 화면은 첫 화면으로 돌아간 상태였고, 모든 시설의 예약은 이미 끝나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만든 용어가 ‘핏클’이다. ‘핏대를 극한까지 세우면서 클릭 지옥에 빠져 본 사람이 바로 나’라는 의미에서다. 그 후유증.......... 당연히 오래 남는다.

그래서 다시는 선착순에 매달리지 않는다. 차라리 안가고 말지. 기분 더러운 꼴은 다시 격고 싶지 않다. 선착순에 배반당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비수기에 편하게 가면 된다.

겨.울.캠.핑.이.면.어.때.남.들.과.따.로.놀.면.되.지.


아니면.........

다들 나처럼 ‘어줍’을 해 보시면 된다.

밀레는 <이삭줍기>를 남겼고, 나는 <어쩌다 줍기>를 택했다.

그냥 가고 싶은 몇 개의 휴양림을 선정해 놓고, 시간이 남거나 무료하다고 생각되면 심심하던 차에 가볍게 지나가는 행사치례처럼 (월간 예약 현황)을 슬쩍 슬쩍 들러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주 간혹........ 무수히 많은 예약자들 중에서 개인적 사정으로 부득불 예약 취소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거기에 이어지는 순서가 바로 ‘어줍’이 되는 것이다.

애초의 내 예약은 장소 시기 시설 모두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미 정해놓고 시도를 해 보는 것이지만, ‘어줍’은 쭈욱 둘러보다가 어쩌다 취소가 등장하면, 아주 짧은 시간에 내 처지나 상황을 취소된 상황에 맞출 수 있는지....... 그런 진행이 가능하겠는지를 판단 결정하고 나서 일단 무조건 내질러야만 하는 것이다. 길게 따지고 생각할 짬이 없다. 나와 같은 시선으로 이 타이밍을 이용해 클릭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다른 누군가가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줍’의 필수 최우선 덕목은........ 일단 무조건 내질러라. 그러고 나서 그 상황에 내 처지를 최대한 맞추도록 노력해라. 그랬음에도 도저히 아니라 판단되면......... 페널티를 먹기 전에 아무 때고 다시 취소를 해라. 아무런 손해도 없다. 그러면 다른 누군가가 다시 ‘어줍’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어차피 복불복이니 일단 저질러라!

바로 오늘 <소선암 오토 캠핑장>의 경우가 바로 ‘어줍’의 결과였으니 말이다.

수주대토(守株待兔)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 하노니, 현명한 캠퍼들이여 (어줍)에 관심을 갖자. 그 재미가 제법 쏠쏠 하느니라.


슬쩍 고백하노니........

7월 중에 삼봉 자연 휴양림에 내 이름으로 추첨제 신청 하나, 아내 이름으로 다른 날짜에 추첨제 신청 하나가 접수 되어있다. 되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고...... 되면 그 날짜에 다녀오고...... 아니면 또 ‘어줍’에 신경을 좀 더 쓰면 된다.

다음 주에 또 그 다음 기간 신청해 보고....... 우리 병아리들의 여름 방학이 다가오면 올수록 좀 더 노력을 해야만 하겠지만 말이다.

‘할망구야! 휴양림 데크 못 얻으면....... 우리 옛날처럼 적당한 노지 캠핑은 안 되겠니? 아들은 노지캠핑하면서 키웠는데....... 왜 손녀들은 노지가 절대 안된다고만 하는거니?’

‘한 번쯤 우리 아들 며느리도 끼워주면 안되겠니? 더 나이들기 전에 며느리하고 소맥 한 잔 하고 싶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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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 올려다보고 둘러보고 차근차근 살펴보아도..... 감히 자신 있게 호언장담하건데 ‘소선암 오토캠핑장’은 여름 캠핑의 최적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풍광이면 풍광, 물놀이면 물놀이, 시설이면 시설, 거기에 풍성한 나무 그늘까지 어느 하나 빠지거나 모자람이 없다. 첨부하여 산 구역에 대한 우려와 거부감을 제발 거두시라고 강력하게 당부 드리고 싶다. 그 중에서도 산 구역 4번 데크를 강력 추천 드리겠다. 지극히 내 주관적 생각과 판단이지만 말이다.

돌계단으로 짐 나르기야 잠시의 고난일 수 있겠지만, 캠핑을 끝내고 짐 꾸리기를 마친 그 순간까지 거듭 이어질 최고 캠핑의 감흥은 일상으로 돌아 간 그 다음까지도 한동안 은은하게 여운으로 남아 있을 것이며, 그것은 아마도 틀림없는 가슴 뿌듯한 감동일 테니 말이다. 나의 지금 글쓰기가 그 증인이 될 것이다.

소선암 오토캠핑장 최고 명당은....... 내가 또 다시 간다 해도 역시나 산 구역 4번 데크다.


단양천(丹陽川) 선암계곡 캠핑은 하나뿐인 아들과의 추억도 군데군데 많이 서려있는 감회가 정말로 새로운 지역이다. 여러 장소마다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참 많이 가족 캠핑을 이곳에서 즐겼었다. 아들이 청소년으로 자라나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푹 빠져서 ‘엄마 아빠만 다녀오세요. 친구들과 농구시합 나가기로 해서 연습해야 해요. 대신 친구들 우리집에 데려와서 지내도 되지요? 엄마 부탁이 있는데 냉장고나 가득 채워주시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하기 전까진 말이다.

우리아들(짱구)은 물을 유난히 좋아한다.

우리 손녀들이 왜 그토록 물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굳이 묻거나 따져볼 이유가 전혀 없을 정도다.

장맛비가 연일 내리고, 비바람이 거세고, 팔과 등에 오돌토돌 닭살이 돋아도 치아를 덕덕 거리면서도 계곡물에서 나오고 싶어 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냥 평범한 물놀이를 즐기지도 않는다. 바위 틈새로 급류가 흘러내리는 개골천에서 구명조끼도 없이 풍덩 뛰어내려 급류를 헤치며 타고 내려오는 조금 위험한 물놀이를 좋아하고 즐겼다. 평생동안 아들이 하나뿐이라고 특별히 애지중지 해 본적이 거의 없다. 그저 위험에 대한 사전 고지나 설명만 충분하다 싶으면 우리는 늘 상....... 하나뿐인 아들을 완전 방목하듯이 마냥 풀어놓아 주었다. 딱 선암계곡의 급류타기와 대학생 시절 오토바이를 타는 것만 빼고는 말 그대로 완전 방목이었다. 아들이 오토바이 탄다는 소리를 듣고 아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통사정을 했었다. ‘아빠가 제발 부탁할 테니 한 번만 들어줘라’라고 말이다. 우리 아들 그 다음 달에 제가 알바해서 샀던 오토바이를 손해보고 팔았다. 그랬었는데........ 아들 몰래 엄마 아빠가 베트남 가서 두 번씩이나 오토바이 신나게 타고 여행을 했다가 여행사진 때문에 아들에게 들키는 바람에....... 경을 치기도 했다.

소선암 오토캠핑장도 이용해 보았고, 바로 위쪽에 무료였던 자연발생 캠핑장도 아주 여러 번 이용했었다.

그래서 산책 나선 길에 자연발생 유원지 캠핑장에 들러 먼 옛날 추억을 떠올리며 둘러보았고, 조금 위쪽에 있는 하선암(下仙岩) 까지 둘러보았다.

자연발생 캠핑장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물가로 내려가는 철제 계단이 옛날에는 없었다. 아직은 성수기가 아니어서인지 딱 한 팀이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이제는 완전 공짜도 아니라고 한다. 마을 자치운영 위원회가 관리를 하고 있어서 텐트를 설치하고 있다 보면 저녁 무렵에 마을 어른들이 찾아와 청소 관리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사용료를 징수하신다고 한다.

이곳은 하천변의 강둑이 길고도 높고 반대편의 지방도로가 지대가 놓아서 여름에 폭우가 쏟아지면 침수되는 지역이 발생하는 캠핑장이다. 우리도 비슷한 경사면에 텐트를 설치했다가 배수로를 파느라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빛바랜 추억처럼 아직까지 남아있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하선암 지역이 나오는데....... 여기는 어른들 물놀이에는 약간 위험하기는 하지만 정말 좋은 장소임은 틀림없다. 사방으로 너른 바위가 널렸고 주변의 풍광이 아주 빼어나면서도 수량이 풍부한데 물살이 제법 거세다. 당연히 성수기에 사람들이 몰려들면 수영(물놀이) 금지구역으로 지정되는 장소이다.


이곳 단양군 단성면(丹城面) 대잠리(大岑里)에서 시작하여 가산리(佳山里)에 이르는 장장 10km에 이르는 골짜기를 선암(仙岩)계곡 이라 부른다. 월악산 자락을 스쳐간 수만 년 동안의 바람과 비가 골짜기를 파헤쳐 새하얀 백골의 바위 벼랑을 만들었고, 그 틈새를 파고 자라난 소나무 숲이 천하의 절경을 만들어 냈다. 여전히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자연의 교향악을 오늘도 무심한 듯 연주하고 있다.

계곡을 가르며 흘러내리는 물줄기 건너로 두악산(斗岳山), 덕절산(德節山), 도락산(道樂山)이 병풍처럼 이어지고, 이편으로 지방 도로를 따라 길게 사봉(沙峰)과 용두산(龍頭山)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곳 단양 지방에는 유독 조선시대 단양군수를 지냈던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에 대한 전설이 많이 전해 내려온다. 단양군수 재직 시기 관기 두향과의 러브 스토리는 시공을 초월하여 현재에서도 곧잘 화제에 오르기도 한다. 두 사람은 자주 옥순봉과 구담봉을 찾아 연정을 나누었다고 전해진다. 단양 곳곳에 그런 전설이 고루 서려있음은........ 이황이 군수직책은 소홀히 하면서 관기 두향과 사방 유랑을 다니면서 풍류를 즐겼음이 아닐런지 자못 궁금해 진다.

선암계곡을 돌아보고 사인암에 이르러 이황은 ‘신선이 노닐다 간 자리’ 라고 하여 이 일대를 ‘삼선구곡’(三仙九曲)’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아홉 굽이에 노닐다 간 신선이 셋으로, 삼선은 곧 하선암(下仙岩), 중선암(中仙岩), 상선암(上仙岩)을 가리킨다고 했다. 바로로 (단양 8경) 중에서 제 6경, 7경, 8경에 해당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상선암 바로 옆에 붙어있는 빼어난 절경의 산자락을 선생이 올라보고 나서는 ‘인생이란 아주 먼 길을 혼자 가야만 하는 오랜 여정이다. 그 먼 여정에 친한 벗이 하나 있어서 함께한다면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라는 뜻을 담아 도락산(道樂山) 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은 나름의 운치와 이곳을 찾았던 문인들의 옛 이아기가 가득 서려있으나, 이미 널리 알려졌고, 또한 지면 관계상 이번 여행에서는 모두 생략하고 이대로 무심히 지나기로 해야만 하겠다.


하선암에서 중선암에 이르는 계곡 길은 꽤나 멀리 뚝 떨어져 있다.

한참을 꾸불꾸불 거슬러 올라가 사인암으로 갈라져 나가는 가산리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휘감아 돌아서 한참을 올라가야 마침내 중선암이 나타난다. 중선암을 골짜기 산자락 저만치 아래 있어서 길에서 보이지는 않고 한참을 돌아서 출렁다리를 건너 내려가야만 볼 수 있다. 옛날 도락산장의 자리에 휴게소가 있고 유료 주차장이 있다.

아주 먼 옛날 이곳에서 캠핑을 즐겼었고, 도락 산장을 여러 번 이용했었다. 처음 설치된 출렁다리가 태풍으로 골짜기 물이 넘쳐서 부서지고 휩쓸린 사고가 있던 날 밤에도 나는 그곳에 머물렀었다. 노부부가 산장을 운영하셨는데, 어느 날인가 노년의 할머니가 미각을 잃으셔서 음식이 온통 소금사태인 이후로 숙박만 허용했다가, 딸 사위에게 운영을 맡겼다가....... 그 후론 소식을 모르게 되고 말았다. 사연이 많이 담겼던 도락 산장이었는데........

그렇게 중선암을 지나 한참을 오르다 보면 길 양쪽으로 낙락장소의 숲이 빼곡하고 계곡으로 흔들바위만한 너럭지대가 나타나는데........ 우리아들 짱구의 최애 캠핑장소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이름 하여 그곳을 사람들은 솔밭이라고 불렀다. 숲속까지 합치면 대략 텐트 20개는 설치할만한 장소가 그곳에 있었다. 정말로 선암계곡을 웬만큼 아는 사람만 알고 찾아온다는 명소 중에 명소였다. 길 건너로 현대식 화장실이 설치된 선암계곡을 통털어 최고의 물놀이 장소였다. 물론 아이들을 동반할 수 있는 얕은 물놀이장은 아니다. 커다란 바위사이로 세차게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급류타기 명소였고, 깊은 수심 아래로 온갖 커다란 물고기들이 천지였다. 낚시도 하고 고기잡이 그물을 치기도 했다. 아들 짱구가 가장 좋아하는 물놀이장이 바로 이곳이었다.

아들과의 아련한 선암계곡의 추억은 대부분 이곳 솔밭과 도락산 등산이 아니었을까 싶고, 지금도 눈을 감으면 파노라마처럼 선명하게 스쳐 지나간다. 그 추억 속에는 귀엽고 잘생긴 소년이 하나 나타나 아빠에게 환한 미소를 보내오고 있다. 멋진 녀석...... 보고 싶다.

'녀석 참 누구를 많이도 닮았네.'

아쉽게도 훗날 하천 재정비와 국립공원 관리 지침에 의하여 이곳 솔밭 캠핑장은 폐쇄되었도 소나무가 그 자리에 심어졌다. 화장실도 철거되었다.

그저 아련한 기억속에 그 옛날의 추억들이 그리울 따름이다. 아들은 이곳에 서린 우리 가족의 추억을 기억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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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다.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여유야? 참 오래만이다. 당신은 안 그래?’

이 할망구가 시방........ 뭔 이야기를 더 하려고 이러는 거지?

할망구야. 너는 아니? 이건 배신이야. 배신.

당신이 지금..... 태리 세리를 두고 이렇게 마냥 좋아해도 되는 거니? 당신 이런 할머니 아니었잖아?

내가 그렇게 병아리들을 데려오고 싶다고 언질을 해주었음에도 단오하게 거절해 놓고는...... 지금 입가에 묘한 웃음이 실실 터져 나오고 있으니 이럴수가 있니? 헐!!! 이제라도 아들에게 전화해서 병아리들 여기까지 배달해 달라고 요청하는 게 어때? 내가 다 업어서 오르내리게 해줄 수 있어. 물장구도 치고........ 병아리들 물고기 잡아주려고 미니 낚싯대도 준비를 했단 말이야. 평생 안 해본 낚시지만 함께 놀고 경험시켜주고 싶어서 낚시 장비랑 어항과 떡밥도 준비를 해 왔는데...... (낚시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왜? 나가보기는 했는데..... 한 마리도 못잡았다. 헐! 낚시 아무나 하는 것 아닌가봐. 사진은 담에 고기 잡고 나서부터) 아니면, 내가 새벽에 달려가서 잠자는 병아리들 싣고 올게. 병아리 없으면 죽고 못 산다고 해 놓고는........ 마귀할멈아. 너 지금 잘만 놀고 있네? 배신이여 배신.

‘당신 자꾸 엉뚱한 생각 하지 마라? 표정을 보니 뭔가 불만이 있나본데....... 병아리들은 내일 아들 따라서 농구장 관람 간다며? 겡구가 잘 데리고 서울 나들이 다녀 올 거여. 모레도 또 갈지도 모르고? 애들은 애들 가족끼리 그렇게 또 잘 지낼 거여. 그러니까 애들 걱정하지 말고 당장 옆에 있는 가족이나 먼저 신경 쓰시지?’

햐!!!! 역시 마귀할망구라 촉 하나는 끝내준다. 그새 남의 속을 쓱 흩어 내다니........ 귀신은 속여도 할망구는 못 속인다.

산책에서 돌아와 느긋하게 낮술을 소맥으로 홀짝홀짝 거려 보는데........

캠퍼들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구축되는 사이트 사이로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을 보자니 당연히....... 우리 예쁜 병아리들이 보고 싶다!!!!! 할아버지 맴은 요로쿰인데.........

‘윤태리 세리. 할머니는 배반을 때려도 할아버지는 늘 한결같은 마음이야. 너무 보고 시포.’

유유자적 한껏 여유를 부리는 챠밍여사를 건너다보면서........ ‘원래는 이게 아니었는데’ ‘이럴 수도 있는 거구나’ ‘앞으로는 작전을 새롭게 잘 짜야겠구나’ 라고 푸념석인 자조를 해 본다.

소맥으로 속이나 달래보자. 어????? 왜 소맥이 이리도 순하지? 술 술 넘어간다.

술이 술 술 넘어간다는 것은........ 어쩐지...... 할망구가 소주를 박스로 사자고 보채더니만 이런 일이? 에라........ 첨은 아니잖아? 채석강 캠핑에서 할망구 망가진 적 있다? 혹 오늘이 또 할망구 망가지는 날?

‘이를 어쩌지?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우리가 이렇게 노는 것을 아들이 알게 되면.......... 아빠. 정말 그러실 거예요? 할 텐데. 아들. 오해야 오해. 이번 일은 모두 엄마가 그랬어........’


지난 달 말경에 우연찮게 ‘어줍’을 했다.

삼봉 휴양림이나 하추 휴양림을 가고 싶었는데....... 컴퓨터는 구닥따리고 광클을 해야하는 손가락은 맹탕이다 보니 ‘15초 땡’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라서 그저....... 화가 밀레의 심정으로 어디 떨어진 이삭이나 없을까 하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단양 소선암 캠핑장에 ‘어줍’이 눈에 띄었다. 산 구역이 나왔는데...... 찰라 같은 촉으로 4번 데크를 일단 무조건 질러대고 말았다. 아주 오래전에 다녀간 기억은 있는데...... 그게 하도 소싯적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블로그와 카페 등을 죽어라 찾아 읽어 보았다. 혹시나 아직 다른 빈 자리가 있을 때, 상황파악을 해서 옮기려면 옮길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현실이란 게........ 일단 내지르고 나면 사람은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서 가급적 긍정적이고 좋은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존심(?)이란 게 다 그렇게 만들어 가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 보고 따져 보다도 소선암 오토캠핑장에서 최고의 명당은 산 구역 4번 데크가 아닌가? ‘그럼 그렇지 내가 누구여?’ 까짓 이런 정도까지 오게 되면 ‘계단 이까짓 꺼. 이래 보여도 나 아직 팔팔해. 계단 문제없다고.’ 라고 자신감에다 확신감까지 추가로 더해진다.

더 이야기해서 뭐해. 이미 끝난 거지.

‘난 예약해둔 캠핑장이 있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면 알지 못하는 힘이 솟아나고 은근히 일(생활)이 즐거워진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만의 비밀로 간직한다. 아내에게 일절 비밀로 부치고 이래저래 눈치를 살피면서 개수작(?)을 부리는 재미가 엄청 솔솔하기 때문이다. 매번 들통 나고 혼나기는 하지만........ 나는 이런 깜짝 쇼나 어처구니없는 이벤트를 즐겨 한다. 재미있으니까 말이다.

며느리에게서 할망구에게 안부 전화가 왔다. 그냥 무덤덤하게....... 우리 집안은 언제나 무탈이다. 병아리들만 무사하게 잘 크면 우리 집은 언제나 해피 해피다. 하지만 아들과 할망구는 늘 ‘아빠만 사고 안치면 우리 집은 사고 칠 사람이 없어요.’ 라고 뒤에 주석을 꼭 달아 놓는다. 물론 나야말로 무척 억울한 삶을 살고 있는 이빨 빠진 원조 늑대다. 하니 어쩌랴?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어줍’에 매달리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병아리들과 지낼 찬스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서 다가오는 어줍 날짜에 맞추어 은근슬쩍 아들에게 가족 스케줄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주 금요일에 서울서 길거리 농구대회 예선전이 있단다. 내가 중년까지 조기 축구회 소속이었듯이 아들은 아직까지 이천의 길거리 농구단 현역 선수다. ‘아빠가 저를 5cm만 더 크게 낳아주셨으면 아마도 프로 농구선수가 되었을 거예요.’ 라고 할 정도로 아마추어에서는 수준급 농구 실력을 갖춘 아들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유명했었다. 멀쩡하고 미끈하게 아빠보다도 더 크게 맹글어 놓으니까 이제 와서 5cm 타령을 한다. ‘아빤 네가 축구 선수 할 줄 알고 최적화된 축구선수 신체를 설계한 건데 네가 종목 변경을 할 줄 알았겠니? 태어나기 전에 엄마한테 이야기 하지? 그랬으면 농구선수로 설계 변경을 해주었을 텐데.’ 라고 대답해 주었었다.

금요일 예선에서 이기면 토요일에 또 올라가고, 또 이겨서 결선에 오르면 일요일에도 서울 올라간단다. 병아리들을 며느리가 데리고 토요일에 농구장 응원을 갈 예정이란다. 확정은 아니지만 말이다.

할아버지 속마음이 복잡해진다. 이건 할아버지가 되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마음이다. 아무에게도 드러내 보일 수 없는 어떤 허전함이랄까?

‘이럴 땐 아들이 금요일 예선에서 탈락하기를 기도해야 하는 게 맞을까 아닐까?’

‘그렇게라도 해서 토요일 아침에라도 병아리들을 빼앗아 오는 게 과연 잘하는 것일까 아닐까?’

사나흘 동안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다.

그러다가...... 당근에 쓸만해보이는 텐트가 하나 올라와서 은근슬쩍 꽁수를 부리다가 ‘어줍’까지 모두 들통나 버리고 마는 사태가 벌어졌다. 마귀할망구 촉이 9단이다. 귀신은 속여도 할망구 촉은 못 속인다. 40년을 겪고 살았는데..... 할망구 촉은 40년이 지나도 여전히 업그레이중이다.

그리고는 그 결과로 어쨌거나 아들 시합에 대한 고민을 단방에 해결해 버린다. 아주 시원하게......

‘어중간한 이 계절에 캠핑은 무슨? 낮에는 제법 덥다고 하지만 밤에는 아직 쌀쌀하고, 실내 수영장도 아닌 계곡물에 우리 병아리들을 담구겠다고? 애들 잡으려고 작정했어? 여름방학 때 아니면 계곡물에 병아리들 못 내려보내. 당신 꿈도 꾸지 마라? 방학 시작하면 한 열흘 데리고 있기로 했잖아. 그때까지 좀 참아. 애들 바람 넣지 마. 알았지?’

단칼에 그냥 싹뚝 잘라 버린다.

‘알았어. 이따가 해약해 버릴 께.’

‘해약은 하지 마. 일단 좀 더 상황을 두고 봐도 되잖아. 페널티가 며칠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날부터 이 할아버지는 전혀 다른 간곡한 기도를 시작했다.

더워져라. 제발 계곡물이 따뜻해질 만큼만 날씨야 더워져라. 그래야 내가 산다. 날씨야 제발 쪼끔만 더 더워져라.

현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속옷이 젖는 더위를 무던히 참아내면서도........ 하천에 손을 담궈 보면 왜 여전히 차가운 거야? 겉바속촉이 지금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겉은 푹푹 찌는 한이 있어도 속은 따뜻한 정도면 안 되겠니? 달력은 그냥 붙잡아 매어 놓고 계절만 좀 더 빠르게 돌려놓으면 안 되겠니? 하늘아 하늘아!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니?

그렇게 시간은 흘러서 이제 오늘 중에 해약을 하지 않으면 손해(페널티)를 먹게 생겼다. 그래서 슬쩍 언질을 해 보니......... ‘이렇게 된 거, 모처럼 우리끼리 캠핑을 해볼까?’ 해온다. 눈빛이 초롱초롱한 것이 이제까지의 세리 할망구 표정이 아니다.

‘이 사람이 시방? 세리 할망구가 맞나? 시방 내 속을 은근슬쩍 떠보는 것 아닐까?’

‘우리 병아리들은 어쩌구? 병아리 없으면 재미없다면서? 그냥 데려가서 물놀이 안하고 놀면 되지? 낚시나 가르쳐 볼게.’

‘병아리 타령 하지 말라니까? 우리 단 둘이 떠나본 게 언제니? 그리고 애들 스케줄이 어떤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말했는데 계획이 있다고 하면?’


‘애들 계획 없어. 아들 농구 대회가 있기는한데...... 예선에서 이겨야 다음날 겡구가 애들 데리고 갈 예정이라고 했어.’

‘아들 농구 시합?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제 며느리는 나한테 아무 말도 안하던데? 나 몰래 아들하고 짜고 벌써 일 저지른 건 아니지?’

‘저지르긴 뭘 저질러? 당신 허가가 없었는데 내가 아들하고 무슨 계획을 짜. 내가 짠다고 그넘이 가만 있을 넘이야? 벌써 당신한테 다 고자질 했지? 아들은 우리 캠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이야기를 해도 당신을 통해서 하지........ 아들하고 아빠하고 서로 안부 통화도 못하냐?’

‘그건 아니고....... 당신이 하도 깜짝 쇼 파티를 잘 벌이니까 하는 말이지? 분명 아들한텐 아무 말도 안했다고 했어? 그럼 이번 캠핑은 모처럼 우리 단둘이서 가는 것으로 해. 내가 당신한테 모처럼 부탁하는 거야. 우리 오래 됐잖아. 한 번 우리끼리 해 보자고. 짐도 최소한으로 간단하게 챙겨서 가까우니까 가볍게 다녀와 보자고. 알았지?’

‘알았어. 그래놓고 당일 돼서 갑자기 병아리가 어쩌니....... 데리러 갔다 온다느니...... 정말로 그러기 없기다? 아주 간단하게 짐도 미리 챙겨 놓는다?’

‘정말로 이번엔 우리끼리 병아리 없이 놀다가 오기. 약속해.’

들었니? 병아리들아 할아버지 마음은 그게 아니었단다. 배신은 할머니가 한 것이지 할아버지는 아니야. 할아버진 오로지 일편단심이야. 알지?


출발하는 아침까지도 할아버지는 할머니 눈치를 살피고 또 살폈다.

이제라도 마음을 바꾸면...... 적어도 이번만큼은 할아버지가 너른 마음으로 이해하고 용서해 주겠다고 말이다. 혹 가는 도중에라도 마을을 바꾸면 언제라고 차를 돌려 달려가리라고 다짐을 하고 또 하고......... 그러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그런데 아니었다.

우리 차가 단양 땅에 들어서고 소선암 오토캠핑장 간판이 나타날 때 까지도 우리 병아리들에 대한 이야기가 일절 없었다. 다만 슬쩍 비켜가기는 했는데........

‘나 어젯밤 꿈에 아들 농구시합 가서 첫 게임에서 지라고 기도했다. 병아리도 병아리지만 시합 때마다 다치기도 하고....... 차라리 시합에서 일찍 지고 주말을 우리 겡구랑 병아리들과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싶어서 차라리 졌으면 좋겠다고 기도를 다 했어.’

헐!!!!!

병아리를 배반하더니 이젠 아들까지 배반을 한다. 이 할망구가 지금....... 아니, 그러면서 지금 은근히 며느리 편을 드는 거여? 며느리는 내 편이라니까? 당신은 죽어도 아들 편이라며?

그런데 어쨌느냐?

그날 저녁에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빠. 오늘 게임 다 이겨서 내일도 서울가요. 병아리들이 농구장 갈지 안 갈지는 저녁에 겡구하고 상의를 해 보아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할망구의 기도빨이 안 먹혔다는 점에서는 잠시 고소하기는 했는데........ 아들네도 결정권이 겡구(며느리)에게 있다는 확인을 받는 순간........ ‘아들.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니?’


어쨌거나 그런 연유로 해서 지금 우리는 단 둘이 모처럼 호젓하게 <소선암 오토캠핑장>에서 모처럼의 호사스런(?) 캠핑을 즐기고 있다.

그때, 예약을 취소하겠다고 하니 그냥 둬 보라고 했을 때, 이미 다 알아봤다고....... 이렇게 될 줄을....... 내가 눈치 보고 산 지가 40년이여. 어깨너머로 3단은 된다고.......

만약에 그때 할망구가 차가운 계곡물을 핑계로 끝내 해약을 하자고 했으면, 난 과감하게 예약 취소를 했을 것이다. 한시도 망설임 없이 말이다.

내가 그렇게 확신에 가득 찬 호언장담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이미 다른 예비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망구가 병아리들 물놀이를 이유로 수온이 너무 차서 지금 캠핑은 불가능하다 끝까지 우기고 나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을 사전에 이미 충분하게 했었다. 그래서 그다음 준비를 이미 해 놓았다. ‘어줍’에 더 열심히 매달린 결과로 6월 셋째 주에 가리왕산 휴양림 테크를 예약해 놓았던 것이다. 설마 그때쯤에도 물이 차니 어쩌니 하지는 못하겠지? 그런데 이렇게 얼떨결에 둘이서 소선암 캠핑장으로 와 버린 마당에 석주 지나서 또 병아리 타령을 늘어 놓을 수는 없게 되었고, 아무래도 가리왕산 캠핑은 몰래 취소해야만 할 것 같다. 대신 7월 초에 삼봉 휴양림 추첨제 신청이 하나라도 당첨되었으면 좋겠다.

‘태리야. 세리야. 할아버진 이렇게 산다. 오매불망 우리 병아리가 나한텐 전부야. 알지?’

해는 지고 캠핑장은 캠퍼들로 차고 넘친다.

어둠이 내리고 여기저기 호롱불이 나붙기 시작한다.

사방에서 장작을 피우는 연기가 솟아 오르고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언제나 처럼 마냥 그리웠던 그런 캠핑장의 밤풍경이 펼져진다.

술은 알딸딸해져 가고....... 우리는 이제........ 화장실이 필요해 졌다.

가파르다 못해 험준하기까지 한 이끼 돌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간다.

성스러운 의례(?)를 치루고 재회하여 두 손을 꼭 잡고 캠핑장을 둘러본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있었을 때, 챠밍여사가 내 어깨에 슬며시 기대오면서 한 마디를 남긴다.

'나, 당신 사랑해'


시몬, 너는 들었니?

낙엽밟는 소리가 아니라 내 심장이 핵분열을 일으키는 소리를.

아들. 너는 아니?

엄마가 사랑하는 게 병아리들 뿐이 아님을.

거기, 지극히 높은 곳에 앉아 계시는 분요.

땡큐 입니다.





-- 아무래도 다음 이야기에서 좀 더 이어가야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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